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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빌 엠페러 1(20화)
8장 다이니 경기(2)


메디세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다들 잘해 주고 있어. 이렇게만 하면 낙승이야.”
“분위기가 좋아. 아크바스 녀석들 평소와 달리 반칙을 못 쓰니까 제 실력이 나오는 거야.”
“하긴 우리에게는 루비오가 있지. 녀석들이 함부로 반칙을 할 수 없을 걸?”
“맞아. 루비오가 든든하단 말이야.”
내가 있기 때문에 반칙을 하지 못한다고? 내가 한 일이란 건 그냥 서 있던 것뿐인데, 무슨 도움이 됐단 말인가?
메디세가 내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남은 시간도 부탁해. 루비오가 지키고 있으면 녀석들이 무리하게 밀고 들어오지 못할 거야.”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내가 지키고 있기 때문에 밀고 들어오지 못한다? 흠…….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있는 것 같군.
작전시간이 끝나고 선수들이 다시 제 위치로 나왔다. 나는 여전히 수비수였다.
심판이 경기 시작을 알리자 우리 쪽 공격이 시작되었다.
“좋아! S 포메이션이다!”
세 명의 수비수에 둘러싸인 메디세가 밖으로 날카로운 패스를 했다.
그러나 세 명의 수비수는 공과 상관없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경기 룰대로라면 공이 없는 선수는 공격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룰과 상관없이 어깨로 메디세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아악!”
처참한 비명과 함께 메디세가 땅을 굴렀다. 쓰러진 뒤 움직이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심각한 부상을 당한 것 같았다.
나는 미간을 좁혔다.
이 녀석들, 치졸한 작전을 쓰다니. 적장을 암살해서 이득을 취하겠다는 건가?
스웨인 왕국 선수들이 상대 선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뭐야! 이 녀석들!”
“일부러 그랬지!”
“이 녀석들! 메디세를……. 용서할 수 없다!”
아크바스 왕국 선수들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했다.
“흥분하지 마. 단순한 반칙이란 말이야.”
“그래, 단순한 반칙이야.”
“해 보겠다는 거냐?”
“작작들 해. 심판이 판정할 거야.”
감정이 격해지자 심판이 양쪽을 말리고 나섰다.
“다들 진정해. 아크바스 왕국의 반칙이다!”
스웨인 왕국 선수들이 심판을 향해 거친 목소리로 항의했다.
“녀석들이 공과 상관없이 메디세를 때렸습니다!”
“공을 던진 뒤 메디세가 쓰러졌단 말입니다! 저 녀석들이 실력으로 이기지 못하니까 비겁한 수를 쓴 겁니다.”
아크바스 왕국 쪽에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뭐라고? 비겁한 수? 태클이 좀 늦은 것뿐이야!”
“잠깐 쓰러진 걸로 왜 이리 말이 많아! 다이니 경기는 계집애들 놀이가 아니야!”
“메디세 왜 누워 있어? 당장 일어나란 말이야.”
얼굴을 찡그린 심판이 양쪽을 불러 주의를 주었다.
“계속 싸우면 양쪽 모두 몰수패일세. 스웨인 왕국 팀, 진정하게. 이건 내가 판정하겠네.”
나는 심판의 판정을 기다리지 않고 쓰러진 메디세에게 달려갔다.
이럴 때는 싸우는 것보다 아군을 챙기는 것이 먼저였다.
“메디세, 괜찮아?”
메디세가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아크바스 놈들…… 비겁하게…….”
“그래, 비겁한 녀석들이야.”
심판의 판정이 떨어지자 다른 선수들도 메디세에게 다가왔다.
“주장, 할 수 있겠어?”
“저 녀석들……. 이렇게 나오다니.”
“정말 비겁한 녀석들이야!”
메디세가 말했다.
“심판은?”
“한 명 퇴장이 전부라잖아. 제길! 우리를 우습게 보고 있어.”
“할 수 없지. 심판이 그리 말하면…….”
메디세가 내 부축을 받으면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그는 반쯤 일어났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아앗! 다리가…….”
바닥에 제대로 착지하지 못해 다리를 다친 것이다.
나는 그의 옷을 벗긴 후 상처를 살폈다. 메디세의 오른쪽 다리가 퉁퉁 부어 있었다.
“이건……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움직이면 위험하겠는걸.”
보나마나 뼈에 금이 간 것 같았다.
메디세가 이마를 찡그렸다.
“루비오, 나는 뛸 수 없는 건가?”
“잠깐만 기다려 봐.”
나는 주위 소년들을 향해 말했다.
“여기 힐링을 해 줄 수 있는 사람 있습니까?”
상급 신성 마법이라면 이 정도 상처는 일순간에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그런 능력자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힐링을 구사할 수 있는 학생을 찾았다.
