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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인종 1권(3화)
1. 생자일필사(生者一必死) 재반생구세(再反生求世)(2)


인종이 승하하고 그날 밤부터 혹시 모를 사태를 염려하며 각 군영에 비상근무를 명하고 작은 이상 징후라도 보고하도록 명했다. 한데 그 명이 있고 하루도 안 되어 2일 오후 한성을 담당하는 좌포도청의 종사관에게서 보고가 올라온 내용이었다.
“설마?”
뭔가 미심쩍었지만 단정 지을 수 없었다. 딱히 꼬집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무시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분명 주상 전하가 소생하신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야…….”
“뭐가 말인가?”
“아, 아무 것도 아닐세…….”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당황하며 뒤를 돌아본 윤결은 자신이 실수했음을 알아차렸다. 젊은 목소리에 동료 사관인 줄 알았더니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것도 자신뿐만 아니라 젊은 관료들 사이에 제일 마주치기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결례를 범했습니다.”
뒤에는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이 서 있었다.
“괜찮네, 한데 주상 전하가 소생하신 것과 뭐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인가?”
“아, 아닙니다. 그럼 이만”
윤결은 황급히 자리를 뜨며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저 인간 같지 않은 사람과 엮여서 좋을 일은 없는 것이다.

대전 침상에 인종이 되돌아와 누워 있고 그 곁을 혼절했다가 정신을 차린 중전이 지키고 있었다. 마침 어의 박세거가 진료를 마치고 물러나 앉자 중전이 박세거를 바라보았다.
“어떠신가?”
“숨이 고르고 혈색이 돌아오신 것으로 보아 소생하신 것이 틀림없사옵니다. 하옵고 지금은 깊은 수면 중이신 것으로 보이옵니다.”
“주무시는 것이 확실한가?”
“그렇사옵니다.”
무려 4일이었다. 4일간 의식도 없이 누워만 있는 것이다. 숨을 쉬지 않아 죽은 것으로 알고 국상을 치르려 하지 않았는가. 아니 분명 숨을 쉬지 않았었다. 한데 잠을 자는 것이라니 그렇다면 지금까지 무려 4일간을 잠에 취해 있었다는 말인가? 중전은 도저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허면 언제나 깨어나실 것 같은가?”
“그것은 알 수가 없나이다. 전하께옵서 혼절하시기 전 워낙 위중한 상황이었던 터라.”
“허면 영영 깨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단 말인가?”
기실 인종은 몸이 강건한 사람이 아니었다. 한데 전대 임금인 중종이 승하하자 급격히 건강이 더 악화되었다. 용상에 앉은 뒤로 수라상을 제대로 받아 본 기억이 없었다.
더구나 대비인 문정왕후와 소윤과 대윤으로 나뉜 외척들의 기세 싸움에 명나라 사신 접대까지 하루가 편할 날이 없었다.
덕분에 급격히 몸이 약해지면서 세자 시절엔 낮에 자리에 눕는 일이 거의 없던 사람이 임금의 자리에 올라서는 내의원들이 3, 4일에 한 번씩 들어 진료를 해야 할 정도로 몸이 약해진 상태였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6월 25일 그날 밤의 일까지 격고 나니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안 좋아진 것이다.
내의원 박세거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숨을 다시 쉰다고 살아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숨만 쉬는 송장과 다름없는 것이다.
다만 혈색이 좋아지니 기대를 해 볼 만은 했다. 우선 임금이 정신을 차리고 깨어난다면 죽을 먹이던 탕약을 먹이던 해서 몸을 보하고 기력을 찾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정신이 없는 상태라면 그것이 힘들었다.
“기다려 보는 방법밖에 없는 듯 보이옵니다.”
“알았네. 나가 보게.”
더 이상 어의가 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알고 중전은 사람들을 물렸다. 인종이 되살아나면서 궁은 더욱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국상을 치르던 손들이 일을 멈추고 한자리에 모여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대비를 비롯해 소윤 일파는 며칠 안에 국상이 재개될 것이라 믿는 눈치였고 나인들과 상궁, 내관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손을 놓고 있었다.
대윤에 속하는 인종의 외삼촌 윤임과 그의 아들 윤흥인은 자신들이 지난달 26일 백마를 잡아 바치는 의식으로(6월 26일 인종이 자리에 눕자 무속신앙인 백마를 잡아 바치는 의식을 행했다.) 주상이 되살아났다며 대전 밖에서 내의원들에게 주상의 용태를 물어 가며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죽다 살아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종이 이대로 죽고 명종이 즉위하면 대윤에 속하거나 외척을 쳐내라 간했던 사림 세력들은 을사사화라는 끔직한 일을 당하게 된다.
어느새 2시진 동안 인종 곁을 지키던 인성왕후(仁聖王后) 박씨는 앉은 채로 잠시간 눈을 붙이고 있었다.
“모두, 모두 물리시오.”
중전은 오늘 하루 뜻밖의 상황을 여러 번 겪어야 했다. 바로 지금 인종이 조용히 손을 움직여 중전의 손을 잡고 나지막하게 말을 한 것이다.
