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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인종 1권(14화)
6. 팔도의 양반을 소집하다(2)


“삼정승제도를 폐하고 새로운 직제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대저 조정의 일이란 것이 위로는 왕실을 보위하고 아래로는 만백성의 삶을 편안케 하는 것이 그 목적인데 모든 일이 그렇듯이 한곳에 그 힘이 몰리면 폐해가 발생하고 백성들을 도탄에 빠지게도 합니다. 해서 과인이 여러 날 고민하였습니다. 정승들은 과인을 보위하고 각 아문의 의견을 조율하며 국가의 대사를 나서서 진두지휘하는 중요한 자리요. 해서 더욱 그 기능을 세분화하여 나누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소.”
삼정승들은 인종이 도대체 얼마나 깜작 놀랄 일을 준비했기에 저렇게 뜸을 들이나 하며 귀를 기울였다. 인종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요는 이렇습니다. 이번에 양반들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게 되면 그중에 학식이 뛰어나고 품행이 방정한 자로 30명을 선발하여 입법의원으로 삼아 변화하는 나라의 사정에 맞게 입법과 개정에 관한 일을 맡길 겁니다. 영의정이 수장이며 그곳에서 논의되어 발의된 법을 영의정이 정리 취합하여 과인에게 올리면 과인이 가부를 결정할 것입니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의원들은 6년간 활동이 보장될 것이며 2년에 1/3씩 교체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것입니다. 이를 의법부라 부를 것입니다.”
“전하, 의법부는 오직 법만을 다룹니까?”
“주 업무가 그리될 것입니다. 물론 그리 나누는 것은 법만 만들라고 그리한 것은 아니고 의법 의원들은 자신들이 발의하여 통과된 법이 잘 지켜지는지 감시 감독하는 역할도 할 것입니다. 하니 그 임무가 막중하다 하겠습니다. 해서 의원들에게는 의원직에 머무는 동안은 일정 부분 면책특권을 줄 예정입니다. 법을 제대로 지키는지 감시하고 상소하기 위해서는 방해하는 이들에게 휘둘리지 않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취하는 조치입니다.”
“허면 사헌부와 사간원은 홍문관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본래 법령의 재정과 개정 업무는 사헌부와 사간원이 하는 일 중에 하나였다. 거기에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 잘못된 것을 간하거나 조정 대신들의 잘못된 것을 간하여 처벌케 하는 것도 그들의 임무였다. 한데 의법부라며 새로운 관청을 만들게 되면 그들의 업무가 중첩되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삼사는 그대로 존치될 것입니다. 막강한 권한을 한곳에 두지 않으려 개각하는 것이니 없앨 수는 없지요. 주요 업무는 내 따로 분리하여 정해 줄 것입니다. 하나 사헌부나 사간원은 의법부 의원과 대신들의 감시 감찰 업무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며 법 제정과 개정에 관한 업무 또한 그대로 유지될 것입니다. 다만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정해질 것이며 발의 또한 과인에게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의법부에 넘겨주면 의원들이 심사하고 논하여 과인에게 올릴지 말지를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해됩니까?”
“알겠사옵니다. 허면 모든 법의 재정과 개정은 의법부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그렇소이다. 더하여 포청을 형조 소속으로 바꾸고 차차 전국 팔도로 넓혀 나갈 것입니다. 해서 지방 수령들이 그동안 가지고 있던 사법권을 중앙의 형조로 일원화 하도록 할 것입니다. 이는 지방 향반들과 지주들이 수령들과 짜고서 수탈하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인종의 말에 대신들은 입을 벌리고는 대답을 선뜻하지 못했다. 포청의 확대는 전면적인 직제 개편과 행정체계 개편을 말하는 것으로 현재 포청은 한성부 소속이었다.
지방 부목현의 사법 업무가 대부분 각 지방의 수령방백들이 군권과 함께 같이 가지고 있었기에 이 문제는 법의 대대적인 개정과 행정체계 개편이 같이 이루어져야 하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였다.
하루 이틀 만에 만들어질 문제는 아니고 적게는 수년 많게는 수십 년이 걸려야 정착될 문제였으면 잘못하다가는 권력 누수 현상에 재정 낭비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에 쉽게 다룰 수없는 문제였다. 물론 인종도 그것을 알기에 서두를 생각은 없었으며 우선 중앙을 바꾸고 지방은 사정에 따라 조금씩 바꿔 나갈 예정이었다.
“허고 마지막으로 삼정승이 했던 업무는 총리직을 신설할까 합니다. 총리는 두 명으로 하나는 국무총리라 부르며 병조를 뺀 나머지 아문들을 이끌게 될 것입니다. 기존의 삼정승을 보좌하던 관리들은 모두 총리를 보좌하면 되니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나 병조의 수장을 국방총리라 하여 행정부와 분리시킬 생각입니다.”
“전하, 허면 영의정이라는 이름 또한 바뀌는 것이 옳지 않겠사옵니까?”
더 이상 놀랄 힘도 없는 대신들은 이제 묵묵히 인종의 말을 들으며 가닥을 잡고 있었다. 정확히 인종이 원하는 것은 권력의 분립과 견제, 업무 효율을 위한 구분이었다.
“영의정이 본래 수상(首相)이라 불렸으니 수상이라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수상은 백성들의 삶을 살펴보아 필요한 법의 재정과 개정안을 취합하여 과인에게 올리고 각 아문의 관리들이 새롭게 재·개정된 법을 잘 지키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맡게 되니 그 중함은 기존의 삼정승과 다르지 않을 것이오.”
“알겠나이다. 허면 삼정승 제도가 폐지되고 수상과 국무총리, 국방총리로 각각 분리되며 문조와 의조가 새롭게 신설되는 것이 전부입니까?”
“신설되는 것은 지난번 집현전과 함께 이것이 전부입니다.”
유관은 무엇인가 더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럽게 다시 질문을 건넸다. 기실 국방총리 문제가 대신들에게 가장 큰 화두가 될 것이라 여겼으나 이상하게도 국방총리직의 신설에 대한 말은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자리가 위협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만 있는 것 같았다. 대신들 입장에서는 조금의 조정은 있으나 새로운 아문이 생겨나며 조정에 자리가 더 많아지는 것이 자신들에게 불리할 것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어찌 되었든 이번 개각은 더 논의를 하여 모자라거나 부족한 부분은 더 다듬어 내년에 단행할 것이니 각자 돌아가 고민을 더해 보세요.”
“알겠나이다.”
머릿속이 복잡한 대신들은 인종과의 대화를 마치고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각자가 속한 파당을 급히 불러들여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물론 새롭게 신설되는 의법부와 문조, 의조에 자신들이속한 파당 인원들을 최대한 들이밀 방안을 찾을 것이 자명했다.

