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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무쌍 1권(21화)
제9장 영웅본색(英雄本色)(1)


1

“어, 어떻게 저런 일이?”
쓰러지는 망루의 아래쪽으로 자리하고 있던 무사들은 기겁을 하면서 좌우로 황급히 몸을 피했다.
“사, 사람 살려!”
“으아악!”
그곳에는 워낙 많은 사람이 밀집해 있던 터라, 상당수의 무사들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쓰러진 망루의 아래에 깔려서 압사당하고 말았다.
뇌진천은 섭동천이 올라가 있는 북두단을 향해서도 극성의 혈룡질풍세를 발출했다.
촤아아아!
이미 망루를 쓰러뜨린 혈룡질풍세의 위력을 목도한 섭동천은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런 괴물 같은 놈을 봤나!”
섭동천을 비롯한 그의 심복들과 북두단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황급히 아래로 피신했다.
다행히 북두단은 목재로만 지어진 망루와는 달리 첫 번째로 뻗어 온 혈룡질풍세에 의해서는 무너지지 않았다.
촤아아아!
재차 혈룡질풍세가 밀어닥쳤다.
콰아아아앙!
두 번째로 강타당하자, 건물의 벽면에 쩍쩍 금이 갔다.
전방의 상황을 주시하던 뇌진천은 다시 한 번 북두단을 향해 혈룡질풍세를 쏘아 냈다.
촤아아아!
세 번째 혈룡질풍세가 북두단을 강타하기 직전에 섭동천은 아슬아슬하게 바깥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꽈아아아앙!
섭동천이 탈출하자마자, 뇌진천이 뿜어낸 혈룡질풍세는 북두단과 강타했다.
목재로 된 망루와는 달리 대부분 석재로 이루어진 북두단은 쓰러지지 않고,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편, 미처 북두단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자들은 그대로 그 속에 매몰되고 말았다.
간신히 북두단을 탈출한 섭동천은 그 광경을 보며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중얼거렸다.
“저놈은 도저히 인간이 아니야. 인간일 수 없어!”

***

본신의 십이성 공력이 깃든 혈룡질풍세를 연달아 네 차례나 달린 탓에 뇌진천의 호흡도 다소 거칠어졌다.
뇌진천의 입가에는 한 줄기의 선혈이 흘러내렸다.
‘다소 무리를 한 것 같군.’
맹렬하게 날뛰는 혈룡진기를 원하는 대로 통제하는 것이 아직은 쉽지가 않았다. 이에 순간적으로 힘 조절에 실패하여 내상을 입고 만 것이다.
뇌진천은 몸을 추스르는 가운데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며 주변의 동향을 살폈다.
‘다행히 내 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아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듯하군.’
그도 그럴 것이 방금 뇌진천이 보여 준 가공할 만한 무위를 목도한 탓에 저마다 심리적으로 크게 동요하여 분별력을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섭동천에 의해 되살아난 투지는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극한 공포심만이 그들을 휩싸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제는 누구 하나 감히 뇌진천을 상대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렇듯 방해꾼도 없었지만, 뇌진천은 달아나는 섭동천의 뒤를 바로 추격하지는 못했다.
‘제기랄! 불구대천의 원수가 목전에서 달아나는데도 보고만 있어야 하다니…….’
뇌진천은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서 입공(入功)의 운공으로 운기조식을 해야만 했다.
그 무렵, 비교적 차분한 모습으로 뇌진천의 동향을 유심히 살펴보는 이들이 있었으니 북두이살의 두 살주였다.
“움직임이 멈추었어.”
포전충(蒲全忠)의 말에 유원호(劉元昊)가 대꾸했다.
“역시 놈도 인간이었군. 하긴, 그런 절초를 연달아 시전했으니 온전할 리가 없지. 그게 아니라도 여기까지 오면서 내공의 소모가 극심했을 거야. 아마 이젠 공력도 대부분 고갈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한 내상을 입은 게 틀림없어.”
“흐음, 과연……!”
“지금이 기회일세. 녀석은 지금 운기토납법(運氣吐納法)으로 몸을 회복시키고 있는 게 틀림없어.”
“그렇다면 빨리 공격해야겠군.”
포전충과 유원호는 일단 사기를 잃고 허둥대는 부하들부터 통제하기로 했다.
이렇듯 확실한 구심점이 생기자, 북두이살뿐만 아니라 북두삼살과 북두사살의 무인들까지도 서서히 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상황은 점차 안정되었다.
“한바탕 거하게 날뛰었지만 저기까지로군.”
포전충의 말에 유원호가 여유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슬슬 끝내도록 하지.”
하지만 포전충과 유원호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진짜 공포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을.


