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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인종 1권(21화)
9. 대월국 사신의 방문(1)


인종 1년 9월 30일.

북경으로 천추절 축하 사절을 다녀온 채세영이 돌아왔다. 인종은 그가 떠날 때 특별한 명령을 했는데 그것은 축하 사절로 온 타국 사절들과 친분을 쌓아 주변국 정세를 알아오라는 것이었다. 한데 뜻밖에도 채세영이 안남국(베트남) 사신들을 데리고 왔다.
“그래, 자네 이름이 어찌 되는가?”
일행 중 가장 높은 관직에 있어 보이는 자가 대화에 나섰다.
“정가라 하옵니다.”
인종이 말하면 승지가 옆에서 글로 쓰고 안남국 사신이 글로 답하면 승지가 말해 주는 식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대의 나라 이름이 본시 안남은 아닐 터, 국호가 무엇인가?”
“대월이라 하옵니다.”
인종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의 대화는 모두 기록되어지기 때문에 물어본 말이었다. 본래 안남국이라는 말은 대월국 입장에서 보면 굴욕적인 말이었다.
당나라가 지배할 때 안남 도호부를 그곳에 설치하면서 붙은 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도 명이나 일본과의 외교적 만남에서는 그냥 안남국이라 한다. 소통에 불편함 때문이고 더 큰 이유는 약소국이기 때문이다.
“대월국 주상 전하는 어떤 분인가?”
“주상 전하는 참으로 인자하시고 현명하시며 강하신 분이옵니다.”
“그래, 우리 측 사자를 따라 이곳까지 왔을 때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대월국 사자는 편히 말하라.”
사실 대월국은 지금 내전 중인 상태였다. 1527년에 권신 막씨가 왕위를 찬탈해 정권을 뒤집었는데 전정권의 구신들이 1533년에 새롭게 왕족 중의 한 명을 왕(장종)으로 옹립해 어렵게 전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점차 땅을 되찾아가고는 있지만 본래 수도였던 하노이를 되찾는 것은 1592년이나 돼야 가능한 상황이었다. 사신은 고개를 깊게 숙이고 통역을 편하게 하기 위함인지 명나라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역신이 발호하여 나라가 위태롭게 되어 전대 국왕께서는 졸하시었고 새롭게 왕으로 오르신 국왕 전하께서는 어렵게 하루하루를 넘기며 역신과 전쟁을 치르고 있나이다. 하신이 명국을 오가며 전해 들은 바로는 조선의 각궁이 천하제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나이다. 하여 알아본 바 각국의 사신들과 명국의 관리들 또한 이에는 이견이 없다고 하나이다. 하여 각궁을 구하고자 사신 채세영을 따라왔나이다. 부디 각궁을 구해 갈 수 있도록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허허…….”
인종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신을 쳐다보았다. 그로서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명에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막씨가 세운 왕조에서 손을 썼는지 전혀 도움을 손길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다 채세영을 만났고 이곳까지 오게 된 사신이었다.
“사신 정가는 사신관에 머물라, 대신들과 논하여 답하리라.”
정가는 베트남어로 찐이다. 찐 씨인 것이다. 찐 씨는 본래 역사대로 하면 자신의 소망대로 왕국을 되찾는다. 물론 50년쯤 뒤에 가야 소망을 이룬다. 수없이 많은 피를 보고서 얻게 되는 왕국이다. 하나 그 달콤함에 취해 적이 크는 것을 막지 못해서 얼마 후 다시 내전이 벌어진다. 구엔씨라는 집안이 발호해 다시 왕국을 위협한다. 결국 그렇게 싸우다. 새로운 세력이 급부상해 결국 나라가 결단이 나 버리고 만다. 수백 년에 걸쳐 내전에 시달리던 대월은 결국엔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 안정되는 듯싶었으나 얼마 가지 못하고 또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는 아픔을 겪는다.
현재의 대월국은 마치 조선의 다른 모습 같아 보였다. 적어도 인종의 눈에는 그리 보였다.
원의 간섭 기를 벗어났지만 여전히 명에 사대해야 하는 조선의 처지나, 명을 물리치고 왕조를 세웠으나 힘이 약해 다시 명에 사대하는 대월이나 피장파장인 것이다.
인종의 머리는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각궁을 판다해도 조선에는 그 먼 거리를 항해할 배가 없다. 더불어 각궁을 팔아도 되는지도 의문이다.
물론 인종 입장에서는 파는 것이 당연히 좋았다. 대월이 통일을 하고 정권이 안정되고 명을 견제할 수 있다면 조선으로서도 후일 이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며칠의 시간 동안 고민을 하다 보니 어느덧 10월 초가 되어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한데 상선이 말하기를 대월이 왜와도 통교를 하니 왜의 상선을 활용할 수 있다면 명을 거치지 않고 대월로 갈 수 있지 않느냐는 말을 했다.
