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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무쌍 1권(20화)
제8장 파죽지세(破竹之勢)(3)


“막아라! 막아야 한다!”
뇌진천은 산채의 일차 방어선을 가뿐하게 돌파하고 내부로 진입했다.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전각들과 망루, 연무장, 천막으로 된 막사 등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는 각양각색의 무사들이 매서운 눈으로 뇌진천을 노려보면서 쇄도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내당의 고수들이었다.
북두사살의 살주인 전수휘(錢壽輝)가 제일 먼저 수하들에게 뇌진천에 대한 추살령을 내렸다.
“어서 가서 저 건방진 애송이를 상대하라. 가급적 제압하되, 여의치 않으면 그냥 죽여 버려라!”
이에 북두사살의 무인들은 귀두도나 박도(朴刀), 혹은 환도(環刀)와 같은 무기를 휘두르며 뇌진천에게 달려들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이들은 저마다 내가무공을 제대로 연마한 무인들이었다.
이를 간파한 뇌진천의 대응도 달라졌다.
푸아앙!
뇌진천의 곁으로 다가서던 이들은 그가 뿜어내는 호신기풍의 강력한 풍압으로 인해 뒤로 밀려났다.
“으아악!”
“커억!”
그 순간, 북두사살의 무인들은 다소 움찔하는 듯했다. 그러나 과연 이들은 어설픈 주먹패 따위가 아니었다. 이내 적응을 하여 저마다 내공의 수위를 한껏 끌어올리며 뇌진천을 향해 실질적인 근접 공격을 감행할 움직임을 보였다.
그 광경에 뇌진천은 재차 입을 열었다.
“나는 다만 섭동천의 목을 취하러 왔을 뿐이다. 순순히 길을 열어 주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묵묵부답이었다.
그 대신, 북두사살의 무사들은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 무렵, 뇌진천의 몸 주위를 휘감아 도는 호신기풍은 잠잠해진 상태였다.
호신기풍을 운용하는 것은 상당한 상승무공에 해당되었다. 그래서 내력을 아끼고자 꼭 필요할 때만 전개했다.
“놈이 잠잠해졌다.”
“지금이 기회다.”
눈치만 살피던 북두사살의 무사들은 거듭 덤벼들었다.
“귀찮은 파리 떼 같군.”
뇌진천은 일단 전방의 좌우에서 각각 귀두도와 박도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무사들을 향해 오히려 마주 치달았다.
도사리듯 자세를 바짝 낮추며 둘의 공격을 머리 위로 미끄러뜨린 그는 지축을 박차면서 도약했다. 그리고 양손의 손바닥으로 좌우에서 달려들던 무사의 얼굴을 확 밀어냈다.
퍼억!
자신의 얼굴에 뇌진천의 손도장을 찍힌 두 사람은 목이 뒤로 홱 꺾여 부러지면서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그 순간, 후위에서는 청의인(靑衣人) 하나가 환도를 휘두르면서 기습해 왔다.
뇌진천은 재빨리 자세를 낮추며 지면으로 다리를 휘돌려 뒤에서 덤벼드는 청의인을 걸어 넘어뜨렸다.
일순간에 세 명이 당하자, 다른 무사들의 움직임도 보다 신중해졌다. 그사이, 뇌진천의 주위로는 더욱 많은 내당 무사들에 의해 폭넓고 심층적인 포위망이 형성되었다.
“이야얍!”
“죽어라!”
잠시 후, 두 명의 적의인이 뇌진천의 양쪽 측면으로 파고들면서 옆구리를 베어 왔다.
동시에 전면에서는 또 다른 적의인이 그의 명치를 베어 왔고, 등 뒤에서는 흑의인이 박도를 휘두르며 공격해 왔다.
사면에서 동시에 공격을 받게 되자, 뇌진천은 재빨리 지축을 박차며 공중으로 치솟았다.
북두사살의 무사들은 뇌진천의 사각을 노리며 일제히 각자의 병기를 위로 치켜들었다.
뇌진천은 망루 축대에서 수평으로 잇대어진, 비교적 얇은 장대에 손을 걸었다. 몸을 한차례 흔든 그는 반동을 이용하여 멀찌감치 떨어진 곳으로 착지했다.
그러나 여전히 포위망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듬성하기는 해도 산채의 경내 대부분의 지역에 내당의 고수들이 두루두루 포진해 있었던 것이다.
북두사살의 무사들은 무턱대고 달려들지는 않았다. 그들은 난입자를 단번에 없애겠다는 생각은 버린 듯했다.
다만 교묘한 협공을 통해 지속적으로 압박하며 사냥감의 힘을 충분히 빼놓은 다음, 전력으로 덮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오산이었다.
뇌진천은 청해 분타주 섭동천의 소재를 파악하는 데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일단 섭동천을 찾아내면 그때부터 제대로 출수하여 본격적으로 자신의 무위를 드러낼 생각이었다. 다만, 그전까지는 되도록 내공을 아끼느라 최대한 자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거지?’
뇌진천의 신경이 다른 데로 가 있어서 그나마 잠시 여유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북두사살 무인들은 점점 대담해졌다.
처음에 보여 준 강렬한 인상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특별한 점이 보이지 않았다.
이에 그들은 그것을 허세라고 여기게 되었다. 초반에 모든 힘을 다 쏟아 버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제 보니 별것 아니로구나. 주저할 것 없다. 총공격하라. 사로잡을 수 있으면 사로잡도록 하라.”
포위망이 좁혀 들자 뇌진천은 다가서는 무사들 가운데 한 명의 어깨를 짚으며 공중제비를 돌아 넘어갔다.
뇌진천은 적어도 후위의 방어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도록 전각을 등지고 섰다. 그의 전면으로는 수많은 내당의 고수들이 부채꼴로 포위하며 옥죄어 왔다.
“멈춰라!”
고요하면서도 우레와 같은 말이었다.
뇌진천의 심후한 내공이 실린 창룡후가 산채 가득히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뇌진천이 자아내는 가공할 만한 살기와 숨 막힐 것 같은 위화감이 어우러진 공포의 기류가 경내에 있던 모든 무사의 뇌리를 급습해 갔다.


