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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무쌍 1권(17화)
제7장 권토중래(捲土重來)(2)


4

삼라만상에 충만한 원기(原氣)를 흡수하여 하단전에 공력(功力)으로 축적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인간의 신체적인 잠재능력을 극도로 발현시키는 방법과 원리에 대해 자세히 다루는 학문을 상승무학이라고 한다.
이것은 연공(鍊功), 운공(運功), 발공(發功)까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대자연 속에는 원기가 충만하지만, 그것은 자연의 기운이기 때문에 인간이 임의대로 활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연공을 통해 하단전에 공력의 형태로 저장시킬 수 있다.
하단전에 축적된 공력이 활성화되면 인간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임의로 조종이 가능한 진기(眞氣)로 전환된다.
진기는 운공을 통해 기경팔맥과 세맥과 같은 경락들을 통로로 삼아 필요한 신체 부위의 경맥까지 자유롭게 이동한다.
그리고 발공을 통해 특정 기술과 접목되어 막대한 위력을 뿜어내는 원동력으로 이용된다.
그런 다음에 해당 진기는 전신의 사지백해로 흩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하단전으로 다시 돌아와서 공력으로 전환된다.
즉, 일단 체내에 축기된 공력은 강제로 빼앗기거나, 자발적 의지로 타인에게 주지 않는 한, 발공에 의해 사용되어도 시간이 지나면 고스란히 회복되는 것이다.
이를 공력 보존의 법칙이라 한다.
진기를 자유롭게 다루게 되면 인간의 신체적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연공을 통해서 진기를 체내에 축적시키고, 운공을 통해서 진기를 자유롭게 조절하며, 발공을 통해서 진기를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상승무학의 기반은 내공이다. 내공은 연공을 통해 체내에 축적할 수 있고,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심법이다.
당금의 무림에서 현존하는 심법의 종류만도 무려 수백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심법을 통해 자연의 기가 단전에 축기되면 비로소 공력이 된다. 그리고 어떤 심법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공력의 증진 속도와 그것의 속성이 결정된다.
초창기 강호무림에 존재하던 심법의 경우 하루에 세 시진씩 육십 년 동안 연마해야 일 갑자(甲子)의 내공을 지닐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이후로는 무학이 꾸준히 발달하여 신공으로 손꼽히는 심법들의 경우에는 본래 기간의 절반인 삼십 년만 꾸준히 익히면 일 갑자의 내공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더군다나, 같은 양의 내공이라고 해도, 신공의 심법으로 쌓은 내공은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여타 대부분의 일반적인 내공보다 그 위력이 최소한 서너 배 이상 뛰어나다.
대개 이런 심법은 명문으로 손꼽히는 각 문파나 세가의 수장에게만 전수된다. 즉, 선택 받은 극소수만이 익힐 수 있다.
사파무림의 경우에는 속성으로 내공을 길러 주는 심법이 훨씬 많이 존재한다. 정파무림에서는 이를 마공이라고 한다. 어떤 마공은 불과 십 년 만에 일 갑자의 내공을 기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심법들은 부작용이 심하고, 특정 수준에 이르면 더 이상의 발전이 없다는 한계를 지닌 경우가 많다.
혈해존자 시절의 뇌진천은 장문인에게만 전해지는 태청신공(太淸神功)을 제외한 곤륜의 여러 가지 양강지공(陽剛之功)을 통해 내공을 길러 냈다.
그리고 그것은 말년에 뇌진천이 창안한 무극신공을 통해 새롭게 정제되어 더욱 강력한 양강지기로 바뀌었다.
그는 그것을 혈룡진기라고 명명했다.
혈룡진기는 적어도 현재 강호무림에 알려진 수많은 진기와 비교해서는 독보적이라고 할 만큼 탁월했다.
운공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무극신공과 연계된 혈룡진기는 그 자체의 속성 또한 그러했다.
같은 양의 진기로 뿜어낼 수 있는 파괴력이 여느 평범한 진기의 몇 배에 달했던 것이다.

