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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인종 1권(7화)
3. 기군망상의 죄(2)


원 역사에서 명종이 등극하자마자 조정 대신들이 들고일어나 윤원로를 탄핵한다. 며칠간을 줄기차게 탄핵하고 대전에 들어 윤원로의 죄 있음을 고변하여 결국 지쳐서 대비인 문정왕후의 제가를 받아 해남으로 귀향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을사사화가 일어나게 된다.
한데 인종이 살아 있어도 그 일은 일어날 것 같았다. 인종은 적당히 파직시켜 다시는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게 하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온 조정이 윤원로에 대한 탄핵에 들끓었다.
원 역사와는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윤원로 하나를 희생시켜 나머지 사람들이 구명 받으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만약 이대로 윤원로를 멀리 귀향을 보내게 되면 소윤 일파에 대해 더 이상 칼을 들이대기 힘들어진다. 그 모든 죄를 윤원로가 짊어지고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전하! 대비마마께서 납셔 계시옵니다!”
“뫼시라!”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사실 인종이 되살아 난 뒤 아침 문안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내관을 시켜 대신 인사를 건넸을 뿐이다.
몹시 바쁘거나 몸이 안 좋을 때는 대부분 내관을 보내 대신 아침 문안을 하는 경우가 있기에 인종도 그리한 것이다. 물론 당장에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있기가 껄끄럽기도 했다.
“그간 강녕하시었습니까?”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대비는 멀쩡했다. 그저 시늉만 한 것 같았다.
“저는 무탈했습니다. 주상은 어떻습니까?”
“소자 또한 병세가 많이 호전되어 이제 거동에 큰 불편함은 없사옵니다. 조만간 몸이 회복되면 문안 올리겠습니다.”
“다행입니다. 문안이야 나중에 와도 됩니다. 주상이 강건해야 합니다. 그래야 만백성이 시름을 덥니다.”
“네, 대비마마, 명심하겠습니다.”
인종은 차마 밝은 표정과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이 정도 인사를 했으면 오늘 찾아온 목적을 말할 때가 왔다. 설마 창경궁에서 이곳 경복궁까지 단지 무사한지 확인만 하러 온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주상 원로를 내치십시오. 그래야 합니다.”
마땅히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대비가 친 동기간인 윤원로를 내치라 한 것이다. 사실 인종 입장에서는 어리바리하고 욕심만 많은 윤원로보다는 윤원형을 내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인종은 다시 살아나면서 계획한 것이 있었다. 6개월, 그 6개월을 준비 기간으로 계획했다. 어차피 계획대로면 6개월 후면 소윤이던 대윤이던 외척들은 전부 조정에서 물러나야 했다. 더불어 그들과 작당한 인물들까지 전부 몰아낼 심산이었다.
한데 자꾸 일이 꼬이고 있었다. 역사란 것은 인간과 인간들이 서로 어우러지며 만들어지는 것이라. 누군가의 간섭으로 쉽게 변하기도 하지만 또한 어떠한 일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들, 그런 일들이 간혹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인종이었다. 생각을 끝내고 인종은 정색하며 대비에게 말을 꺼냈다.
“내치라 함은 윤원로의 죄가 참이기 때문입니까?”
순간 대비의 눈이 부릅떠졌다. 만약 참이라고 대답하면 귀향이 아니라 사약이나 참수를 당하게 될 것이다.
대비는 그를 내치라 간하면 주상이 적당히 그를 귀향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이 일을 끝낼 것이라 생각했다. 바보처럼 착하기만 한 주상이었다.
한참 동안 눈싸움을 하는 두 사람 이었다. 주상이 변했다. 뭔지 모르지만 눈빛부터가 변한 것이다. 죽다 살아나서인가? 여하튼 참수당하는 사태는 막아 줘야 했다. 미워도 동기간 아닌가.
“참이어서가 아닙니다. 온 조정이 며칠간 원로 하나 때문에 마비가 될 지경입니다. 어찌 되었든 인심을 잃은 것은 사실이니, 그를 이대로 둘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대비로서 대신들이 더 이상 주상을 괴롭게 하는 것을 지켜볼 수가 없습니다. 하니 원로를 내치시어 조정을 안정시키시라는 것입니다.”
