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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무쌍 1권(2화)
제1장 이독제독(以毒制毒)(2)
3
“기관진식과 함정들이 잠시 시간을 벌어 주기는 하겠지만, 위재항은 이제 곧 이곳까지 들이닥칠 겁니다. 비록 주화입마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는 하나, 태상장로를 그리도 가뿐히 쓰러뜨린 괴물을 대체 어찌 상대한단 말입니까?”
상청자(霜靑子)의 얼굴에는 절망의 빛이 깃들었다. 한차례 한숨을 내쉰 태허존자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방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네.”
“아니, 장문사형! 그게 정말입니까? 그 방도라는 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어서 말씀해 보십시오.”
상청자의 재촉에 옥허진인(玉虛眞人)이 대신 말을 받았다.
“이독제독(以毒制毒)!”
“이독제독이라니요?”
상청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사숙께서도 그 비책을 염두에 두고 계셨군요. 달리 도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일 테지. 어찌 되었든, 극독은 극독으로 다스릴 수밖에 없지 않겠나?”
태허존자와 옥허진인의 대화를 듣고 있던 상청자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그는 볼멘소리로 말했다.
“대체 뭔 소리인지……. 알아듣게 좀 설명해 주십시오.”
상청자의 종용에 태허존자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마룡동(魔龍洞)의 봉인을 푸는 것일세.”
그 순간, 상청자의 두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잠시 후, 그는 정색하며 격앙된 목소리로 대꾸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어찌 그런 무서운 생각을 하십니까? 그 혈귀를 다시 불러내자니……. 나 원 참!”
곤륜파에서는 실로 걸출한 인물이 등장했으니, 다름 아닌 뇌진천(雷鎭穿)이었다. 무림 전체를 통틀어도 수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기재로서 곤륜파의 수뇌부에서도 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뇌진천은 무공이 일취월장함에 따라 점점 더 호전적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 적수가 없어진 그는 급기야 하극상을 일으켜 곤륜파를 장악하고 혈곤륜으로 개칭했다. 이는 사마외도의 길을 가겠다는 선언이었다.
혈곤륜의 개파조사가 된 뇌진천은 정파와 사파를 가리지 않고 앞을 가로막는 세력은 철저하게 파괴했다. 그가 지나간 자리는 그야말로 혈해(血海)로 변했다.
이러한 행적으로 말미암아 뇌진천은 혈해사신(血海死神)이라는 별호까지 얻게 되었다.
내부적으로는 혈해존자(血海尊子)로 통했다.
뇌진천의 파행으로 인해 결국 곤륜파는 숭의맹에서 파문되었을 뿐만 아니라, 무림공적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상황이 파국으로 치닫자, 곤륜산의 곳곳에 흩어져 유유자적하며 은거하던 원로원의 모든 장로가 직접 나서서 뇌진천을 제거하고 곤륜파를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으려 했다.
그러나 장로들의 힘으로도 뇌진천을 제거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이에 그들은 방법을 달리하기로 결정했다.
죽이는 게 불가능하다면 가둘 수밖에 없으리라.
곤륜산의 심산유곡에 자리한 마룡동에는 역대 장문인들 가운데 기관진식에 조예가 깊었던 현명존자(賢明尊子)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특별히 만들어 둔 감옥이 있었다.
이는 현역에서 은퇴하여 원로원의 장로가 되어야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이에 뇌진천은 함정에 걸려들어 결국 마룡동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 원로원에서도 최고의 무위를 지닌 수위 장로 삼십 명이 죽었고, 그나마 살아남은 장로들도 대부분 극심한 내상을 입어 주화입마에 빠지고 말았다.
희생이 이토록 컸던 것은 도저히 뇌진천을 제압할 수 없었기에 장로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스스로 희생양이 되어 그를 마룡동으로 유인했기 때문이었다.
***
“그것 외에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방법이 전혀 없다네.”
“장문인의 말이 맞네. 그리고 너무 그리 걱정할 건 없다네. 나름대로 복안이 있으니 말일세.”
“복안이라니, 그건 또 무엇입니까?”
상청자는 여전히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상청 사제는 그래도 명색이 우리 곤륜파의 차기 장문인인데, 어찌 그리 호들갑인가?”
