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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인종 1권(6화)
2. 작은 것을 주고 큰 것을 얻다(3)


그 뒤로도 몇몇 논의 사항이 더 있었으나 몸이 피곤함을 핑계로 간단히 처결하고 임금의 처소인 강녕전으로 되돌아온 인종은 내관을 시켜 화사 최성현을 불러오라 했다.
내관이 나가고 인종은 한동안 심각한 표정으로 무엇인가 머릿속으로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할 일이 많았다. 정리가 끝난 듯 인종은 다시 상선을 불렀다.
“상선.”
“네, 전하.”
“가서 선공감(繕工監) 제조를 들라 하라.”
선공감은 공조에 속한 정3품 아문으로 토목(土木)과 영선(營繕)을 담당하던 부서였다.
“네, 전하!”
상선이 나가자 인종은 서탁 위에 놓인 여러 장의 종이를 한쪽으로 옮겨 놓고 몇 장은 따로 한쪽에 빼놨다.
“전하! 화사 최가 들었사옵니다.”
“들라 하라!”
화사 최성현인 들어서자 인종은 가까이 와 앉으라고 명했다. 중인 신분에 종8품에 불과한 최성현은 몸을 한껏 바닥에 낮추어 인종 앞으로 다가왔다.
“그래 준비는 모두 마쳤느냐?”
“네! 저, 전하! 명을 받자와 화사 두 명과 시중들 아이 3명을 모두 준비시켰사옵니다.”
“그럼 너는 나가는 대로 이들과 함께 한양을 그려 오너라.”
“네? 아! 네, 전하!”
“하하하! 어떻게 그리느냐 묻지 않느냐?”
잔뜩 긴장한 최성현은 말까지 더듬으며 답변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한양을 그리라 하는 것은 단순히 그림을 관상하기 위해 그리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정책에 쓰기 위함이다. 무슨 말인 줄 알겠느냐?”
이제야 자신이 불려 온 이유를 알게 된 최성현이었다. 인종이 필요한 것은 한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도인 것이다.
“하오시면 한양 전도를 그리라 하는 것이옵니까?”
“맞다. 말 그대로 한양 전도이니라. 직접 밖으로 나가보지 않고도 한양 구석구석 골목 하나에서부터 초가 하나까지 모두 한눈에 들어오게 그려야 한다. 그 크기는 가로 10자, 세로10자로 모두 그 안에 그려 넣어야 한다. 할 수 있느냐?”
“한지에 그려야 하옵니까?”
“아니다. 오래 두고 볼 것이며, 정책을 집행하며 계획을 세우는데 써야 하니 광목을 이어 붙여 그려라. 허고, 못해도 8월 안에 끝내야 한다. 할 수 있겠느냐?”
“성심을 다해 명을 따르겠나이다.”
화사 최성현이 명을 받고 나가자 선공감 제조가 들어왔다.
“전하! 선공감 제조 박아무개 이옵니다.”
“그래 제조를 이리 부른 것은 내 손재주가 좋은 공인 몇을 천거받기 위함이니라 너의 휘하에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공작에 능한 공인 몇을 골라 보내어라. 또한 도색에 능한 이도 필요하다. 내 시험을 봐 그 재주가 남다르면 따로 귀히 쓸 것이다. 알겠느냐?”
“네, 전하! 하오시면 몇이나 대령하면 되겠사옵니까?”
