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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인종 1권(22화)
9. 대월국 사신의 방문(2)
인종 1년 10월 5일.
사신 찐가가 다시 인종과 대화를 시작했다. 며칠간 고민을 너무해서 얼굴 살이 조금은 빠져 보였다.
본래 이런 일은 외교를 담당하는 예조대신들의 몫이었지만 그 관계된 내용에 대하여 가장 잘 아는 것이 인종이었고, 인종 입장에서 그것을 일일이 설명해 주고 단판 지으라고 명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해서 직접 밀고 당기기를 하는 것이다.
“결정은 하였는가?”
“하였사옵니다.”
“그래? 어찌 결정하였는가?”
“전하의 말씀에 따라 대월국은 조선과 손을 잡기로 하였나이다. 하나 막가와 전쟁 중인 상황인지라 본국의 내륙에 땅을 조차하기는 힘이 드옵니다. 만약 아국이 밀리기라도 하면 그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 문이옵니다. 하니 섬을 조차하는 것은 어떻겠사옵니까?”
“섬이라… 그것도 좋지.”
인종은 그것이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대월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대로 섬을 개발하여 사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화가 끝나자 인종은 사신 찐가에게 사역원 관리 서너 명을 붙여 주어 월국의 말을 배우게 했다. 월국의 말과 함께 월국 주변의 정세와 역사 문화 등도 배우게 했다.
그동안 인종은 월국으로 보낼 배와 사신단 그리고 무역할 물품 등의 인선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못해도 2, 3달은 걸리는 일이었고 겨울에 출발 할 수 없으니 내년 2, 3월은 돼야 떠날듯 보였다.
인종 1년 10월 8일.
왜로 들어갔던 남치근이 들어왔다. 그리고 인종은 알지만 조선 사람 나머지 전체가 모르는 왜국의 비밀을 말했다.
“춘추전국시대입니다. 하극상과 분열, 이합집산이 끊임없이 벌어지며 인세의 지옥이옵니다. 거리에는 시체가 나뒹굴고 무사들은 자신의 칼이 날카로운지를 알기 위해 길거리의 시체를 이용해 확인하며 시체가 없으면 다시 꿰매어 놓고 확인합니다. 곳곳에서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키며 정토종이라는 종교 집단이 가가라는 지역에서 독립하여 지배하고 있으며 각 지역은 싸움이 그칠 날이 없사옵니다. 전하께서 들어가 보라한 규슈 지역에는 마땅한 자가 없었사옵니다. 한데 돌아오는 길에 왜의 서국 왕이라는 자를 만날 수 있었사옵니다.”
“서국 왕이라? 오오우치가를 말함이냐?”
“아시옵니까?”
“어리석은 자지 결국……. 그래 만나 보니 어떠하더냐?”
오오우치가의 가주 요시타카는 매우 어리석은 자였다. 만약 전국시대라 일컬어지는 센고쿠 시대에 승자가 그였거나 그의 후손이었다면 임진란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일본의 역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의 작은 행동 변화 하나만으로도 그것은 가능했다.
막강한 세력과 땅을 가진 전국구 대명중 하나였다. 조선, 명과의 무역을 독점하며 유럽의 상선이 드나들며 상업과 문화로 일본에서 가장 발달한 곳이 오오우치 가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백제 성왕의 후손을 자처했다. 즉 그의 말대로라면 백제계가 낳은 가장 강력한 대명중하나였다.
그는 진정한 왕이 되고 싶었다. 해서 일가가 세력을 키우고 주변을 정리하자 스스로 왕이 되려했다. 제도와 절차, 예절, 복식 등 모든 것을 조정의 운영 방식에 맞춰 바꿔 나갔으며 군사보다는 문예 부흥을 위해 더 많은 정력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가신들에 의해 배신당해 도망가다가 자결하고 만다. 그 일은 앞으로 6년 뒤에 벌어질 일이었다.