2

서서히 걷혀 가는 뿌연 흙먼지 사이로 뇌진천의 신형이 드러났다. 폭마혈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지탱하는 그는 그 자세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르렁거리는 거친 숨소리만이 주변의 대기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킬 따름이었다.
“하아∼! 하아∼! 하아∼!”
뇌진천의 주위로는 마치 결계라도 형성된 것처럼 널찍한 공간이 자연스레 생겨나 있었다.
그렇게 충분한 거리를 유지한 상태에서 청해 분타의 무사들이 수십 겹이나 에워싼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쉽사리 접근하지는 못했다.
질식할 것 같은 침묵만이 짙게 깔려 있는 가운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북두이살의 두 살주인 포전충과 유원호는 이윽고 반대편에서 뇌진천의 곁으로 접근해 갔다.
조심스럽게 다가가던 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취이이이익!
포전충은 독문 무기인 적성연편(摘星軟鞭)을 기습적으로 휘둘렀다.
그것은 교룡의 힘줄로 만들어진 일 장 길이의 채찍으로, 독이 묻은 가시가 주변으로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포전충의 적성연편은 뇌진천의 몸을 지탱해 주던 폭마혈검을 휘감았다.
연이어, 포전충은 신속하게 적성연편을 회수했다.
그와 동시에 폭마혈검은 뇌진천의 손을 떠나고 말았다. 포전충이 적성연편으로 잽싸게 낚아챈 것이다.
몸을 지지해 주던 폭마혈검을 빼앗긴 뇌진천은 순간 휘청거리며 앞으로 쓰러질 듯했다. 그때였다.
유원호 역시 자신의 독문 무기인 상혼비(傷魂匕)를 과감하게 꽂아 넣었다. 그리고 그것은 여지없이 뇌진천의 하단전을 파고들었다.
과연 북두이살의 좌우 살주답게 포전충과 유원호의 움직임은 신속하고도 절묘했다.
“이제 단전이 파괴되었으니 더는 아까 전과 같은 상승무공을 펼치지 못할 테지. 게다가, 내 상혼비에는 당문의 그 어떤 절독 못지않은 상혼산(傷魂散)이 묻어 있다. 이제 네놈은 곧 칠공에서 피를 쏟아 내며 죽게 될 것이다.”
유원호는 만면에 미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의기양양한 어조로 말을 이어 갔다.
“자!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다 포기하고 순순히 너의 정체를 밝혀라. 네놈은 도대체 누구냐?”
하지만 뇌진천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한쪽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거친 숨을 몰아쉴 따름이었다.
그러자 유원호의 시선은 어디론가 향했다.
그곳에는 섭동천이 있었다.
섭동천이 눈짓을 하자, 유원호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뭐, 좋다. 어차피 네놈이 죽으면 그걸로 끝이니까.”
유원호는 뇌진천의 하단전에 박힌 상혼비의 손잡이를 거머쥐었다.
그 순간, 뇌진천의 전신은 부르르 떨렸다.
