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대왕 인종 1권(5화)
2. 작은 것을 주고 큰 것을 얻다(2)
3일이 빠르게 흘러 8일 아침이 되자 궐문 안으로 대신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국왕의 침소인 강녕전에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던 인종에게 대전내관이 사정전에 대신들이 모두 모였음을 고했다.
인종은 며칠 전보다 한결 건강해진 모습으로 사정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부축을 받지 않고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좋아진 인종이었다.
“주상 전하 납시오!”
대전내관의 말에 사정전 안 모든 신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종 1년 7월 8일 첫 번째 기사.
상께서 민심에 대하여 하문하시다. 이에 예조판서 윤개가 답하기를,
“신이 저자에 나아가 확인하지 못하였사오나, 노복들과 가신들의 말로 보아 상께서 천은과 열성조의 가호로 소생하신 것은 아 조선에 큰 홍복이라, 또한 중종 대왕마마의 덕이라 입을 모아 말한다 하옵니다.”
하니, 영상과 좌상이 말하기를,
“어느 누구 하나 이를 두고 불민한 말을 하는 이 없고 오직 하늘에 감사할 따름이옵니다.”
하니 상께서 말하기를,
“과인으로 인하여 민심이 동요치 않고 천은과 열성조의 가호라며 반가이 한다니 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백성이 과인의 근심을 알고 동요치 않음이 매우 기쁘다.”
사관이 논한다.
이 마음이 임금이 되기에 넉넉하거니와, 이 마음을 능히 확충한다면 사해(四海)를 보전하는 데에 있어서도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이렇게 백성을 사랑하니, 백성을 인애(仁愛)하는 것을 알 만하다.
사정전 안으로 들어선 인종은 인사를 받고 혹여 이번일로 민심이 동요치 않는지 묻고는 큰 동요가 없다는 말에 안심을 하고 그동안 쌓인 장계와 전날 명한 일에 대해 논의를 했다.
그중 형조판서 윤임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전하, 노비변정도감에 대하여 아룁니다. 노비에 관한 사무는 그간 장례원(掌隷院)에서 처결하였사옵니다. 이에 장례원을 확대 개편하여 각도와 군에서 송첩(訟牒)받은 것을 처결하심이 옳을 줄 아뢰옵니다.”
윤임다운 발상이었다. 어차피 노비 문제는 장례원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따로 도감을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장례원을 활용하여 조금 규모를 키우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한 것이다.
이 정도라면 다른 대신들도 별로 반발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나 인종은 매우 언짢은 표정으로 이번 일에 대한 취지를 설명해야 했다.
“그간 아 조선이 개국한 이래 노비변정도감이 4번 설치되었는데 당시 노비에 관한 사무를 처결할 부서가 없어서 도감을 설치한 것이 아니다. 이는 억울하게 노비가 된 이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노비를 두고 서로 쟁 하는 사대부나 호족이 많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한 태조 대왕께서 정하신 신분에 관한 법을 정비하기 위함도 있었다. 이제 아국이 개국한 지 어언 150여 년이 흘러 그간 아국의 백성의 숫자가 늘었음은 자명한 일이며, 당시와 아국 주변의 형세가 달라졌음을 모두 알 것이다. 해서, 양인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경에 이르러 세수가 줄고 군역을 담당할 장정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줄었다. 경들도 지난 대행 대왕 시절에 일들을 기억할 것이다. 왜국이 구로(대마도)를 통하지 않고 무리 없이 아국에 들어와 통교를 허용해 달라 청하고, 명국의 배가 조정의 명을 어기고 수시로 제주와 전라도에 들어와 무역을 요구한다. 또한 여진야인들과의 마찰도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해서 장차 수군을 더욱 확대하여 허락 없이 아국의 땅을 밟으려는 자들을 경계하려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양인의 수를 늘려야 하며 세수입을 늘려야 한다. 고로 억울하게 노비가 된 자나, 양 부모 중 하나가 양인인 자는 모두 양인으로 환원하는 것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니 장례원의 확대 개편만으로는 이 일을 처결할 수 없으며 따로 도감을 설치하여 처결해야 한다. 이에 대하여 논하라.”
인종의 말에 웅성거리던 대신들이었다. 전날 윤임에게 들은 바로는 인종이 죽다 살아난 기념으로 노비면천을 생각하니 생색만 조금 내면 될 것이라 들었다.
하나 막상 인종이 편전에 들어 하는 말은 전혀 달랐다. 노비 중에 한쪽이 양인인 경우가 적겠는가.
심지어 사대부와 대신들도 집안 노비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본 경우가 허다했다. 어미가 노비이니 자식도 노비인 경우가 많았고, 아비를 모르는 이들도 허다했다. 문제는 그들이 전부 사노비라는 것이다.
