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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인종 1권(4화)
1. 생자일필사(生者一必死) 재반생구세(再反生求世)(3)
1481년 성종 12년에 마지막으로 설치된 뒤 무려 64년 만에 다시 노비변정도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조선 초 불안한 정국을 다스리고 양인과 노비들의 억울함을 달래며 새로운 신분제를 정착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노비변정도감이었다.
비록 권세 높은 양반들의 노비들은 건들지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름 많은 수의 양인을 확보했고 노비들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 준 것만으로 큰 역할을 했었다.
“전하 이 문제는 그리 가볍게 처리할 문제가 아니옵니다. 우선 전하의 옥체부터 살피시고 차차 논의하는 것이 어떻사옵니까?”
형조판서 윤임은 입안이 바짝 타들어 가는 듯했다. 눈뜨고 하루 만에 노비변정도감을 이야기할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물론 인종으로서는 수백 년의 저승 생활을 통해서 노비 문제를 지금 바로잡아 최소한으로 줄이지 않으면 후일 그로 인해 조선의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란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제일 먼저 노비 문제를 꺼낸 것이다. 그것을 통해 얻고자하는 정치적 목적도 있었다.
“조회가 있는 8일 그에 관한 논의를 할 것이니 형판은 그리 알고 준비를 하세요. 그리고 그만 나가 보시구요.”
인종의 말에 형판은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무리 인종이 죽다 살아난 기념으로 노비변정도감을 설치하려 한다지만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윤임이 자리에서 물러나자 도승지와 윤흥인이 남았다. 도승지 송기수는 바로 인종에게 질문을 던진다.
“전하! 노비변정도감을 하시려거든 영의정이나 좌의정을 내세우시지요. 형판은 그 위치로 인하여 일을 그르칠 가능성이 많사옵니다.”
그자식인 윤흥인이 옆에 앉아 있음에도 송기수는 거침없이 인종에게 그 아비가 일을 그르칠 것이라 말을 한다.
하나 이것은 그 아비를 흉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외척이다. 그에게 노비변정도감을 준비하라 한 것은 그에게 스스로 물러나라 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하다 안 되면 물러나면 되는 것입니다. 허면 다음엔 윤원형에게 맞길 겝니다. 그도 하다 안 되면 물러나겠지요.”
이것은 엄밀히 말해 외척을 공개적으로 쫓아내겠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윤흥인이나 송기수는 이미 그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예견한 일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 막 대전을 나선 윤임 또한 충분히 예상하고 있는 일이었다.
군왕의 권도로 일이 시행된다 하더라도 그 시행을 책임지는 책임자는 버텨내지 못할 공산이 크다.
지방 향반 몇몇쯤이야 어르고 달래서 정책을 따르게 하면 되겠지만 조정 대신들과 그 일가친척은 어찌할 것인가. 일을 방해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책임자의 잘못을 고변하여 그 자리에서 쫓아내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탄핵 상소가 올라올 것이다.
“흥인아, 너는 너무 그 일을 마음 쓸 것 없다. 어차피 내가 그대로 눈을 뜨지 못하였다면 벼슬이 문제가 아님을 알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사옵니다.”
“흥인이 너는 종5품 교리직을 내릴 것이니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 믿을 만한 장정 10인을 선발하여 함경도 관찰사를 찾아가 이 서찰을 전해 주고 그가 준비해 주는 것을 챙겨 명을 수행하도록 해라.”
“명을 거행하겠나이다. 전하!”
윤흥인은 가타부타 말없이 명을 받고 서찰을 받아 챙긴 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따져 보면 인종이 죽으면 대윤과 사림에 속한 사람들은 최소한 파직이거나 죽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예정된 수순인 것이다. 원 역사에서 외척들 등쌀에 평생을 제대로 된 정책 한 번 펴 보지 못하고 죽어 간 중종이나 인종이었다. 만약 그대로 인종이 죽어 버렸다면 그 다음 보위에 오를 경원대군(명종) 또한 평생을 외척 등쌀에 제대로 정책 한 번 못 펴고 살았을 것이다. 임꺽정부터 정난정까지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들이 등장하는 시기가 이 시기인 것이다.
“승지는 흥인이 직첩을 내려 주고 나가는 길에 도화서 들려서 화공 하나 불러 주게.”
“화공이라 하셨습니까?”
뜬금없이 화공을 찾자 도승지 송기수가 재차 물었다.