***

재차 활성화된 혈룡진기는 항문과 음부 사이에 있는 회음혈(會陰穴)을 거쳐 뇌진천의 등줄기를 타고 솟구쳤다.
이윽고 정수리의 백회혈(百匯穴)에 이른 혈룡진기는 인당혈(印堂穴)을 지난 다음, 명치의 중앙으로 내려왔다.
이처럼 등줄기의 독맥을 타고 상승한 혈룡진기는 정수리를 돌아 몸통 앞줄기의 임맥을 타고 하강해 하단전에 도달함으로써 소주천(小周天)을 완수했다.
독맥을 타고 올라갔다가, 임맥을 타고 내려오는 수승화강(水昇火降)을 통해서 뇌진천의 임독양맥을 완전히 뚫어 낸 것이다.
임독양맥이 타통된 그 순간, 뇌진천은 기절을 할 뻔했으나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버텨 냈다.
마치 태산처럼 가로막혀 있던 임독양맥을 돌파한 혈룡진기는 다시금 새로운 경맥을 개척해 나갔다.
혈룡진기가 폭포수와 같은 기세로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곳곳에 자리하던 경혈은 여지없이 뚫렸다.
혈룡진기는 곧장 대주천(大周天)을 시작했다. 그것은 십이정경과 기경팔맥을 차례로 지나가면서 굵직굵직한 경맥들을 연속적으로 돌파했다.
연이어, 혈룡진기는 본격적으로 뇌진천의 전신을 돌며 구석구석의 세맥까지 뚫어 나갔다.
용솟음치는 혈룡진기는 진로를 가로막는 뻑뻑한 혈도를 연방 뚫어 내며 물밀듯이 휩쓸고 지나갔고, 전신을 훑었다.
이렇게 하여 십이정경을 시작으로 임독양맥을 포함한 기경팔맥과 전신의 주요 간선(幹線)이 되는 경락, 그리고 전신으로 뻗쳐 있는 미세한 세맥(細脈)까지도 완전히 뚫려 버렸다.
뇌진천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제는 무극신공이다!’
뇌진천은 모든 임무를 완수하고 하단전에 모여 있던 반 갑자의 공력을 다시금 활성화시켰다.
전혀 지치는 기색이 없이 벌떡 일어난 혈룡진기는 이제 주인의 명령에 다소나마 복종하게 되었다.
뇌진천의 의지력이 혈룡진기를 가까스로 장악한 것이다.
뇌진천은 혈룡진기를 심궁으로 보냈다.
심궁을 거친 혈룡진기는 골격의 내부, 곧 골강에 가득 들어찬 골수 속으로 급격하게 녹아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다경이 지나자, 하단전에 기반을 두고 있던 모든 혈룡진기는 골수라는 호수 속으로 이사를 끝마쳤다.
즉, 반 갑자의 혈룡진기가 뇌진천의 골수 속으로 완전히 녹아든 것이다.
뇌진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폭마혈검을 집어 들었다.
잠시 후, 그의 전신으로는 회오리의 기운이 형성되어 몸 주위를 휘감아 돌기 시작했다.
휘이이이!
그것은 점점 거세어져서 흡사 용권풍(龍卷風)과도 같은 거대한 소용돌이로 변모해 갔다.
휘리리릭!
뇌진천은 구덩이의 천장을 뚫고 단번에 치솟았다.
용비구천(龍飛九天)의 신법이었다.
바닥에 쌓인 낙엽 따위가 용권풍에 휘날리며 뇌진천의 주변을 휘감으면서 모습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뇌진천은 그 상태에서 사방으로 현란하게 방위를 밟았다.
후우우웅!
뇌진천이 용형보(龍形步)를 펼치자, 주변으로 빼곡히 자리하던 나무들이 나무젓가락처럼 맥없이 부러져 나갔다.
용권풍에 휩싸인 뇌진천의 신형이 지나가는 곳은 그야말로 폐허로 변해 버렸다.
잠시 후, 움직임이 멈추자 그의 전신을 휘감아 돌던 호신기풍 또한 서서히 사라져 갔다.
뇌진천은 발검했다.
붉디붉은 폭마혈검의 검신에서는 핏빛의 검기가 이글거리며 활활 타올랐다. 실로 섬뜩한 광경이었다.
잠시 후, 뇌진천은 폭마혈검을 현란하게 휘두르며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그가 사방으로 방위를 밟을 때마다 주변의 대기는 파도가 치듯 너울댔고, 실로 어마어마한 검세(劍勢)가 반경 오 장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폭마혈검이 뿜어내는 가공할 만한 검기 앞에서 그 일대는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혈룡무상검(血龍無上劍)의 위력이었다.
말년에는 혈륜(血輪)으로 악명을 떨친 혈해존자였으나, 그는 원래 검객이었다.
혈룡무상검은 곤륜파의 모든 검공을 집대성한 다음, 자신의 무극신공에 최적화시켜 새롭게 창안한 검법이었다.
그것은 쾌검(快劍), 중검(重劍), 변검(變劍)의 모든 요소를 두루 갖춘 유일무이의 검법이었다.
용형보를 전개하며 혈룡무상검의 검식을 쏟아 내던 뇌진천은 지축을 힘껏 박차면서 상공으로 높이 솟구쳤다.
허공에서 몸을 역전시킨 뇌진천은 검 끝을 지상 쪽으로 향하게 했다. 잠시 후, 그가 하강하자 검신은 바닥과 닿으면서 잔뜩 휘어졌다.
그는 그 반탄력을 이용하여 다시금 허공으로 높이 치솟으며 물레방아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운해비영(雲海飛影)의 신법을 펼치는 뇌진천의 전신으로는 아주 짙은 핏빛의 기류가 발생하여 사방으로 쫙 뻗어 나갔다.
그 기세는 너무도 맹렬하여 그의 주변으로 날리던 낙엽이나 근처에 있던 나무들은 그야말로 형체도 없이 허공에서 분해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혈룡진기의 실체였다.
연이어, 허리를 뒤로 젖히며 재차 몸을 바로 세운 뇌진천은 공중제비를 돌면서 사뿐하게 착지했다.
동작을 멈추었지만, 뇌진천의 전신에서는 여전히 강렬한 핏빛의 기장(氣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그가 오른손으로 거머쥔 폭마혈검의 검신에서도 서릿발 같은 핏빛의 검기가 이슬처럼 맺힌 채 대기 중으로 연신 기화되었다.
쏴아아아!
이렇듯, 거나한 핏빛의 향연을 벌이고 나서야 뇌진천의 체내에서 설치던 혈룡의 흉포한 몸부림이 진정되었다.
“이젠 그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다. 천하를 내 발아래 두고 마음껏 희롱해 보리라!”
뇌진천의 광오한 웃음소리에 산천초목이 벌벌 떠는 듯했다. 폭마혈검을 회수하는 뇌진천의 안광에서는 온 세상을 집어삼킬 것 같은 예기가 번뜩였다.


