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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인종 1권(15화)
6. 팔도의 양반을 소집하다(3)
인종 1년 8월 10일.
인종은 소소한 일로 바쁜 와중에도 북방으로 떠나는 용양위의 일부 약 2,500의 군사들을 마중했다. 나름 바쁘고 힘든 시기임에도 2,500이나 되는 군사를 준비시켰다는 것에 병판의 능력을 다시 보게 했다.
물론 급박한 상황이라면 한양을 지키는 병사 5만이 순식간에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간 작은 국지전을 빼고는 큰 전투가 없었다. 세종 대왕 때에나 전투다운 전투를 치러 본 조선군이었다.
군사들을 마중하고 들어온 인종은 뭔가 생각이 난 듯 몇 장의 종이에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리고 난 뒤 상선을 시켜 군기시정을 불러오라 시켰다. 군기시의 실질적 수장이었다.
“전하! 군기시정 이진 입시이옵니다.”
“가까이 오라.”
이진이 인종 앞으로 다가와 앉자 인종이 그려 놓은 화선지를 땅바닥에 펴고 그것을 보라 했다.
“전하, 이것이 무엇입니까? 마차인 듯도 보이옵니다만.”
“자전차라는 것이다. 잘 보거라 이것을 과인 대신 네가 군기시의 장인들을 선별하여 만들 도록하라, 원리를 이해하겠느냐?”
“마차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옵니다. 한데 말이 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끄는 것이 옵니까?”
“잘 보라 이 앞에 사람이 앉아 발로 이 쇠틀을 돌리는 것이다 허면 이 쇠틀과 물려 있는 쇠줄이 돌면서 뒤에 있는 바퀴를 따라 돌리는 것이다. 이해가 가느냐?”
“가옵니다. 한데 이 앞뒤로 바퀴가 두 개밖에 없는 것은 어찌 균형을 잡고 가옵니까?”
“이런, 군기시정은 외줄 타는 재인도 못 보았는가? 그가 어떻게 균형을 잡는지 생각해 보라, 이것은 도성처럼 길이 잘 닦여 있는 곳에서 홀로 이동을 할 때 탈 수 있는 탈 것이니라 하고 뒤에 짐칸이 붙어 있는 것은 사람을 태울 수 있기도 하니, 적은 힘을 들이고도 많은 물품을 싣고 운반할 수 있는 기물 이니라.”
인종이 그려 준 그림은 두 장이었다. 일반적인 바퀴 두 개의 자전거와 바퀴 세 개로 이루어진 화물 운반용 자전거였다.
“네가 명심해야 할 것은 화물용 자전차이니라. 이것은 두 개를 만들되 하나는 짐을 나르는 용도로 만들고 또 하나는 사람을 싣고 다닐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알겠느냐?”
“알겠사옵니다.”
대답을 끝내고 나가려는 이진을 인종이 다시 잡았다.
“하나 더 있다. 이것은 저 명국 넘어 색목인들이 사는 나라에서 개발하였다는데 극비로 입수한 것이니 꼭 성공해야 한다! 아직 명국이나 왜도 성공하지 못한 것이야! 하니 이번에 군기시에서 꼭 성공 하여 만들어 낸다면 큰 상을 내릴 것이야!”
새롭게 꺼내 펼쳐진 종이에는 다소 복잡하지만 물레와 같은 방식의 기계가 보였다.
“이것은 베를 짜는 기물이옵니까?”
언뜻 보기에는 그런 듯 보였다.
“이것은 초지기라는 기물이다. 종이를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지 이해가 가느냐?”
“허면 이것을 돌려 뜰채에 종이를 떠서 곧바로 물기를 빼고…….”
이진은 신기한 듯이 인종이 그려준 종이를 뚫어져라 보았다. 만약 인종의 말대로 초지기가 성공만 한다면 일대 혁신일 것이다.
인종이 초지기를 지금 그려서 주는 이유는 간단하다. 앞으로 대량으로 출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종이의 수요가 급증할 것이 자명했는데 지금처럼 장인들이 한 장씩 뜰채에 떠서 만들어서는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인종의 명에 이진은 매우 흥미로운 시선으로 그림을 들을 살펴보았다. 그는 본래 새로운 기물에 매우 관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인종 1년 8월 12일.
강화도로 내려간 해안군에게서 장계가 올라왔다. 내려 간 지 8일만이다. 도공과 목수를 대리고 내려간 해안군은 강화에 도착하자마자 강화유수에게 협조를 얻어 급하게 도요를 만들고 목수는 수차 등을 만들게 했다.
그런 뒤 다시 유수에게 병사 20명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여 해안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땅을 개간하여 소금밭을 만들었다.