“허면 그를 더욱 내칠 수 없음이옵니다. 잘잘못을 따져 만약 아무런 죄가 없는데도 대신들이 저리하는 것이라면 이는 기군망상 죄를 행하는 것이옵니다. 탄핵 상소를 올리는 대신들이나 직접 고변하는 이들이나 모두 그 죄를 물을 것입니다. 만약 그 고변이 사실이라면 윤원로에게 죄를 물을 것입니다. 하니 대비께옵서는 이만 물러가 주시기 바랍니다.”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한참을 표정 변화 없이 앉아 있던 대비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창경궁으로 돌아갔다. 일을 축소하려다가 더 키워 버린 꼴이 된 것이다. 만약 윤원로가 인종이 명종을 죽이려 했다는 헛소문을 냈다는 것이 참으로 밝혀진다면 이는 대역죄이다. 참수를 당할 수 있는 것이다.
“상선!”
“네, 전하!”
“호조참판 심연원과 도승지 송기수를 들라 하라!”
심연원은 중종 11년부터 명종 13년까지 벼슬을 하던 사람으로 나름 처세를 바르게 하고 명망을 얻는 인물로 무사 무탈하게 관직 생활을 했다. 사화를 모두 무사히 넘기고 후일 영의정까지 오르는 인물이다.
심연원이 마침 궐 내에 있었던 듯 얼마 지나지 않아 대전으로 들었다. 그를 따라 송기수가 들어 인사를 하고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송기수는 자신을 부른 것은 인사 명령을 하기 위함임을 알기에 조용히 인종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신 호조참판 심연원 주상 전하의 명을 받아 들었사옵니다.”
“앉으라.”
“하명하시옵소서!”
“너에게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제수(除授)한다. 지금 즉시 의금부로 가서 군사를 이끌고 과인의 명을 집행하라, 전 영의정 홍언필, 대사헌 민제인, 영의정 윤인경, 부제학 나숙, 대사간 구수담, 첨정 윤원로, 그리고 여기 도승지 송기수를 의금부로 압송하여 구금하고 이일을 모두 마치면 보고하라. 과인이 직접 심문하여 시시비비를 가릴 것이다. 즉시 시행하라!”
“네, 전하!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인종의 추상같은 명령에 판의금부사가 된 심연원은 밖으로 나가자마자 의금부로 향했다. 옆에서 멀뚱히 사태를 보고 있던 도승지 송기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인종을 바라보았다. 생각지도 못한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너는 도승지로서 마지막 명을 수행하고 스스로 의금부로 가도록 해라. 들었다시피 심연원에게 판의금부사를 제수한다. 교지를 작성하라!”
“네, 전하!”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시시비비는 가리면 되는 것이다. 도승지 송기수 또한 탄핵에 찬동했던 사람이고 다시 생각해 봐도 윤원로는 탄핵해야 할 인물이었다. 이왕이면 윤원로뿐만 아니라 윤원형에 대비까지 이 기회에 저세상으로 보내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실로 조정안의 실세라면 실세인 이들이 전부 의금부에 끌려와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에 훈구파의 윤원형과 이기, 그리고 정순붕을 끌고 오고 사림파로 불리는 유인숙과 유관에 자신의 외삼촌인 윤임까지 끌고 와서 모두 치죄를 하고 싶었다.
물론 그들 입장에서야 권력을 유지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을 제거해야 한다는 명분이 있겠지만, 인종이 보기에 그들은 모두 악신이고 간신으로밖에 안 보였다.
살고 싶으면 벼슬 내놓고 물러나면 될 것을 왜 그리 집착이 많은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양반들이었다.
판의금부사가 된 심연원이 준비가 끝났음을 보고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인종은 제일 먼저 고변한 영의정 윤인경에게 하문했다.
“영의정 윤인경은 답하라 경이 말하기를 지난 중종 대왕 연간에 윤원로가 과인이 경원대군을 해하려 한다는 거짓된 소문을 퍼트려 중종 대왕께서 밤낮으로 어린 아들을 보전하지 못할까 우려하신 나머지 심열(心熱)을 이루어 끝내 승하하기에 이르렀다고 고변했다. 맞는가?”