그가 왕이 되려면 왕 같은 생각을 해야 한다. 왕은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권력은 절대로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무시했다. 왕은 조그마한 반역의 가능성이라도 보이면 철저히 짓밟아야 한다. 하나 그는 오히려 그런 세력들을 키워 줬다. 더불어 그는 너무 일찍 자신의 야심을 밖으로 드러냈다. 완벽한 기회가 올 때까지 철저히 숨겨야 했다. 하나 그는 가주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야망을 누구나 알 수 있게 행동했다. 그래서 그는 왕이 될 수 없었다. 또한 부하들에게 배신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문을 아끼며, 예의와 범절을 아는 자였습니다. 또한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도 많았사옵니다. 그곳에서 색목인들도 보았나이다.”
“그래? 색목인이라…….”
선교사일 것이다. 이 당시에는 포르투갈의 상인을 따라온 선교사가 왜에 거주하고 있었다.
“혹 전하라는 말이나 부탁의 말은 없더냐?”
“있었사옵니다. 하나 그것이…….”
“족보겠지?”
“어찌 그것을 아시옵니까?”
“왕조를 세우려는데 자신의 근본을 모르면 할 수 있겠느냐? 아무리 무사들이 활개치는 곳이라 하더라도 왕조를 세우려면 근본에 대한 내력을 공포해야 한다. 아니 없더라도 만들어서 갖춰 놔야 할 것이다. 한데 그 오오우치 가문은 그 근본이 백제 왕가이다. 뿌리가 있는데 알려고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 백제는 망하고 나서 대부분 당나라로 끌려가고 일부는 왜로 가고 또 남아 있는 이들은 부여 서 씨로 바꿔서 숨어살았지, 그들과 정상적으로 통교한 적이 없으니 그들 또한 답답할 것이다. 하나…… 왜의 특수성 때문에 그는 꿈을 이루지 못할 것이야. 전국을 일통한다 하더라도 칭왕을 할 수는 없는 아주 이상한 곳이 그곳이거든.”
남치근은 절충장군이 되어 동래에 내려가 무예가 뛰어난 무관 10여 명을 거느리고 대마로 건너갔다.
그리고 대마 도주를 만나 인종의 말을 전하고 대마 도주의 도움으로 상인으로 위장하고 규슈에 들어가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그곳의 정세를 살펴보고 조선 조정과 비밀 거래를 할 만한 자를 찾아봤으나 인종이 기준으로 내세우는 자는 찾지 못했다.
결국 되돌아 나오다가 왜의 서부 지역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오오우치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규슈 지역은 아니나 규슈 지역까지 세력을 넓히고 힘을 발휘한다 하니 적당해 보이기도 했다. 해서 그에게 정식으로 조선의 비밀 사신임을 밝히고 만나기를 청했다. 그는 매우 반가워하며 남치근 일행을 만나 주었다. 그리고 무사히 조선으로 돌아오게 조치도 취해 주었다. 소문대로 그는 서국 왕으로 불릴 만큼 왜의 서부 지역에서 강한 권한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래, 그 오오우치가의 가주가 뭐라 하더냐?”
“첫 번째는 족보이옵고, 두 번째는 통신사였사옵니다. 물론 중단된 무역을 다시 재개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도 포함되었습니다.”
족보는 백제 왕족의 족보를 말하는 것이고 통신사는 조선의 문관과 학자들을 보내 달라는 말이었다. 무역은 당연한 부탁일 것이다.
물론 그를 선택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지만 오오우치가가 현재는 일본의 무가로서 최고의 자리인 종2위에 올라 있는 가문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현재 일본에 있는 영주 가문 중 유일한 관직이었다. 그 밑으로 강성한 쇼군들이 종3위였다.
다시 바꿔 말하면 아쉬운 것이 별로 없는 오오우치가 과연 왜에서 조선의 입장을 대변하며 인종의 말을 따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그는 어디까지나 일본의 쇼군이지 조선인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그는 원 역사에서 6년 후에 죽게 된다. 만약 역사대로 배신당해 죽게 되면 그동안 들인 공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생각을 해 봐야겠구나.”
쉽게 거래를 하기에는 너무 거물이었다. 가진 것이 없는 자가 거래하기는 편했다. 그는 가진 것이 너무 많은 자였다.