인종 또한 먼 바다까지 나가 보지 않은 조선이니 바다로 대월을 가려면 왜를 통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문득 유구국이 떠올랐다.
“채세영을 불러 오라.”
“네, 전하!”
채세영은 귀국 후에 호조참의가 되었기에 등청을 한 상태였다. 급하게 대전으로 들어와 부복한다.
“호조참의는 지난번 북경에 들렀을 때 혹 유구국 사신도 만났소?”
“만났사옵니다.”
“그들은 어떻게 북경까지 온다고 합디까?”
“배를 타고 온다고 하옵니다.”
“허면 그들은 먼 바다를 나가는 배가 있단 말인데?”
“들은 바로는 상해까지는 배로 오며 그 뒤에 걸어서 이동한다 하옵니다. 하나 그 정도 거리라도 상당히 먼 거리이기에 충분히 먼 바다를 항해할 배가 있는 줄로 사료되옵니다.”
“제주에서 유구까지 갈 수 있는 배가 우리에게도 있지 않소?”
언뜻 판옥선이 생각났지만 현재 판옥선은 조선에 없다. 본래 판옥선은 명종 10년(1555년) 그러니까 앞으로 10년 후에나 만들어지게 된다.
지금은 대맹선으로 80명 정도가 탈 수 있는 배가 최고로 큰 배다. 물론 그 배가 작지는 않다. 다만 먼 바다 항해를 하기에는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크기는 충분하오나, 우리의 배는 평저선이라 연안에서는 좋으나, 먼 항해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아니야, 거친 파도에 넘어지지만 않는다면… 어쩌면 약간의 설계 변경만으로 가능할지도…….”
인종이 지금 이렇게 대월국 문제를 고민하는 것은 도와주고 싶어서만이 아니었다. 어차피 대월국이 수십 년의 내전을 결국 승리로 이끌고 정권을 잡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좋게 만들어야 한다.
대월국은 들어가면 나오기 싫은 땅이다. 그만큼 산물이 풍부하고 챙길 것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쌀부터, 각종 향신료에 나무까지 돈이 되는 것이 널린 곳이 대월국이었다. 그들이 필요하다면 조선 최고의 무기라는 동개활이나 각궁이라도 지원해 줄 심산이었다. 그만큼 대월은 물산이 풍부했다.
만약 그들에게 무기를 팔아 쌀을 사 올 수 있다면 조선에 굶는 사람은 없어질 것이다. 물론 그 무기는 조선을 향하지도 않는다.
인종은 자신이 그려놓은 세계전도를 펼쳐놓고 고민에 빠졌다. 생각해 보니 대월국 사신이 단순히 각궁만을 원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들도 활은 있을 것이다.
어쩌면 파병을 원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니라면 화포를 원하는 것일 수도 있다. 대량 살상용으로 그것보다 강력한 무기는 없다. 생각해 보니 활은 핑계고 화포를 요청할 것 같았다. 왜도 이제 간신히 조총을 만들어 전쟁에 사용하고 있다. 화포 기술로 치자면 조선이 단연 최고 수준이다.
명나라 화포장들도 조선의 화포보다 뛰어난 것은 만들지 못한다. 명나라가 네덜란드와의 전쟁을 통해 알게 되는 홍이포 또한 1620년대에 들어서야 명이 사용하게 되는 포이다. 그전인 1590년대 벌어질 임진란도 결국 화포 기술 하나로 승리를 이룬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데 50년 전인 지금이라면 단연 화포 기술에서 따라올 나라가 없다. 그것도 배에 함포를 싣고 싸운다는 것을 동양의 어느 나라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해서 인종도 수군을 확대하고 화포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왜가 역사처럼 준동한다면 초전에 박살을 내 줄 심산이었다. 물론 그전에 목표한 것만큼 수군이 강성해진다면 왜구 소탕이 먼저 선행될 것이다.
“대월국 사신 정가를 들라 하라.”
“네, 전하!”
인종은 일부러 강녕전으로 찐가를 불러들였다.
“대월국 사신 정가 입시이옵니다.”
사신이 들어오자 그를 따라 명국 말을 하는 역관이 따라 들어왔다.
“원하는 것이 진정 각궁인가?”
“……전하! 어찌 그런 하문을 하시옵니까?”
사신은 자신의 의도가 간파된 것 같아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물론 조선의 각궁이 뛰어남을 알고 있고 구해 가서 손해 볼 것은 없다.
하나 더욱 중요한 것은 화포였다. 애초에 채세영을 따라 조선에 온 목적은 화포 기술을 얻거나 안 된다면 화포를 구해 가기 위함이었다.
