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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인종 1권(12화)
5. 북방을 방비하다(2)
아침나절부터 급하게 올라온 장계에 대해 논의를 하는 중인데, 근래 들어 중국은 명 조정에서 금하는 사무역을 하는 장사치들이 활개를 치는 것 같았다.
대신들의 말도 일리가 있는 것이 그들이 중국인이나 엄연히 저희들 법을 어긴 것이고, 중국에 사대하는 입장이라고 해도 조선이 저들을 억류하여 공짜 밥을 먹여 줄 이유도 없다. 그저 좀 수고스럽더라도 배로 싣고 가서 땅에 내려놓고 관아에 넘긴다고 하면 알아서 도망갈 것이라는 말이다. 꼼수를 쓰는 것이지만 가장 적게 돈 들여서 해결하는 방법일 듯했다.
점심 먹고 쉬려고 강녕전에 앉아서 그동안 벌여 놓았던 일들을 정리하고 계획을 세우며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급하게 장계 하나가 올라왔다.
“전하! 함경도에서 장계가 올라왔나이다.”
“함경도?”
손을 내밀어 장계를 펴 보니 전달 초에 깨어나자마자 떠나보냈던 윤임의 아들 윤흥인과 함경도 관찰사 이청의 장계였다.
‘주상께 아뢰옵니다. 상의 명으로 함경도 관찰사 이청을 찾아 상의 명을 전하니 관찰사가 30의 병사와 마를 내어 주어 명대로 건주위(길림성)로 넘어가 첩정(牒呈) 활동을 시작하였나이다.
금년 7월 20일 호인 김구구(金仇仇) 등이 진고한 내용에 매부 김다롱가(金多弄可)와 건주위(建州衛) 사돈 동자나로(童者羅老)가 서로 만날 일로 7월 열닷새에 주고 받은 말에, 건주위의 호인 심아상가(沈阿尙可)·심다구(沈多仇)·심보호(沈甫好) 등이 무리를 모아 병기를 마련하고 말을 먹이며 만포(滿浦) 등에서 풀 베는 사람을 사로잡아 갈 것을 약속하였다고 했다. 하였습니다. 필시 추수가 끝나는 시기에 이들이 월경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라며 짧게 올렸다. 아마도 호인(만주인) 김구구라는 사람이 함경도 군영에서 포섭한 우리 측 간자로 보였다.
그리고 함경도 관찰사 이청이 올린 장계는 연명으로 병사와 함께 작성한 것이었다.
‘삼가 주상 전하께 아뢰옵니다. 정첩에 관한 일은 전하의 명대로 시행하였나이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한 말씀 올리겠나이다. 함경도는 서리가 빨리 내려 기근과 기아에 시달리며 백성의 살림이 궁핍하니 군량이 넉넉하지 못하여 호인들을 방비함에 매우 어려운 사정에 처해 있습니다. 또한 굶주림에 견디다 못한 백성들 중 일부는 야인들의 지경으로 넘어가는 일도 벌어지옵니다. 전하께옵서 이러한 함경도의 처지를 가납하여 조처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장계를 읽고는 절로 탄식이 나왔다. 남으로는 왜구요 북으로는 야인이라 참으로 처지가 곤란한 상황에 이른 것이 조선이었다. 하루이틀 일도 아니 것만 다시 봐도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국의 최전방 군사들이 한낱 도둑 떼에 불과한 야인 무리를 막지 못해 번번이 피해를 당하기를 수십 번이었다.
당장 장계의 내용으로 보아 올가을에 야인들이 작당하여 또다시 약탈을 위해 움직일 것이 확실시 됐다.
해서 인종은 급하게 사정전으로 나아가며 대신들을 불러 모으라 명했다. 사정전에 나아가니 기다렸다는 듯이 좌찬성 상진이 한마디 했다.
인종1년 8월 4일 3번째 기사.
좌찬성 상진이 왜노와 야인에 대비한 군정이 허술함을 아뢰다.
좌찬성 상진(尙震)이 아뢰었다.
“요사이 군정(軍政)을 보면 극히 허술합니다. 왜노가 화친을 끊은 뒤부터는 사변이 조석 간에 발생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군량이 넉넉하지 못하여 민간에 흩어져 있는 것이 반이 넘으며, 게다가 군사(軍士)와 군마(軍馬)가 정예롭지 못하고 군기(軍器)도 정돈되지 않아서, 만약 위급한 사태가 일어나면 장차 어떻게 대처하겠습니까?
