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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무쌍 1권(18화)
제7장 권토중래(捲土重來)(3)


하지만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에 악력이 줄어들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진경모는 가까스로 말문을 열었다.
“청해 분타에서 보냈느냐?”
“그, 그렇습니다. 소, 소인은 그냥 부, 분타주가 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
뇌진천은 진경모가 쉽게 대답할 수 있도록 일단 바닥으로 내려 주었다. 진경모는 잠시 캑캑대며 기침을 했다.
“분타주의 이름이 무엇이냐?”
진경모는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면서 대답했다.
“섭동천입니다. 제발 소인을 살려 주십시오. 소인은 다만 섭동천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섭동천은 곤륜파의 멸망에 어떤 역할을 했느냐?”
진경모는 두뇌 회전이 빠른 인물이었다.
그는 자기 실력으로는 상대방에게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당장 지원군이 올 것 같지도 않았다.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살려 주시는 겁니……?”
진경모는 말을 맺지 못했다. 또다시 뇌진천이 그의 목을 닭 모가지처럼 비틀어 쥐고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숨이 턱 끝에까지 이르러서야 뇌진천은 다시 내려 주었다.
“대답해라. 섭동천이 곤륜파와 만상상단에 한 모든 짓을 하나도 빠짐없이 내게 말하라.”
뇌진천의 얼굴은 서슬이 시퍼런 칼날보다도 더 매섭고 북해의 얼음바람보다 더 차가웠다.
‘도무지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다.’
서릿발 같은 예기가 서린 뇌진천의 두 눈동자는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설프게 거짓말을 하려 들다가는…….’
완전히 체념한 진경모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는 청해 분타에서도 간부 급의 인물로서 곤륜파와 만상상단의 멸문과 관련된 내막의 대부분을 알고 있었다.
진경모에 의하면, 청해 분타의 수장인 섭동천은 소교주의 심복 가운데 하나로 곤륜파과 전면전을 벌일 때, 돌격대장의 역할을 했다. 곤륜파 장문인을 비롯한 수뇌부 인물의 상당수가 그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그뿐 아니라, 섭동천이 소교주에게 만상상단을 멸문시키도록 적극적으로 건의했다.
물론 섭동천이나 혈교의 직할대가 만상상단의 멸문에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었다.
만상상단의 한씨 일가는 전적으로 목형준의 공작에 의해 멸문을 당했다.
애당초 화정회에서는 오래전에 단지 청해의 전반적인 동향을 파악하고자 목형준을 추동진이라는 가명으로 만상상단에 침투시켰다.
그 이후, 화정회는 혈곤륜에 의해 수라혈교와 흑혈회로 갈라졌다. 또한, 흑혈회는 곤륜파와 전면전을 치렀고, 이로 인해 둘 다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숭의맹에서도 이 일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서 수라혈교는 일단 흑혈회를 멸망시키고 연이어 곤륜파까지 멸망시켰다.
이런 풍파가 지나가는 사이, 일개 사환이었던 목형준은 한경인의 신뢰를 한 몸에 받으며 상단의 일을 제외한 한씨 일가의 대소사를 총괄하는 집사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사실 이때까지 목형준은 화정회의 후신인 수라혈교와 연락이 완전히 두절된 상태였다.
그러나 첩보와 공작을 담당하는 육종당(陸終黨) 출신인 섭동천이 이 사실을 알고서 노도경을 보내어 접선했다.
목형준은 추동진으로서의 인생에 나름대로 만족을 하고 있어서 처음에는 무척 당황했다.
그러나 일찍이 화정회에 몸을 담으면서 마교의 생리를 잘 알고 있던 목형준은 즉각적으로 수라혈교에 충성을 맹세했다.
그 이후, 구연우도 추가적으로 파견되었다. 목형준은 두 사람 모두 상단의 호위 무사로 들어오도록 힘을 써 주었다.
무예도 출중한 데다가, 인사권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목형준이 뒤를 봐준 덕택에 노도경과 구연우는 각각 호위 총관과 호위 부총관이 되었다.
이들은 회유와 협박을 통해 가병들을 차례대로 포섭해 나갔다. 그리고 목형준은 자신의 정부였던 맹소홍에게 혈교에서 입수한 독약을 건네주었다.
수라혈교의 힘이 아무리 강해도 공권력의 직접적인 영향력 아래에 있는 만상상단 본점을 직접 기습하여 단주 일가를 몰살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목형준을 비롯한 네 사람의 암약으로 청해성에서 제일가는 만상상단은 수라혈교의 수중에 완전히 넘어가고야 말았다.
“이렇게 된 겁니다.”
설명을 끝마친 진경모는 뇌진천의 눈치를 살폈다. 뇌진천의 입에서는 의외의 말이 흘러나왔다.
“답변 잘 들었다.”
진경모는 내심 안도했다.
‘그래도 이렇게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는데 설마 죽이지는 않겠지?’
그러나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부지불식간에 발검한 뇌진천이 진경모의 목을 단번에 베어 버렸던 것이다.
그랬다.
뇌진천의 입장에서는 고통 없이 단번에 죽여 준 것이 진경모의 성의 있는 대답에 대한 보답이었다.



