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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무쌍 1권(15화)
제6장 창해유주(滄海遺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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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첩산중이로군.’
숲을 벗어난 뇌진천을 맞이한 건 전혀 다른 분위기의 무인들이었다.
이들은 수라혈교 청해 분타의 직할대로서 제삼지국에 배속된 무사대였다. 그들 역시 이미 뇌진천의 도주 사실을 보고 받고 추적에 나서려는 찰나였다.
그런데 뇌진천이 본의 아니게 먼저 그들의 주둔지로 찾아온 것이다.
그들의 눈에 비친 뇌진천은 평범한 체구의 청년으로 예쁘장한 용모 때문인지 가녀린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그놈이다!”
“이곳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올 줄이야.”
“어서 죽여라!”
내향의 무인들은 이내 반월도나 대도 따위를 휘두르며 뇌진천을 덮쳐 왔다. 뇌진천의 움직임은 만상각에서와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
싸움에 싸움을 거듭하면서 뇌진천의 실력은 급격하게 향상되었다. 혈해존자 시절에 다채로운 아수라장을 겪어 왔던 실전 감각이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꾸준히 체력과 근력, 그리고 유연성과 지구력을 단련시켜 온 터였다.
이처럼 몸 상태가 충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그동안 금제되어 있었던 외공을 전개하자, 처음에는 다소 투박한 면이 있었으나, 급속하게 적응이 되었다.
필요한 상황이 되자, 곤륜파의 각종 독문무공들이 하나씩 하나씩 발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게 애당초 내가 예상한 그대로다. 아니, 그 이상이다. 비록 내공 기반의 상승무공을 펼칠 수는 없으나, 외공에 있어서는 결코 나쁜 몸이 아니다. 오히려, 수련하면 수련한 만큼의 실력을 그대로 보여 주는 아주 정직한 육체다.’
뇌진천이 뿜어내는 놀라운 위력에 다들 놀라기는 했으나, 그들은 노도경이 통솔하는 외향과는 달리 처음부터 혈교에 소속되어 있던 내향의 무인들이었다. 결코, 죽음이 두려워서 몸을 사리는 족속들이 아닌 것이다.
이에 그들은 오히려 더욱 투지를 불사르며 뇌진천을 향해 덤벼들었다.
그 와중에 뇌진천은 발이 걸려 바닥으로 넘어졌다. 싸움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김없이 뇌진천의 얼굴과 몸으로는 사방으로부터 여러 개의 칼날이 덮쳐 왔다.
황급히 균형을 잡고 일어서려던 뇌진천은 할 수 없이 바닥을 몇 차례나 연달아 구르면서 무사들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냈다.
겨우나마 약간의 틈을 얻은 뇌진천은 재빨리 몸을 팽이처럼 휘돌리며 그 반동을 이용해 재빨리 일어났다.
“이야야압!”
그 순간, 무사 하나가 쇠사슬을 휘돌리며 뇌진천의 다리를 공격해 왔다. 재차 넘어뜨리려는 것이었다.
“내가 같은 수에 또 당할 줄 알았더냐?”
뇌진천은 몸을 우측으로 반 바퀴 회전시키면서 쇠사슬을 휘두르던 무사의 목을 틀어쥐었다.
그런 다음, 상대의 겨드랑이에다가 여지없이 검을 박아 넣었다. 겨드랑이로 들어간 검의 끄트머리는 반대편의 옆구리까지 뚫고 나왔다. 그는 고통에 몸서리치다가 사방으로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연이어, 전후좌우에서 여러 무사가 각자의 병기를 맹렬하게 휘두르며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뇌진천은 오른손의 검을, 좌에서 우로 크게 원을 그리면서 횡으로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전방에 있던 무사 세 명의 가슴에서는 피보라를 동반한 피분수가 치솟았다.
흉부가 완전히 갈라진 것이다.
***
‘저 패도적인 초식은……. 그래, 저건 분명히 곤륜의 추명도법(追命刀法)의 근간 도식(刀式)인 절혼참(切魂斬)이다. 내공도 전혀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 저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다니…….’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뇌진천의 무위를 지켜보고 있던 목형준의 얼굴에는 이채가 떠올랐다.
비록 본신의 무공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어린 나이에 수라혈교로 입문하여 지금의 나이까지 살아남은 그였다.
험난한 강호에서 잔뼈가 굵은 목형준의 무공에 대한 안목은 결코 낮은 편이 아니었다.
그 무렵, 후위에서 공격하던 무사의 비수 하나가 뇌진천의 우측 어깨에 깊이 박혔다.
극도의 흥분 상태에 빠져 들어 있던 그는 고통조차 못 느끼는 듯했다.
