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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인종 1권(20화)
8. 양반회합(3)
인종 1년 9월 11일.
제1차 국정보고대회 2틀 째 상이 근정전 뜰 앞에 나서다.
밤사이 한양은 불이 꺼지지 않고 시끌벅적했다. 마치 잔치라도 하는 듯 여기저기서 술잔이 돌고 간혹 가다 싸우는 소리도 들렸다. 자신의 의견과 맞지 않으면 고성이 오가기도 한 모양이었다.
좌, 우포청의 포졸들은 혹시나 모를 불미스러운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밤새 도성을 순시하며 치안을 확보했고 내금위 군사들도 기회를 틈타 혹시 모를 일이 벌어질까 하여 비상근무를 섰다.
인종이 근정전 뜰 앞에 나서서 다시 대화를 재개했다.
“과인은 참으로 기쁘도다. 어제 이조관원에게 물으니 접수된 답신이 1만 건이 넘었으며 의금부 관원 또한 부패 관료에 대한 탄핵을 주청한 상소가 100여 건에 이른다 하니 경들의 과인에 대한 충정이 참으로 갸륵하다. 오늘은 어제의 논의에서 하지 못하였던 문제를 논하고자 한다. 먼저 법전에 관한 것을 말하고자 한다.”
인종이 뜬금없이 법전에 관해서 들고 나오자 양반들이 웅성거렸다. 법전의 개정과 재정은 의법부를 두어 관할하게 할 것이라 했기에 따로 무엇을 논하려는지 의구심이 든 것이다.
혹시라도 이중에 몇몇이 의법부 의원으로 벌써 발탁된 것은 아닌가 하는 호기심도 들었다.
“아국 조선의 법전은 매우 뛰어나다. 내 듣기로 고금을 통틀어 이보다 뛰어난 법전은 없다 들었다. 하나 그렇다고 하여 이 법전이 완벽한 것은 아니며,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도 못한다. 하여 의법부를 두어 시대에 맞춰 개정하고 없는 법은 새로 제정하려 하는 것이다. 하나 그전에 논할 것이 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법전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이 법을 지켜야 하는 백성들 중 대부분은 이법에 관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 법전이 한자로만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일부분은 대명률에 따르게 되어 있으므로 대명률을 모른다면 법을 지킬 수가 없다. 하여 과인이 생각하기로 양인들과 천인들 또한 이법에 대하여 안다면 몰라서 죄를 짓은 일은 없어질 것이라 여기기에 법전을 정음으로 번역하여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백성이 법을 알도록 교육하고자 한다. 이것에 관하여서는 따로 논하지 않고 1각 후 거수로 결정하여 많은 수가 찬성하면 시행할 것이고 그렇지 않는다면 뒤로 미룰 것이다.”
물론 결정이 된다고 바로 작업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형전에 기록된 내용 중 대명률부분은 따를 것은 그대로 넣고, 새롭게 바꿀 것은 바꿔서 완벽하게 정리한 후에 출판할 계획이었다. 이런 기회가 흔하지 않으니 우선 양반들의 동의를 구해 놓으려는 생각이다.
물론 예상대로 양반들은 뚜렷하게 반대할 명분이 없으니 찬성하였다. 또한 천거하여 관직을 주는 제도도 폐지되었다. 실력을 보고 뽑지 않고 인맥을 통해 뽑는 것은 여러 폐단을 낳는다는 인종의 말에 대부분의 지방 양반들이 찬동한 것이다.
해서 훈구 세력은 더욱더 세력이 축소될 듯 보였다. 오로지 과시와 업무 실적만으로 평가하여 직을 주도록 제도를 바꿔나 가기로 했다.
사실 전날 논했던 사안보다 다수결로 결정하게 된 사안들이 조선에 더욱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 같았다. 당장에 궁 밖에서 결정된 내용이 알려지자 반응이 더욱 뜨거웠기 때문이다. 천거제도가 사라진다는 말에 지방 양반들은 환호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고 천거를 통해 벼슬길에 나아가려 했던 양반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더불어 2년에 한 번씩 과시가 의무적으로 치러진다고 하니 더욱 환호성이 높아졌다. 뭐라고 해도 양반들에게는 벼슬에 오르는 것이 최고의 명예이고 권력과 신분을 유지할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과인은 매우 기쁘도다. 경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과인의 물음에 성심으로 답하는 자세가 참으로 어여쁘도다. 과인은 그러한 마음에 답하고자 내년에 과시를 시행할 것이다. 허고 내후년에 다시 제2차 국정보고대회를 열 것이다. 제2차 국정보고대회는 더욱 많은 준비를 하여 올해 논했던 사안의 후속 조치에 관한 것을 평가하고 또한 미진한 것은 재차 논할 것이다. 올해 뽑히게 될 의법부 의원 중 1/3을 2년마다 한 번씩 새롭게 바꿔 백성의 목소리를 충분히 법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올해는 의정부 삼정승과 6조 대신들과 함께 과인이 심사숙고하여 뽑도록 할 것이며 며칠 안에 그 해당자를 발표토록 하겠다. 내후년에는 참가한 자들 중 1/3을 다시 뽑도록 할 터이니 이번에 뽑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항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거두지 말라 마지막으로 과인의 명에 불원천리 달려와 준 경들이 매우 자랑스럽도다. 자 그럼 내후년에 다시 보도록 하자.”