“힐링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실 분 있습니까?”
잠시 뒤 내 외침을 들은 상급생들이 스탠드에서 경기장으로 내려왔다.
“힐링이라면 우리에게 맡겨 줘.”
그들은 재빨리 마나 지팡이를 휘두르며 힐링을 시전했다. 하지만 그들의 힐링은 유피아나 선생의 신성 마법과는 차이가 심했다.
우선 지팡이에 모이는 마나량이 적었다. 이렇게 적은 마나로도 힐링이 될까 싶을 정도로 적은 양이 모였던 것이다.
역시나 부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힐링을 시전하던 상급생 중 한 명이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우리 노멀 클래스로는 무리야. 상급 클래스가 있어야 해.”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오늘은 무리일 거 같은데.”
메디세가 얼굴을 찡그렸다.
“제길! 오늘은 일요일이라 유피아나 선생님도 없단 말이야. 유피아나 선생님만 있었어도 다시 뛸 수 있었는데……. 쳇!”
유피아나는 아카데미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치유 마법을 사용했다. 물론 아카데미에는 그녀 외에도 치유 마법에 정통한 교수들이 몇 명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자리에는 한 명도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유피아나 선생님과 같이 있을 때, 치료 마법을 좀 배워 두는 건데.
후회란 길어지면 언제나 도움이 되지 않는 법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돌렸다.
경기가 오래 지체되자 심판이 우리 쪽을 향해 다가왔다.
“메디세 군. 부상이 심한가? 뛸 수 있겠는가?”
메디세가 깊은 숨을 들이쉬면서 대답했다.
“뛸 수 있습니다.”
그러자 동료들이 고개를 저었다.
“무리야. 교체해야 해.”
“아돈의 말이 맞아. 무리야.”
메디세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우리는 교체 선수가 없잖아.”
“할 수 없지. 아무나 한 명 넣는 수밖에…….”
메디세가 날 바라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질 수는 없어.”
다이니 경기는 열 명의 선수가 경기를 했다. 그래서 나 같은 초보자가 한 명쯤은 섞여 있어도 괜찮았지만, 그게 두 사람이라면 구멍이 너무 커졌다.
다시 말해 스웨인 왕국팀이 강팀이고 아크바스가 약팀이라고 해도 초보자가 둘이라면, 그 위치가 역전되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아자크 왕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우리를 보면서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저 표정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지금 기쁨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기쁘다니. 저 녀석이 이런 비겁한 작전을 지시한 것인가?
아닐 것이다. 그는 이런 작전을 지휘할 만큼 머리가 좋지 않았다. 그가 이런 식의 수법을 사용할 줄 알았다면, 분명 내게 다른 방법으로 복수하려 했을 것이다. 이건 다른 누군가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 권력자 주변에는 좋은 머리를 나쁜 쪽으로 이용하는 자가 항상 있었다. 아자크 왕자는 아크바스 왕국의 권력자가 될 인물로 주변에 간사한 책사가 한둘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나는 다시 메디세의 상처로 고개를 돌렸다.
방법이 없었다.
결국 팀의 주장인 메디세는 초보자인 상급생과 교체되었다.
그가 들어오자 부주장 아돈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루비오, 공격을 맡아 줘.”
“공격 말입니까?”
“수비에 초보자가 둘이면 로테이션이 무너지니까 어쩔 수 없어. 루비오, 공이 오면 빈자리를 보고 패스해. 알았지?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알겠습니다.”
나는 메디세의 부상으로 드디어 공격수로 올라섰다. 다른 사람의 불행 덕분에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건 찝찝했다.
“후우, 대타란 건가?”
나는 앞 열로 올라가 상대 선수와 어깨를 마주했다. 그는 방금 퇴장당한 선수의 교체 멤버였다.
다이니 경기는 퇴장을 당한다고 해도 경기장 안의 아군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었다. 퇴장당한 선수를 다른 선수로 교체하면 계속 같은 숫자로 경기를 진행할 수 있었다.
나와 어깨를 마주한 선수는 덩치가 크고 목이 짧았다.
“루비오라고 했던가?”
그는 나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아크바스 왕국 친구들 치고 나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자기들 왕자를 때려눕혔으니까.
나는 시선을 돌리면서 말했다.
“글쎄…….”
그가 날 향해서 말했다.
“메디세 다음에는 너다. 루비오.”
역시 이 녀석들 고의로 메디세를 보낸 거야.
“뭐라고?”
“다른 녀석들은 널 두려워하지. 심지어 아자크 왕자도 말이야. 하지만 난 그렇지 않아. 이 바르자크는 네 녀석이 두렵지 않아. 네 녀석에게 충고 하나 해 두지. 지금 당장 교체해서 나가지 않는다면 경기가 끝날 때쯤에는 두 다리로 서 있을 수조차 없게 될 거야.”
