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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인종 1권(13화)
5. 북방을 방비하다(3)


호판이 나가자 인종은 서둘러 공판을 불러오게 해서 도공과 목수를 대령하라 일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안군에게 급하니 서둘러 입궁하라 연통하고 몇 장의 교지를 작성하게 시켰다. 마치 번갯불에 콩 구어 먹듯이 일처리를 하는 인종이었다.
마음이 조급한지 인종은 서탁을 규칙적으로 탁탁 소리가 나게 처 가며 말없이 한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선은 주상이 갑자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모습을 보이자 신기한 표정으로 힐끗거리며 인종을 쳐다보았다.
“해안군마마 드셨사옵니다.”
“뫼시어라!”
드디어 기다리던 해안군이 당도했다. 인종은 반가운 얼굴로 해안군을 맞았다. 인종보다는 4살 많은 형님이다.
“전하, 어인 일로 이리 급히 찾아 계시옵니까?”
자못 궁금하다는 듯이 앉자마자 질문을 하는 해안군이었다. 급하다는 내관의 말에 빠른 걸음으로 궐에 들어오느라 숨이 조금 가뿐 해안군이다.
“소금을 전매할까 합니다.”
“소금을요? 음… 제 기억으로 세종 대왕 연간에 실시했다가 큰 폐해가 드러나 폐지한 것으로 아는데요. 다시 그것을 하려는 이유가 뭡니까? 혹여 전비를 마련하시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소금을 전매한다고 하자 문뜩 돈을 벌어 전쟁이라도 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해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인종을 바라보았다.
“아닙니다. 전비는 아니고 군비를 보충하려 합니다. 한데 세종 대왕마마 때와는 전혀 다른 방법일 겁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기존 염전업자들에게도 피해는 전무할 것입니다.”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지금 시대에 소금을 만들려면 큰 솥을 걸어 놓고 장작을 해다가 불을 때야 했다. 인건비며 장작이며 여간 돈이 많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산하면 그대로 일반 백성에게 팔리는 것도 아니며 중간 상인들이 생산지에서보다 적게는 서너 배 많게는 10배 넘는 가격에 되파는 것이다.
그러니 염장법이나 젓갈 같은 것은 내륙 지방 사람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갯벌이 있고 포구가 있는 해안가 어촌에나 있는 것이 그런 것이다.
“바닥에 도자기를 까는 겁니다. 그리고 간수를 가두어 햇볕에 잘 말리면 소금이 됩니다. 한마지기 땅에 도자기를 깔면 볕 좋을 때 하루에 최저1석이나 두석의 소금을 얻습니다. 한데 인부 하나가 3, 4마지기를 담당한다면 못해도 4석, 많게는 10석까지 소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방법을 모든 염전에 시행하게하고 생산된 소금은 전량 조정에서 사들이는 겁니다. 하여 팔도에 있는 군영에 창고를 만들어 걷어들인 다음 각 지역 상인들에게 동일한 가격에 판매하는 것입니다. 허면 백성들도 항시 같은 가격에 소금을 구할 수 있으니 좋고 나라에서도 일정한 세를 받아서 좋습니다. 더불어 생산량이 늘어나면 여진인 들에게 가축과 교환하면 됩니다.”
한참을 인종의 설명을 듣던 해안군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인종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허탈한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그리만 된다면 여진인에게만 팔아야 쓰겠습니까? 명에 가져다 팔기만 하면 아국은 돈방석에 앉을 것을요. 하하하, 전하 그 말씀 농이시지요?”
도자기를 깔고 볕에 말리면 소금이 된다니 해안군으로서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는 방법이었다.
마치 인종이 꿈을 꾸는 것이 아닌가 하는 표정이었다. 인종은 해안군의 이런 반응이 괘씸하기는 했지만 형님인지라 역정은 못 내고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형님, 해서 말인데요. 형님께서 이일을 맡아 주셔야겠습니다.”
“아니 왕실 종친인 제가 말입니까? 대신들의 반발이 거셀 텐데요.”
소금이 만들어지냐 안 만들어지냐의 문제보다 사실 그것이 더 문제였다. 이런 큰 이권이 걸린 일을 왕실 인척이 한다면 분명 말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해야 합니다. 누굴 믿을 수 있겠습니까? 더불어 이문의 일정 부분은 왕실이 가져와야 합니다. 이 생산 방법을 국왕인 내가 직접 창안했으니 당연히 왕실에서 그 혜택을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이익 전부를 가진다는 것도 아니며 일부만입니다. 1할 정도지요. 남은 9할의 이익은 전부 군비로 사용할 계획입니다. 하니 대신들도 반대하지는 못할 겁니다. 형님께는 아직 모르시겠지만 그럴 만한 사연이 있습니다.”
“그렇다면야…… 한데 제가 어찌해야 합니까?”
“아, 조금 있으면 도공과 목수가 올 것입니다. 허면 형님께서 이들을 이끌고 강화로 가셔서 시범적으로 염전을 만들어 생산을 해 보세요. 제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겁니다.”
하면서 몇 장의 서찰을 건네주었다. 동생이라지만 임금이니 두 손으로 받아 갈무리하는 해안군이었다.
받아든 서찰 중에는 해안군을 염매 공사의 장인 공사장으로 임명하며 이 직급은 강화도내의 국유지 땅을 개발할 수 있으며 양인들이 염매 공사가 벌이는 일에 노역하면 국가에 하는 공역을 면할 권한이 있음을 명시했다. 별안간 벼슬길에 나아가게 된 해안군이었다.
해안군은 강녕전을 나가면서 인종을 애처로운 눈길로 바라보며 다시 질문을 했다.
“한데, 이렇게 하면 소금이 확실히 만들어지긴 하지요?”
공연히 장인들과 강화까지 가서 소금 만든다고 설쳤다가 안 되면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었기에 해안군은 매우 불안한 표정이었다.
“제가 드린 서찰을 잘 보시고 그대로만 따라하시면 필히 됩니다. 하니 걱정 마세요. 염전이 만들어지고 소금이 생산되면 즉시 저에게 알려 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하오시면…….”
말을 끝내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는 해안군이었다. 인종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꼭 된다고 하니 자신을 상대로 농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해안군 이었다.
믿기지 않아도 어명이니 우선을 따라야 하기에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도공과 목수들을 이끌고 그길로 강화도로 바로 직행을 했다.