선공감은 제조가 두 명이다. 정2품인 호조판서가 겸임하고 실질적인 업무를 관장하는 제조로 정3품의 제조가 따로 있다.
거기에 부정, 첨정, 판관, 주부, 직장, 봉사, 부봉사, 참봉까지 1인씩이 있고 감역관 3명, 가감역관 3명에 잡직 8명, 서리 20명, 고직 2명, 사령 13명, 군사 4명에 영선만을 위해서 영선서원 18인, 사령 9명, 군사 45명까지 따지고 보면 매우 큰 조직이었다.
궁 밖에 궐의 영선을 위해 자문감(紫門監)이라는 부속관아까지 있었다. 영선이라 함은 건축물을 신축하거나 수선하는 일을 말한다.
하니 이 선공감의 일이란 경복궁과 창덕궁에 창경궁까지 모두 관할하여 새로이 건축을 신축하거나 수선하는 일체의 일을 담당하는 부서였다.
부서에 성격에 따라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목수들이 많았다. 말 그대로 조선 최고의 건축가들이 모인 곳이다. 그 수야 항상 변하지만 100명 정도는 상시 운용되고 있으면 궐의 신축이나 큰 공사가 있을 때는 2, 300명 이상으로 몸집이 불어나기도 한다. 여하튼 조선에서 최고의 기술자들은 모두 이곳 부서에서 관할한다고 보면 된다.
“손재주가 뛰어난 이를 20여 명 보내 주면 시험을 봐서 그중에 서너 명을 중히 쓸 것이다. 하니 너는 그 명단을 작성하여 상선에게 제출하라, 허면 내 따로 날짜를 잡아 시험을 볼 것이다.”
“네! 전하 그리하겠나이다.”
선공감 제조에게 명을 하는 것으로 일을 끝낸 인종은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일을 시키고 점검하는 것이 왕의 주된 업무인지라, 항시 새로운 일을 만들어 내야 했다. 엄밀히 말해 죽기 전에는 그저 계절에 따라 또는 장계와 송첩된 것들을 살펴 그때그때 필요한일만을 하였다.
일이 터지면 수습을 하는 것이 조정이었고 왕의 할 일이었지 먼저 계획을 세워 무엇인가를 추진한 기억이 없다.
인종은 그런 과거를 생각하며 세종 대왕이 어찌하여 위대한 임금으로 후대까지 사랑받으며 존경을 받게 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그 아비인 중종도 마찬가지였다. 야인이 그리 날뛰어도 그들을 항시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적당히 무마했으며 적극적으로 공세를 취하지도 않았고 왜인들이 매년마다 문제를 일으켜도 그저 피해를 줄이기에만 급급했지 대대적인 소탕을 한다든지, 더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노력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인종은 그런 안일한 통치 방식이 결국 임진년의 참화를 만들고 청의 발호에 굴욕적인 사태가 발생함을 알고 있다. 이제 새로운 통치 방식을 택해야 했다.
그저 올라오는 장계나 처결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태도 때문에 외척이 득세를 하게 되고 간신이 판을 치며 작은 벼슬 한자리라도 하게 되면 부패하게 되는 것이다. 기회를 주면 안 된다. 그리고 인종은 그렇게 되게 두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

