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곤륜무쌍 1권(3화)
제1장 이독제독(以毒制毒)(3)
그 순간, 장로들은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네 개의 혈륜은 계속해서 네 장로의 뒤를 쫓았다.
거리가 십 장가량 넓어졌을까?
각 방면에서 매복하고 있던 청의인들은 날아드는 혈륜을 향해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다는 천잠사와 강인한 만년한철로 특수 제작된 비조를 던졌다.
각 혈륜당 서른여섯 개의 비조가 날아들었다. 그 가운데 절반에서 많게는 삼 분지 이 정도가 노리던 혈륜에 정확하게 부착되었다. 그로 인해 혈륜의 속도가 둔화되는 틈을 노려 회수되었다가 재차 날아든 비조들이 혈륜을 덮쳤다.
그리하여, 이내 각각 서른여섯 개의 비조가 각각 하나의 혈륜을 완전히 붙든 형국이 되었다.
비조를 던진 청의인들은 각 방향으로 넓게 소산하며 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혈륜이 어디로 향할라치면 서른여섯의 청의인들은 밀고 당기는 힘을 세심하게 조율하여 혈륜을 붙들었다.
서른여섯 개의 경로를 통해 유입되는 순음지기(純陰之氣)는 혈륜에 충만히 서린 뇌진천의 극양지기(極陽之氣)를 희석시켰다.
잠시 후, 마음껏 날뛰던 네 개의 혈륜이 땅으로 떨어졌다. 그 광경에 자신감을 얻은 상청자는 돌출 행동을 시작했다.
“이제 보니 뇌진천도 별것 아니로군. 혈륜을 무력화시킨 지금이 기회다! 어서 쳐라! 놈을 없애 버려라!”
상청자는 자신의 통솔을 받는 직계 문하생들 백여 명과 더불어 뇌진천을 향해 쇄도했다.
“앗! 위험하네. 어서 물러나게!”
태허존자가 이렇게 소리쳤으나, 상청자는 못 들은 척했다. 그리고 연방 부하들을 독려하며 뇌진천을 향해 덤벼들었다.
6
“본좌가 어째서 혈해존자라고 불렸는 줄 아느냐? 이 몸이 지나간 자리는 언제나 피바다로 변했기 때문이지.”
뇌진천은 오른손으로 좌측 허리에 차고 있던 폭마혈검(爆魔血劍)의 손잡이를 불끈 거머쥐면서 대번에 발검했다.
“흐흐흐! 그동안 많이도 목이 말랐을 거다. 허나 오늘은 네게 뜨끈뜨끈한 피를 원 없이 마시도록 해 주겠다.”
스으으윽!
뇌진천은 외날검으로서 칼등 쪽으로 유연하게 휘어 있고 끄트머리가 뱀의 혀처럼 두 갈래로 갈라진 폭마혈검의 검신(劍身)을 혓바닥으로 핥았다.
그 순간, 붉디붉은 검신에서는 핏빛의 검기가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뇌진천의 이러한 움직임에 그를 포위하고 있던 무인들 역시 각자의 병기를 전면으로 곧추세우면서 일제히 쇄도해 갔다. 그러자 뇌진천은 두 손으로 불끈 거머쥐고 위로 치켜들었던 폭마혈검을 지면을 향하여 내리쳤다.
촤아아악!
지진이라도 발생한 것일까?
폭마혈검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은 지면을 가르면서 굶주린 맹수와 같은 기세로 전방으로 뻗어 나갔고, 양옆으로는 무려 이 장 높이의 흙더미가 튀어 올랐다.
아울러, 보다 넓은 영역으로는 시야를 완전히 차단할 정도의 흙먼지가 자욱하게 흩뿌려졌다.
진행 방향으로 포진해 있던 수십 명의 무인은 난데없는 흙 폭풍에 휩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닥쳐온 기운에 직격으로 맞은 무인들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인근의 무인들도 연쇄적인 발경력에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이로 인하여 차륜전과 연동된 합격술(合擊術)을 제대로 감행하기도 전에 검진(劍陳)이 완전히 와해되었다.
뇌진천은 자신을 포위한 무사들이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공간을 삼키듯 달려들며 본격적인 접근전을 시작했다.
뇌진천은 전면에서 제일 먼저 다가서는 무인을 향해 마주 달려들었다. 그는 우측 발을 전방으로 내디디며 두 손으로 불끈 거머쥐고 있던 폭마혈검을 하단으로 내리그었다.
이 일격으로 그는 상대방을 정수리에서 사타구니까지 단번에 베었다.
뇌진천은 폭마혈검을 비껴 쥐면서 연달아 횡으로 그어 좌우에서 달려들던 두 무인을 해치웠다.
왼쪽으로 몸을 틀며 칼날이 하늘로 향하도록 한 뇌진천은 전진 방향에서 덮쳐 오고 있던 무인의 흉부를 갈라 버렸다. 곧장 폭마혈검을 아래로 감아 쥔 뇌진천은 그것을 자신의 좌측 겨드랑이 뒤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뇌진천의 등 뒤로 덮쳐 오며 기습을 감행하던 무인은 폭마혈검에 의해 명치를 관통당했다.