6. 팔도의 양반을 소집하다(1)


인종 1년 8월 5일.

인종은 드디어 결심을 하고 대신들을 모두 불러 모아 놓고 중대 발표를 했다. 그것은 전국의 모든 양반들 중 집안을 대표하는 가장들을 한양에 모이도록 어명을 내린 것이다.
양반이라 하여 자신을 양반이라고 내세우는 모두를 양반으로 인정해 줄 수는 없기에 생원과 진사 시험에 합격하여 백패(白牌:합격증)를 받은 자나 그를 대신할 자식으로 한정했다.
소집일은 9월 10일이며 국가 대사에 관한 중한 일을 논하기 위함이니 한사람의 빠짐도 없이 모이라 했고, 만약 불참석할 경우에는 양반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엄포도 하였다. 물론 근무 중인 벼슬아치들은 예외였다.
인종의 어명에 전국 팔도를 향해 파발마가 달리기 시작했다. 대신들은 인종이 드디어 끝장을 보려 한다고 말들이 많았다. 국가 대사야 대신들과 의논하면 될 일이지 전국의 양반들을 불러다 어쩌겠다는 건지 도통이해가 되지 않았다.
과시라도 본다고 하면 모를까 양반들이 추수철에 집안을 비워 놓고 올라올 리 없을 것이라는 말들도 있었다.
문정왕후와 윤원형은 인종이 무슨 일을 벌이려 한다는 생각에 대비전 나인들을 시켜 바쁘게 대전 주변을 기웃거리게 하였다. 꼬투리 하나라도 잡아 볼 심산 같았다.
죽었다 살아나서 정확히 한 달 만에 내려진 인종의 결단이었다. 일은 저질러졌고 이제 후속 조치를 할 차례였다.
양반들이 집안에서 나와 한양까지 오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먼 곳에 사는 이들은 배를 타고 올 것이고 가까운 곳에 사는 이들은 걸어서 올 것이며 여유가 있다면 말을 타고 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유도 모른 채 무작정 한양으로 온다는 것은 매우 지치는 일이고 짜증스러울 것이다. 해서 인종은 전국 팔도에 파발을 띄울 때 각 관아, 성문, 포구 등에 포고문을 붙이도록 했다. 물론 이것은 소집을 명하고 되돌아오면서 붙이도록 했기에 며칠이 지나서야 왜 인종이 이런 명령을 했는지 대신들이나 백성들이 알게 된다. 또한 대신들과 논하지 않고 급작스럽게 명한이유도 이 포고문에 실려 있다.

하나, 아 조선국이 건국한 지 어언 150여 년이 지났으나 건국 당시의 기상과 포부는 오간 데 없고, 남으로는 왜구와 북으로는 야인들의 위협에 백성들이 신음하니 통탄할지어다. 위로는 금상과 아래로는 의정부, 육조판서들이 밤으로 낮으로 논하고 따져 보아도, 그 해결책이 요원하니 조선의 식자이며 장자인 선비들을 한데 모아 논하고자한다.
하나, 대행 대왕께옵서 가시고 금상이 즉위하여 조정을 일신하고 백성을 애민하여 선정을 펴려 하나, 혼란한 상황을 틈타 금상의 눈을 가리고 제 잇속을 채우며, 부정과 부패를 일삼는 관리가 있다면 탄핵하는 것 또한 선비로서의 책무이다.
하나, 성현의 말씀이 책에 있으되 알지 못하면 실천하지 못하며, 법이 있으되 알지 못하면 지키지 못하며, 스승이 있으려면 제자가 있어야 하는데 스승이 제자를 가려 받게 되면 소외받는 자가 생기게 되어 분란이 생기며 윤리가 땅에 떨어지니 이를 바로잡을 방안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
하나, 대저 신분이란 그 사람의 행실로 결정되는 것인데, 고로 직첩(職牒)이 있다 하여 선비가 아니며 선비란 그 행실이 바르고, 덕이 있으며, 학식이 있어야 하고, 성현의 말씀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행하여야 한다. 하나 작금에 이르러 선비란 대지주이며, 직첩을 가지고 그 위세를 믿고 백성 위에 군림하려만 하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폐단을 바로세울 방안을 논하고자 한다.
위 4가지 사안에 대하여 근정전 뜰 앞에서 군왕이 직접 백성들의 뜻을 경청하려 한다. 혹 불가피한 사안으로 참석하지 못할 시는 글로 올리는 것도 무방하나, 각 사안에 대하여 발언하는 것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한 치의 사심이 들어가지 아니하여야 한다.