왜노들은 우리나라에 의존해 살고 있으므로 감히 함부로 변경을 침범하지는 못할 것이나 근일에는 화친을 끊은 지가 오래여서, 만약 우리나라에서 얻어 간 쌀을 다 먹고 나면 반드시 사력을 다해서 도적질하러 올 것입니다. 조정에서는 남쪽만 우려할 것이 아니라, 양계(兩界)의 일도 우려해야 합니다. 평안도는 내지병(內地兵) 10인이 토병(土兵) 1인만 못합니다. 그러므로 토병은 수효가 적어도 적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함경도는 육진(六鎭)에 매년 서리가 일찍 내려 기근(飢饉)이 잇따라서 변민(邊民)들이 떠돌다가 간혹 야인(野人)의 지경으로 들어가는데도 변장(邊將)은 죄입을 것을 두려워하여 숨기고 보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 걱정됨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해서 과인의 근심이 크다.”
토군이라 하면 향토 병, 즉 그 지방출신의 병사를 말함이다. 중앙에서 군사를 모아서 보내는 것보다 현지의 장정들을 모병하여 전투를 치르는 것이 매우 효율적이며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그 이유로 향토 병은 자신이 사는 지역이기에 가족과 친지들의 안전을 직접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고 현지의 지리적 환경적 상황에 적응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종 임금은 내지 병, 즉 중앙의 군사를 보내어 해결하려 한다. 여기서 두 번째 주목해야 할 부분이 나온다. 조선 초 혹은 선조 때까지 군왕들은 지방에 나가 있는 장수들을 믿지 않았다. 그 이유로 이성계와 이징옥을 들 수 있다. 조선이 건국했던 상황과 이징옥의 반란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조선의 왕들은 국경을 지키는 장수에게 너무 과한 권한을 주지 않으려 했다. 간신히 국경을 지킬 수 있는 권한만을 준 것이다.
만약 과한 권한과 물적, 인적 자원을 몰아주게 되면 언제 배신하여 자신에게 칼을 들이밀지 몰랐기 때문이다.
믿음이 있다면 복잡하게 내지 병을 모아서 보내지 않고 군량만을 모아서 보내면 해결될 문제였다. 해서 인종 또한 다시 깨어나자 자신의 외사촌동생을 첩정을 담당하는 사람으로 북방으로 올려 보낸 것이다.
물론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만약 자신이 을사사화를 막지 못하게 되면 윤임과 함께 제거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의 아들만이라도 살리려고 미리 손을 쓴 것이다.
“하여 대신들과 급히 논의를 했으면 합니다. 듣기로 호인(만주인)들의 약탈이 자못 심각한 지경이며 올가을에도 필시 약탈을 위해 호인들이 뭉쳐 변경을 어지럽힐 것이라는 첩보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방비책을 서둘러 세워야 할 것 같소.”
인종이 말하는 첩보가 사실이라면 지금이 8월초이니 화가 미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정말 시급한 것이다. 아무도 선뜻 나서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자 별수 없다는 듯 병조판서 이기가 먼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전하, 일이 시급하니 평안도 관찰사 황헌에게 교지를 내려 병사 2천과 군량미를 보내 주라 하시옵고, 추수가 끝나는 대로 전라도에서 세를 걷어 일부는 평안도에 주고 나머지는 함경도로 보내어 방비하심이 옳을 줄 아뢰옵니다.”
병조판서의 말을 듣고는 눈살이 자동으로 찌푸려졌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일이 시급해질 때까지 내버려 뒀다가 임시방편으로 항상 조금 여유로운 곳에서 가져다 메우는 식이었다. 조선에 전라도가 없었으면 어쩔 번했는가?
아무리 전라도라고 해도 쌀이 항상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쌀은 둘째 치고 병사 2천을 더한다고 해서 그 넓은 국경 지역을 다 감당할 수도 없으니 답답하기만 한 심정이다. 어차피 이렇게 한 번 지나가고 나면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다음연도 또 같은 일을 당하게 될 것이다.
“정히 대안이 없으면 그렇게라도 하여야겠지만, 이 일이 한두 해 있어 온 일도 아니며, 수차례 반복되는데도 여직 해결 방안이 나오지 않은 것은 조정의 녹을 먹는 신료들이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기 때문 아니요? 차제에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논해 보도록 하시오.”
뭐라도 말을 좀 하라고 욕지거리라도 하고 싶었지만 지독히도 이런 문제에 관안한 말을 아꼈다. 설혹 뭔가 답이 있다고 해도 말 한 번 잘못하면 그 책임을 뒤집어 쓸 것 같아 모두 입을 닫고 헛기침만 하고 있다.
“함경도의 문제는 결국 군량이 부족하고 병사의질이 떨어지며, 그 숫자 또한 적다는 것 아니오? 만약 그것들을 모두 충족하여 준다면 야인들을 토벌하고 북방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말과도 같은 것이오. 그렇지 않소?”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무도 답을 안 했다.