5

운공의 과정에서 어느새 어깨에 있던 상처는 완전히 아물어 버렸다. 내상 역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환골탈태의 수준은 아닐지라도 그야말로 뇌진천의 육체는 실로 혁명적인 변화를 겪었다.
그렇기는 하나, 그의 내공이 고작해야 반 갑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새로운 육체의 나이가 열여덟 살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반 갑자라는 내공은 아주 엄청난 양이다. 그러나 무림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정도의 내공을 가진 무인은 수두룩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공의 질이었다.
뇌진천이 가진 혈룡진기는 본질적인 탁월함이 여타 진기와 비교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하단전을 기반으로 하는 여타 무공과는 아예 근본 자체가 다른 무극신공의 운공법과 연계된 혈룡진기의 위력은 가공할 만했다.
비록 반 갑자라고 할지라도 순간적으로 뿜어낼 수 있는 위력은 삼, 사 갑자에 버금간다.
애당초 무극신공을 창안한 뇌진천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이곳에서 혈룡진기를 얻게 된 건 결코 기연이 아니다. 어차피 내 것을 다시 회수한 것이니 이것은 필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자, 이제 어찌할 텐가?’
뇌진천은 더 이상은 예전처럼 본신의 힘만 믿고서 앞뒤 안 가리고 날뛰던 망나니가 아니었다.
이제는 그 누구의 추적도 따돌릴 수 있게 된 만큼, 이대로 조용히 사라져서 그 누구라도 이길 수 있는 힘을 키울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이것은 자신의 능력과 현재의 상황에 대한 냉정하고도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치밀하고 주도면밀한 전략이었다.
그 무렵, 뇌진천의 얼굴에는 이채가 깃들었다. 십 리쯤 밖에서 추적자들의 기척이 감지되었던 것이다.
‘과연 누가 사냥꾼이고 누가 사냥감일까?’