6

잠시나마 뇌진천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은 전수휘의 얼굴은 완전히 사색이 되었고, 온통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어서 공격하지 않고 뭘 꾸물대는 것이냐?”
전수휘의 호통에 잠시 주춤거리던 무사들은 다시금 전의를 불태우며 뇌진천을 향한 본격적인 공세를 감행했다.
이를 시작으로 북두사살 무인들의 공격이 거세졌다.
아직 섭동천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방해가 심해지자, 뇌진천은 슬슬 부아가 치밀었다.
“성가신 것들!”
뇌진천의 두 주먹에는 재차 발경력을 머금은 혈룡아가 덧씌워졌다.
그것은 호신기풍보다는 내력의 소모가 훨씬 적으면서도 강력한, 아주 경제적인 상승무공이었다.
혈룡아로 덧씌워진 뇌진천의 두 주먹은 전 방위로 빠르게 내질러졌다. 핏빛의 수많은 권영(拳影)들이 난무하며 권막(拳膜)을 형성했다.
누구든지 그것에 부딪힐 때면 피떡이 되어 불로 뛰어드는 나방처럼 맥없이 쓰러져 나갔다.
잠시 후, 뇌진천은 훌쩍 치솟았다.
그런 다음, 허공을 걷듯 두 발을 교차시키며 전면의 적들을 향해 돌진해 나갔다.
뇌진천의 두 발에도 강기로 된 핏빛의 신발이 씌워졌으니, 혈룡아였다.
혈룡아가 입혀진 그의 두 발은 북두사살의 무사들이 밀집되어 있는 인해(人海) 위로 노를 젓듯이 움직여졌다.
용무쌍린각(龍舞雙躪脚)이었다.
뇌진천은 갑자기 몸을 역전시켰다. 일순간에 그의 몸은 공중에서 물구나무를 선 자세로 바뀌었다.
그는 양다리를 한일자가 되도록 벌린 다음, 풍차처럼 격렬하게 회전했다.
그러자 무시무시한 회전기류와 함께 파공음마저 발생했다.
독질려 매설지에서 펼친 바 있던 용무선회각이었다.
뇌진천의 두 발에서 생성된 혈룡아는 무사들이 밀집된 인해를 사정없이 유린하면서 마음껏 휘저었다.
저마다 신체의 이곳저곳이 처참하게 찢기며 연속적으로 나자빠졌다.
북두사살의 무사들은 반항조차 못한 채 쓰러져 갔고, 뇌진천은 드디어 북두사살주 전수휘의 지척까지 이르게 되었다.
뇌진천은 소스라치게 놀라 달아나려는 전수휘의 목을 단번에 틀어쥔 다음,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섭동천은 어디에 있느냐?”
전수휘의 눈동자가 북두단의 꼭대기로 향했다. 무심결에 그렇게 한 것이었으나, 뇌진천은 금세 알아차렸다.
“이제 보니 탑 위에 숨어서 나를 보고 있었구나.”
그 말에 움찔한 전수휘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네가 아무리 날뛰어 봤자 이곳은…… 크억!”
전수휘의 두 눈이 당장에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크게 떠졌다. 연이어, 그는 물에 젖은 솜처럼 축 늘어졌다.
털썩!
전수휘의 시신을 내팽개친 뇌진천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전망대의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 무렵, 북두단 위에 있던 섭동천은 경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고스란히 지켜보는 중이었다.
이에 섭동천과 뇌진천의 시선은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 순간, 섭동천은 심장이 멎을 것만 같은 공포감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섭동천의 눈에는 한수겸의 모습 가운데 순간적으로 혈해존자의 신위가 겹쳐 보였던 것이다.
어린 나이의 섭동천이 화정회에서 일개 회도로 있을 때 혈해존자 뇌진천이 혈곤륜의 도인들을 거느린 채 총단으로 공격해 왔다.
그때, 절륜한 무위를 뿜어내며 단번에 그곳을 초토화시킨 혈해존자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했다.
그 당시, 너무 두려워서 오줌까지 자린 경험이 있던 섭동천에게 있어서 혈해존자는 압도적인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아직 앳된 분위기의 청년에게서 바로 그 혈해존자의 신위가 느껴졌다.
섭동천은 두 손으로 자신의 양 뺨을 쳤다.
‘이건 착각이다. 너무 예민해진 것뿐이야.’