“병사가 모자라는 것은 먹이고 입히는데 들어가는 세수가 부족해서이지 결코 장정이 없어서는 아닐 것이오. 그렇지 않소? 허면 가장 중요한 것은 세수를 늘려야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 형편으로 세를 더 늘린다면 백성들이 살아가기 너무도 힘이 들 것이오. 그렇다고 명국에 손을 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를 어찌 해결한단 말이오?”
한탄하듯이 뱉어낸 말에 대신들은 꿀 먹은 벙어리였다.
“병조판서는 답하시오. 과인은 증군이 필수불가결하다 여기오. 병판도 그리 느끼지요?”
“그렇사옵니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증군하는 것 많이 상책이옵니다.”
“이는 자명한 사실이오. 하여 과인은 3년 안에 전략 특수 위를 창설할 것을 목표로 하겠소. 대신들 중에 이에 반대하는 이가 있소?”
처음 들어 보는 단어에 다들 곰곰이 이름을 되새겨 보는 듯했다.
“전략 특수라 하심은 별기군으로 양성하신다는 말씀이옵니까?”
“군은 적고 지킬 곳은 많은데 곳곳에 병력을 주둔시킬 여건은 아니 되질 않소? 하니 강군으로 위급의 부대를 창설하여 추수가 끝날 무렵에는 북방을 지키고, 봄이 되면 내려와 남방을 지키는 것이오. 허고 수군을 정비하여 전략 특수 위만의 전함을 건조하여 남방과 북방을 수시로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할 것이오.”
위급은 현대의 사단이라고 보면 된다. 조선 초 군대는 5명을 묶어 오라고 하고 오가 5개모이면 대로 25명, 대가 5개 모여 여로 125명, 여가 3개 내지 5개 모여 통이 된다. 그리고 통이 4개 모이면 부로, 보통 부는 1,500명가량이고 부가 5개 모여 위가 되는데 위는 위장이라 하여 장군이 통솔한다. 이런 위가 5개 모이면 오위라 하여 오위도총부가 관할하는 것이다. 훗날 이 오위도총부가 오군영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 오위가 바로 하나의군으로 중군, 좌군, 우군으로 불리고 이 3개의 군들을 하나로 묶어 부대를 만들고 대장(隊將)이 통솔하며 이런 대장 3명을 밑에 두고 통솔하는 것이 총사령관이 되는 것으로 단순 계산으로 총사령관은 337,500명을 이끄는 사람으로 일국의 군 통수권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 조선의 사정이 이런 모든 편제대로 운영될 수가 없으니 편제표 상으로, 정확히는 장부에만 그 수가 기록되어 있을 뿐 실제로 존재하는 병력은 되지 못했다.
조선의 인구로 감안할 때 정상적인 국력이라면 20만 정도까지는 유지해야 하나 천인을 제하고 양반들 자제 중 무과가 아닌 문과를 준비하는 유생들을 제하고 거기에 병역대신 각종 관아의 다른 직으로 대체하게 되면 그 대상자가 확연히 줄어들게 된다. 그럼에도 조선 초라서 군이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다.
좌찬성 상진의 말대로 영 형편없는 것은 아니며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좌찬성 또한 저런 말을 할 때에는 더 이상 군을 방치하지 말고 손을 봐야 한다는 말이다.
아직도 조선의 최전방에서 국경을 잘 지켜 내고 있는 상황이고, 문반과 함께 무반이 당당하게 양반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던 때이다.
양반이 당상관이 되기 위해 문과든 무과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집안이 넉넉하고 큰 공을 세워 봉작되고자 하면 말을 사고 활과 창을 사서 무예를 익히던 시절이다.
“전하의 말씀이 참으로 지당하시옵니다. 그 전략 또한 매우 타당하다 사료되옵니다. 하나 배 한 척만을 건조해서는 아니 될 것이며, 기동 군이라 하시면 말의 수요도 상당할 것이온데 재정이 뒷받침 되지 못하면…….”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좌의정 유관이 딴죽을 걸었다.
“해서 과인이 말하지 않았소? 3년이라고 말이오. 그 문제는 과인이 더 고민을 해 보겠소. 하나 강군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탄생하는 것은 아니니 내년부터 매년 초 무과를 실시하여 그 인원을 미리 뽑아 놔야 할 것이오. 하니 미리 차질 없도록 준비하시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올가을 닥칠 위기를 어찌 헤쳐 나갈지 논의해 봅시다.”
시급한 문제를 꺼내어 은근슬쩍 증군을 밀어붙여 통과시킨 인종이었다. 알면서도 속고 속으면서도 모른 척해 주는 대신들이었다. 사실 필요하기도 했고 인종 스스로 한다고 공언했으니 자신들은 책임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무도 대책이 없는 듯하자 인종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하면 올해는 일이 시급하니 용양위를 훈련도 겸하여 북방으로 보내 내년 봄까지 국경을 지키게 합시다. 그 경비는 내 따로 마련해 볼 것이오. 병판은 일이 시급하니 급히 서둘러 병사들을 소집하여 일개 부대 단위가 되면 이동시키도록 하시오. 알겠소?”