“으아악!”
폭마혈검을 비틀면서 뒤로 회전한 뇌진천은 그 방향에서 달려들던 무인 세 명의 목을 베었다.
제자들의 공세가 잠시 늦춰지자, 그는 폭마혈검을 우측 하단으로 두 차례 내리쳐서 검신에 묻은 선혈을 털어 냈다.
기세 좋게 앞서서 달려들던 동료들이 너무 맥없이 당하자, 나머지 무인들은 재차 전열을 가다듬어 차륜전의 검진을 형성하며 전 방위에서 일제히 덮쳐 왔다.
“그래! 그렇게나마 발악을 해 줘야 덜 시시할 테지.”
뇌진천은 지축을 박차며 물 찬 제비처럼 위로 훌쩍 도약한 다음, 크게 한 바퀴를 돌았다.
화아아악!
폭마혈검에 충만하게 깃들은 핏빛의 검기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창졸간의 일이었다.
순간적으로 쫙 펼쳐진 검기의 칼날로 인하여 검진의 최전선을 이루고 있던 무인들 십여 명의 목이 잘렸다.
그사이 허공으로 몸을 역전시킨 뇌진천은 왼손으로 바닥을 짚은 다음, 그 탄력을 바탕으로 위로 재차 치솟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오른손의 칼날을 횡으로 뻗으면서 자신의 몸 자체를 팽이처럼 회전시켰다.
휘이이익!
뇌진천의 몸을 축으로 하여 회전하는 칼날에 의해서 수많은 제자의 몸이 공중에서 분해되듯 박살나고 말았다.
“역시 피 냄새는 언제 맡아도 정말 향긋하군.”
뇌진천은 감미로운 표정으로 주변에 흩뿌려진 핏빛 안개의 향내를 음미했다.
움찔하여 주춤하던 제자들이 다시 움직였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7
먹이를 발견한 맹수의 눈으로 자신을 향해 육박해 오는 무인들을 노려보던 뇌진천은 폭마혈검을 비껴 쥐었다. 오른손을 어깨 높이로 올린 다음, 칼날을 앞으로 향하도록 하고 왼손으로 그 아래를 받쳐 든 그는 전방으로 치달았다.
뇌진천은 가공할 만한 위력으로 마치 회를 치듯이 무인들의 살과 뼈를 발라 놓았다.
전신에 선혈을 흠뻑 뒤집어쓰면서 악귀와도 같은 몰골이 된 뇌진천은 연신 적들이 밀집된 곳으로 쇄도하여, 사방으로 현란하게 방위를 밟으며 검무(劍舞)를 추었다.
핏빛의 검기를 한껏 머금은 폭마혈검은 스치는 것만으로도 무엇이든 베어 버렸다. 폭마혈검과 조우하게 되면 강인한 무기들도 그것을 사용하는 주인과 함께 양단되었다.
뇌진천이 지나간 자리는 그야말로 피바다로 변해 갔다.
폭마혈검에 의해 갈가리 찢긴 채 사방으로 널브러진 시신을 발견한 그의 미간이 다소 찌푸려졌다.
“젠장! 약해! 너무 약해! 다들 뭘 하고 있는 것이냐? 본좌에게 더욱 필사적으로 덤벼 보란 말이다. 너희가 더욱 발악을 해 줘야 나도 죽이는 흥을 느낄 게 아니냐? 크하하하!”
휘하의 수하들이 불로 뛰어드는 나방처럼 맥없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상청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버렸다.
“피에 잔뜩 굶주린 혈귀를 건드린 꼴이었어. 안 되겠다. 후퇴다! 모두 신속하게 물러나라!”
이미 상청자 휘하의 직계 제자들 대부분은 목숨을 잃거나 극심한 부상을 입은 상황이었다.
그나마 상청자만이 겨우 성한 몸을 가지고 물러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주변에서 이 참상을 목도하던 곤륜파 제자들조차 크게 동요하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심리적 공황 상태는 전염병처럼 점점 번져 갔다.
“당황하지 말고 애초에 연습한 대로만 움직여라!”
태허존자의 영도력은 상당했다.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던 곤륜파의 제자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흐트러짐 없는 규율을 선보이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뇌진천의 주변으로는 어느덧 심층적인 포위망이 수십 겹이나 형성되었다. 잠시 후, 뇌진천을 포위한 진형이 회전하며 차륜전이 전개되었다.
철저히 방어 위주의 항마검진(抗魔劍陳)은 서서히 옥죄어 사냥감의 숨통을 죄어드는 구렁이의 똬리처럼 강력했다.