명국의 사신 관에서 각국의 사신들이 모여 대화를 하다 우연하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조선의 배에는 화포가 장착되어 있으며 그로 인해 수전을 치를 때 먼 거리에서 적의 배를 침몰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어쩌면 대월국이 하나로 통일할 수 있는 중요한 해결책이 될지도 몰랐다.
바다를 끼고 남북으로 길게 나뉘어져 있는 대월국이었다. 바다를 통해 적의 후방으로 안전하게 갈 수만 있다면 작전상 엄청난 이득을 볼 것이다.
또 하나는 바로 여차하면 명의 남부를 유린할 수도 있었다. 고토를 회복하고 대국으로 갈수 있는 지름길처럼 보였다.
찐가가 알아보니 이미 조선은 고려 말에 화포를 배에 싣고 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분명한 정보였다.
그렇다고 무조건 화포를 팔아 달라거나, 기술을 넘겨 달라 할 수는 없었다. 해서 찐가가 생각한 것이 활이었다. 활을 사가면서 거래를 트고 그 뒤에 화포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려고 했다. 우선 신뢰를 쌓는 것이 우선이었다.
“화포겠지? 아닌가?”
“전하! 대월은 조선과 수만리 떨어져 있는 나라이옵니다.”
역시 인종의 생각대로 화포였다. 수만리 떨어졌으니 줘도 상관없다는 말이었다.
“너희는 무엇을 줄 것인가?”
사신 찐가의 눈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줄 것이 무엇이 있는가? 대월국에서 나는 값비싼 것은 무엇인가? 쌀이 제일 무난할 것이다. 거기에 각종 향신료와 약초가 있다. 그리고 물소 뿔이 있다.
비단과 도자기도 있으나 그것은 명을 통해 수입하거나 자체적으로 만들어 낼 것이다. 어느 것 하나 마땅한 것이 없다. 철과 금광이 있으나 그것은 이곳 조선에서도 날 것이다. 특산품이라고 해 봐야 화포를 대신할 만한 것은 없어 보였다. 참으로 대답하기 곤란한 사신 찐가였다.
“무엇이 필요하나이까?”
사신 찐가는 결국 대답하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아국은 땅이 좁다. 하여 아국은 저 바다를 아국의 영토로 삼고자 한다. 바다에서 살아가려면 물자 보급을 할 수 있는 항구가 필요하다. 줄 수 있느냐?”
“조차지를 원하시옵니까?”
사신 찐가는 이해력이 빨랐다.
“아국 조선은 명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하여 밖으로 나가려면 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멀리 항해를 하려면 물자 보급을 받을 수 있는 항구가 꼭 필요하다. 아국에게 조차지를 내어 준다면 향후 조선과 월국은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인종은 강화에서 출발한 무역선을 제주와 유구 대두국(대만)에 해남도를 거쳐 대월국까지 가는 상상을 해 보았다.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거기에 대월국에 조차지를 얻어 창고를 지어 놓고 다시 밑으로 내려가면 참파에 바로 옆에 시암(태국)과 조호르 왕국이 있다. 그곳을 거쳐 남방의 말레이와 브루나이를 거쳐 여송국(필리핀)과 유구를 통해 돌아오는 무역 항로를 개척한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환상적인 무역 항로인가.
유구와 대두국은 문제없이 이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만약 대월 국에서 조차지를 얻을 수 있고 해남도 문제만 해결하면 새로운 바닷길을 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실크로드와 버금가는 엄청난 일이 될 것이다. 1년 정도만 지나면 김포와 강화에서 각종 상품이 나올 것이고 그중 일부를 개척된 무역 항로를 통해 인도차이나 반도까지 가져다 팔고 다시 개척을 하여 서로는 무굴(인도) 남으로는 아직 동북아에서는 존재 자체도 모르는 신대륙(호주)까지 개척할 야심이 있었다. 물론 그를 위해서는 선박의 확충이 필수이다.
아직까지는 재원이 충실하지 못하니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였으나 그것 또한 이번 소금 전매로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예상했다.
대월국 사신인 찐가가 채세영을 따라오지 않았다면 후일은 몰라도 당장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인종이 경장을 하면서 조선이나 여진 왜의 시장이 포화 상태가 되면 그때서야 진출할 생각을 했을 남방의 국가들이었지만 사신 찐가의 조선 방문으로 역사의 거대한 흐름이 다시 한 번 바뀌어 가는 듯했다.
사신 찐가는 며칠간의 생각할 시간을 원했다. 이제 인종이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사신인 찐가가 결정하여 대답할 차례였다.

인종 1년 10월 3일.
영의정 유관이 일본 국왕의 사신 안심동당의 대접에 관한 일로 아뢰다.