“전하! 하나 용양위를 빼시면…….”
중앙 군사 조직인 용양위를 북방으로 보낸다하니 당황스러운 병판이었다. 불과 얼마 전에 좋지 못한 일까지 당했는데 병력이 중앙에서 빠져나가게 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가 없게 된다.
물론 금군이 있기에 큰 탈이야 없겠지만 급작스럽게 군을 소집해 올려 보내려면 많은 문제가 노출되게 된다. 장부에만 기록된 병사들 문제도 있으며, 그 장비나 이동 문제도 보통일이 아닌 것이다.
“아니 될 까닭이라도 있소?”
인종의 하문에 차마 안 된다고 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자신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하명하신 대로 따르겠나이다.”
명을 내려 놓고 인종은 너희들 고생 좀 해 보아라 하는 심정이었다. 인종이라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많은 문제가 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하나 이렇게 자꾸 뒤집어서 속을 꺼내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는 정말로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급히 마련된 조회를 마치고 인종은 강녕전으로 호조판서 임백령을 불렀다. 용양위를 북방으로 보내려면 그 군비를 마련해야 했다. 사정전에서는 호기롭게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생각처럼 될지 알 수가 없었다.
“호판이 당분간 좀 바빠지겠군요. 그래 어림짐작으로라도 내년 봄까지 용양위가 북방에 머물게 되면 군비가 얼마나 들어갈 것 같소?”
“대략 다섯 달을 머물러야 하니 백미 5만 석은 들어가옵니다.”
“5만 석이라…….”
생각보다 너무 많은 양이었다. 함경도의 추수가 끝날 때쯤엔 당도해야 하니 어쩌면 용양위에 속한 병사들은 추수를 하지 못하고 올라가게 될 수도 있었다.
우선 급한 대로 왕실 재산이라도 써야 할 것 같다. 다행히 국상을 치르다 중지해서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땐 대신 중에 부정 축재하여 재산을 잔뜩 모아 놓은 인사라도 있으면 파직하면서 재산을 몰수하여 그 비용을 처리하면 좋겠지만 조선 최고의 부정 축재로 이름을 남길 윤원형이 인종이 죽지를 않아서 아직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기회에 내탕고에 얼마나 있는지도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왕실 재산이라는 것이 국왕의 사적인 재산인지라 왕실 가족 이외에는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른다.
왕도 땅을 백성들에게 소작 주어 일구고 거기에서 나오는 소작료로 재산을 모은다. 물론 그것만을 담당하는 관리들이 있지만 따지고 보면 신하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상태다. 한데 그 쓰임이 많으니 그리 넉넉하지는 않은 것이다.
“소금을 전매한다면 상황이 나아지려나…….”
조선을 통틀어 소금을 전매한 것은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말까지 약 100년간이다. 이시기 왕실의 종친들에게 염전의 수세권을 주어 그 이권을 나누어 주었는데 폐단이 많고 국가 재정이 어려워 17세기 말에 폐지되었다.
현재는 개인들에게 소금의 생산과 판매가 허락되고 대신 소금으로 세를 내는데 관아에서 받은 소금을 포목과 곡물로 바꾸어 군비에 사용했다.
세종대에 전매를 하려고 시도했다가 폐지한 적이 있다. 물론 왕실 소유로 전매한 것이 아니라 국가 재정으로 활용했지만 소금 품귀 현상이 일어나서 백성들의 원성이 커지자 폐지했다.
“방법을 달리하면 가능할 듯도 한데.”
염전 주인들에게 그 권리를 모두 인정해 주고 새로운 소금 생산법을 알려 주어 생산량도 늘리고 전매를 통해 중간 이익만을 국가 재정으로 돌려도 군비 확충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물론 생산이 늘어난 소금은 여진과의 무역으로 말이나 소등의 가축으로 바꿔 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이런 생각에 가능성이 보이자 인종은 급히 호조판서를 다시 불러오게 했다. 덕분에 막 퇴궐하려던 임백령이 다시 불려와 인종 앞에 앉았다.
“자네는 즉시 호조관원 전부를 동원하여 염전 상인과 염한들에 대한 것들을 낱낱이 조사하여 보고해 주게.”
“염전 말이옵니까?”
“그렇네, 어느 정도나 걸릴 것 같나?”
“한양의 상단들을 통한다면 내일이면 대략적인 정보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조선 전체에서 나는 물산에 대해서는 한양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상인들에게 물어보면 모를 것이 없었다.
그들은 전국 각지에서 나는 모든 물산의 대략적이 상황을 자신들이 취급하는 품목에 한해서는 빠삭하게 꿰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