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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무쌍 1권(11화)
제5장 암중모색(暗中摸索)(1)
1
뇌진천은 멸문지화가 있기 전까지는 한설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과거의 자아와 현재의 자아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어찌 보면 그것은 단순한 살인 기계에 불과했던 뇌진천이 온기를 지닌 인간의 마음을 느끼는 순간부터 필연적으로 겪어야 했을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기질은 다소간 개조는 이루어질지 몰라도 그 본질이 바뀔 수는 없다.
뇌진천의 마성 또한 그러하다.
예전의 그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괴물을 다스릴 능력이 없었고, 굳이 통제할 이유도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을 압도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는 과거처럼 내면의 마성을 마음껏 드러내면서도 자신의 생명을 보호할 만한 실력이 없다.
그래서 뇌진천은 인내심을 키워야만 했다.
지난 육 년 동안, 뇌진천은 마성을 다스리는 통제력은 충분히 키웠다.
오히려 이제는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진 그 엄청난 괴물을 완벽하게 감추고 오히려 외견상으로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가장할 수 있을 정도의 심기까지 갖추었다.
기질적으로 타고난 효웅(梟雄)인 뇌진천이 새로운 환경에 필사적으로 적응하는 과정에서 내면을 철저히 갈무리하고 만인을 속일 수 있는 간웅(奸雄)의 면모까지 겸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뇌진천의 정신적 성장 과정에서 가장 괴롭혔던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情)’이었다.
따지고 보면, 벽력과도 같은 성정이야 절제력과 인내심을 극한으로 배양하면 얼마든지 다스릴 수 있는 부분이다.
심계 역시 훈련을 통해 깊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사이의 정이라는 놈은 머리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뇌진천의 다혈질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지만, 그의 냉혈적인 성품은 애정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고아인 뇌진천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사문에서는 강환지체라는 이유로 마치 귀한 물건처럼 다루어질 따름이었다. 비록 많은 관심과 보살핌은 주어졌으나, 인간미는 철저하게 배제된 비인격적 통제와 관리일 따름이었다.
뇌진천에게 있어서 외롭고 답답한 마음을 달래 줄 유일한 수단은 무공의 성취에서 오는 만족감뿐이었다.
그래서 뇌진천은 오로지 무공 수련에만 매진했다. 그리고 더는 이룰 것이 없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강호무림의 상식에 있어서 단지 이론으로만 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신화경에 도달했을 당시, 뇌진천의 나이는 육십 세였다.
뇌진천이 그 나이에 이르도록 경험한 것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는 세상 물정도 거의 알지 못했고, 무공 이외의 것도 아는 바가 없었다.
따라서 곤륜파에서 가장 촉망 받는 후지기수라는 허울이 벗겨진 상태에서의 뇌진천은 사실상 어린아이였다.
정신 연령으로는 열 살 내외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뇌진천의 폭주는 더욱 냉혹하고 잔인했다. 그는 성장 과정에서 받아 왔던 수많은 상처로 인해 생겨난 가슴속에 커다란 구멍을 메우기 위해 폭주했다.
온 세상을 다 집어삼킬 것처럼 날뛰었다.
특별한 목적의식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공허함을 메우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뿐이다.
당시의 뇌진천은 그저 갈증을 채우려 날뛰던 한 마리의 야수에 불과했다.
뇌진천이 한 번만 휩쓸고 가면 혈해(血海)의 아비규환이 되었다.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정도로 철저히 파멸했다. 이런 행적으로 당시의 그는 외부에서는 혈해사신으로, 그리고 내부에서는 혈해존자로 통했다.
뇌진천의 미성숙한 인격은 혈해존자 시절에는 그의 가공할 만한 무공과 압도적인 위용에 묻혀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탈혼대법을 통해 여덟 살짜리 어린아이로 전락하면서 그의 숨겨진 면모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설지를 만나기 전까지의 뇌진천은 살짝만 건드려도 뭐든지 베어 버릴 것처럼 서슬이 시퍼런 칼날,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끝내 감싸고 또 감싸 안으며 끊임없이 칼날을 마모시켰다.