이에 우찬성 권벌이 말한다.
“전하, 전하의 명은 참으로 지당하십니다. 지난 중종 대왕 연간에 여진과의 다툼으로 아국 백성이 많이 상했으며, 또한 대마도를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통교하지 않겠다는 아국 조정의 말을 듣지 않고 왜의 선박이 수시로 아국 근해에 나타나 약탈과 방화를 했습니다. 상국인 중국 조정에서조차 금하는 무역을 위해 당물(唐物)을―중국 물건의 총칭―싣고 전라도와 제주로 건너오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하여 전하의 말씀처럼 수군을 강화하고 세수를 늘려 군선을 늘리기 위해 노비변정도감을 설치하고 양인을 확보하라 하심은 매우 지당하신 분부이오나 이는 몇까지 이유로 불가하옵니다.”
장황하게 인종의 말을 되풀이하고서는 불가하다고 끝맺는 권벌이었다. 매우 괘씸하다는 표정으로 권벌을 바라보던 인종은 그 이유를 물었다.
“무엇인가?”
“첫째로 관에 소속된 노비는 전하의 명으로 모두 면천시켜도 무방하옵니다. 물론 그들이 하던 일을 누군가가 대체해 준다면 말이옵니다. 하나 사노비 즉 사대부나 지주에 속해 있는 노비들은 그들에게는 큰 재산이옵니다. 이를 국가에서 면천시켜 준다면 백성의 재산을 뺏는 것과 다름이 없사옵니다.
둘째로 그들을 면천시켜 준다고 하더라도 당장에 세수입이 늘고 군역을 지울 수 없사옵니다. 대부분 농노이온데, 그들이 면천된다 하여 땅이 생기는 것도 아니오며, 장사할 밑천이 생기는 것도 아니옵니다. 당장에 하던 일을 못하게 되면 유랑걸식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떨어질 뿐이옵니다. 이는 아국에 큰 화가 될 것입니다.
셋째로 그 지주와 사대부가 문제가 되옵니다. 당장 노비가 양인이 되면 농사 지을 인력이 부족하여 땅을 놀려야 하고 땅을 놀리게 되면 곡물이 부족해 기근에 시달릴 것 이옵니다. 하니 이 문제는 불가하다 아뢰옵니다.”
조목조목 반대의 이유를 말했다. 이에 인종이 권벌을 찬찬히 바라보다 말한다.
“첫 번째 관에 소속된 노비든, 사노비든 본래 노비가 아닌 자가 노비라면 피해가 있더라도 양인으로 환원하는 것이 맞다. 이것은 재산 상의 문제가 아니라, 도리의 문제다. 양 부모 중 하나가 양인일 경우 그 자식을 양인으로 하는 것은 앞으로 조정에서 더 논해야 할 것이나, 내 생각은 이렇다. 양반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사대부의 노릇을 못하는 서얼이나, 양인을 부모로 두었으나 천인으로 사는 이들을 제 부모가 거두지 않고 방치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도 않을 뿐더러,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다. 하여 앞으로 서얼도 모두 조정에 출사하여 백성을 교화하고 가르치며 나라에 헌신하도록 기회를 줄 것이다. 또한 양인을 부모로 둔 천인들 또한 양인으로 하여 조정에서 중히 쓸 것이다. 둘째로, 면천시켜 주되 조정에서 그들에게 새로운 땅을 주거나 일을 만들어 주기 전까지는 세와 군역을 면해 줄 것이다. 이를 위해 새롭게 면천된 자들은 향후 5년간, 그것으로 부족하다면 5년을 더하여 10년간 세를 포함해 부역과 군역을 면해 줄 것이며 그 안에 조정은 그들에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기 위해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셋째로 지주나 양반은 노비가 없어서 농사를 짓지 못하는 일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없으면 삯을 주고 땅을 일구면 되는 것이다. 그만한 대가도 치르지 않고 과실만을 탐하는 것이 사대부가 할 짓인가?”
이에 대신들이 웅성거리면서도 정작 인종에게 반박하기를 꺼렸다. 죽다 살아나서인지 인종의 말은 너무 급진적이었고 기존 질서를 무시하는 말들이었다. 세종 대왕도 하지 않던 것을 하자는 것이었다.
“어찌 더 말하는 대신이 없소?”
인종이 보다가 한마디 더하자 보다 못한 좌의정 유관이 나섰다.
“주상 전하께서 권도(군왕이 목적을 위해 절대적인 권한으로 행사하는 명령)로써 이 일을 처결하시겠다면 신들은 따를 뿐이옵니다. 하나 대신들과 사대부들의 의견을 더 수렴하시고 논의를 한 연후에 중지를 모아 처결하심이 옳을 줄로 아옵니다.”