제8장 파죽지세(破竹之勢)(1)


1

한 번은 마룡동에 이십 년간 봉인하고 또 한 번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보잘것없는 여덟 살짜리 어린아이의 육체를 입도록 강요했다.
이렇듯 두 번이나 뇌진천을 함정에 빠뜨린 곤륜파였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부모요, 스승이었다.
아무리 밉기로서니 결코 끊어 낼 수 없는 끈끈한 관계였던 것이다.
곤륜파도 곤륜파이지만, 한씨 일가는 그저 살육밖에 모르는 반쪽짜리 인간이었던 뇌진천이 온전한 성품을 가질 수 있게 해 준 은인이었다.
특히, 한설지는 뇌진천에게 다양한 종류의 사랑을 가르쳐 준 엄마요, 누나요, 연인이었다.
‘이 모든 불행의 근원이 바로 섭동천, 그 인간이었구나.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그 인간만큼은 절대로……!’
뇌진천은 폭마혈검의 손잡이를 불끈 거머쥐었다.
‘지금의 능력이라면 혼자서도 능히 섭동천의 목숨을 취한 다음, 무사히 도주할 수 있다. 이 기회에 혈교의 전신이었던 화정회를 유린하던 혈해존자의 위용을 한껏 보여 준다면 놈들은 큰 혼란에 휩싸일 것이다. 그리되면 보다 우위에 서서 내 의도대로 혈교를 주무를 수 있을 테지. 그래! 조용히 힘을 기르는 것도 좋지만, 이것도 이것대로의 의미가 있다.’
일단 마음을 정한 뇌진천은 즉시 곤륜산으로 향했다.

***

둥둥둥!
뇌진천이 곤륜산에 설치된 수라혈교 청해 본타의 경내로 진입하자, 초소에서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척후병들이 그의 접근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뇌진천이 본격적으로 비탈진 경사면을 따라 등반을 시작하려는 무렵이었다.
“침입자다!”
“아무래도 한수겸인 듯하다.”
“놈이다! 그놈이 틀림없다.”
“녀석을 잡아라!”
덤불 속이나 토굴 속에 숨어 있던 수많은 회색 나삼의 사나이들이 뇌진천의 앞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북두일살(北斗一殺)에서부터 북두칠살(北斗七殺)까지 청해 분타는 모두 일곱 개의 심층적인 무사대로 구성된다.
이는 섭동천이 수라혈교의 총단에서 호법의 직책을 수행할 때 그가 맡은 호법대의 명칭이 북두대(北斗隊)인 것에 기인한다.
청해 분타에서는 북부칠살에서 북두오살까지는 외당으로, 북두사살에서 북두일살까지는 내당으로 구분된다.
지금 뇌진천을 가로막은 이들은 바로 북두칠살에 소속된 하류무사들이었다.
이들은 평상시에는 청해성의 각 고을이나 마을을 누비고 다니며 상인들에게 자릿세를 걷는 역할을 하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어젯밤에 급히 소집령을 받고서 총원의 사 할 정도가 바로 이곳으로 집결한 상황이었다.
북두칠살의 무인들은 단시일에 세를 불리고자 청해 분타주 섭동천이 무작정 받아들인 시정잡배들에 불과했다.
이들은 마치 배고픈 이리 떼처럼, 혹은 피를 본 상어 떼처럼 뇌진천을 향해 무작정 덤벼들었다.
그러나 뇌진천은 이런 하수들을 상대로 시간 낭비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아무리 일시적으로는 가공할 위력을 뿜어내더라도 뇌진천이 보유하고 있는 내력의 총량은 어디까지나 반 갑자였다.
지금 청해 분타로 쳐들어가는 목적은 오로지 섭동천의 목숨을 취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라혈교에 충분히 경고가 될 만큼의 위력 시위를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조무래기들을 본격적으로 상대하다가는 위력 시위는커녕 쓸데없이 내력만 낭비하게 될 것이다.
“다가서면 죽는다!”
이와 같은 경고의 뜻이 담긴 창룡후(蒼龍吼)가 울려 퍼지자, 북두칠살의 무인들은 움찔하여 뒤로 물러났다.
단번에 기세가 확 꺾여 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다. 섭동천이 한수겸을 사로잡거나 죽여서 그의 수급을 가지고 오면 금자 백 냥을 주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하찮은 무인들일수록 재물에 대한 집착이 강한 법이다. 금자 백 냥은 그들이 평생을 호의호식하며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거금이었다.
탐욕의 노예가 된 북두칠살의 무인들은 금세 전의를 다지며 뇌진천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왔다.
“어쩔 수가 없군.”
뇌진천도 예전과는 달리 쓸데없는 살상은 피하고 싶었다. 벌레 한 마리도 쉽게 죽이지 못하는 한설지를 보며 느끼는 바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태생이 광마였다.
먼저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는 법은 절대로 없는 것이다.
휘이이익!
무극신공을 본격적으로 운용하자, 뇌진천의 전신에서는 호신기풍이 휘감아 돌기 시작했다.