항마검진은 한쪽이 뇌진천으로부터 공격을 받을라치면 신속하게 뒤로 빠지고, 다른 모든 방면에서 그의 사각을 파고들었다. 뇌진천이 공격 방향을 바꿀 때마다 그에 맞춰 역동적으로 변환하면서 견고한 방어진을 유지했다.
뇌진천과의 직접적인 접촉은 철저히 회피하면서도 끊임없이 그에게 움직임을 강요했다.
제일선에서 뇌진천을 상대하다가 지친 무인들은 어느새 후위로 빠진 다음, 진형 밖으로 이탈하여 휴식을 취하면서 물도 마시고 음식도 섭취했다. 그런 다음, 다시 교대하기를 반복했다. 이러한 순환에 의해 검진은 견고함을 유지했다.
***
“벌써 사흘 주야가 지났건만, 저놈은 도대체 지칠 줄을 모르는군. 정말 인간이 아닐세!”
“이러다가 자칫 항마검진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저 혈귀의 먹이가 될지도 몰라.”
항마검진의 구성원으로 역할 행동을 하고 있는 제자들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 갈 무렵, 하늘에서는 굵은 빗방울이 들기 시작했다. 시커먼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더니 천둥소리까지 들려왔다.
뇌진천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나 뇌진천이 전신에서 자아내는 맹렬한 기장 때문에 아무도 감히 그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그의 전신에서는 거무스름한 기운이 이글거렸다.
꽈과아아아앙!
천지가 떠나갈 듯한 굉음과 더불어 하늘로부터 뇌진천의 신형을 향해 번개가 내리꽂혔다.
지축이 울리는 폭발과 함께 그곳은 연기가 자욱해졌다. 창졸간에 벌어진 상황에 견고하던 진형은 대번에 허물어졌고, 그 일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모두 침착하라! 원래의 위치를 고수하라!”
태허존자는 목청껏 외치며 혼란을 잠재우려 했다. 그러는 사이, 연기가 서서히 걷히면서 시야가 회복되었다.
하지만 뇌진천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마치 유성이 떨어진 것처럼 커다란 구멍만이 횅댕그렁하게 생겨나 있었다.
“큰일이다. 놈이 사라졌다. 반드시 찾아야 한다!”
제2장 반로환동(返老還童)(1)
1
“흑흑흑! 흑흑흑!”
여자인지 남자인지 분간이 안 되는 예쁘장한 아이 하나가 구슬프게 흐느끼며 산길을 헤매고 있었다.
팔구 세쯤 되었을까?
잘 익은 사과처럼 얼굴이 발그레하게 상기된 아이는 시야가 탁 트인 바위 위에 쭈그리고 앉아 병아리처럼 햇볕을 쬐었다. 몸이 좀 데워지자, 아이는 재차 발걸음을 옮기며 산속을 배회했다.
“꺄아∼앗!”
언덕 위를 걸어가던 아이는 불쑥 튀어나온 나무뿌리에 발이 걸렸다. 균형을 잃은 아이는 언덕 아래로 굴렀다.
마침 그 하단으로는 낙엽이 잔뜩 쌓여 있었기에 다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몹시 놀란 아이는 제자리에 주저앉아서 엉엉 울었다. 그런데 뭔가를 발견했는지 아이는 갑자기 울음을 그쳤다.
“헤에!”
아이의 두 눈은 토끼처럼 동그랗게 떠졌다. 연이어 아이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깃들었다. 아이는 무릎을 꿇고 앉아 앞쪽으로 쌓인 낙엽을 마구 파헤쳤다.
잠시 후, 구덩이가 드러났다. 구덩이의 앞쪽으로는 커다란 고목이 서 있었고, 구덩이의 위로는 나무뿌리 몇 갈래가 뻗어 나와 마치 지붕 뼈대의 역할을 해 주고 있었다.
덧붙여 낙엽은 일종의 기왓장 정도랄까?
아이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구덩이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뭔가 허연 것이 보였는데, 짐승의 털 같기도 했다.
한껏 호기심이 동한 아이는 주변에서 모서리가 뾰족한 돌멩이 하나를 주워 들고는 이미 삭아 있는 나무뿌리를 마구 내리쳐서 부수었다.
그러자 구덩이 속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
구덩이의 공간은 꽤나 넓었기에 아이는 아예 그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아이는 곧이어 저 안쪽에서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은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백설처럼 새하얀 머리칼과 수염, 그리고 눈썹을 지닌 할아버지였다.
고목의 뒤쪽은 절벽인데, 나무뿌리로 인해 그쪽으로도 구멍이 생겨나 있었다. 할아버지도 아마 그곳을 통해 구덩이 속으로 들어온 듯했다.
즉, 아이는 할아버지가 건드리지 않고 고이 남겨 둔 것으로 보이는 위쪽 지붕을 다 뜯어내 멋대로 난입한 셈이다.
아이는 할아버지의 앞에서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아이는 눈앞의 할아버지가 잠든 것으로 여겼다. 아이는 할아버지가 눈을 뜨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좀처럼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자, 아이의 표정이 점점 새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