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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빌 엠페러 1(16화)
6장 암살자(4)


나는 미간을 좁혔다. 이럴 리가 없었다. 유피아나 선생이 없다고 해도 안에는 세실이 있었다.
문손잡이를 조심스럽게 돌려 보았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뭔가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어깨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정면에서 압박감이 느껴졌다.
나는 양손을 앞으로 내밀어 몸을 보호했다.
“루비오 군!”
가늘고 날카로운 목소리?
나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고 있었다. 바로 유피아나 선생이었다.
나는 상대가 유피아나 선생이라는 것을 알고 손을 거두었다.
“유피아나 선생님.”
유피아나 선생이 뒤로 물러서면서 검을 거두었다. 방에는 여기저기 핏자국이 남겨져 있었다.
나는 바닥에 놓인 시체를 보곤 급히 문을 닫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유피아나 선생이 검을 검집에 넣으면서 말했다.
“루비오 군이라 다행이야.”
“이자는 누굽니까?”
유피아나 선생이 짧게 대답했다.
“라인스 암살단.”
“라인스 암살단이라고요?”
유피아나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그들이 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어.”
실패는 죽음. 그것을 지키지 못했을 때는 자신들이 직접 해결했다.
나는 침대에 죽은 듯 누워 있는 세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세실은 괜찮은 건가요?”
“수면제를 좀 먹였어. 그녀가 보고 충격을 받으면 안 되니까.”
나는 시체의 얼굴을 살폈다. 죽은 이는 내 또래의 남자아이였다.
“아카데미 학생입니까?”
유피아나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카데미 학생은 아니야.”
“그럼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죠?”
“아카데미에서 잡일을 맡아서 하던 소년이었지. 뭐, 세실에 대한 감시역도 겸하고 있었겠지만…….”
“빨리 손을 써야겠군요.”
“일은 잘되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마리오를 부를 겁니다.”
“대책은 선 것 같은데?”
“네, 어느 정도는…….”
유피아나 선생은 단순한 보건 선생이 아니었다. 그녀는 아카데미의 수호자라 불리는 아케인 중 한 명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내가 소드 익스퍼트란 사실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시체는 어떻게 할까요?”
내가 묻자 유피아나 선생이 커다란 천을 꺼냈다.
“시체를 치우는 것은 어렵지 않지.”
그녀가 천으로 시체를 가린 뒤 주문을 외운 다음 순간, 시체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어떻게 한 거죠?”
유피아나 선생이 오른손 식지를 들어 흔들었다.
“공.간.전.이.”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치료 마법이나 검법 말고도 몇 가지 마법을 더 사용할 줄 아는 것 같았다.
마검사 치고는 흔치 않은 케이스였다. 일반적으로 마법사는 파괴 마법과 검법을 혼용했다. 그러나 그녀는 검법과 함께 치료 위주의 신성 마법을 주로 사용했다.
“루비오 군, 암살단을 얕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개개인의 실력은 어떨지 몰라도 집념만은 대단한 녀석들이거든.”
나는 주먹을 쥐면서 말했다.
“얕보고 있지 않습니다. 암살단도 그 뒤에 선 사람도 말입니다.”



7장 독에는 독(1)


손자병법에 이런 말이 있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 지지 않는다.
공작 부인은 나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알고 있지 못했다.
나는 어떠한가? 내가 알고 있는 공작 부인은 진짜인가?
아쉽지만 나는 어렴풋이 공작 부인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냉정히 양쪽을 비교해 보면 내 쪽이 조금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공작 부인이 옅은 안개에 싸인 장미꽃이라면, 공작 부인이 알고 있는 난 잔잔한 파도에 잠긴 암초와 같았다.
정체를 완전히 감추고 있는 내 쪽이 훨씬 유리했다.
공작 부인이 알고 있는 난 평범한 아카데미의 소년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가 나에 대해서 놀랄 때쯤에는 모든 것이 끝나 있을 것이다.
나는 편지를 수행원에게 맡기면서 말했다.
“최대한 빨리 어머니께 전해 드리게.”
최근에 알게 된 일인데, 내게는 두 명의 수행원이 있었다. 이들은 아카데미 밖에서 살면서 심부름을 하곤 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귀족이나 왕족들도 아카데미 밖에 이런 심부름꾼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아카데미 앞의 마을은 언제나 외지 사람들로 북적였다.
마리오라는 청년이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공작의 차남이란 제법 권세가 있었다. 국외로 나와서까지 이렇게 시종을 부릴 수가 있었으니까.
나는 막 떠나려는 마리오를 불러 세웠다.
“마리오.”
마리오가 두 눈을 크게 뜨면서 말했다.
“네? 다른 일이 있으신 겁니까?”