준비를 마치고 도공이 옹기 굽듯이 바닥에 깔 도기를 구어 내자 바닷물을 저장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소금밭 바닥에 깔아 실험을 시작했다.
급하게 3일 만에 이루어진 실험이었다. 물론 당연히 실패하였다. 물만 가두어 말리면 소금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처음에 바닷물을 끌어다 저수지 등에 며칠간 저장하여 염도를 높여야 한다. 이런 1차 증발 과정이 약 7일이 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염도 높은 소금물을 다시 며칠간 따로 저장했다가 염도가 23―5정도까지 높아지면 그때서야 2차 증발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2차 증발 과정은 미리 증발시켜 만들어 둔 소금물을 넓은 바닥에 펴서 부어 놓으면 약 반나절에서 하루가 지나면 하얀 결정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비로소 그것을 끌개로 긁어모으면 천일염이 되는 것이다.
인종이 적어 준 내용에도 당연히 그런 내용이 있으나 성격 급한 해안군은 8일 만에 장계를 올려서는 생각처럼 잘되지 않는다며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오히려 따져 물었다. 해서 인종은 다시 세세하게 하나씩 짚어 가며 내용을 설명했다. 개념부터 다시 세워 줘야 할 판이었다.
장계에 답신을 보내 놓고 인종은 오랜만에 중전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근래 들어 중전 박씨는 시어머니인 문정왕후의 눈치 때문인지 안색이 좋지 못했다.
무슨 문제가 있냐고 해도 대답을 시원스레 하지는 않았다. 중전이 된 지 이제 1년도 안 되어 내명부를 관리하느라 힘이 든 것인가 생각했지만 내명부는 여전히 대비인 문정왕후의 입김이 강하다.
부리는 나인들부터 중전보다는 문정왕후의 명을 우선으로 하는 형편인 것 같았다. 공연히 부딪쳐서 좋을 것 없어 보여 인종은 넌지시 일거리를 하나 던져 주었다.
“중전, 내 곰곰이 생각하여 보니 중전이 궁에 들어 온 지 20년이 넘었지요?”
“그리 된 것 같습니다.”
“허면 궁중의 대소사부터 수라간 돌아가는 것까지 중전이 모르는 것은 없을 듯하고, 또한 중궁전 상궁들도 그 직책이 낮지 않으니 궁중의 음식이나 복식 등 후세에 남길 책을 한 번 저술해 보는 것은 어떠시오? 내 마무리가 되면 집현전에 일러 감수하게 하여 후세에 남을 만한 책으로 만들라 해 보겠소.”
“궁중의 삶을 적은 책을 말이옵니까?”
“예를 들면 이런 것이오. 목차를 나누어 궁중의 요리, 복식, 예절, 대례, 제례처럼 궁중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사 모든 것들을 각기 분류하여 소상하게 적고 도화서에 일러 그림까지 첨부한다면 후손들이 보고 조상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요. 또한 좋은 것은 참고하여 이어 나가지 않겠소?”
“하오나…….”
중전은 인종의 그 말에 솔깃했지만 금세 입을 다물었다. 인종은 중전이 무엇 때문인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걱정 마시오. 그 책은 언문으로 작성하는 것이 좋을듯하오. 허면 사대부들만이 아니라 일반 양민들도 볼 수 있지 않겠소? 또한 그 책이 필요한 이는 왕가의 아녀자들이지 사내들이 필요하겠소?”
“그렇사옵니다. 전하, 생각해 보니 그런 책이 있다면 참으로 소용이 많을 것이옵니다. 말로 한 번 들어서는 기억치 못할 내용이 많사오니 책으로 남긴다면 두고두고 참고하여 쓰여 질 것 이옵니다.”
중전은 인종의 말에 활짝 웃으며 반겼다. 아무것도 안 하고 노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엇 하나 마음 둘 곳 없었는데 할 일이 생겼으니 기쁜 것이다.
자식이라도 있으면 자식 보는 낙이라도 있을 터인데 불쌍한 중전은 자식 하나도 없는 것이다.
후일 이 책들은 조선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일반 양민들이 생활이 좋아지면서 사대부들과 같은 격식과 품위를 유지하고자 했다. 물론 그 안에 담겨 있는 뜻까지는 알지 못하더라도 외형적인 화려함만은 따라하고 싶은 것이다. 한데 누구나 읽을 수 있는 한글로 왕실의 삶을 알 수 있는 책이 있으니 그것을 참조하지 않을 리가 없다.
특히 따라 해도 문제 삼지 않는 음식과 실내를 장식하는 여러 침구류와 장식 등은 부유해진 양인들에게는 자신의 부유함을 나타내는 척도가 되었다.
인종 1년 8월 14일.