그러나 유원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상혼비를 뽑아 버렸다.
촤아악!
뇌진천의 몸에서 피 분수가 치솟아 유원호의 덮쳐 갔다.
피가 튈 것을 예상을 하고 재빨리 물러섰음에도 불구하고 유원호는 선혈을 흠뻑 뒤집어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으아아악!”
유원호가 내지른 처연한 비명이 그 주변의 대기를 진동시키며 널리 울려 퍼졌다.
단지 몸에 피가 묻었을 뿐인데, 그는 어째서 이토록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는 걸까?
그것은 마치 간질병 환자가 발작을 하듯 바닥을 뒹굴며 몸서리를 치는 유원호의 모습을 살펴보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쏴아아아!
바닥을 나뒹구는 유원호의 피부는 마치 화골산(化骨散)을 뒤집어쓴 것처럼 처참하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뇌진천의 피는 스스로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댔다.
폭마혈(爆魔血)!
바로 이 지독한 피의 정체였다.
원래 피는 다름 아닌 골수에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무극신공을 연성한 뇌진천의 전신에는 혈룡진기가 골수라는 호수 속에서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혈룡진기의 강렬한 폭기가 그의 핏속에 충만히 깃들게 된다.
뇌진천이 분노하면 혈룡진기 역시 흥분한다.
그러면 그의 전신을 흐르는 폭마혈 또한 들끓고 심지어는 폭발도 한다.
폭마혈은 무엇이든 녹일 수 있는 무시무시한 피였다. 그뿐 아니라, 폭마혈은 뇌진천의 몸 밖으로 나가서도 그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는 감응력을 지닌 놀라운 피였다.
뇌진천의 체내로 흘러든 상혼산도 견디지 못하고 그의 체내에서 끓어오르는 폭마혈에 소멸되고 말았다.
상혼산은 해독된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지독한 폭마혈에 의해서 사그라지고 만 것이다.
이러한 폭마혈은 뇌진천의 분노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 위력도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폭증한다.
“사, 살려 줘! 아니, 차라리 죽여 줘, 제발!”
폭마혈에 의해 점점 형체를 알기 힘들 정도로 녹아 가는 유원호는 포전충을 향해 손을 뻗으며 애원했다. 그러나 포전충에게는 자신의 동료를 도와줄 여유가 없었다.
‘저토록 지독한 피가 존재하다니……. 저 녀석은 인간이 아니란 말인가? 정녕 혈귀란 말인가?’
포전충이 어찌할 바를 몰라 쭈뼛거리는 동안, 뇌진천의 안광이 번뜩였다.
그 순간, 폭마혈은 격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유원호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걸쭉한 핏국물만이 흥건할 따름이었다.