나는 그의 손에 은화를 쥐어 주면서 말했다.
“돌아올 때 어머니의 답장을 받아 오게.”
마리오가 크게 고개를 숙였다.
“답장을 꼭 받아 오겠습니다.”
은화 한 닢으로 힘을 내게 할 수 있다면 주는 것이 좋았다. 공작의 차남에게 이 정도 돈은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마리오가 내게서 멀어져 가자 한 청년이 날 향해 다가왔다. 그는 멀리서 마리오가 멀어지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았다.
또 다른 암살자인가?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이미 예상한 바였다.
라인스 암살단이라……. 난 녀석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그를 슬쩍 훑어보았다.
키가 크고 골격도 굵었으며 근육도 제법 있었다. 딱 보니 상급생이었다.
상급생을 암살자로 보낸 건가?
소년이 날 향해 미소를 지었다.
미소를 짓는다? 내 방심을 유도하는 건가? 아니면 암살자가 아닌 건가?
암살자가 아니라면……. 혹시 아자크 왕자나 그레시아 황녀의 부하쯤 되겠지. 웃긴 일이야. 아카데미에서도 왕자나 황녀 놀이를 하다니. 학생이면 학생답게 공부를 할 것이지.
나는 내력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암살자든 아자크 왕자나 그레시아 황녀의 부하든 일단은 경계를 해 두어야 했다. 그가 무력을 쓴다면 가볍게 상대해 줄 생각이었다.
소년이 나를 향해 말했다.
“루비오 군.”
나는 가볍게 그의 말을 받았다.
“무슨 일입니까?”
“나를 기억하고 있나?”
이 사람과 난 서로 알고 있는 사이였나?
이건…… 좋지 않군. 뭐라고 대답해야 한단 말인가?
전 당신을 기억하고 있지 못합니다. 영혼이 바뀌었거든요.
이렇게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공손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기억이 잘 나질 않는군요. 불행하게도 페트리 교수님의 강의 사건 때 기억을 약간 잃었습니다. 아마 그 때문일 겁니다. 무례하다 생각하신다면 다시 한 번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그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때 일은 들었어. 하지만 루비오 군, 그때 이후로 큰 힘을 얻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때 이후로 큰 힘을 얻어? 이건 무슨 소리지? 설마 페트리 교수 사건으로 내가 알 수 없는 힘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자크 왕자와의 일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아버지께 배운 무예를 조금 사용한 것뿐입니다. 특별히 힘을 얻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상급생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때 힘이 되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쪽은 수가 적어서 말이야.”
힘이 되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상급생이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페르디난드 드 메디세, 메디세 백작의 장남이지. 3학년이고 학급은 노멀 클래스야.”
백작의 장남이라. 그럼 백작 위를 이어받게 되겠군. 근데 왜 내 편을 드는 거지?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메디세가 말했다.
“루비오도 알다시피 우리 스웨인 왕국은 마법보다 검으로 유명하잖아. 덕분에 마법사가 되려는 귀족도 드물고, 마법사의 처지도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지. 때문에 아카데미 안에서도 수가 적어. 음,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루비오가 우리를 좀 도와줄 수 있겠어? 스웨인 그룹의 리더로서 부탁할게.”
그렇군. 이 상급생은 스웨인 사람이었군. 아자크 왕자가 아크바스 왕국 사람들의 비호를 받는다면, 나도 스웨인 왕국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 어쨌거나 나는 스웨인 왕국 공작의 차남이니까.
하지만 스웨인 쪽은 학생 수가 적다는 이유로 그러지 못했다.
정말 수가 적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아자크 왕자를 비호한 상급생들의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아크바스 왕국 전체 학생의 수는 백여 명 정도. 아자크 왕자를 비호한 것은 이 할이 채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스웨인 왕국도 비슷한 숫자는 충분히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스웨인 소년, 소녀들은 날 일부러 따돌렸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왜 내게 친구가 플린과 세실밖에 없겠는가?
심지어 두 사람은 모두 스웨인 출신이 아니었다. 스웨인 출신 귀족에게 스웨인 출신 친구가 없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나는 메디세를 보면서 미간을 좁혔다.
메디세는 이런 내 생각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루비오, 안 될 것 같아?”
난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돕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능한 일이 있을까요?”
메디세는 밝게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억지로 짓는 미소란 아마 저런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루비오,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야. 사실은 다이니 클럽 대항전에 관한 것인데. 우리 쪽 멤버 중에 한 명이 연습 중에 부상을 당하고 말았어.”
다이니 클럽이라…….
나는 이 단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련하게밖에 그 뜻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메디세가 말했다.
“루비오는 멤버가 되어 주기만 하면 돼. 공을 들고 뛰는 건 우리가 하겠어.”