뇌진천은 전혀 아픈 기색도 없이 시선을 그쪽으로 돌렸다. 뇌진천은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서 비수로 자신을 공격한 무사를 노려보았다.
“이 새끼가 감히?”
왼손으로 비수를 지닌 상대의 손목을 틀어쥔 뇌진천은 오른손으로는 검을 곧추세웠다. 그리고는 마구 들쑤시어 상대방의 몸을 완전히 벌집으로 만들어 놓았다.
뇌진천은 그것도 모자라서 목까지 베어 버렸다.
촤아아악!
섬뜩한 파육음과 동시에 사방으로 선혈이 튀었고, 잘린 목은 떼굴떼굴 굴러갔다.
머리가 없는 몸통은 격렬한 경련을 일으키며 사방에 피를 뿌려 댔다. 그 광경에 모골이 송연해졌는지 여태껏 용맹하게 덤벼들던 내향의 무사들은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이를 지켜보던 목형준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렇게 잔인할 수가……. 저게 정말 내가 알고 있던 한수겸이란 말인가? 대체 녀석의 정체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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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진천은 이미 자신의 처지 같은 건 잊고 완전히 싸움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그의 내면에 깊이 잠들어 있던 광마(狂魔)로서의 본능이 본격적으로 깨어났기 때문이다.
“뭐야? 고작 그 정도로 겁을 먹은 것이냐? 어서 덤벼라! 어서 덤비란 말이다!”
어깨에 입은 상처 같은 건 아랑곳없이 더욱 맹렬하게 날뛰는 뇌진천에 모습에 질려 버린 무사들은 서로 눈치만 볼 따름이었다.
뇌진천의 얼굴에는 짜증의 기색이 서렸다.
“오기 싫다면, 내가 가지!”
뇌진천은 사방으로 현란하게 방위를 밟으며 정교한 보법을 전개했다. 이제 그의 칼은 점점 더 신속하고, 날카로워졌다.
그는 오직 급소만을 노렸다.
누구든지 조금의 빈틈이라도 보일라치면 여지없이 파고들었다. 그러면서도 항상 몸을 바짝 낮추면서 자신의 사각은 완벽하게 차단했다.
그야말로 빈틈이 없는 공격과 수비를 병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도룡신공(屠龍神功)의 내력은 깃들지 않았으나, 태허도룡검(太虛屠龍劍)의 검법을 거의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다. 게다가, 그 무시무시한 추명도법까지 가미되어 있어. 그리고 지금의 저 움직임은 용형보(龍形步)를 연상시킨다. 아무튼, 이걸로 저놈이 곤륜파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음은 충분히 확인했다. 더 이상 피해를 늘릴 필요는 없을 테지.’
목형준은 곁에서 대기하고 있던 내향주 구연우(邱沇羽)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구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
주변에 있던 무인들은 어느새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어디선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뇌진천의 주변을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이 포위하고 있었다.
그때야 뇌진천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평정심을 되찾았다.
“혈랑(血狼)이로군.”
혈랑은 북방의 황야에서 사는 들개의 일종으로, 핏빛 털을 가지고 있다.
생김새는 늑대와 비슷했지만 몸집은 늑대보다도 훨씬 컸다. 혈랑은 호랑이에게도 덤벼들 정도로 아주 사나운데, 협공에도 매우 능하여 서너 마리만 모이면 호랑이조차 가뿐하게 제압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뇌진천의 주위를 둘러싼 혈랑의 숫자는 무려 십여 마리나 되었다. 뇌진천은 주변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한동안 그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던 혈랑 가운데 세 마리가 그의 목을 노리면서 달려들었다.
뇌진천은 즉시 검을 쭉 뻗어 전방에서 달려들던 혈랑 한 마리의 목구멍을 꿰뚫었다.
그 무렵, 좌측과 우측에서는 또 다른 혈랑이 덤벼들고 있었다. 뇌진천은 목구멍을 관통당한 혈랑이 자신의 검에 걸려 있는 상황에서 곧장 그것을 횡으로 그었다.
그러자 걸려 있던 혈랑의 몸통은 관성에 따라 목의 절반이 잘리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좌측으로 그어진 뇌진천의 검은 그 방향에서 달려들던 혈랑의 몸통을 베었다.
그와 동시에 뇌진천은 뒷발을 쭉 내밀어 반대편에서 달려들던 혈랑의 배를 힘껏 걷어찼다.
검에 당한 혈랑 두 마리는 즉사했고, 뇌진천의 발에 걷어차인 녀석은 바닥에서 꿈틀댔다.
동족이 이렇듯 처참하게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나머지 혈랑들은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으르렁거리며 그를 향해 일제히 덤벼들었다.