태허존자의 핀잔에 상청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장문사형도 참! 그 경천동지할 혈귀를 다시 바깥세상으로 불러내려고 하는데, 이십 년 전 참사의 현장에 있었던 곤륜파 제자들 가운데 그 누가 동요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구환진인(九幻眞人)이 뇌진천의 혈륜(血輪)에 대한 파해법을 만들어 냈고, 혹시라도 녀석이 마룡동을 탈출할 경우를 대비해서 오랫동안 연습해 온 건 자네도 잘 알 걸세.”
“그렇기는 하지만…….”
“뇌진천과 위재항을 서로 싸우게 만든 다음, 우리는 뒤에서 협공하여 우선 난입자들을 몰아낼 걸세. 그 이후에는 장로들과 문하생들을 비롯한 속가제자들까지 곤륜파의 가용한 모든 인원을 총동원하여 철저하게 방어 위주의 차륜전(車輪戰)을 전개하면서 지구전을 펼칠 걸세. 분명히 승산이 있다네.”
태허존자는 상청자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제아무리 극강의 고수라고 해도 체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일세. 체력은 내공을 담는 그릇이네. 내공이 심후해도 체력이 소진되면 무용지물이 아닌가? 위재항과의 싸움에서 적잖이 체력을 소모한 뇌진천이라면 충분히 상대해 볼 만하네.”
상청자도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모양이었다.
“좋습니다. 어차피 일이 이 지경에 이른 이상, 무엇을 가리겠습니까? 한 번 해 보는 겁니다.”
4
내곤륜은 곤륜산의 은밀한 절지(絶地)에 자리한다. 그곳은 세속과는 단절된 채, 도학과 무학만을 익히며 심신을 수양하는 순수 문하생들만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내곤륜으로 통하는 다섯 개의 관문, 곧 태청오로관은 용봉관(龍鳳關)이라는 현판이 있는 하나의 관문으로 합쳐진다.
내곤륜은 곤륜산의 중앙 분지에 자리한다.
북쪽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천 길 낭떠러지인 비룡애(飛龍崖)가 무거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노곤한 시선으로 내곤륜의 경내를 조망한다. 다섯 개의 외문과 연결된, 내곤륜으로 통하는 유일한 입구인 용봉관의 남쪽으로는 깊고 넓은 잠룡호(潛龍湖)가 똬리를 틀고 있다.
이에 태청궁을 위시한 내곤륜의 전각들이 있는 곳으로 가려면 잠룡호를 횡단하는 부교(浮橋)를 건너야만 한다.
내곤륜의 본산은 비룡애를 등진 채, 앞으로는 잠룡호를 안고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형세를 취한다.
비룡애의 중앙 하단에는 지상 오 층 지하 이 층의 규모를 지닌 거대 전각인 태청궁(太淸宮)이 자리한다.
태청궁은 중앙의 대전각으로 장문인의 처소와 곤륜파의 수뇌부가 회동을 하는 대청인 무량전(無量殿)을 비롯하여 주요 수뇌들의 집무실들이 집결해 있다.
내곤륜의 경내에는 헛간이나 창고로 쓰이는 막사나 작은 전각들이 곳곳에 있고, 도처에 자리하는 수십 개의 봉우리와 심산유곡 등에는 크고 작은 도관이나 정자들이 위치한다.
내곤륜에는 요새화 된 진지가 구축되어 있었으니, 각 관문에 자리 잡고 있던 도관을 중심으로 하여 그 전면으로는 삼 장 높이의 튼튼한 목책이 세워졌다.
그것의 전방으로는 대략 일 장 깊이의 참호가 파여졌으며, 그 안에는 인근의 계곡에서 끌어 온 물로 채워져 도랑을 이루어 해자(垓子)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요새의 요지에는 먼 곳까지 정찰할 수 있는 높다란 망대가 세워져 있었다.
안 그래도 천혜의 방어 환경을 지닌 이곳 곤륜산에 세워진 전진기지는 가히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할 만했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이 무색하게도 모든 관문은 활짝 열려진 상태였고, 내곤륜의 내부는 텅텅 비어 있었다.
그 덕분에 흑혈회주 위재항을 필두로 하는 수많은 흑혈회 휘하의 흑의인은 단숨에 내곤륜으로 접어들었다.
“크하하하! 곤륜산에 서식하던 쥐새끼들이 본좌의 위세에 눌려 모조리 숨어 버린 모양이로구나. 크하하하!”
위재항은 기세등등하게 소리치며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그의 우편에 있던 흑포 중년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벌써 몇 차례나 말씀드렸듯이, 지금의 이 상황 가운데에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음모가 숨어 있음이 분명합니다.”