***

뇌진천은 직감했다.
북두단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중년인이 청해 분타주 섭동천이라는 것을.
지금까지 차분했던 뇌진천의 전신에서는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스스로 살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혈룡진기가 발동한 것이다.
곤륜파와 한씨 일가를 멸망시킨 저 원흉을 지금 당장 죽이지 않으면 몸이 폭발해 버릴 것 같았다.
그것은 원수의 피를 갈구하는, 실로 견디기 힘든 갈증과도 같았다.
뇌진천이 북두단을 쳐다보는 사이, 전수휘의 죽음으로 잠시 주춤하던 내당 고수들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의 입에서는 살을 에는 것처럼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지막 경고다! 이제부터 내 앞을 가로막는 자에게는 오로지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7

뇌진천을 향해 다가오던 무사들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굳어 버렸다. 압도적인 두려움이 엄습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다시 움직이게 만들어 줄 계기가 생겼다. 그것은 북두단 위의 섭동천이 내건 포상의 내용이었다.
“한수겸을 없애는 자를 내당의 태상총관으로 삼겠다. 청해 분타의 이인자가 되는 것이다. 그 밖에도 저놈을 없애는 데 크고 작은 공을 세운 자들에게도 확실하게 논공행상(論功行賞)을 따져 수뇌부의 간부로 승진시켜 줄 것이다.”
기실 섭동천은 뇌진천과는 상당히 멀리 떨어진, 가장 안전한 장소에 있었다.
게다가, 북두단의 하단으로는 섭동천의 수하들로 온통 인산인해를 이루는 실정이었다.
모두 아군인 가운데, 오직 하나만이 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진천과 잠시 시선이 마주쳤던 섭동천은 진저리쳐질 정도의 공포를 느꼈다.
그 순간, 섭동천에게는 한수겸을 사로잡고자 하는 마음 자체가 사라졌다. 혈해존자를 연상시키는 존재는 한시라도 빨리 지워 버리고 싶을 따름이었다.
그래서 섭동천은 이상과 같은 포상까지 내걸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실수였다.
방금 전의 그 말을 통해 자신이 수장이라는 걸 뇌진천에게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한편, 섭동천의 말은 잔뜩 주눅이 들어 있던 수하들의 투지에 불을 붙이는 데는 충분한 효과가 있었다.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이 아닌가? 잘만 하면 단번에 팔자를 고칠 수 있어.”
“사내라면 마땅히 목숨을 걸어야 할 때를 알아야 하지.”
“저놈도 인간이니, 언젠가는 지칠 거야. 함께 협공을 하면 결국 쓰러지고 말 걸세.”
“맞아. 굳이 포상이 아니라도, 진정한 무인이라면 무릇 저토록 강한 적과의 결투를 피해서는 안 되지.”
“그래, 한 번 해 보는 거야.”
잠깐의 웅성거림 이후, 모든 무인의 눈빛이 달라졌다. 다들 사냥감을 앞둔 맹수와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

드디어 최종적인 표적을 발견했다. 더 이상 힘을 아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에 뇌진천은 즉시 발검했다.
폭마혈검의 검신에서는 불그스레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스르르 피어올라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흡사 날름거리는 뱀의 혓바닥과도 같았다.
그 광경에 뇌진천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무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껏 저 정도로 강렬한 검기를 발하는 고수는 본 적이 없었던 모양이다.
“이제 기회는 사라졌다.”
이런 선언과 함께 뇌진천은 위로 치켜들었던 폭마혈검을 아래로 내리쳤다.
폭마혈검의 칼날이 바닥에 닿는 순간, 가공할 만한 혈룡폭기의 기운, 곧 혈룡질풍세가 지면을 가르며 전방으로 쭉 뻗어 나갔다.
촤아아아!
질주하는 혈룡질풍세의 좌우로는 근 삼 장에 이르는 흙무더기가 튀었고, 주변은 온통 흙먼지로 자욱해졌다.
혈룡질풍세의 진행 방향으로 달려들던, 그리고 그 후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무사들은 단말마의 비명조차 토하지 못한 채, 그야말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으아아악!”
이어지는 비명은 혈룡질풍세가 뻗어 나가는 가장자리에 서 있다가 간접적으로 휩쓸린 자들의 것이었다.
혈룡질풍세는 방해하는 건 무엇이든 집어삼키며 계속해서 진격하다가 이윽고 진행 방향으로 우뚝 서 있던 망루와 충돌했다.
퍼어어어엉!
이와 같은 굉음과 더불어 망루가 내당 무사들이 밀집된 앞쪽의 광장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에 망루 위에 있던 자들도 균형을 잃고서 하릴없이 추락했다. 실로 가공할 만한 발경의 위력을 지닌 혈룡질풍세의 혈룡폭기가 망루의 지지대 자체를 산산조각 내어 버렸기에 벌어진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