그리하여, 그의 칼날은 그다지 매섭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한설지의 죽음이 무디어진 뇌진천의 칼날을 이전보다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
이제 뇌진천은 때가 되면 그 칼날로 온 세상을 베어 버릴 참이었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 과거의 그는 칼집이 없는 빼어 든 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칼집이 있다.
그래서 겉으로는 칼날을 얼마든지 숨길 수 있다. 그러나 때가 오면, 드러난 칼날 앞에서 모든 것은 양단될 것이다.
2
낙양에 온 지도 벌써 사 년이 지났다. 그러나 그동안 혈교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조심하지 않을 수 없으나, 이제는 뇌진천도 다소 긴장이 풀리려 했다.
‘나라는 존재가 수라혈교들의 안중에서 완전히 사라진 걸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놈들은 그렇게 쉽게 나를 놓아 줄 리가 없다. 적어도 심궁개화(心宮開化)를 이룩할 때까지는 더욱 은밀하게 나 자신을 감추어야 한다.’
뇌진천은 지금까지는 애당초 계획한 대로 숙부가 경영하는 낙양객잔에 머물면서 풍림학관에 다녔다.
뇌진천은 매월 초순과 중순, 그리고 하순에 한 번씩 있는 휴일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출석했다.
풍림학관의 일과는 진시(辰時)에 시작되어 신시(申時)에 마친다.
그곳에서는 사서오경(四書五經)을 근간으로 하는 유학뿐만 아니라, 자치통감(資治通鑑)을 기본 교재로 하는 사학, 의학, 지리학, 산학, 문학, 악학, 심지어 병법까지 가르쳤다.
뇌진천은 누가 봐도 출사를 위해 성실하게 공부하는 평범한 소년 문사였다. 그는 지난 사 년 동안 풍림학관에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학업에 매진했다.
곤륜파에 입문한 이후로 뇌진천은 오로지 무공 수련에만 집중하여 기어코 그 끝을 볼 때까지는 단 한순간도 다른 곳에 한눈을 팔지 않았다.
그만큼 뇌진천의 집중력은 대단했다.
일단 뭔가를 시작하면 목적한 바를 이루기까지는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
뇌진천도 처음에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학문을 시작했다. 그러나 보다 많은 지식을 갖게 될수록 자신이 바라볼 수 있는 세계도 더 넓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학문에 임하는 그의 자세는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에 혈해존자로서 혈곤륜을 세웠을 때도 불세출의 무위만 믿고 날뛸 것이 아니라, 좀 더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나섰더라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으리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지식을 키워야 한다. 아는 만큼 세상은 내게 더 많은 길을 보여 줄 테니까.’
그래서 뇌진천은 기왕 풍림학관에 들어온 이상 학문에 있어서도 그가 만족할 때까지의 성취를 이루기로 작정했다.
낙양에 오기 전에도 이미 육 년 동안 학업에 몰두한 터라, 뇌진천은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우물 안의 개구리였음을 철저히 깨달았다.
전국 최고의 명문으로 손꼽히는 사학기관답게 풍림학관은 과연 명실상부했다.
각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강사들이 총집결해 있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매 강연 때마다 혼을 담아 가르쳤다.
또한, 풍림학관의 서고에 보관된 서책의 규모는 무려 삼만 권에 달했다. 무공비급을 제외하고는 없는 책이 없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그곳은 학문의 요람이라 불릴 만했다.
바로 이 풍림학관에서의 사 년 동안, 뇌진천은 장차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은 뭐든지 배우고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그가 접한 책만 해도 삼천 권이었다.
그것은 풍림학관 서고의 장서 가운데 일 할에 해당하는 양으로, 사실상 가장 중요한 책은 모조리 섭렵한 셈이었다.
애당초 뇌진천이 낙양으로 온 것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자신을 죽일 수 있는 혈교의 마수에서 가급적 멀리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자유롭게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물론 낙양에 왔다고 하여 대놓고 무공을 연마할 수는 없었다.
아직 그의 수준으로는 귀식대법(龜息大法)을 시전하는 고수의 매복까지 감지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서든 무공을 익혀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렸다.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힘이 없어지자, 그 무력감이 얼마나 쓰라린 것인지 몸서리치게 느껴 왔다.