그들도 그리고 인종도 지금은 모르지만 후세에는 이것을 유신이라하고 경장(更張)이라 부른다. 후세에 이것은 을사(乙巳)혁명, 을사경장(乙巳更張)이라 기록된다.
대신들이 나가고 인종은 긴 한숨을 쉬었다. 사실 이번 개각을 통해 인종은 사림 세력과 신분이 낮은 계층의 인사들을 대거 기용할 생각이었다. 해서 이번에 권력에서 물러나는 인사들 중 일부는 거칠게 항의할지도 몰랐다. 다시 또 인종을 해할 음모를 꾸밀지도 모른다.
“판의금부사와 내금위장을 들라 하라.”
“네, 전하!”
인종은 대신들과의 자리가 끝나자 즉시 또 명을 내린다. 이미 입 밖으로 나온 말이니 되돌릴 수는 없고 그렇다고 그일 때문에 조정이 술렁이게 놔둬서도 안 되니 뭔가 조치를 취해놓으려고 하는 것이다.
“형판 윤임도 들라 하라.”
“네, 전하!”
서탁을 탁탁 소리가 나게 손가락으로 때리면서 대신들을 기다리던 인종은 문뜩 이순신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이순신이 탄생하는 년도가 아닌가?”
저승 생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조선의 위인이 이순신이었다. 당시의 왕인 선조는 자신의 직계 후손은 아니지만, 참으로 한심해 보였다.
그깟 정통성이 뭐라고 그것에 목매달며 그리 힘들게 살아가는지 가끔 이승에 나올 때 옆에서 지켜보면 한심해 보일 때가 많았다.
전날 왕실 종친들이 들어왔을 때도 덕흥군을 보면서 훗날 왕의 아버지가 될 사람인데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 호사 한 번 못 누려 보고 죽어 가겠구나라며 안쓰럽게 바라 본 적도 있었다.