“그래, 앞으로 종종 불러다 일을 시켜야 하니 능력이 출중한 자로 부르되 젊은 사람으로 불러 주게.”
이런 심부름은 보통 내관을 시키며, 중한 일이면 상선을 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별 대꾸 없이 인종의 말을 따랐다.
도승지 송기수가 생각하기에 지금 상황에서 인종이 믿을 만한 사람은 중전과 외척인 윤임일가밖에 없었다. 인종이 죽게 되면 그를 따라서 같이 망하게 될 사람들이다. 상선이나 내관들 또한 믿지 못하는 것이다.
거기다 별것 아닌 일이지만 화공을 부른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그리게 한다는 것이다. 무엇인지 몰라도 매우 중한 일이며 그 일을 맡을 사람을 자신에게 데려오라 시킨 것은 자신을 믿는다는 것이다.
“네, 전하.”
도승지 송기수까지 밖으로 나가자 몹시 피곤했는지 인종은 보료 위에 그대로 몸을 뉘였다.
인종은 죽었다가 살아난 지 하루 만에 수도 없이 생각하고 생각하여 계획했던 일을 바로 시작했다.
며칠 동안이라도 몸을 보살피고 시작해도 되지만 인종은 하루라도 빨리 움직여 일을 해야 했다. 그가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2. 작은 것을 주고 큰 것을 얻다(1)
아침나절에 의정부와 육조대신들의 문안이 끝나고 오후가 되자 도승지 송기수가 보낸 화공이 들었다는 상선의 말에 화공을 들라 하지 않고 인종이 밖으로 나갔다. 상선과 대전 상궁이 급히 거동하는 것은 무리라며 인종을 만류하였지만 인종은 상선에게 부축하라 명하여 상선의 부축을 받고 대전 밖으로 나갔다.
“따라오라.”
인종은 죽었다 살아난 뒤, 만 하루 만에 다시 밖으로 걸어 나왔다. 상선의 부축을 받고 있었지만 이것은 매우 경이로운 일이며 궐 내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일이다.
시위하는 금군들과 대전에 속한 상궁과 나인, 내관들이 서둘러 인종을 따라 움직였다. 한참을 걸어서 도착한 곳은 수정전 이었다.
세종 때는 집현전으로 사용했으며 세조 때는 예문관으로 그리고 후일 고종 때는 고종의 거처로 쓰이기도 하는 건물이다.
물론 임진왜란 당시 경복궁이 소실되어 고종 때 중건하지만 지금 본래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수정전은 중심이 되는 수정전 건물뿐만 아니라 그 주변으로 여러 행각들이 있었다. 수정전이 40칸이고 그 주변 행각이 7개에 각각 20칸에서 33칸씩으로 이루어졌는데, 수정전은 말 그대로 조선에 있어 학술을 담당하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예, 전하. 소신은 도화서 화사 최가 성현이라 하옵니다.”
“허면 종8품이겠구나?”
“그렇사옵니다. 전하.”
“상선.”
“네, 전하.”
“중향각을 비우게 하라, 중향각이 정리되는 대로 화사 최가는 이곳에 화구를 옮기고 과인의 명을 받들라.”
“네, 전하!”
“너는 내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매일 등청하는 대로 대전으로 오라, 허면 내관이 그날그날 너의 할 일을 알려 줄 것이다. 알겠느냐?”
“네, 전하.”
말을 마친 인종은 되돌아서 수정전 뒤편에 있는 경회루로 발길을 돌렸다. 경회루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자 후텁지근했던 더위가 조금은 가시는 듯했다. 한동안 말없이 경회루 주변을 바라보던 인종은 작은 목소리로 상선을 불렀다.
“상선.”
“네, 전하.”
“환이는 퇴궐하였는가?”
“확인치 못했습니다.”
“그래…….”
환이는 경원대군의 이름이었다. 자신의 죽음에 상주 역할을 하기 위해 입궐하여 있던 경원대군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도 불쌍하다고 여겼다.
경원대군도 등극하고 모후와 외척의 등쌀에 제대로 왕 노릇 한 번 못해 보고 살다가 젊은 나이인 45살에 죽는다. 즉위하자마자 을사사화를 겪고 차례대로 정미사화, 을유사화, 을묘왜변을 겪는다.