밤이 되고 중전의 처소인 교태전으로 자리를 옮긴 인종은 수라상을 물리고 중전 박씨와 못 다한 이야기를 했다. 누구에게도 못할 말을 중전에게만은 하고 싶은 인종이었다. 만약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만 간직한 채 살아간다면 속이 답답해서 없던 병이 생길지도 모를 것이다.
“하오시면 진정 저승사자에게 인도되어 500년을 명계에서 지내신 것이옵니까?”
“그렇소. 중전이 믿지 못할 것이라 생각되오. 하나 이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정말 답답해서 내가 미칠지도 모를 것이오.”
“전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니 진실일 것이오나, 참으로 믿기지 않사옵니다. 허면 그들로부터 무엇을 보고 들었나이까?”
중전은 매우 궁금하다는 듯이 인종을 바라보았다. 인종은 무엇부터 말해 주어야 할지 곰곰이 생각했다.
“우리 가사는 곳이 둥그런 별로 우주에 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소, 또한 우리 가사는 별은 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으며 저 우주에는 우리 가사는 별보다 수만 배가 더 큰 별도 있고 또한 이런 별들이 집단을 이루어 태양계를 이루고 태양계가 집단을 이루어 은하계를 이루며 이 은하계는 수억 개의 별들이 모인 것이며, 또 그런 은하계 수십억 개가 모여야 우리가 우주라 부르는 단위가 된다고 하오. 한데 말이오. 더욱 놀라운 사실이 있소.”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중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인종을 바라보았다.
“우리 사람의 머리에 뇌라는 것이 있는데, 이뇌가 바로 이 거대하고 무한한 우주만큼이나 경이롭고 복잡하다고 하오. 해서 명계의 존재들은 인간은 모두 머리에 우주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더군.”
인종의 말에 매우 놀랍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평소 천문에 대해 그리 관심이 없던 인종이었다. 그러나 허언은 아닐 것이라 여긴 중전이었다. 하나 이런 말을 자신에게 하는 대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간은 지휘 고하를, 그리고 신분을 막론하고 누구나 그만큼 소중하고 중한 존재라는 것이오. 하는 일은 달라도 누구나 인간으로서 대접을 받아야 하고 존중을 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소.”
스스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을 은연중에 하는 인종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중전이 그런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다만 인종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마냥 신기할 따름이다.
“허고 또 무엇을 보았나이까?”
“중전 왜의 크기가 어느 정도 되는지 아시오?”
“왜라면 섬나라 아니옵니까? 양식이 없어 삼남 지방에 자주 왜구가 나타나며, 무역하기를 계속 청하는 것을 봐서는 산물이 적고 궁색한 것 같으나 스스로 국가를 칭하니 조선의 반쯤은 되지 않겠사옵니까?”
“허허! 진정 그리 생각하시오?”
“아니옵니까?”
“실은 말이오. 왜국은 조선보다 크오.”
말을 하다 말고 인종은 급히 집필 묵을 준비하게 하여 종이에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대략적인 그림이었지만 매우 상세한 지도였다. 인종은 저승에서 생활하며 수없이 확인하고 또 확인했던 것이다. 인종에게도 너무나 충격적인 것인지라 머릿속에서 지워 버릴 수도 없었다.
“이것이 조선이오. 허고 이것이 명이며 이것은 왜고, 이 위쪽의 땅들은 소수민족들 여럿이 나뉘어 살지만 주인은 없는 땅이오. 허고 이곳은 색목인들이 사는 곳이며… 이곳은 회회인(回回人)들이 여러 국가로 나뉘어 살고 있소. 허고 이 넓은 땅은 아직도 수렵과 채취만으로 살아간다고 하오. 또 이곳은 인류의 발상지인 아프리카라고 하는데 피부가 검은 흑인들이 산다고 하오. 믿겨지시오?”
“진정! 이 작은 땅이 조선이옵니까?”
중전 또한 너무 놀라 말문이 막혔다. 작아도 너무 작았다. 소 중화라 하여 조선은 명을 제외하고 세상에서 두 번째로 강성하며 문명화된 국가로 여겼다. 물론 당시도 아랍에 대한 것을 알고 있었다. 동남아에 여러 국가가 있음도 알았고, 중앙아시아에도 여러 국가나 민족이 살고 있음을 알았다.
하나 야인들을 보거나 왜를 보아도 또 세상의 중심이라는 명국을 보더라도 조선보다 나을 것은 없었다.
지난 중종연간만을 살펴봐도 명의 백성들도 헐벗고 굶주려 조정에서 금하는 사무역을 어떻게든지 하려고 하는 모습이었다.
그것이 다 먹고살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은 맞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땅의 크기를 보자 그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명은 분명 크기는 하지만 그 너머에 무수히 많은 국가들이 있으며 그 크기도 결코 작지 않았다.
“중전! 땅을 놓고 보자면 우리 조선은 작은 나라요. 하나 결코 걱정할 것은 없소. 우리는 세상 어느 나라보다 앞선 문화와 제도를 만들어 나갈 것이오. 과인이 그리할 것이오. 또한 세상 모든 나라가 우러러 보는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 것이오. 하니 너무 낙담 마시오.”
“믿습니다. 꼭 그리될 것입니다. 한데 저승에서 그 색목인이나 회회인들도 보았는지요?”
“보았소.”
“어떻습니까?”
“글쎄요. 금빛 나는 모발을 한 사람부터 하얀색 피부에 푸른 눈을 가진 사람들도 있으며, 붉은 모발에…….”
말하는 인종이나 듣는 중전이나 모두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동안 근심과 걱정에 편한 날을 지내 보지 못한 중전은 실로 오랜만에 즐거운 표정이었고, 말하는 인종 또한 즐겁기는 마찬가지였다.
명계에서의 오랜 시간 동안 하루도 중전을 잊어 본 적이 없다. 10살의 어린 나이에 맞이한 부인이었다.
크면서 또 성년이 되어서도 오로지 의지할 곳이라고는 중전밖에 없었다. 중전 또한 마찬가지였다. 둘은 부부 이전에 유일한 버팀목이었으며 형제였고 동무였으며 가족이었다. 또한 가장 연모하는 연인이기도 했다.
그 긴 시간 동안 이런 날을 얼마나 꿈꿔 왔던가. 신비롭거나 새로운 것을 보게 되거나 알게 되면 꼭 나중에 중전에게 말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인종이었다.