“어제 선위사(宣慰使) 김진종(金振宗)의 서장(書狀)을 보니, 안심동당(安心同堂)이 자기가 탈 배 1척을 먼저 대마도(對馬島)에 보내어 영봉선(迎俸船)을 거느리고 와서 짐바리를 싣고 일시에 돌아가겠다고 한답니다. 이 일이 무방할 것 같기는 하지만 오래 머물게 되면 지공(支供)하는 것이 어려울 뿐 아니라, 또 외국 사람을 변방에 오래 둘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냥 빈 배로 왕래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안심동당 등을 먼저 돌아가게 하고, 만약 미처 실어 보내지 못한 물건이 있다면 보낼 만한 배로 뒤따라 실어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비록 영송선이 나온다 하더라도 국왕 사신의 배 2척과 소이전(小二殿)의 배 1척 외에 그 나머지는 모두 접대하지 말게 해야 마땅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그리하지 말고 배를 더 내어 주어 일시에 돌아가게 하라.”
하였다.

안심동당은 일본의 대조선 사신으로 전대인 중종 때부터 조선을 드나들던 인물로 안심은 법명이고 동당은 일본 불교인 선종의 위계로 전주지 즉 주지를 지냈던 승려를 말함이다.
안심동당은 중종 시대부터 명종 시절까지 조선을 담당했던 외교관으로 본국과 대마도 동래의 왜관을 드나들며 무역을 했다.
안심동당이 처음 조선에 와서 이름을 알린 것은 1542년으로 3년 전이다. 당시 은 8만 냥을 가지고 와서 사 달라고 주청한 것이다.
하나 조정 대신들이 은은 백성들이 먹고 입는 것과 하등 상관이 없으니 그리 해 줄 수 없다하여 허가를 해 주지 않았고 유일하게 김안국이 그래도 외국 사신인데 조금이라도 사 주자는 청을 했다.
그가 일본 국왕의 사신 자격으로 온 것이라 예의상 나 몰라라 하지는 못해서 은 5천 냥은 사 주겠다고 했지만 그 값으로 포목 등을 준다고 하자 너무 부피가 커서 다 싣고 갈 수가 없으니 안 팔겠다고 하고 진상품만을 놓고 가 버렸다.
물론 은 전체를 바꿔 준다고 했으면 했을 것이나 일부만은 안 팔겠다고 강짜를 부린 것이다. 왜가 조선에서 사 가는 물품 중 가장 많은 것이 포목과 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1543년인 1년 후 유일하게 그를 편들어 주었던 김안국이 대제학으로 있다가 죽게 되자 2년 뒤엔 1545년 6월에 김안국의 제사를 지내겠다고 찾아와서는 안 된다고 하니 김안국의 자식들에게 소향 2근과 후추 백 근을 전해 달라고 하고서는 열심히 돌아다니며 무역을 했다.
대신의 죽음에 제를 올리기 위해 왔다고 하고 또 6월에는 인종이 몸이 많이 안 좋아 국정이 마비되다시피 해서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여태껏 돌아가지 않고 동래에 머물고 있었다. 인종은 눈에 훤히 보이는 짓거리를 하는 왜국 사신을 잡아다 몇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일본 국왕 사신이라고 하니 빨리 서둘러서 보내라고 명했다.
조선 자체가 급변하고 있었으며, 지난 중종 대왕 시절에 일어난 왜변으로 대마도와의 무역 자체를 금했기 때문에 사신이 한두 달도 아니고 5개월 가까이 조선에 머물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왜는 참으로 조선에게 골칫거리였다. 한쪽으로는 사신을 보내 극진히 형님 모시듯 하면서 한쪽으로는 시시때때로 왜구를 보내 약탈을 일삼는다.
물론 일본 자체가 하나의 힘에 의해 통일되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로 각 지역이 따로 놀기 때문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세력별로 권력을 나누고 국가를 만들면 되지만 그것도 아니다. 이름뿐인 왕 하나를 세워 놓고 밑에서 자기들끼리 죽여 가며 싸워 대는 것이다. 결국 아무 죄 없는 조선 사람들만 피해를 보는 것이다.
당장 수군을 움직여 왜의 모든 배들을 침몰시켜 버렸으면 좋겠지만 그럴 만한 형편이 되지 못하니 내년까지는 참기로 하는 인종이다.
그리고 지방 관아에 전교하기를 대마도를 통하여 동래로 오는 왜선을 제외하고 모든 왜선은 보는 즉시 저지하고 반항한다면 왜구로 간주하여 추살하거나 잡아들이라 명했다. 만약 공이 있다면 크게 상찬할 것이라 명하니 지방의 각 군영 수장들이 수시로 배를 띄워 순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