“맞사옵니다.”
“영의정 윤인경은 윤원로에게 그 말을 직접 들었는가?”
“듣지 못했사옵니다.”
“허면 그 말을 누구에게 들었는가?”
“전하 말의 시작은 중요치 않사옵니다. 말이라는 것은 바람과 같아 그 시작된 곳은 찾을 길이 없사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이 모든 조정 신료들에게 전해졌고, 또한 모든 조정 신료들은 그 말이 진실임을 알고 있사옵니다. 원로의 형제가 많으나 특별히 원로를 들어 계달하는 것은 그 뜻이 있는 데가 있는 것인데 근거 없는 말이 어찌 온 조정의 청문(聽聞)을 미혹시킬 수 있겠습니까. 위에서 믿지 않고 망설이시니 신들은 더욱 실망하고 있습니다.”
근거도 없는 말을 오히려 당당하게 말하는 윤인경이었다.
“나숙에게 묻겠다. 너 또한 영의정의 의견과 같은가?”
“같사옵니다.”
“좋다, 그럼 묻겠다. 이중 윤원로가 거짓된 소문을 퍼트리는 것을 직접 들은 자가 있는가?”
이에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다시 인종이 윤원로에게 물었다.
“군기시첨정 윤원로는 답하라, 너는 과인이 경원대군을 해하려 한다는 거짓 소문을 퍼트린 적인 있는가?”
인종의 말에 윤원로는 연기인지 진실인지 분간할 수는 없지만 매우 강력하게 부정했다.
“전하! 소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사옵니다. 저들은 소신이 외척이라는 이유만으로 음해하여 내치려 서로 짜고 고변한 것입니다. 저들을 무고죄로 처벌하심이 마땅합니다! 전하 소신은 진정 그런 망측한 말을 입에 담은 적도 없사옵니다!”
“그런가? 과인이 영의정 윤인경에게 묻겠다. 중종 대왕 연간에 첨정 윤원로가 퍼트린 소문이라 했다 맞는가?”
“맞사옵니다.”
“다시 묻겠다. 한데 어찌하여 수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이를 고변하는가? 선대왕에 계실 때 고변했다면 그때 확실히 죄의 유무를 판가름하여 처결하였을 것이다. 선대왕께서 외척이라 하여 죄를 추궁하지 않을 것이라 여긴 것인가?”
“선대왕 때에 그 사실을 알았으나 차마 고변할 수 없었나이다. 대행 대왕께오서는 옥체 미령하시고 죄인이 대비마마의 동기간인지라 이를 고변한다면 망극한 일이 생길까 저어하여 차마 고변치 못하였사옵니다.”
“그래?”
인종은 윤인경의 말을 듣고는 일명 썩은 미소를 날렸다.
“다시 묻겠다. 너는 처음 분명코 선대왕이신 중종 대왕께서 윤원로의 거짓된 소문을 듣고 어린 경원대군을 지키지 못할까 우려하신 나머지 심열을 이루어 승하하기에 이르렀다고 했다! 한데 어찌 지금은 선대왕의 옥체 미령하시어 차마 고변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가! 어느 말이 참인가!”
윤인경은 속으로 뜨끔했지만 결코 승복할 수 없었다. 또한 지금 상황이 이해도 되지 않았다. 분명 자신은 인종을 지지하는 입장이었고 여기 잡혀 온 사람들도 인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의 고변에 응답하여 윤원로를 귀향 보내든지 사사해 버리면 되는 것이다. 속으로 어찌 이런 기회를 스스로 차 버리려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영의정 윤인경이었다.
“소문은 바람과 같아 떠도는 것이옵니다. 그 소문으로 선대왕께옵서 심열을 얻어 승하하신 것은 맞사옵니다. 하나 소문의 근원을 밝히시지도 못하였고, 또한 조정이 혼란할까 염려하시어 밝히라 명하지 않으신 것이옵니다. 신들 또한 그 소문의 근원이 윤원로인 것을 알았으나 차마 옥체 미령하신 선대왕께 고변하지 못했사옵니다. 하나 이렇게 전하께옵서 강녕하시고, 또한 국본까지 정하시어 새 뜻으로 조정을 일신하시며 새로운 정치를 펴려 하시니, 이제 거짓된 소문으로 전하께 대변(大變)을 당하게 한 윤원로의 죄를 물으시옵소서!”