서 있을 수 없게 만들어 주겠다고? 이 녀석 날 제법 화나게 만드는데. 솔직히 말해서 사람을 도발하는데 어느 정도 재능이 있군.
하지만 다이니 실력은 어떨까? 난 봐주는 남자가 아니야.
심판이 경기를 다시 재개시켰다.
“경기 시작!”
그때였다.
퍽! 하는 타격음과 함께 바르자크가 내 배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심판의 눈이 공에 쏠려 있는 사이 반칙을 저지른 것이다.
나는 놀랐다.
이렇게 무모하게 반칙을 저지르는 녀석도 있단 말인가?
나는 주먹을 피할 수 있었지만 피하지 않았다. 내 반탄지기는 전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상대가 다이니 경기용 방어구를 착용했다고 해도 충분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예상대로 내 몸에 닿자마자 녀석의 주먹이 꺾였다.
“아앗!”
그는 바닥을 구르면서 심하게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아악! 내 손!”
반탄지기에 당한 것은 알겠는데, 저렇게 바닥을 구를 정도였나?
바르자크의 비명 소리를 들은 심판이 내게 달려왔다.
나는 두 손을 어깨 위로 들었다.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심판은 그가 주먹을 감싸 쥐고 있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스웨인, 반칙!”
퇴장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심판은 내게 충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자네 한 번만 더 상대에게 고의적으로 반칙을 하면 퇴장이야.”
심판은 내가 메디세에 대한 보복으로 그를 공격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부주장인 아돈도 내게 다가와 말했다.
“루비오, 네가 퇴장당하면 우린 무너지고 말 거야. 메디세 때문에 화가 난 건 알겠지만 자제해 줘.”
후……. 그렇단 말은 반탄지기도 쓸 수 없다는 건가?
나는 내력을 거둬들였다. 반탄지기를 쓰지 않고 반칙을 사용하는 녀석들을 상대해야만 하는 것이다.
심판과 아돈이 물러서자 바르자크가 비틀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내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네가 자랑하는 소드 익스퍼트의 실력인가? 상급생들 사이에서 유명하지. 대단한 루비오라고 말이야. 하지만 난 겁나지 않아.”
뭐라고? 이 녀석……. 내 경지를 알고 있는 건가? 내 실력을 알고 있기에 공격을 유도한 뒤, 엄살을 부린 거라고?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어?
바르자크가 내 얼굴을 살피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다이니 경기는 몸이 아닌 머리로 하는 거야. 너도 머리를 좀 쓰는 게 좋을걸?”
다이니 경기는 공과 관련이 없는 곳에서 자리 싸움 이상의 거친 플레이를 하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바르자크는 그 점을 노리고 나를 괴롭히려 하고 있었다.
녀석은 심판의 눈을 속여 넘기는데 익숙한 것 같았다.
나는 꽤나 곤란한 혹을 달고 시합에 임하게 되었다. 바르자크는 날 밀착 마크했고, 나는 그가 눈에 거슬려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바르자크의 입은 계속해서 날 괴롭혔다.
“루비오 공작, 그레시아 황녀의 관심을 받고 있다고? 스웨인 왕국은 꽤나 잘나가고 있군. 하지만 역사와 전통이 없는 나라가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
“나는 공작이 아니야.”
“아차, 그랬지? 형에게 공작 위를 빼앗길 위기에 처해 있었지. 내가 미처 몰랐군.”
몰랐다고? 저 말을 누가 믿을까? 녀석은 전후 관계를 모두 알면서 내 신경을 긁고 있었다.
내가 바르자크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동안 아크바스 왕국 선수들이 거칠게 우리 팀을 몰아붙였다.
곳곳에서 크고 작은 몸싸움이 벌어졌다. 메디세가 나간 이후 스웨인 왕국의 조직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특히 초보자가 합류한 수비진이 그랬다.
스코어는 어느새,
14 : 9
압도적으로 뒤졌던 아크바스 왕국이 턱밑까지 추격해 왔다.
부주장인 아돈은 몇 번이고 득점을 올리려 노력했지만, 아크바스 왕국의 거친 수비에 번번이 막히고 말았다. 그의 기량은 메디세에 비해 한참 모자랐다.
공격이 부진한 이유는 또 하나 있었다. 아돈은 항상 나를 제외한 네 명으로 공격 진형을 짰다. 그는 초보자인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기량이 떨어지는 에이스에, 공격하는 사람 숫자마저 적으니 공격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나는 아돈에게 몇 번이고 패스를 해 달라고 말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패스를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용렬한 태도에 화가 났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어쩌면 바르자크라는 존재가 있어서 그것을 드러낼 틈이 없었는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