용양위의 2차 부대가 출발을 하였다. 마중을 끝낸 인종은 봉성군을 불러들였다. 한창 혈기 왕성할 나이인 봉성군은 인종이 부르자 한달음에 궐로 들어왔다.
지난번 약속이 있으니 호랑이 사냥에 대한 내용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더구나 며칠 전 해안군이 인종의 명으로 강화도에 내려간 사실을 알고 있기에 자신에게도 특별한 명이 떨어질 것이라 기대를 했다.
권력을 잡을 수 없는 왕자는 너무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 하고자 하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국왕에 달려 있다.
국왕이 신뢰를 하여 일을 할 수 있게 허락만 한다면 충분히 지겨운 삶이 아닌 나라를 위해 큰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적어도 세종 대왕 시절까지는 그랬다. 단종을 쫓아내고 세조가 즉위하면서 그런 기회가 사라졌지만 엄연히 최상위의 신분인 왕의 자식이고 그에 못지않은 지식을 소유했으니 자격은 충분하다.
“전하! 봉성군마마 드셨사옵니다.”
“들라 하라.”
봉성군은 안으로 들어 인사를 건네고는 인종의 건강 상태를 물었다.
“전하, 강녕하시옵니까?”
“그래, 많이 좋아졌다. 요사이 뭘 하고 지내누?”
“형님 전하께서 부르실까 하여 집 안에 머물며 경서를 탐독하고 있었나이다.”
“허허, 그래? 가깝게 지내는 동무들은 좀 있느냐?”
사실 대답이 뻔하다. 왕자와 속을 터놓고 지낼 친구가 있기는 힘들다. 그저 비슷한 처지의 동기간이 그나마 제일 자주 어울릴 뿐이다.
“덕흥군이나 덕양군 형님과 자주 어울립니다. 딱히 어울리는 사대부의 자제들은 없사옵니다.”
“그래? 이런 한창 나이인 것을 오늘 과인이 너를 부른 것은 전날 궐에 들었을 때 호랑이 사냥을 이야기하였었지? 기억하느냐?”
“물론이옵니다. 허면 진정 호랑이 사냥을 하러 떠나는 것이옵니까?”
“하하! 그렇다. 진정 큰 호랑이지 북방으로 가 보지 않겠느냐?”
“북방이라 하오시면……?”
인종은 봉성군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충심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문정왕후와 소윤 일당이 그 많은 왕자들 중에 봉성군을 역모로 몰아 사사했을까. 그것은 봉성군의 자질이 훌륭하고 능력이 출중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용양위가 북방으로 가는 것은 들어 알고 있겠지?”
“그렇사옵니다. 올가을 추수가 끝나면 호인들이 약탈을 할 것이 확실시되어 대비 차원으로 보내고 있다 들었습니다.”
“그렇지, 해서…… 나를 따라 나오너라.”
말을 하다말고 인종은 봉성군을 이끌고 강녕전을 나섰다. 뒤따르는 시종들을 멀리 떨어트리고 천천히 걷던 인종은 봉성군을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봉성군은 쭈뼛거리며 인종에게 바짝 붙었다.
“네가 이징옥이 되어 주어야겠다. 실패한 이징옥 말고, 성공한 이징옥 말이다.”
이징옥이 누구인가 세조가 김종서 등을 참살하고 자신의 조카 단종을 쫓아내어 정권을 잡고서 이징옥을 김종서의 심복이라 하여 죄 없는 대도 파직하자 새로 부임한 도절제사를 참수하고 스스로 대금국을 세워 황제위에 올랐으나 수하들의 배반과 약속했던 여진족의 배신으로 그의 반란은 미완으로 끝나 버렸다.
그는 분명 실패했다. 하지만 가능성도 보여 주었다. 그가 우발적이 아닌 계획하고 준비하여 실행했다면 필시 만주에는 대금국이 들어섰을 것이다. 성공한 이징옥은 그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봉성군은 인종의 말에 너무 놀라 대답을 하지 못했다. 왕자로 태어나 어찌 용상을 꿈꿔 보지 않았겠는가. 하나 자신의 처지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꿈이었다.
순간 봉성군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이것은 분명 함정이다. 나를 제거하려 형님 전하가 시험을 하고계신 것이다.
“어찌 그리 황망한 말씀을 하시나이까? 소제에게 어찌 천벌 받을 짓을 하라 하시나이까.”
인종은 봉성군의 대답을 듣고 그리 대답할 줄 알았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안다. 네가 지금 두려워하는 것이 뭔 줄 알고 있다. 나는 너를 시험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럴 이유도 없다. 이미 왕세제는 정해지지 않았느냐?”
“하오시면……?”