“너는 가서 환이가 퇴궐치 않았으면 이리로 오라 하여라. 허고 대비마마의 용태가 어떤지 확인도 해 보고.”
아마도 경원대군은 궁 안에 있을 것이다. 대비나 소윤 일파는 인종이 분명 다시 자리에 눕게 될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 내막을 안다면 누구라도 수긍할 만한 근거가 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할 것이다. 인종 또한 짐작은 하나 지금은 입 밖으로 내지 않을 심산이었다.
“네, 전하.”
상선이 대비전으로 가자 인종은 이쯤이면 온 궐 안에 자신의 거동이 알려졌을 것이라 여겼다. 아마 조만간 중전이 이리로 올 것이다.
“박 상궁.”
“네, 전하.”
“다과상을 준비하라. 아마도 중전이 곧 올 것이야, 허고 환이가 올 수도 있으니 그것까지 준비하여라.”
“네, 전하.”
대전 상궁인 박 상궁이 급히 다과를 준비하러 경회루를 벗어나자 인종의 말처럼 중전 박씨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잰걸음으로 경회루에 들어섰다.
“전하!”
“오셨소.”
걱정스러운 표정이 역력히 보이는 얼굴로 인종을 바라보는 중전이었다. 얼마나 빠르게 걸어왔는지 인종을 부르는 목소리마저 거칠게 들렸다.
“어이하여 벌써 거동하셨나이까?”
“허허, 다 그럴 만하니 그런 것이오. 그런 걱정스러운 표정하지 말고 앉으시오.”
인종의 말에 표정을 풀지 못하고 중전 박씨가 인종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오나 아직 거동해서는 아니 되옵니다. 신첩은…… 흑흑.”
자리에 앉자마자 중전 박씨는 중전으로서 체통도 잊은 채 눈물을 보였다.
인종이 뜬금없이 밖으로 외출하였다기에 너무 놀라 급하게 달려와 보니 뼈만 앙상한 몰골의 인종이 앉아 있었다.
그런 몰골로 소생한 다음날 밖으로 나왔다는 것은 분명히 대비와 소윤 일파에게 자신의 강건함을 과시하려 했음이 분명하다. 아마 지금쯤이면 다 틀렸다며 대비와 소윤 일파는 낙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더 큰일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안하오. 하나 어쩔 수 없었소.”
“진정 괜찮은 것이옵니까?”
“걱정 마시오. 내 몸은 내가 잘 아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대전 상궁이 급히 서둘렀는지 다과를 내왔다. 다과를 받고 인종이 목이 타는지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이고 있으니 허둥지둥하며 경원대군이 나타났다.
“전하!”
안색이 좋지 못한 경원대군이 상선과 함께 나타나 인종을 보자마자 바닥에 납작 엎드려 인사를 한다.
“환이 왔구나. 이리 올라오너라.”
경원대군은 너무도 겁이 났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온 소와 같았다. 조선이 아무리 신권이 어떠니, 외척이 어떠니 해도 중앙집권에 강력한 왕권 국가였다.
왕의 입 밖으로 나와야 정책도 발효되고, 왕이 죄인이라고 하면 죄인이 되는 것이며, 왕이 죽으라 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왕이 주인인 나라였다.
그 왕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었다. 이미 경원대군은 다음 대 보위를 물려받아 용상에 앉으려고 했다. 그것이 인종이 죽었다 여겨 그런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좋게 보일 수는 없었다. 물론 이것은 현재 궁지에 몰린 대비의 생각이었다.
경원대군은 이제 12살인데 무엇을 알겠는가. 하나 대비전을 나올 때 모후인 문정왕후의 말과 행동이 경원대군으로 하여금 겁을 집어먹게 했다.
마치 죽으러 가는 자식을 보는 듯 대비 윤씨는 애처롭게 눈물을 보이며 형님 전하에게 무조건 대죄를 지었다며 용서를 빌라 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멀쩡히 살아 있는 임금을 죽었다며 국상을 치르고 관 속에 넣고 다음 대 보위로 경원대군을 올리며 즉위식을 준비했으니, 이는 작게 보면 우연히 일어난 사건에 불과하나 다르게 보면 역모로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살아 있는 주상을 공식적으로 죽이고 동생이 왕위를 찬탈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왜 그리 떨고 있느냐? 고뿔이라도 걸린 게냐?”