3. 기군망상의 죄(1)


인종 1년 7월 9일 4번째 기사.
나숙 등이 인종이 명종을 해치려 한다고 한 윤원로에 대한 치죄를 청하다.
―실록은 사후에 편찬하기에 이미 이때에는 인종과 명종의 시호가 정해진 상태로 기사를 정리 작성한 것이다. 하여 인종과 명종이라 지칭한 것이다.―

홍문관 부제학 나숙(羅淑) 등이 상에게 아뢰기를,
“윤원로는 본래 음사하고 흉독한 사람으로 은총만 믿고 방자하여 조금도 기탄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지난번 중종 대왕 때에 패역 부도(悖逆不道)한 말을 맨 먼저 주창하여 군부를 미혹시키고 양궁(兩宮)을 동요시키는 등 요망스럽고 간사한 말을 거침없이 날조하여 종사가 거의 위태롭게 될 뻔하였습니다. 중종 대왕께서 이를 우려하다가 병이 생겼고 증세가 날로 악화되어 마침내 평온한 마음을 지니지 못하신 채로 돌아가셨습니다. 온 나라의 신민이 모두 원로가 그 재앙의 뿌리임을 알고 매우 통분해 하면서 그의 살점을 먹으려 한 지 오래입니다. 더욱이 지금 전하께서 망극한 일을 당하신 뒤 조정을 일신하여 새롭게 정사를 펼치시려 하는 이때에 이 사람을 잠시라도 살려 둔다면 틈을 노려 흉독을 부리고 농간을 부림이 필시 전일보다 더 심할 것이어서 인심이 위구스럽게 되고 종사를 보전하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대의(大義)에 입각하여 결딴을 내려 그 죄를 명백히 다루심으로써 신인(神人)의 울분을 시원하게 풀어 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윤원로가 말한 것을 듣지 못하였기 때문에 굳이 죄를 가하지는 못하겠다.”

인종 1년 7월 11일 5번째 기사.
홍문관 부제학 나숙 등이 윤원로를 주살할 것을 청하였으나 불윤하다.

대사헌 민제인과 대사간 구수담 등이 상에게 아뢰기를,
“윤원로는 본래 음흉하고 간사한 사람으로 선왕조 때에도 부도(不道)한 말을 교묘하게 조작하여 양궁(兩宮―창경궁과 경복궁)을 이간시킴으로써 인심을 의혹시키고 조정을 위구스럽게 하였으니, 이는 실로 종사의 적(賊)이요 선왕의 죄인인 것입니다. 그가 궁금(宮禁)에 의지하여 성(城)의 여우와 사당의 쥐처럼 못된 짓을 다한 실상을 위에서도 어찌 모르시겠습니까. 죄악이 이미 극도에 이르렀으므로 지친이라 할지라도 대의로 보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속히 멀리 귀양 보내어 종사를 편안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언근을 모르고서 그 사람을 죄줄 수는 없다.”
고 하였다.

인종 1년 7월 13일 7번째 기사.
민제인·구수담이 윤원로의 일에 대해 네 번째 아뢰었으나 불윤하다.

민제인과 구수담 등이 네 번째 아뢰기를,
“원로는 죄악이 쌓여서 밖으로 드러났으니 뒷날 종사를 위태롭게 하고 조정을 어지럽게 할 것은 사세로 보아 틀림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정부·육조·대간·시종들이 같은 내용으로 논계한 것인데, 굳게 거절하심이 이에 이르시니, 장차 온 나라의 인심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인심의 득실(得失)은 관계되는 바가 매우 중대한 것이니 재삼 생각하소서.”
홍문관과 양사에 답하기를,
“근일 대신과 함께 의논하여 조처하려 하였으나, 대비께서 크게 상심하신 나머지 일체 수라를 들지 않으시어 몸이 크게 상할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윤허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