하니 다른 대신들 또한 다른 말이 없었다. 그들이 이쯤에서 물러선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들은 지금 죽다 살아난 인종에게 살려 달라고 비는 것이었다. 죽었다고 국상을 치르며 땅을 파고 묻어 버리려고 했는데 그런 임금이 되살아난 것이다. 이는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모두 대역 죄인이었고 죽을죄를 진 것으로 인종이 그 문제를 꺼내게 되면 조정 안 대소 신료들은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된다.
한참 동안 대신들을 둘러보던 인종은 자신이 조금만 고집을 피워도 대신들이 따르는 것 을 보고 왕권이 살아 있음을 느꼈다. 인종은 한동안 입을 닫고 고민했다. 급한 문제였으나 만약 이것을 강하게 밀어붙이면 분명 어딘가에서 사단이 날 것이다.
대신들을 모두 설득한다고 해도 양반 사대부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그 또한 문제가 될 공산이 컸다. 자신이 너무 성급하게 일을 서둘렀음을 인정해야 했다.
눈앞의 사람들에게는 단지 4일간이었고 자신은 무려 500년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미 인종은 이시대의 사고방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문제라면 적당히 적응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서두른 것인데 이런 문제가 계속하여 발생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스러운 인종이었다.
“허면 그 문제는 더 논의하여 방법을 찾아보도록 합시다. 다음으로 경원대군에 관한 것이오.”
인종이 경원대군의 일을 말하려고 하자 대신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아니 된다고 반대하였다.
“전하! 경원대군을 동궁에 들게 했다는 전교를 들었사옵니다. 하나 이것은 아니 되옵니다. 아직 전하의 춘추가 한참이시온데, 어찌 국본을 이리 급히 세우려 하시나이까? 이는 후일 분란을 자초하시는 길이옵니다. 하니 전교를 거두어 주시옵소서.”
특이한 것은 소윤에 속하거나 그들과 가까운 이들이 더 앞서서 반대를 한다는 것이다.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줘야 한다.
경원대군이 세제가 되면 인종은 즉시 경원대군의 외척이랄 수 있는 소윤 일파를 무슨 구실을 대서라도 내치려 할 것이다. 명분도 딱 좋았다.
그동안은 그저 대비의 친정이고 왕자 중에 하나인 경원대군의 외삼촌일 뿐인지라 딱히 그들을 견제할 만한 명분이 없었지만, 그가 왕세제가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들은 진짜배기 외척이 되는 것이고 후일의 실세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실제역사에서도 나타나는 문제이고 더욱이 명종이 등극하고 한 달 후인 8월에 윤원형의 형인 즉 명종의 큰외삼촌인 윤원로가 영의정 윤인경과 좌의정 유관이 대신들을 동원해 줄기차게 탄핵하여 결국 해남으로 유배된다. 물론 그 뒤 윤원형이 복수를 해서 을사사화를 일으켜 인종의 외삼촌인 윤임을 비롯해 좌의정 유관 등을 처형하고 형인 윤원로를 다시 부르지만 결국 1년 후 동생인 윤원형과 권력 싸움을 하다가 다시 유배를 가서 사사되고 만다.
여기서 좋다고 왕세제 자리를 받아들이면 모두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권력을 탐하는 모습을 절대로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물론 앞서 말했지만 그로 인해 경원대군의 안전이 보장되기는 할 것이다. 하나 문정왕후의 입장과 소윤 일파의 입장이 달라 벌어지는 일이다.
“국본을 세우는 것은 오로지 임금의 권한이다. 이를 차치하고서라도 만약 대신들이 후일 중전이 왕자를 생산할 것을 염려한다면 나는 문무백관과 백성들 앞에 약조할 수 있다. 중전이 왕자를 생산하더라도 경원대군을 내치치 않을 것이며 왕세제의 자리를 거두어들이지도 않을 것이다. 되었느냐!”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속으로 다짐하는 인종이었다. 자신이 무자식팔자이니 국본이라도 확실히 정해 두고 후일 분란을 없애기 위함이다. 또한 이를 이용해 외척을 정리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런 인종의 말에 대신들은 더 이상 이 문제를 간언할 수 없었다.
인종의 지지 세력인 사림 측에서 보면 매우 섭섭하고 걱정스러웠지만 아무리 군왕이 그렇게 정했다고 하더라도 당장에 왕세제 책봉식을 한다는 것도 아니니 오늘은 그저 듣기만 한다라는 표정으로 넘어가는 대신들이었다. 후일 다시 이 문제에대해 이야기가 나올 것이 분명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