7월 한낮에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는 경원대군을 바라보며 장난기가 약간 섞인 음성으로 하문을 했다. 하나 경원대군은 할 말이 없었다. 다만 살려 달라 비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전하! 소제를 죽여주옵소서. 이 우둔하고 미련한 소제가 전하에게 참으로 해서는 안 되는 망극한 일을 저질렀나이다. 전하! 흑흑! 전하 소제를 참하여 주시옵소서!”
경원은 어머니가 이르는 대로 죽여 달라며 죄를 청했다. 씁쓸한 표정으로 경원대군을 바라보던 인종이 입을 열었다.
“울음을 그치지 못할까! 일국의 대군이라는 인사가 어찌 그리 눈물이 흔해!”
환은 중종이 살아 있을 때도 종종 눈물을 보였다. 나약했던 환이었기에 즉위한 뒤에도 어머니나 외삼촌들에게 휘둘려 정사를 제대로 펴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인종 또한 그랬다. 피는 못 속이는 법이다. 둘은 모후가 다르다고 하나 엄연히 한 피가 흐르는 형제인 것이다.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너는 당장 동궁으로 처소를 옮기도록 해라, 이만 물러가.”
“전, 전하!”
인종의 말에 중전과 상선까지 급작스런 인종의 말에 놀라 당황했다. 아무리 죽다 살아났다고는 하나, 아직은 31살의 젊은 인종이었다.
지금 경원대군을 왕세제(王世弟)로 삼아 국본으로 정한다면 후일 중전이 왕자를 생산할 경우 극심한 내분 사태가 발생할 공산이 크다.
하나 인종의 결정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번 일도 자신에게 자식이 없고 뒤를 받쳐 줄 국본이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물론 그 원흉이 경원대군의 모후인 문정왕후이고 소윤 일파라고 해도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만약 다른 대군을 세제로 삼는다면 문제는 더 커지기 때문이다.
‘팔자에 자식이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물론 과거에는 자식을 일부러 가지지 않으려 노력해서 없지만 앞으로도 자식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인종이었다. 몸 상태가 도저히 자식을 볼 상황이 아닌 것이다.
더욱 불행한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훗날 명종이 되는 환에게도 자식이 없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나 있는 왕자가 어린 나이에 요절하여 조카인 선조를 입적하여 왕통을 이었다. 하나 당장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중 일은 나중 일이고 지금 당장 정국을 수습하고 서둘러 계획했던 바를 실행해야 했다.
당장은 자신이 살아나면서 을사사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역사를 알아 버린 인종은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필요한지, 또 지금이 얼마나 세계사에 중요한 시기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수많은 군주들을 제치고 자신이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음을 인종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말없이 엎드려 있던 경원대군이 멍한 표정으로 인종을 바라보았다.
“혀, 형님?”
“할 말이 있느냐?”
“하오나, 왕세제라 하시면…….”
환도 바보가 아니다. 만약 자신이 왕세제로 국본의 자리에 앉게 되면 나중에 조카와 왕좌를 놓고 피를 봐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어미인 문정왕후와 외척인 소윤이 인종에게 어떤 일을 벌일지도 모를 일이다.
“순리인 것을 내가 욕심이 과했다. 일찍이 10세에 혼인한 나다. 서른이 넘도록 자식이 없다는 것은 팔자에 자식이 없다는 것이다. 너는 걱정 말고 동궁으로 거처를 옮기도록 해라.”
중전도 지켜보는 대전 상궁과 상선도 차마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임금이 그리 결정 했다면 따를 수밖에 없다.
인종의 말대로 30넘어서까지 자식이 없음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에 임금 자리를 지키는 것이 우선일지도 몰랐다.
나중 일은 나중 일이고 다시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 선택한 방법으로 생각했다. 문정왕후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경원대군이 국본에 자리에 앉는 것이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사실 인종이 문제가 아니라 대윤과 소윤의 싸움이 복잡하게 그 안에 얽히고설켜 있다. 대윤에 밀리면 경원대군의 생사가 위태롭기에 문정왕후 또한 극단의 방법을 끊임없이 써 왔던 것이다.
하나 이렇게 인종이 경원대군을 왕세제로 세우게 되면 대윤이라 해도 함부로 술수를 쓸 수 없게 된다. 더구나 인종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으니 문정왕후나 소윤 일파도 한동안 잠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원대군이 돌아가고 인종과 중전 박씨는 그 일로 잠시 대화를 나누고는 대전으로 자리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