인종의 말이 끝나자 양반들이 하나같이 주상 전하 천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주상 전하 천세! 천세! 만수무강하소서!”
“성군이시옵니다. 천세! 천세!”
그 시각 훈구 세력들과 윤원형 일파는 국왕 뒤에 시립하여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커다란 충격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정치를 하려는 인종이 권력의 핵심이랄 수 있는 양반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내자 얼굴빛이 흑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대신들과는 논의 한 번 없이 나라의 근간인 제도를 바꿔 버리니 더욱더 큰 충격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국왕이라도 이런 중차대한 일을 대신들을 모두 빼놓고 양반들과의 논의를 통해서만 결정해 버린 것이다. 이것은 자신들을 권력의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인종은 말 그대로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상황이었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으로 변해 가는 조정이었다.
훈구 세력의 입장에서는 이대로 시간이 지나 내년이 되면 조정에 일대 변화가 일어날 것 같았다.
늦기 전에 무슨 조치라도 취해야 할 것 같아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의미 모를 다짐을 하는 대신들이었다.
인종 1년 9월 15일 첫 번째 기사.
병조판서 이기, 참의 이임, 공조참판 윤원형, 좌찬성 상진, 대사헌 송인수 공조판서 허자가 모의하여 주상을 시해하려 하였음을 판의금부사 심연원의 발고로 좌의정 권벌이 추국하였다.
권벌이 상진을 추국하면서 은밀히 윤원형에게 빌붙어 두 마음을 품고서 널리 사람들의 뜻을 채집하여 역모(逆謀)를 조성시켰다는 것으로 반복하여 추힐(推詰)하니 마침내 자복하였다.
인종 1년 9월 16일 첫 번째 기사.
권벌 등이 이기의 공초와 조율 단자를 올리다.
권벌이 이기등을 형신하여 받아 낸 공초와 죄인 등의 조율단자(照律單子)를 들이면서 아뢰기를,
“이기·윤원형【이상은 능지처사(凌遲處死)였다. 율문에 수범과 종범을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허자, 상진, 이임, 송인수 당일에 사형을 집행하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다 아뢴 대로 하라”
마침내 본래 역사에서 을사사화를 일으켜 위사공신에 오른 인물 대부분이 역모라는 대역 죄인으로 자신들이 처내야 할 사람들에 의해 죄인이 되어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본래 역사에서는 물경 1,5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을사사화를 일으켜 공신이 되고 봉토를 하사받고 은전과 단자 등을 하사받았으나 인종이 살아 있음으로 해서 그러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그 여파 또한 크지 않았다.
후대에 가서 선조가 집권하면서 을사사화를 일으킨 일당들의 관직이 삭탈되고 바로잡혔지만 이제는 그런 일조차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그 뒤로 며칠간 그의 가족들에 노비들까지 잡아들여 처결을 신속히 마무리 지었다.
인종 1년 9월 20일.
인종은 아침부터 밤까지 강녕전 밖으로 거동하지 않고 누구도 들이지 못하게 했다. 물론 상소도 들이지 말라고 했다.
이번 역모 사건은 인종이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고 기다렸던 일이었다. 함정을 파고 기다렸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에 이일을 예상하고 함정을 팔 때까지만 해도 대비 윤씨와 경원대군에 관한 사안을 어찌 처결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황이었다. 다만 윤원형이 제발 나서지 말고 조용히 있다가 벼슬길에서 물러나 줬으면 싶었다. 하나 그가 먼저 나서서 일을 만들었다. 어쩌면 뒤에서 대비가 충동질을 한 것일 수도 있다.
사건이 벌어지고 성균관유생부터 사림파의 선비들에 대신들까지 대비를 쫓아내고 경원대군을 왕세제에서 끌어내려 귀향을 보내야 한다며 상소를 올리기 시작했고 인종이 답이 없자 대신들은 근정전 뜰 앞에서 유생들은 궁궐 밖에서 거적을 깔아 놓고 앉아서 하루 종일 읍소를 했다.
“전하! 대비를 쫓아내야 하옵니다. 대비를 용서하심은 망국으로 가는 길이옵니다.”
“전하! 사악한 대비를 쫓아내시옵소서! 왕세제를 용서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전하! 역모를 저지른 윤원형과 동기간이옵니다. 대비를 쫓아내시옵소서!”
“전하! 왕세제를 폐하소서! 대역 죄인의 피가 흐르옵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아무리 미워도 어찌 자신의 어머니를 집에서 쫓아낸단 말인가. 어쩌면 저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더 이상 외척이 정사에 관여하지 못하게 따끔하게 혼쭐을 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이번일 덕분에 대비 윤씨는 죄인이 되어 창경궁에서 쥐 죽은 듯이 지낼 수밖에 없었다.