말은 정말 잘한다고 생각하는 인종이었다. 사실 작년에 죽은 중종도 대윤이니 소윤이니 하며 외척 간에 둘로 나뉘어 싸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절정이 바로 중종 대왕 마지막 해인 작년이었다. 하나 윤원로가 했다는 저 말이 진짜 했는지를 떠나서 중종의 귀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조금 믿기 힘들었다. 어쩌면 했을 수도 있다.
하나 그 말이 중종의 귀에 들어갔다면 그것은 오로지 대비의 입에서 전해졌을 공산이 크다. 윤원로가 근원이라는 말은 쏙 빼고 저자에 떠도는 혹은 조정 대신들 간에 흘러 다니는 말이라며 운을 떼고 중종에게 했을 공산이 크다.
인종을 왕세자에서 폐위시키고 경원대군을 새로운 국본으로 삼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보란 듯이 인종이 사림과 대윤의 지지를 얻어 무사히 왕좌를 물려받았다. 그러니 이제 소윤과 대비는 모두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가능하면 경원대군까지 한곳에 묶어서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또 어떤 술수를 쓸지 알 수 없었다.
한데 인종이 등극하고 도통 소윤 일파나 대비를 제거하지 않고 오히려 형제로, 어머니로 잘만 모셨다.
애초에 인종이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다. 바보같이 정도만을 생각하는 인물이었고 애정결핍 환자처럼 자신을 죽이려 한 것을 알면서도 문정왕후나 아우인 경원대군에게 차마 위해를 가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일로 상황이 달라졌다. 명백히 문정왕후에 의해 인종이 죽다가 살아난 것이다. 그것은 이미 대신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퍼져 있는 사실이었다.
더구나 경원대군이 국본으로 세워진 마당이니 소윤 일파는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인종 또한 그런 생각을 할 것이라 여겨 사림과 훈구 세력 중 대윤 일파는 윤원로를 제거하려고 하는 것이다.
“참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소문은 있으나 그 근원은 알 수 없으며 누구도 첨정 윤원로에게 들은바 없으나 윤원로가 했다 하고, 또한 수년간 그 일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차마 고변하지 못했다고 하니 이를 어찌 처결해야 하는가? 과인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도다. 해서 과인은 판결한다. 전영의정 홍언필, 대사헌 민제인, 영의정 윤인경, 부제학 나숙, 대사간 구수담, 도승지 송기수를 기군망상 죄를 범한 대역 죄인을 고변하지 않고 숨긴 죄로 파직하고 군기시첨정 윤원로는 왕실의 인척으로서 덕을 쌓지 아니하여 인심을 잃고 조정을 혼란하게 한 죄를 물어 이 역시 파직한다. 또한 이들은 모두 해남, 강진, 제주, 강릉 등으로 나누어 유배를 보낼 것이다.”
판결이 끝나자 붙잡혀 온 이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간혹 인종을 부르며 아량을 베풀라며 사정하는 이들도 있으나 더 이상 꼴도 보기 싫다는 표정으로 강녕전으로 돌아가는 인종이었다.

인종 1년 7월 14일 2번째 기사.
전라도 전주에서 5, 6월에 큰 소가 벼락 맞아 죽다.

전라도 전주(全州)에서 5월에 촌민(村民)과 큰 소가 벼락 맞아 죽었고, 6월에도 전주에서 촌민과 큰 소가 또 벼락 맞아 죽었다.
사관이 기사에 대해 논하기를,
마땅히 본월 기사에 썼어야 할 것이다.

인종 1년 7월 15일 2번째 기사.
전라도 함평현에서 사람 2명과 말 1필이 벼락 맞아 죽다.

인종 1년 7월 16일 3번째 기사.
경원대군이 동궁전인 저승전(儲承殿)으로 이어하시다.

상께서 조정 신료들과 논의한 끝에 왕세제의 책봉식은 추수가 끝나는 10월 하순으로 날을 받아 거행하더라도 동궁의 교육은 빠를수록 이롭다 하시어 경원대군의 이어를 명하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