뇌진천은 지축을 박차며 높이 도약했고, 같은 대상을 향해 덮쳐 가던 혈랑들 가운데 몇 마리는 서로 부딪히면서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러나 세 마리는 동료의 등을 박차면서 높이 도약하여 그의 신형을 악착같이 뒤쫓았다.
뇌진천은 허공에서 몸을 역전시키며 검을 횡으로 그어 자신의 뒤를 쫓아 솟아오르던 혈랑 두 마리의 목을 창졸간에 베어 버렸다.
나머지 한 마리는 동료들의 희생을 기회로 삼아 옹골찬 이빨로 뇌진천의 목을 깨물려고 했다.
뇌진천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고, 혈랑은 관성으로 인해 앞쪽으로 미끄러졌다.
그 순간, 뇌진천은 손을 쭉 뻗어 그 혈랑의 꼬리를 불끈 거머쥔 다음, 반대편으로 힘껏 던져 버렸다.
쿠우웅!
내동댕이쳐진 혈랑은 그쪽 방향에 있던 고목에 머리를 처박고서 침묵했다.
필설은 길었으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자 혈랑들은 꼬리를 내리고 줄행랑을 쳤다.
‘아마도 방금 당한 녀석이 우두머리였던 모양이군.’
뇌진천은 긴장의 고삐를 늦추며 일순간 방심했다. 바로 그때, 허공에서 철 그물이 쫙 펼쳐지면서 그를 덮쳤다.
“앗, 이런!”
헛바람을 들이켠 뇌진천은 황급히 회수한 검을 다시 뽑아 쥐며 휘둘렀다. 철 그물의 일부분이 끊어지긴 했으나, 이미 움직임이 상당히 제한되었다.
잠시 후, 여기저기서 올가미들이 날아들었다.
처음의 몇 개는 피해 낼 수 있었지만, 연이어 날아드는 올가미가 다리와 팔에 감기는 것을 시작으로 마침내 뇌진천은 거미줄에 감긴 곤충처럼 완전히 결박되고 말았다.
“크아아∼악!”
뇌진천은 상처 입은 맹수처럼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포효했다.
바로 그때, 목형준의 명을 받은 내향주 구연우가 뇌진천의 곁으로 다가가서 수면혈을 제압해 버렸다.
‘이,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다니…….’
끝까지 버티던 뇌진천은 결국 정신을 놓았다.
그 무렵, 외향주 노도경이 이끄는 추격대도 현장으로 당도했다.
“큰소리치더니, 보기 좋게 실패했구나.”
노도경은 목형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속하를 죽여 주십시오.”
“그렇게까지 자책할 것 없다. 알고 보니, 저 녀석은 깊은 바다 속에 감추어진 진주였더구나.”
노도경은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까 이곳에서 내향의 무사들을 상대하던 한수겸이 보여 준 움직임 가운데는 멸문당한 곤륜의 무공 절학들이 상당 부분 녹아들어 있었다.”
“곤륜파의 무공이라니, 저 아이가 대체 어떻게……?”
“지금으로서는 전혀 알 길이 없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한수겸이 곤륜파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허면, 이제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이미 제압은 했으니 목숨을 취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대로 죽여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일이지.”
“한수겸은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실이라니……. 허면, 부모의 원수가 혈교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아까 잠깐 대화를 나누면서 본인이 그렇게 실토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내막이 궁금해지는구나. 하지만 어차피 지금 시점에서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요즘 총단에서는 곤륜파의 실전된 무공절학들을 재현하여 본교의 독문무공으로 편입시키는 작업에 한창 열중하고 있는 실정이다. 곤륜파를 칠 당시, 소교주께서 너무 강하게 몰아붙이시는 바람에 곤륜파 본산의 제자들은 전멸했다. 그 와중에 곤륜파의 모든 무공비급도 모두 불타 버렸지.”
“그에 대해선 속하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 이후, 지파들 가운데 생존자를 찾아내어 족쳐 보았지만, 곤륜의 절학을 제대로 익힌 자는 한 사람도 없었지. 지금 상황에서는 한수겸이 곤륜의 절학들을 전수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즉, 녀석은 곤륜파의 무공을 본교의 독문무공으로 바꾸는 작업에 아주 요긴하게 사용될 도구라는 거지.”
“무슨 말씀이신지 알 것 같습니다. 죽이는 것보다는 살리는 것이 본교에 더 큰 이익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까?”
“본교도 본교지만, 우리 지국에도 더욱 큰 상급이 내려질 것이다. 더 지체할 것도 없다. 너희 둘은 지금 즉시 채비하여 한수겸을 청해 분타로 압송하도록 하라.”
목형준의 말에 노도경과 구연우는 입을 모았다.
“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