3

유원호의 최후를 지켜보던 포전충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여 완전히 사고가 마비되고 말았다.
“이 괴물 같은 놈아! 이젠 제발 좀 죽어라!”
포전충은 미친 듯이 적성연편을 휘둘렀다.
그것은 사실상 자신의 공포감을 떨쳐 버리려는 최후의 발악이었다.
그 와중에 적성연편이 뇌진천의 목에 휘감겼다. 그리고 채찍의 독 가시가 그의 목을 파고들어서 시뻘건 선혈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러나 오히려 뇌진천의 목에 감긴 적성연편이 썩은 새끼줄처럼 녹아내렸다.
포전충은 경악했다.
지금껏 폭마혈의 보호를 받던 뇌진충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목을 휘감은 적성연편을 거머쥐고 잡아당겼다.
그러자 포전충의 몸도 덩달아 뇌진천에게로 딸려 갔다. 화들짝 놀란 포전충은 얼른 적성연편을 놓았다.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독문병기였지만, 목숨보다 소중할 수는 없었다.
그 무렵, 정신이 번쩍 든 포전충은 뒤로 물러나면서 뇌진천을 향해 수십 개의 독침을 뿌렸다.
포전충의 내력이 깃든 환종침(幻踪針)들은 섬전처럼 날아가서 뇌진천의 몸 구석구석에 박혔다.
연이어, 북두삼살을 이끄는 세 명의 살주도 뇌진천을 향해 빙살도(氷殺刀)를 던졌다.
열두 개의 빙살도 역시 그의 몸 곳곳에 적중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포전충과 북두삼살의 삼인방도 서서히 여유를 되찾았다.
그도 그럴 것이 뇌진천은 최소한 그들이 보는 관점에서는 이미 하단전이 파괴되었고, 상혼산에 중독되었다.
게다가, 그의 전신으로는 상혼산에는 못 미치지만, 역시나 극독이 묻은 환종침과 빙살도가 곳곳에 박혀 있었다.
제아무리 불세출의 고수라고 할지라도 이런 상황에서 어찌 살아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큰 오산이었다.
폭마혈을 가진 뇌진천에게 있어서 식도로 넘어가는 섭취독이나 기도를 타고 들어가는 흡입독이 아닌 한 크게 소용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몸은 골수를 가득 채우는 혈룡진기에 의해 피부와 내장까지 보호를 받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니 겉으로 보이는 만큼 상태가 심각한 건 아니었다.
잠시 후, 뇌진천의 우측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뇌진천의 전신에 꽂혀 있던 수많은 환종침은 일순간에 모조리 뽑혔다. 그리고는 강렬한 발경력을 머금은 채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전광석화처럼 뇌진천을 향해 달려들던 북두이살의 무인들은 자기들 쪽으로 날아드는 환종침을 도저히 피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환종침이 아니었다.
환종침들이 뽑힌 자리에서는 들끓는 폭마혈의 잔잔한 핏줄기들이 연달아 사방으로 뻗어 나갔던 것이다.
특히, 뇌진천의 신체 가운데서도 빙살도가 뽑혀 나간 자리에서는 아주 굵은 핏줄기가 포물선을 그리며 주변을 덮쳐 갔다.
저마다 환종침의 세례에 이어 폭마혈마저 뒤집어써야만 했다.
뇌진천을 향해 달려들던 무사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한편, 허공으로 높이 치솟은 포전충만은 폭마혈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꾸불꾸불한 사검의 끝을 뇌진천의 천령개로 정조준하며 강하했다.
동귀어진을 노린 것이었다.
그 무렵, 뇌진천은 전혀 위를 올려다보지 않고 있었다. 미처 눈치를 채지 못한 걸까?
그렇지 않았다.
뇌진천은 자신의 왼팔에서 흘러나온 한 방울의 폭마혈을 오른손의 엄지에 건 중지를 이용하여 위로 날렸다.
탄지신통(彈指神通)으로 튕겨진 한 방울의 폭마혈은 포전충의 정수리를 뚫고 들어가서는 온몸을 관통하여 곧장 그의 회음혈로 튀어나왔다.
한 발자국 뒤로 내디딘 뇌진천의 앞으로는 이미 숨을 거둔 포전충의 시신이 떨어졌다.
털썩!


4

‘아직 운용할 수 있는 내력은 충분하지만, 내상과 외상이 만만치 않다.’
뇌진천은 일단 하단전의 혈도를 완전히 봉인했다. 어차피 무극신공은 하단전을 기반으로 하는 무공이 아니었다.
따라서 하단전이 봉인되었다고 하여 상승무공을 펼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임시 조치였지만, 일단은 움직일 만했다.
극심한 상처를 입을수록 오히려 뇌진천의 투지는 더욱 불타올랐다.
그것은 광마의 본능이었다.
“감히 내 몸에 상처를 입히다니…….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이었는지 깨닫게 해 주마.”
뇌진천은 왼쪽 팔뚝 위로 잔뜩 배어 나온 폭마혈을 탄지신통을 이용하여 사방으로 날리기 시작했다.
그의 육체를 제외한 어떤 몸도 폭마혈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날아간 한 방울의 폭마혈이 누군가에게 적중할라치면 격렬한 폭발을 일으켰고, 맞은 자는 말 그대로 피떡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