강녕전 안으로 판의금부사와 내금위장이 들어왔다.
“판의금부사는 대신들의 동태를 살피고 언제 누가 어디로 모여 대화를 나누는지 확인해 보고하라, 내금위장은 궁의 경계 인원을 두 배로 늘리고 이것을 좌우포도청에 전하여 금일부터 9월 15일까지 한양을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길목에 경계를 세우고 수상한 자가 있으면 죄가 없다고 해도 15일까지는 구금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하라.”
두 사람은 인종이 벌인 일을 알고 있기에 반문 없이 명을 시행하러 밖으로 나갔다. 한참을 기다리자 형판이 들어왔다.
“찾아 계시옵니까?”
“형판은 전옥서에 명하여 9월15일까지는 어느 누구도 옥에서 나가는 사람이 없게 하세요. 형판도 아시다시피 지금은 국가 대사가 걸린 중대한 시기입니다. 하니 각별히 유념하세요. 그리고 제가 의금부에 명해 대신들의 동태를 살피라 했지만 의금부만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니 형판께서 각별히 소윤과 훈구 세력들을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알겠사옵니다. 한데 창경궁은 어찌해야 하올지.”
사실 가장 큰 문제가 창경궁에 있는 문정왕후였다. 대비였기에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만약 윤원형과 훈구 세력이 손잡고 왕위를 찬탈할 생각이라면 문정왕후의 제가를 받아야 했다. 왕을 지목하여 세울 수 있는 권리가 문정왕후에게는 있는 것이다.
윤임 또한 그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문정왕후를 내치자니 피를 봐야 하는데 봐도 너무 많이 봐야 한다.
경원대군에 공주들, 거기에 소윤 일파에 훈구 세력들까지 모두 한꺼번에 몰아내게 되면 조정 자체가 마비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죽자 계모와 이복형제들을 내쳤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왕권에 흠집이 생기는 것이다.
“어차피 일을 모의한다면 윤원형이 중간에서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하니 윤원형을 집중감시하세요.”
“알겠습니다.”
형판이 조심스럽게 물러나자 한숨을 돌린 인종이었다.

인종 1년 8월 9일 3번째 기사.
전라도 마도에 정박한 중국 배에 대해 하선을 금하고 병조에게 지키게 하다.

전라도 관찰사 심광언(沈光彦)의 계본에,
“중국 배 1척이 마도(馬島)에 정박해 있으면서 편지 두 장을 물가 나무에 매어 놓았는데, 그 하나에는 ‘나는 대명(大明)의 상선으로 일본과 무역하러 왔는데 당신들 항구가 어디인지를 모르겠다. 지금 항구로 들어가려고 미리 알리니 당신들은 회신하기 하기 바란다.’ 하는 것이었고, 그 두 번째 편지에는 ‘내가 전년에 일본에서 직접 무역을 했는데 그들도 천성의 공도(公道)는 한 가지였다. 지금 당신들 항구에 왔으나 당신 나라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곧바로 항구로 들어가려고 하니 한두 사람이 와서 대면했으면 좋겠다. 항구로 들어가서 물화를 매매했으면 좋겠으나 지금은 그렇게 할 수가 없어 토산물 한 가지를 갖추어 올리니 웃는 낯으로 받아 주기 바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였는데, 예조가 아뢰기를,
“이 황당선(荒唐船)도 필시 중국인들일 것입니다. 전일 하륙(下陸)한 자들도 많아 호송하기가 어려우니 모름지기 개유(開諭)하여 하륙하지 말게 하도록 대신들과 의논하여 하유(下諭)하소서. 그리고 도둑질할 걱정도 없지 않으니 병조로 하여금 방비하게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인종 1년 8월 9일 4번째 기사.
사간원이 표류해 온 중국인이 죄인이므로 대우 문제에 대해 아뢰다.