“저, 전하!”
“조용히… 할 말이 있으니 모두 물리시오.”
너무 놀라 동그랗게 뜬 눈으로 반색하며 인종을 불렀다. 인종은 그 즉시 조용히 하라는 듯 중전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이르며 다시 사람들을 물리라 했다.
대전에는 상궁과 내관들이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한쪽 곁에 사관까지 자리 잡고 앉아 있으니 두 사람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다.
“상선 모두 물리세요. 사관 또한 모두 물러나 주세요.”
중전의 말에 내관과 상궁들은 순순히 물러났으니 사관은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형국이었다.
“누구인가?”
“전하, 신 윤결입니다.”
“그래… 결아 잠시만 중전과 내외(內外) 간에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자리를 피해 주겠느냐?”
작지만 간곡한 부탁의 말이었다.
“예, 전하,”
윤결은 어쩌면 부부간의 마지막 대화일 것이라 생각하고 사관으로서의 책무를 잠시 놓기로 하고 대전 밖으로 나가 주었다.
“내 며칠이나 누워 있었소?”
“나흘이옵니다.”
“그렇구려, 참으로 긴 잠을 잤구려. 나흘 동안 과인으로 인해 궐 안팎으로 큰 소란이 있었을 테지요? 어찌 되었든 미안하오.”
“흑흑… 전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전하께서 다시 소생하셨으니 그걸로 모든 것은 되었습니다.”
중전 박씨는 다시 되살아난 이 기뿐 순간에도 자신 때문에 여러 사람이 힘들어했을 것이라는 인종의 말에 더욱 복받쳐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걱정 마시오. 내 앞으로 천수를 누릴 것이오. 다시는 병으로 자리에 눕지 않을 것이오.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누워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내가 한 것이 효인지 아니면 나 자신을 포장하려 했던 가식적인 행동은 아니었는지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소. 그리고 효를 행한다며 중전에게 감내하기 힘든 고초를 겪게 하여 자리에 누워 있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소.”
사실 그동안 인종은 중전 박씨에게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했다. 그것은 자식을 생산하는 것을 회피한 것이다. 자식을 잉태할 수 있는 길일을 일부러 피한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대비 윤씨의 마음을 얻고자 한 행동이며 동생이 경원대군에게 대통을 잇게 하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중전 박씨는 말로는 다하지 못할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어린 나이에 시집와 십수 년이 지나도록 자식을 낳지 못했으니 그 마음고생이 오죽했을까 아마도 그녀는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었을 것이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전하! 자식 된 도리로 당연한 것을요. 그렇지 않사옵니다. 괘념치 마시옵소서.”
“아니요 정말 미안하오. 내 사죄하리다. 앞으로는 부군으로서 뭇 사내들과 같이 중전을 위할 것이오.”
“전하!”
중전 박씨는 죽다 살아서인지 사뭇 달라진 자신의 부군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허고, 중전.”
“네, 전하.”
“중전, 내가 나흘간 아무것도 먹지 못하여 기운을 차릴 수 없으니 빈속에 먹을 것을 좀 채워야 할 것 같소. 과인은 앞으로 강건해야 하오. 아바마마와 어마마마를 다시 뵐 때까지 아국 조선을 반석 위에 올려야 하니 수라간에 일러 미음 좀 들이라 하시오.”
“네, 전하. 당장 들이라 하겠습니다.”
중전의 인종의 말에 화색이 돌며 내관을 불러 미음을 들이라 명했다. 내관이 들어왔다 나가자 다시 문이 열리며 사관 윤결과 대전 상궁과 나인들이 들어왔다. 그 뒤를 따라 언제다시 들어왔는지 내의원 박세거도 따라 들어왔다.

조선왕조실록 인종 1년(1545년) 음력 7월 5일 첫 번째 기사.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가 문안하다.

검열(檢閱) 한지원(韓智源)이 승전색(承傳色) 박한종(朴漢宗)에게 사사로이 물으니, 박한종이 귀에 대고 대답하기를 ‘상의 눈동자가 맑고 깊은 것이 위중하실 때보다 매우 정기가 서려 있다. 또한 상의 용안에 화색이도니 조만간 자리를 털고 일어나실 것 같다하였다.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의 대신들이 대전에 강녕전에 들어 인종이 무탈한지 살피고 문안인사를 건넸다.
“내 기후는 이제 마땅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정사를 볼 수도 있음이나 그간 과인으로 인해 조정 안팎이 매우 분주하였고 이로 인해 곧바로 정사를 볼 수 없음이니 사흘간 국상을 치르느라 분주했던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여드레부터는 조당(朝堂)에 나아가도록 할 터이니 모두 그리 알고 물러가라.”
이에 영의정과 육조대신들이 인종의 강건함에 모든 근심 걱정이 해소되니 이 어찌 기쁘지 않겠느냐며 즉시 업무 복귀를 주청했으나 인종은 몸을 추스를 수 있게 시간을 달라 하며 가납하지 않고 대신들을 되돌려 보냈다.