한시라도 빨리 왕년의 힘을 회복하여 더는 구차하게 살지 않으리라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채찍질했던 것이다.
그러나 학문에 심취하면서부터 뇌진천은 한결 마음에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비록 외견상으로 드러나는 외공의 수련은 힘들다고 할지라도 조식에 관한 한 이미 행식까지 익힌 터였다.
그래서 뇌진천은 학문에 전념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내가심법을 시전하여 내공을 키우고 경맥을 뚫어 왔다.
학문과 심법에 주력한다고 하여 육체의 단련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다. 틈만 나면 여러 가지 수단으로 근육을 단련시키고 체조도 하면서 신체의 유연성을 유지했다. 그뿐 아니라, 날마다 삼십 리 이상 구보를 하며 지구력을 키웠다.
뇌진천은 서녕에 있을 때에도 건강을 명목으로 드러내 놓고 신체 단련을 해 왔었다.
물론 낙양에 와서는 그 강도나 분량이 훨씬 늘어났지만, 이런 것들은 굳이 무인이 아니더라도 일반인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활동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 부분에 관한 한 수라혈교를 의식하지 않고 행동했다.
어차피 곤륜파의 모든 무공이 뇌진천의 머릿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비록 육체는 바뀌었으나, 예전에 그것들을 실제로 익히고 완성하는 과정에서의 실전 경험까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따라서 충분한 근력과 유연성, 그리고 지구력만 구비하고 있다면 새로운 육체에도 언제든지 곤륜의 절학들을 적용할 수 있다. 바로 그때를 위한 대비인 것이다.
3
무극신공의 핵심은 심궁(心宮, 중단전)이다.
일반적인 무공과는 달리 하단전이 아니라 중단전을 기반으로 하는 무공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심궁개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단전에 어느 정도의 내공이 축적되어야 한다.
하단전의 공력을 매개로 심궁개화에 성공하면, 그때부터는 골수(骨髓) 속에 공력을 저장할 수 있다.
사람의 뼈라는 것은 몸의 내부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몸의 외부에 있다. 일단 심장이나 허파, 위장이나 소장, 간장과 같은 온갖 내장 기관은 물론이고 피와 살을 채우는 공간을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보면 뼈는 내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골격(骨格)의 내부인 골강(骨腔)에는 골수가 가득 들어차 있으니, 이렇듯 골수를 채울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보면 뼈는 외적인 것이다.
골수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피를 만드는 공장이며, 온갖 영양분을 축적해 두는 창고이기도 하다.
골수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생명력의 원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몇 평평한 뼈를 제외한 모든 뼈 속에는 골수로 충만하게 채워져 있다.
두개골 속의 두뇌와 척추를 중심으로 하여 전신의 모든 골격 가운데는 골수가 가득히 들어차 있다.
무극신공의 핵심은 이렇듯 골격 내부를 채우고 있는 골수에 공력을 축적시키는 것이었다.
심궁, 곧 중단전을 기반으로 하는 무극신공이 하단전에 공력을 축적하는 다른 모든 무공에 비해 탁월한 것은 공력의 운행 속도였다.
사실 승부가 공력의 양으로만 결정되는 건 아니다. 아무리 많은 공력을 가지고 있어도 잘 타통된 경맥이 없으면 운공을 통해 그것을 제대로 운용할 수 없다. 그런데 경맥이 그렇게 쉽게 뚫려지지는 않는다.
오랜 운공으로 기감을 키우면서 기경팔맥(奇經八脈)을 비롯하여 전신의 세맥(細脈)까지 잘 뚫어 놓아야 한다.
경맥이 충분히 타통되었다 함은 십이정경(十二正經)을 시작으로 임독양맥(任督兩脈)을 포함한 기경팔맥과 전신의 주요 간선(幹線)이 되는 경락이 원만하게 뚫려 있는 경우를 지칭한다. 그뿐 아니라, 등봉조극에 이르려면 전신으로 뻗쳐 있는 미세한 세맥까지도 완전히 뚫어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