간원이 아뢰기를,
“이번에 표류한 당인들은 일본에 내왕하며 물화를 가지고 이익을 취하는 자들로 금법을 어기고 바다에 나왔으니 바로 상국의 죄인들로서 보통 사람들이 표류해 온 것과 같이 대우해서는 안 됩니다. 헌부가 아뢴 내용이 권도에 맞으니 널리 조정 의논을 수합하여 절충해서 처치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뜻이 지당하다. 전일 헌부가 아뢴 내용을 대신들과 널리 의논하여 할 수 없이 호송하기로 이미 결정을 보았으니 고치기가 어렵다.”
하였다.

전일 심중의 경장을 할 것을 내비치고 난 뒤 의정부 삼정승과 대신들 간에 설왕설래가 많았다. 의금부에 내금위군사들이 서슬 퍼런 눈빛으로 돌아다니니 함부로 준동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모이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윤원형 대감은 거 말씀이 전혀 없습니다. 뭐라 말 좀 해 보시지요?”
예조참의 김익수가 공조참의이며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에게 지금의 사태를 어찌 보는지 물었다. 정확히는 문정왕후에게 들은 말이 없냐는 물음이었다.
“저야 뭐 할 말이 무에 있겠습니까? 그저 상께서 하라면 해야지요. 또 공조는 변한 것도 없고요.”
“변한 것이 없다 하나, 언제까지 공조에 계실 것도 아니고, 아! 지방 사대부들을 불러 모아 4조목에 대하여 논한다하면, 그러니까 그 4조목이 신분혁파가 은연중 들어 있다는 세간의 말이 우려도 안 되십니까?”
“아, 그거야 사대부들이 모여 논할 때 주상께 간하여 알아서 바로잡겠지요.”
윤원형은 속으로야 할 말이 많았지만 섣불리 말을 할 수 없었다. 궁 안에서 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든 감시하는 이들이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또한 대신들이 모여 있는 이곳 이조의 집무실에도 사헌부 장령이 한쪽에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역모죄로 바로 붙들려 갈 판이었다.
더 가다가 위험한 발언이 나올 것 같아 윤원형은 눈짓을 보이며 예조참의 김익수의 입을 막았다.
인종의 발 빠른 대처로 쉽게 경거망동하지 못하는 대신들이었지만 그다지 큰 문제를 일의 킬 만큼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반응이 있었다.
주로 사림 세력들이 하는 말로, 국가를 운영해 나가는 실무를 양반들이 맡아서 하니 양반들의 말을 듣는 것은 당연하며, 4조목 또한 틀린 말이 하나도 없고 새롭게 의정부와 6조를 개편한다는 것도 그간 조선 건국 후 150년 동안 변하지 않았으니 더 효율적으로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들은 강력한 군왕파인 것이다.
무엇보다 사림파에서 인종의 행보에 지지를 보내는 이유는 벼슬할 수 있는 자리가 늘었다는 것이다. 말이 의원이지 법을 다루는 인원 30명을 새롭게 뽑는다는 것은 대단한 권력의 등장이었다.
그런 이들 30인 중에 대부분이 사림 쪽에 붙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었고 새롭게 총리 부를 신설한다거나 6조에서 8조로 확대 개편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고위직의 자리가 많이 늘어난다는 말이었으니 사림 쪽에서 보자면 대단히 환영할 만한 정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