그렇군. 멤버란 말을 들으니 기억이 났다.
다이니는 공을 들고 상대의 진형을 돌파해 결승점에 가져가는 경기였다. 과격한 경기라 건장한 남자들만이 즐기는 운동이었다.
클럽이라는 건 모임이란 말이니까. 다이니 클럽 대항전이란 다이니 경기를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겠군. 그가 말한 리더란 것도 다이니 클럽의 리더를 말하는 것일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아, 제가 다이니 경기를 뛰면 되는 겁니까?”
“무리한 건 시키지 않을 테니까, 제발 머릿수를 맞춰 줘. 다른 녀석들은 상대가 아자크 왕자 클럽이라니까 도망쳐 버렸어.”
상대가 아자크 왕자 일당인가? 이건 좋지 않은데. 그 녀석이 지면 또 문제를 일으킬 텐데. 그레시아가 충고를 했다고 해도 쉽게 물러설 녀석이 아니지 않은가?
아자크 왕자와 관계되어 있지 않다고 해도 순순히 ‘네, 도와드리죠.’ 라고 말할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지만, 아자크 왕자가 관계된 이상 피하는 것이 좋았다.
게다가 내게는 라인스 암살단이란 골치 아픈 상대가 있었다. 지금 내 머릿속은 라인스 암살단과 계모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딱한 사정은 알겠지만, 아시다시피 아자크 왕자와 전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제가 그와 시합을 하게 되면 큰 싸움이 날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 선도부 위원장인 그레시아 선배가 제게 말했습니다. 각자 최대한 자숙을 하라고 말이죠. 메디세 선배님, 이 이야기는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자 메디세가 내 양쪽 어깨를 잡으면서 말했다.
나는 그의 손이 다가오자 내력을 회수해서 그가 반탄지기에 당하지 않게 했다.
“아자크 왕자는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직접 나서지 않아. 그의 친구들…… 아니 부하들이 나서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싸움은 나지 않을 거야. 루비오, 부탁이야. 자네밖에 없어. 그레시아에게는 내가 말을 해 볼게.”
아자크 왕자가 나서지 않는다라…….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까지 아는 척도 안 했던 스웨인 소년을 믿어야만 할까?
내키지 않았지만 일단은 하기로 했다.
이번 일을 통해 스웨인 소년들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쉽게 승낙할 수는 없었다. 그럼 값이 너무 떨어졌다.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이번에 문제가 생기면 전 본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아버지께서 무척 섭섭하게 생각하시겠죠.”
“루비오, 부탁이야.”
나는 한 번 더 값을 올렸다.
“사정이 딱한 것은 알겠지만 이번 일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메디세의 표정을 살피면서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쌀쌀맞게 이야기한 것은 값을 높게 부르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절반쯤은 그를 시험해 보자는 목적도 있었다.
그가 아자크 왕자처럼 경솔한 상급생이라면 즉시 분통을 터트릴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자크 왕자와 달랐다.
“루비오, 이전까지의 일은 내가 사과하겠어. 우리가 루비오를 돕지 못했던 것, 아니 루비오를 기피해 왔던 것도 사과하겠어.”
역시나 난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군.
나는 차갑게 말했다.
“전 그런 사과를 받을 만한 사람이 못 됩니다.”
“아니. 난 사과를 해야겠어. 발칸 백작의 말만 듣고 루비오를 멀리해 왔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 진심으로 루비오에게 도움을 청하는 거야. 루비오가 이번에 도움을 준다면 결코 잊지 않을 거야.”
발칸 백작이라……. 공작 부인의 친아들 말인가? 공작 위 계승을 바라는?
그럼 이렇게 되는 건가? 메디세를 비롯한 스웨인 왕국 학생들은 발칸 백작이 공작의 위를 계승할 것으로 생각하고 나를 홀대해 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메디세라는 소년도 보통은 넘는 것 같았다. 내게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태도를 바꾸었으니까. 이렇게 태도를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누군가 조언을 해 주었을 수도 있었다. 넬슨 학장이라던가, 그레시아 왕녀라던가. 아니면 유피아나 선생.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생각을 좀 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
메디세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말했다.
“좋아. 다음 주까지 결정해서 내게 말해 줘. 아, 상급생 클래스가 부담된다면, 2학년인 도노반에게 말해도 괜찮아.”
역시 같은 학년에도 스웨인 왕국 사람이 제법 있는 모양이군.
메디세와 헤어진 후,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식으로는 진짜 친구가 될 수 없지.”
그리고 내게는 더 큰일이 있었다. 이 싸움은 아자크 왕자나 메디세의 소꿉놀이와는 차원이 달랐다. 서로의 목숨을 건 진짜 싸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