“북방의 만주는 말이다. 고조선의 땅이며 고구려의 땅이고 대진국의 땅이다. 허고, 우리의 할아버지인 태조 대왕 할아버지가 사셨던 땅이지 명이 지금 자신들의 땅이라 하지만 어찌 그게 명의 땅이 될 수 있느냐? 역사가 증명하고 사서가 증명하지 않느냐? 명국이 기울고 있다.”
“명국이 기운다고 하셨나이까?”
“원나라가 다시 되살아나고 있음이야. 세작의 정보로 조만간 대규모 전쟁이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수년 안에 말이다. 한데 아국 조선이 그런 기회를 놓쳐서야 되겠느냐?”
“하오나 명은 대국이온데……?”
“원은 대국이 아니었느냐? 한제국도 당도 수도 모두 대국이었다. 그러나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지 오직 아국 조선만이 한 번 일어서면 수백 년에서 천 년을 가지 않느냐? 근본이 다름이야.”
봉성군은 인종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복잡하게 머리가 돌아가고 있었다. 이징옥처럼 실패하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할까?
경원대군이 왕이 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닌가? 군사를 모아 만주를 획득하면 형님께서는 황제가 되시는 것이고 나는 왕이 되는 것인가? 어찌해야 하나, 한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못한다고 도망쳐야 하나? 하지만 너무도 하고 싶다. 저 만주 벌판을 내달리며 꿈을 펼쳐보고 싶다. 무장으로서 군주로서 만인의 위에 당당하게 서고 싶다.
순간 복잡하게 돌아가는 머리와 달리 심장은 요동치고 있었다. 뜨거운 피가 온몸을 휘돌아 심장에 다시 들어오며 봉성군의 온몸이 흥분 상태가 되어 간다.
봉성군은 자신이 이 정도로 강렬하게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고 느낀 적이 없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지금 자신은 마치 열병에 걸린 것처럼 당장이라도 북방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완아!”
“네, 전하!”
인종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봉성군을 바라보았다.
“나는 너의 야심을 아느니라. 연약하고 정이 많은 환이보다는 네가 더 왕재로 뛰어나다는 것도 안다. 하나, 그렇다고 아바마마의 업을 대를 이어 반복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하여 너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명은 짧으면 5년 길면 10년 안에 대 환란에 휩싸일 것이다. 이는 필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 과인이 세작을 통하여 알아본 바로 알탄 칸이 부족을 통합하고 명을 향해 칼을 갈고 있다고 한다. 곧 칼을 빼들려 한다는 것이야. 하니 너는 북방으로 가거라. 가서 그때를 준비하며 기다려라. 그리고 때가 오면 멈춤 없이 내달리는 것이다. 너의 모든 능력을 펼쳐 보이 거라! 봉황이 되어 하늘을 나는 것이다. 할 수 있겠느냐?”
봉성군 이완은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형님께서는 오래전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때가 가까워 오고 있는 것이다. 마냥 연약하고 효심이 강한 형님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는 진정한 군왕이었다.
때를 기다려온 용이었다. 언제나 하늘 위로 날아오를 준비를 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의 생각을 하는 형님이라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많은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봉성군은 결심이 서자 즉각 답을 하였다.
“전하! 성심을 다해 명을 봉행하겠나이다. 전하께 저 드넓은 만주를 바치겠나이다.”
그날 이후로 봉성군은 두문불출하더니 용양위의 부대가 마지막으로 북방을 향해 떠나자 그들을 인솔하여 북으로 떠났다.
그에게는 이례적으로 종2품의 북방총병사라는 직함이 주어졌다. 왕제에게 실직의 군을 통솔하는 권한을 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수없이 신료들이 만류하였고 상소가 빗발쳤다. 그러나 인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이것 많은 양보할 수 없다 엄포를 놓았다.
더 이상 이 문제를 간하는 자는 왕명을 거역한 것으로 간주하여 파직을 시키고 유생은 과시를 볼 수 있는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어명을 내렸다. 그래도 과감하게 상소를 올리는 이들은 있었다.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물고 늘어지는 이들이었다. 인종은 과감하게 그런 이들은 모두 파직을 시켰다. 물경 13명에 달하는 관리가 파직을 당하고 낙향을 해야 했으며 수십의 유생들이 과시를 볼 권한을 박탈당했다.
언로를 막는 처사라며 이 문제로 또 상소가 빗발쳤다. 그러자 인종은 승지와 내관에게 이문제로 올라온 상소는 애초에 올리지 말라는 명을 내렸다.
한동안 그렇게 소란스럽던 조정은 인종이 꿈쩍도 하지 않자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13명의 관리를 파직하면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을 보고 대신들은 더 이상 인종을 몰아세우면 큰 사단이 날까 두려워 약간씩 주춤거리며 물러서고 있는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