제이호법 사공승지(司空承之)의 말에 전위대장 손진광(孫眞廣)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사공 호법은 매사에 너무 조심스러워서 탈이오. 제까짓 놈들이 수작을 부려 봤자 뭐가 대수겠소? 신선놀음이나 하던 샌님들은 필시 지레 겁을 먹고 줄행랑을 친 거요. 그래도 그냥 도망치기 뭐하니까 나름대로 머리를 쓴다고 이렇게 아예 대문을 활짝 열어 놓아 더 경계하게 하려는 수작을 부린 거지.”
사공승지는 손진광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위재항을 향해 재차 입을 열어 간곡하게 말했다.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옵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유인책이 분명하옵니다. 조심하는 게 상책이옵니다.”
“사공 호법은 그만 입을 다물라! 본좌 앞에서 그 어떤 계략도 통하지 않는다. 매복이 있으면 그것을 박살 내 버리면 그만이고, 함정이 있으면 함정을 박살 내 버리면 그만이다.”
바로 그때, 태청궁 뒤편의 청운봉 위에 모습을 드러낸 태허존자가 조소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위재항아! 위재항아! 네가 어디까지 높아지려느냐?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모르느냐? 정녕 자신이 있다면 내 뒤를 따라와 보려무나. 자신이 없으면 지금이라도 꽁무니를 내리고 왔던 그 길 그대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이다. 껄껄껄!”
그 순간, 위재항의 관자놀이가 꿈틀거렸다.
태허존자의 도발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 대로 치민 위재항은 마룡봉을 향해 무시무시한 기세로 치달았다.
위재항의 뒤를 따라 흑혈회의 수뇌부를 비롯한 수많은 흑의무사가 질주했다. 얼마 후, 위재항과 그의 부하들은 높다란 절벽 앞에 이르러 발걸음을 멈추었다.
***
꽈르르르릉!
마룡애(魔龍厓)의 하단에서 갑자기 굉음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마룡동을 완벽하게 봉쇄하고 있던 만년단룡석의 문이 바닥으로 함몰되면서 동굴의 입구가 드러났다.
위재항을 비롯한 모두의 시선 역시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한동안 동굴을 지켜보던 위재항은 그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위재항은 이윽고 동굴의 내부로 천천히 진입했다. 그러나 그의 발걸음은 금세 멈추어졌다.
갑자기 소름이 돋을 정도의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위재항이 위협을 느낄 정도의 살기를 뿜어낼 수 있으려면 상대방 역시 비슷한 경지에 이르러 있어야 한다.
그 살기의 진원지는 어두컴컴한 동굴의 내부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마치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는 안광을 번뜩이며 위재항을 노려보는 신형이 있었다.
‘헉! 보통 놈이 아니다.’
위재항은 일순간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러나 자신이 상대방의 기세에 눌려 움찔했다는 것을 그는 인정할 수 없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경계의 고삐를 한껏 잡아당긴 채, 한동안 상대방과 대치하던 위재항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본좌는 위재항이다. 너는 누구냐?”
그러나 상대방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화감은 점점 더 짙어져 갔다.
상대방이 자아내는 위압감만으로도 동굴이 진동되었다.
그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
상대방은 단지 살기만으로도 대량 살상이 가능할 인물임이 틀림없었다.
위재항은 동굴 안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그 자체가 무너져 내려 매몰될 것을 우려하여 일단 밖으로 빠져나왔다.
‘대체 얼마 만에 만난 적수란 말인가?’
위재항은 상대방이 밖으로 나올 때까지 북명신공(北冥神功)을 극성으로 운용하면서 흥분되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북명신공을 완성한 이후로 위재항은 이제 다시는 당금의 강호무림에서 자신이 전력으로 싸워도 될 만한 호적수를 만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었다.
이미 지존으로서의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마당에 목숨을 걸고서 싸워야 할 상대가 등장하자, 무사로서의 투지가 가슴속에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5
꽈르르르릉!
굉음과 함께 지난 이십 년간 꼼짝도 하지 않던 문이 갑자기 바닥으로 함몰되어 버렸다.
그 문은 가공된 형태가 아니라, 만년단룡석을 통째로 옮겨 동굴에 설치된 기관진식의 일부로 만든 것이었다. 도저히 인간에 의해 파괴될 게 아니었다.
그뿐 아니라, 동굴을 이루는 석질(石質)은 아주 단단한 반면, 일단 균열이 생기면 전체적으로 와르르 무너지게 되어 있었다. 자칫 다른 곳을 뚫고 나가려고 하다가는 마룡봉 자체가 무너질 것이 자명했다.