포고문이 붙자 조정뿐 아니라 도성과 지방의 글 좀 읽는다는 사람들은 모두 난리가 났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당연하게도 3번째와 4번째 논의 사항이었다.
양반 사회를 뒤흔들 정책이 나오는 것 아니냐며 말들이 많았다.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심각한 문제가 있기도 했지만 굳이 틀린 말도 아니기에 과연 이 말들이 내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조정도 마찬가지여서 대신들과 하다못해 의정부 정승들과도 논하지 않고 국왕 직권으로 행사한 이번 전국양반회합은 참으로 큰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대신들을 불신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다음날 조회를 열었을 때 등청하지 않은 대신들이 보일정도였다.
인종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강녕전으로 삼정승을 불러들였다.
좌의정에서 영의정으로 자리를 옮긴 유관과 신임 좌의정인 된 권벌, 우의정 성세창과 예조판서 윤개, 참의 김익수 등이 인종 앞에 앉아 있다.
“조정 대신들과 하급 관료들이 말이 많습니까?”
조정의 분위기를 묻는 인종이었다.
“어찌 아니 그럴 수 있겠습니까. 국가 대사를 원로와 논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벼슬길도 오르지 못한 이들을 불러 모아 논한다는 것은 고금을 통틀어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우의정 성세창이 총대를 멘 듯 보였다.
“그래요? 세상이 변하면 변하는 대로 군왕도 대신도 따라가야지요? 물이 한곳에 머무르면 썩는답니다. 조선이 건국한 지 150년인데 현상 유지가 안 돼요. 허면 분명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유신해야지요.”
“유신도 좋지만 너무 급작스럽게 변하면 반발이 거셉니다. 허고, 적어도 대신들과 논하신 연후에 행하실 수는 없었사옵니까?”
“유신의 대상이 대신들인데 대신들과 논하란 말입니까?”
인종은 정색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삼정승과 예조판서와 참의의 표정이 가관이었으나 인종을 말을 멈추지 않고 바로 폭탄 발언을 이어 나갔다.
“차제에 잘못된 것은 모두 도려낼 것입니다. 허고 오늘 과인이 다섯 분만 부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의정부와 6조 체제를 새로이 개편하려 합니다.”
“네?!”
갑작스럽게 조정의 중추인 의정부와 6조 체제를 개편한다는 말에 갈피를 못 잡는 대신들이었다. 삼정승에 예조의 대신 둘을 불러들인 것을 보면 분명히 예조와 관련된 것이며, 예조를 나누겠다는 이야기로 보였다.
“전하! 전날의 일도 아직 여론이 들끓는데 또 한 번 폭풍을 몰고 오시려 하시나이까?”
대번에 영의정 유관이 한 소리했다. 인종은 더 들어 보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아, 이번 개편안은 대신들에게 좋은 것이지 과인에게 좋은 것은 아닙니다. 내 곰곰이 생각하여 보니 예조에 속한 아문이 너무 많습니다. 외교, 문화, 교육에 각종 왕실 행사까지 모두 예조에서 담당하지요? 거기에 내의원에 혜민서, 활인서까지 6조 중에 가장 큰 아문 아닙니까? 예판과 예조참의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일일이 감독하고 관리하는 것조차 힘이 들 겁니다. 차제에 문조와 의조로 각각 나누어 문조는 성균관, 춘추관, 시강원, 종학, 집현전, 사학, 홍문관을 이관하고 의조는 기존의 내의원과 전의감. 혜민서, 활인서에 복지청과 의강원을 신설할 것입니다. 신설할 아문은 당장에는 인적 물적 자원이 마련되지 않았으니 당장에는 편제상으로만 두고 차차 채워 나가면 됩니다.”
“하오시면 당장 이 일을 하시겠다는 말씀이옵니까?”
유관의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가 놀라는 이유는 별개 아니다. 바로 지금 군왕이 눈앞에서 법전을 다 뜯어고쳐야 하는 거대한 행정 개편안을 내놨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내년 설이 끝나는 시점에 개각할까 합니다. 또 하나 더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 말이 끝이 아니었다. 삼정승과 두 판서는 이번에 무엇일지 자못 궁금하기까지 했다. 일을 벌여도 너무 크게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