대신들이 물러날 때 인종이 형조판서 윤임과 그의 아들 윤흥인을 남게 하였다. 이에 도승지 송기수 또한 미리 언질을 받았는지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인종이 아무 말 없이 윤임과 윤흥인, 송기수만 남고 모두 물러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윤임과 윤흥인 부자는 사사로이 인종의 외삼촌이요 외사촌형제이니 인종의 강건한 모습에 절로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윽고 모두 돌아가고 대전이 조용해지자 인종이 입을 열었다.
“과인으로 인해 마음고생이 심하였을 터인데 좀 진정이 되십니까?”
윤임과 윤흥인를 보는 인종의 눈빛에는 안쓰러움과 애잔함이 묻어났다. 윤임은 환한 웃음을 보이며 대답을 한다.
“전하의 옥체 미령하시어 지난 열흘간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꼭 저승 문턱에 다다른 것처럼 온 세상이 암흑이었사옵니다. 하나 오늘 이처럼 강건한 전하를 뵈오니 마치 꽃밭에 있는 것 같사옵니다. 참으로 천은 이옵고 열성조의 보살핌 덕입니다.”
“그래요. 그래 해서 형판을 남으라 하신 것입니다. 과인이 열성조의 가호 아래 다시 자리를 털고 앉았으니 백성들에게 보답을 해야겠지요?”
인종은 자신이 죽다 살아난 것을 이용하여 그동안 문제가 되어 왔던 것을 한 가지 해결해볼 요량이었다.
“물론 이 기쁨을 백성들과 함께해야겠지요. 하오면 대 사면령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형판이 알아서 정리하여 올리시고 대비와 소윤 일파의 동태는 어떻습니까?”
“대비전에 모여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금군과 의금부 좌우포청은요?”
“모두 제자리를 지키고 있사옵니다.”
다행히 큰 사태가 일어났음에도 대궐과 한양의 치안을 담당하는 군사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고 있어 주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인종은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전국 팔도에 속한 관노비와 사노비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 것 같소?”
“예? 아, 송구하옵니다. 정확치는 않으나 대략 4, 50만은 될 듯하옵니다.”
예상외의 질문에 잠시 망설이던 윤임은 대략적인 숫자를 말했다. 사실 노비를 관장하는 형조의 판서지만 그라고 관노비면 몰라도 사노비까지 전부 알 수는 없었다.
“그리 많소?”
“팔도의 관노비는 10만이 조금 넘을 것이나 양반가들과 중인들이 소유한 사노비까지 헤아린다면 능히 그리 될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허면 그중에 억울하게 노비가 된 자도 있을 듯하오만?”
인종의 말에 동석하고 있던 송기수 인종을 불렀다.
“전하!”
인종 1년 현재 조정에서 파악한 조선의 전체 인구는 500만이 안 되었다. 그중에 양반이 20만 안팎이었고 중인이 40에서 60만에 양인 150만 천인이 200만을 헤아린다.
이중 국가에 세를 납부하고 역을 담당하는 것은 양인과 중인들이었다. 천인 중에 약 10만이 관노비라면 그들은 나름대로 국가를 위해 일하니 제쳐두고라도 나머지 190만은 백정, 무당, 창기, 광대, 승려 등과 같은 천인이며 그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이 노비였다.
노비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양반가에 속한 노비만이라면 그냥 넘어가 준다고 하더라도 중인들까지 노비를 부리거나 양인에 속하는 공인이나 상인들 또한 노비를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
윤임은 죽다 살아난 인종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매우 두려웠다. 인종이 죽음에서 살아 돌아와 노비 문제를 제일 먼저 해결하려고 한 이유는 어찌 보면 당연한 문제였다. 나라를 반석 위에 올리기 위해서는 양인 확보가 가장 시급했기 때문이다.
신량역천(身良役賤)이라는 신분이 있다. 신분은 양인이나 그 하는 일이 천인들이 하는 일이라 그들을 불러 신량역천이라고 한다. 소금 굽는 일을 하거나 숯을 만들거나 뱃사공이나 봉수대관리에 역에서 역마(驛馬)를 사육하는 등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신분이 불분명한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엄연히 양인이었다. 다만 신분이 불분명하기에 양인들이 해야 하는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는 못했다.
물론 하는 이들도 있다. 신량역천 중에는 국가 기관에 소속되어 일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나름 고생하면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명확히 양인도 아니며 천인도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따지고 보면 국가에 의무를 다하는 양인은 100만이 조금 넘는 숫자에 불과했다.
그 작은 인원이 국가를 이끌어 갈 세를 납부하고 역을 담당하는 것이다. 양인으로 통계에 잡힌 150만 중 신량역천을 빼고 남은 숫자가 진정한 의미의 양인인 것이다. 그들만으로 나라를 반석 위에 올리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었다.
“성종 대왕 때 마지막으로 시행한 노비변정도감을 설치할까 하오.”
“전하……!”
지금까지 말 한마디 없이 옆에서 듣고만 있던 윤임의 아들 윤흥인까지 인종을 놀랜 얼굴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