***

노도경의 보고를 받은 청해 분타주 섭동천(葉動天)의 분부에 따라 한수겸의 행방을 찾고 있던 추격대장 진경모(陳硬牡)는 곤륜산 인근의 산자락에서 발생한 굉음과 진동을 쫓아서 휘하의 부하들과 더불어 접근해 오는 중이었다.
잠시 후, 학자풍의 말쑥한 청년 하나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노 향주가 어지간히도 호들갑을 떨기에 뭔가 대단한 놈인가 싶었더니, 애송이에 불과하잖아? 지국 놈들의 수준이 형편없다는 게 확실하게 증명되는군. 그냥 죽여 버리고 싶지만, 분타주의 명령이 있으니 일단은 사로잡아야겠지.’
뇌진천은 전혀 기척을 숨기지도 않았고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도 않았다.
그냥 정면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는 더 이상 웅크리거나 눈속임 같은 구차스러운 행위가 필요 없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혈해존자의 모습이었다.
“저놈을 사로잡으면 큰 상이 있을 것이다.”
진경모의 말에 무인들은 앞 다투어 뇌진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뇌진천은 잠시 그들을 가만히 응시했다.
‘어리석은 것들!’
뇌진천은 몰려드는 적들을 향해 두 손으로 거머쥐고 있던 검을 위로 치켜들었다가 지면으로 힘껏 내리쳤다.
촤아아악!
무시무시한 기운이 지면을 가르며 뻗어 나갔다.
혈룡질풍세(血龍疾風勢)였다.
그 광경에 진경모의 얼굴에는 경악이 깃들었다.
‘그 어떤 기압(氣壓)도 감지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저런 최상승의 무공을 시전하다니…….’
그랬다. 뇌진천에게 있어서 굳이 내공의 수위를 끌어올리는 과정 따위는 필요가 없었다.
전신의 골수에서 도사리고 있는 혈룡진기는 언제든지 활성화되어 필요한 경락에 거의 즉각적으로 투입된다.
이것이 바로 무극신공의 핵심적인 특징이요, 무서운 점이었다.
뇌진천은 혈룡질풍세를 연달아 두 차례나 더 뿜어냈다.
그것에는 지난 십 년간 참아 왔던 모든 한이 울분까지 깃들어 있었다.
폭마혈검 역시 그동안의 체증을 모두 씻어 버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대리를 찢어발기는 검명(劍鳴)을 토했다.
세 줄기 혈룡질풍세의 진로에 있던 무인들은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처참한 몰골을 하고서 절명했다.
“극강의 고수다! 도저히 우리가 상대할 만한 녀석이 아니야. 오직 도주만이 살길이다.”
진경모가 앞장서서 도주하자 부하들 역시 뿔뿔이 흩어져서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어림없다!”
뇌진천의 신형은 허공으로 녹아들 듯 사라져 버렸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비룡축전(飛龍逐電)을 전개하는 그의 움직임은 눈으로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빨랐던 것이다.
“으아악!”
“사, 사람 살려!”
“캐액!”
잠시 이어지던 처절한 절규와 단말마의 비명은 어느새 사라지고 주변은 고요해졌다.
이에 정신없이 달아나던 진경모는 잠시 멈추어 서서 은근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어찌 된 일이지?”
고개를 갸웃하던 진경모가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릴 때였다.
그는 하마터면 심장이 멎을 뻔했다.
바로 목전에서 뇌진천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허억!”
눈 깜짝할 사이에 운룡금나(雲龍擒拿)로 진경모의 목을 잡아챈 뇌진천은 그대로 번쩍 들어 올렸다.
머리가 위로 젖혀진 채 공중으로 들어 올려진 진경모는 숨이 막혀서 처절하게 발버둥 치기는 했지만, 이내 죽은 닭처럼 축 늘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