2

“생각보다 자그마한 놈이로군.”
“어딜 가로채려는 거냐? 저 녀석은 내 것이다!”
뇌진천에게 달려들던 북두칠살의 무인들은 상대방과 격돌하기도 전에 자기들끼리 먼저 다투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뇌진천의 미간에는 주름이 졌다. 짜증이 치민 것이다.
“이런, 버러지 같은 것들!”
뇌진천의 두 주먹에는 옹골찬 혈룡아(血龍牙)가 생겨났다. 그것은 강기(剛氣)로 생성된, 일종의 장갑이었다.
서로 눈치를 보는 가운데 가장 무모한 장한 하나가 귀두도를 휘두르며 뇌진천의 전면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지척에 이를 무렵, 그는 뇌진천이 온몸에서 자아내는 용권풍의 풍압으로 인해 좀처럼 그에게 가까이 다가서지 못했다.
그사이, 뇌진천이 먼저 좌측 발을 전방으로 내디디며 우측 주먹으로 장한의 복부를 가격했다.
퍽!
뇌진천의 주먹에 강타당한 주먹패의 몸은 허공으로 떠오르며 뒤쪽으로 멀찌감치 내팽개쳐졌다.
뒤이어 달려들던 장한들은 덩달아 그에게 휩쓸리며 사방으로 나동그라졌다.
그런데 애초에 뇌진천에게 일격을 받은 장한의 몸에는 어느새 혈룡아의 폭기(爆氣)가 스며들어 있었다.
이에 간접적으로 다른 여러 명의 주먹패에게도 연쇄적 발경에 따른 강렬한 충격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복부를 직접 얻어맞은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얼떨결에 그에게 휩쓸린 동료들도 극심한 내상을 입어 객혈을 토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더러는 숨이 끊어지기도 했다.
이 광경을 목도한 주변의 장한들은 경악하여 감히 뇌진천의 곁으로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내력을 아끼면서도 물량으로 몰아붙이는 하수들을 상대하는 데는 발경력을 활용한 권법이 제격이라는 뇌진천의 판단이 적중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북두칠살에 속한 무인들의 숫자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뒤에서 몰려든 이들은 앞에서 일어난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또다시 멋모르고 덤벼들었다.
뇌진천과 직접 대면한 이들은 뒤로 물러서고 싶었지만, 뒤로부터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얼떨결에 덤벼드는 경우도 많았다. 그야말로 인해전술이었다.
뇌진천은 기가 막혔다.
‘젠장! 나중을 위해 가급적 내공을 아끼려 했건만…….’
퍼엉!
몇 배나 강해진 호신기풍의 풍압으로 인해 뇌진천을 여러 겹으로 포위하며 달려들던 수십 명의 장한은 일거에 사방으로 나동그라졌다.
그 틈을 노려 뇌진천은 분타의 본부와 이어진 산길을 따라 앞으로 내달렸다.
“잡아라!”
“놓치지 마라!”
“절대로 내당의 녀석들한테 공을 빼앗길 순 없다.”
전방에서도 토굴 속에 매복해 있던 북두칠살의 무인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그야말로 장맛비에 창궐하는 벌레 떼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이에 뇌진천의 손속도 갈수록 매서워졌다.
혜성의 꼬리처럼 불그스레한 기장을 드리우는 혈룡아가 휘둘러질 때마다 단번에 많은 장한이 피를 토하며 사방으로 나동그라졌다. 서로 뒤엉켜 밟히며 압사하기도 했다.
‘이제 겨우 쓰레기가 다 치워진 모양이군.’
뇌진천은 잠깐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산 아래에서는 아직 그와 직접 격돌해 보지 못하여 혈기와 투지를 불태우고 있는 수백 명의 장한이 악다구니를 놀려 대면서 추격하는 중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진리인 듯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실전에서 터득한 어쭙잖은 싸움밖에 모르는 북두칠살의 무인들이 상승의 경공을 전개하는 뇌진천을 따라잡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뇌진천은 한 걸음에 일, 이 장씩 건너뛰었다.
뇌진천은 경사가 가파르고 바위나 가시덤불과 같은 장애물들이 가로막고 있는 험준한 산길을 간단하게 뛰어 올라갔다.
시끌벅적하게 뒤쫓던 무리와도 멀어지자, 뇌진천의 주변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고요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요란했던 상황 자체가 무색해질 따름이었다.
뇌진천은 한동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산채를 향해 비호처럼 달려갈 수 있었다.
물론, 도중에는 날카로운 죽창이 직립해 있는 구덩이를 비롯한 다채로운 덫과 매복이 존재했다.
수라혈교의 청해 분타에서는 과거에 곤륜파가 사용하던 기관진식과 장애물을 대부분 그대로 활용하고 있었기에 뇌진천으로서는 장애물 지대를 돌파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 뇌진천의 발걸음이 멈추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