인종은 유생들의 외침을 멈추라 하지도 않았으며 더하라고 하지도 않았다. 다만 조용히 듣기만 했다. 저들 중 일부분은 훈구 세력에 빌붙어 벼슬하는 이들도 있으며 또한 몇몇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이들도 있다. 미관말직이나마 하고자 죽어라 책을 파는 유생들이기에 임금의 눈에 띄기 위해 전후사정도 모르고 나선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저 자신으로 인해 역사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완전히 달라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인종이었다.
이제 조선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으며 향후 벌어질 모든 일들이 새로운 역사를 그려 나가게 될 것이다.
인종 1년 9월 24일.
해안군이 강화에서 올라와 강녕전에 들었다. 소다회 즉 탄산나트륨을 개발할 시점이 온 것이라 판단해서이다.
“허면 이 방법대로 하면 소다회가 만들어진다는 것이옵니까?”
소다회는 소금에 황산을 작용시켜 황산나트륨을 만들고 여기에 석회석과 석탄을 섞어 열을 가하면 만들어진다.
방법을 안다면 생각보다 만들기 쉬운 화학약품이다. 그 쓰임새는 정말로 다양하고 화학공업의 기초를 이루는 중요한 물질이다.
“그렇습니다. 이는 매우 중한 일이옵니다. 앞으로 천일염은 염한들이 강화에 가서 배워 갈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더 늘릴 필요도 없으며 소금 생산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내년 한 해 동안은 호조가 관할하여 전매에 관한 모든 일을 정리할 것입니다. 과인이 신경 써서 살펴볼 것이니 앞으로는 그곳 강화에 염매 공사라는 관청을 설치하시고 호조에서 지원해주는 자금으로 소다회를 만들어 생산하십시오. 또 비노(비누)와 유리를 만드는 방법을 과인이 정리하여 놓았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아주 쓸모가 많은 물건들입니다. 그리고 소금과 함께 아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물건들이기도 합니다. 하니 각별히 신경 써서 하나씩 만들어 보세요. 그리고 이 모든 일은 강화와 김포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합니다. 해서 여가 김포와 강화를 호조관할 아래 특별 직할지로 둘 것입니다. 무엇보다 유리 공방은 정말로 중요한 곳입니다. 유리 공방을 만들어 그 제조법을 다양하게 연구하여 성공만 한다면 물경 수십에서 수백 종에 이르는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하니 각별히 신경 쓰세요.”
“알겠습니다. 더 명하실 것이 없습니까?”
“내년에 개각이 완료되고 정리가 되면 군기시를 김포로 옮길 것입니다. 허면 그때에 맞춰 공방을 하나씩 여시면 됩니다. 허고 적어 준 내용에도 나오지만 일을 철저히 분업화하세요. 한 명의 공인이 모든 일을 하는 것은 생산 속도가 느립니다. 하니 한가지씩의 공정을 담당하게해서 생산성을 최대한 올리세요. 그리고 규모도 커야 합니다. 과인이 보기에 내년 말에서 후년이면 왜와의 무역을 허해 줄 수밖에 없을 겁니다. 호인들과도 이대로 적대적인 상황만을 유지해서는 안 될 터, 그들과 무역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볼까 합니다. 더불어 유구를 통해 남방의 여러 나라와도 무역을 통해 재화를 조달할 생각입니다. 듣기로 남방의 여러 나라들은 일 년에 쌀을 두 번 수확한다고 합니다. 해서 쌀이 남아돈다고 하니 형님께서 이번 일을 잘만 성사시킨다면 그것으로 아국 조선 백성 모두를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쌀을 사 올 수 있습니다. 하니 이는 매우 중한 일입니다.”
“전하의 말씀을 들어 보니 이일은 매우 중한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심을 다해 일을 추진하겠사옵니다.”
해안군의 독대가 끝나고 정청에 나온 인종은 다시 영의정과 육조대신들을 모아 놓고 지난 국정보고대회 기간에 올라온 답신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물경 2만 건이 넘는 어마어마한 내용의 답신들이었다. 일차적으로 지방관의 탄핵상소를 정리하는데 중간에 역모사건이 벌어지는 바람에 일을 끝마치지 못한 상태라 서둘러 비리지방관의 업무를 정지시키고 사건을 조사할 감찰관들을 파견했다.
그 일이 끝나자마자 모든 대신들이 정청에 모여 한 사람 앞에 수백 장씩의 답신을 쌓아 놓고 인종이 말한 기준에 맞춰 해당하는 답신을 정리해 놓으면 그것을 인종이 다시 확인하여 나누어 정리하는 것이다.
못해도 며칠간은 더 이일을 해야 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한 번은 겪어야 할 일들이고 인종 자신이 벌인 일이라 말없이 각종 미사어구로 시작하는 답신들을 읽어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