아무리 초절한 무공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인간의 몸으로 마룡봉 전체의 하중을 어찌 견딜 수 있으랴.
온몸을 휘감고 있는, 단지 길다는 말로는 부족한 백발, 양쪽으로 길게 늘어뜨려진 백설의 눈썹.
무릎까지 길게 드리워진 백설의 수염, 마룡동에 갇힐 당시 입고 있던, 이젠 거의 다 헤어진 핏빛 혈포.
그리고 역시나 핏빛의 도관(道冠)까지…….
이상이 지금 현재 뇌진천의 용모를 나타내는 형언들이었다.
비록 모발과 수염은 새하얗게 변했으나, 혈색이 좋은 대춧빛의 얼굴이나 전반적인 풍모는 사십 대의 그것이었다.
위재항은 이윽고 동굴의 입구에서부터 자태를 드러낸 뇌진천의 실체를 목도했다. 지금 보니 상대방의 행색은 영락없는 곤륜파 제자의 그것이었다. 위재항은 재차 말을 걸었다.
“본좌는 흑혈회주 위재항이다. 네놈은 누구냐?”
이번에도 대꾸가 없었다. 천하의 위재항도 긴장되는지 좀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상대방을 노려보았다.
어느 순간, 뇌진천이 입고 있던 붉디붉은 도포 자락이 살짝 흔들리는가 싶더니, 난데없이 불그스레한 섬광 하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장의 공간을 대번에 압축하며 위재항에게로 육박해 갔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소스라치게 놀란 위재항은 황급히 양쪽 허리에 찬 두 개의 검을 뽑아 휘둘렀다.
그런데 무시무시한 속도로 흑혈회주를 덮쳐 가던 섬광은 그의 지척에 이르자, 두 개로 나누어지면서 양쪽으로 산개했다. 그와 동시에 횡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위재항을 노렸다.
위재항은 신속하게 뒤로 물러서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두 개의 섬광은 중 하나가 또다시 둘로 갈라져 기이한 각도로 꺾이면서 그의 사각을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위재항 역시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손놀림으로 검을 휘저어 자신을 방어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정수리 위에서 벽력처럼 내리꽂히던 섬광만은 놓치고 말았다.
그것은 그를 종으로 양단해 버렸다.
사실 다른 하나의 섬광 또한 부지불식간에 두 개로 분리되었다가 그중 하나가 위로 솟구쳤던 것이다.
천하를 뒤흔들던 흑혈회주 위재항의 너무나 어이없는 최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흑혈회의 수하들은 제대로 충격을 받을 겨를도 없었다. 우레와 같은 굉음을 자아내며 주변의 대기를 마구 찢어발기는 네 개의 섬영이 굶주린 상어처럼 주변의 인영들을 덮쳐 갔다. 그 섬광은 다름 아닌 혈륜이었다.
사방에 무시무시한 톱니가 촘촘히 박힌 수레바퀴 형상의 그것들은 천지를 진동시키는 굉음을 자아내며 급속도로 회전하면서 뇌진천을 중심으로 그 주변을 종횡무진 누볐다.
그 소리만으로도 고막이 다 찢어질 정도로 공포에 질리게 하였고, 뇌전의 기운을 가득 머금은 혈륜이 벽력과 같은 기세로 주변을 완전히 폭발시켰다.
네 개의 혈륜이 한 번 휩쓸고 간 자리에는 흑혈회 무사들의 조각난 육편들만이 사방으로 즐비하게 널브러졌다. 조금 전의 살기등등한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흑혈회의 모든 무인은 지금의 상황에 혼비백산하여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줄행랑치고 있었다. 또한 흑혈회의 잔당을 추살하던 곤륜파의 제자들조차도 뇌진천의 절륜한 무위와 손속에 치를 떨었다.
뇌진천과 곤륜파의 기이한 협공으로 쳐들어왔던 흑혈회의 무리 가운데 절반은 쓰러졌고, 나머지 절반은 사분오열로 갈라져서 달아났다.
공적이 사라지자, 드디어 뇌진천과 곤륜파가 서로 격돌하게 되었다. 곤륜파 측에서는 네 명의 장로가 극상승의 신법을 전개하며 네 방향에서 뇌진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허공에서 뇌진천의 주위를 맴돌던 네 개의 혈륜은 네 방향으로 산개하여 각각 한 명씩의 장로를 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