“하옵고 대마 도주와의 약조는 어찌하옵나이까?”
“신의는 지켜야겠지 그 문제는 과인이 알아서 할 것이다. 너는 다시 내금위에 복귀하도록 하여라.”
“네, 전하!”
‘역시 특수 기동위를 창설한 다음인가.’
서둘러서는 될 일도 안 될 것 같았다. 우선 오오우치가와는 대화를 한 번이라도 했으니 시기를 가늠해 다시 접촉할 필요를 느꼈다.
우선 이번 겨울 북방이 탈 없이 넘어가 준다면 내년 가을까지는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올 겨울부터 내년 여름까지가 조선의 앞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인종 1년 10월 10일.
강녕전에 죄인 5명이 들어와 인종 앞에 엎드려 있었다. 모두 하나같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주동자가 소연과 유충정이라지?”
“망극하옵니다.”
“난 전라도 관찰사 심광언이 올린 장계를 믿지 못하겠다. 해서 이 문제를 다시 처음부터 너희들 입으로 들어야겠다. 만약 거짓을 말하면 이번에 참형에 처할 것이다 자 말해 보라. 3척이었다지?”
“그렇사옵니다.”
“3척의 배에 수백의 장정이 이유 없이 남의 나라에 들어왔을 리도 없을 뿐더러 그 많은 인원이 배를 3척이나 이끌고 바다를 나올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소연은 말하라 그들은 누구였나? 진정 죄 없는 중국 어부였나?”
이들은 지난 7월 19일 중국인들을 왜구로 오인하여 공격해서 그중 백여 명을 죽였다 하여 파직되고 장 일백(杖一百)에 도 삼 년(徒三年)이라는 벌을 받은 죄인들이었다. 그때에는 경황이 없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지나고 보니 뭔가 이상했다.
“그들은 밀무역을 하는 자들이옵니다. 처음 배를 보았을 때 그들은 분명 왜구로 보였사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로 그들 중 일부는 분명 왜인들이었습니다.”
“해서 왜구로 여기고 무조건 공격을 했다는 것이냐?”
“그것이… 처음엔 격렬하게 반항하며 공격을 했습니다. 그런데 처음 공격으로 왜인이 죽자 어찌된 영문인지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들이 중국인이라며 항복을 하였습니다. 해서 그들을 모두 포박하고 좌도 수군절도사 김세간에게 보고를 하였습니다. 한데 김세간에게 보고를 받은 관찰사가 장계를 올릴 때 이러한 사실은 적지 아니하고 죽인 왜인에 대한 말은 없고 죽이지 아니한 중국인들을 죽였다며 적어 올렸나이다.”
인종은 역시나 뭔가 있음을 직감했다.
“너는 절도사나 관찰사와 연이 있느냐?”
“없사옵니다.”
“너는 흥양현 현감이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1년 되었사옵니다.”
“그럼 지금 흥양현의 현감은 누구냐?”
“김세간의 동생인 김세영으로 아옵니다.”
인종은 서탁에 손을 올리고 한참 동안 손가락을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생각할 때의 버릇이다.
“알겠다. 너희들은 모두 전함사의 숙소에 가서 대기하라.”
전함사는 배를 진수하고 보수하는 곳으로 지금은 그 규모나 시설이 축소되어 보잘것없지만 한때 군기시와 동급의 관청이었다.
“승지를 들라 하라!”
내관이 달려 나가 승지 이윤형을 데려왔다.
“너는 지난 7월 19일 흥양현에서 벌어진 중국인 참획 사건을 알 것이다.”
“네, 전하.”
“그때 흥양현 현감 소연이 파직되고 난 뒤, 그 뒤를 김세영이 있었다. 김세영이 누구의 천거로 그 자리에 앉았는지 기억하느냐?”
“전라도 관찰사의 천거가 있었사옵니다.”
“허면 김세영은 그전에 무엇을 하였더냐?”
“관찰사 휘하에 있었던 것으로 아옵니다.”
“이런 발칙한 것들을 보았나! 감히 과인을 기망해!”
인종이 서탁을 내리치자 사관과 내관 승지 모두 놀라면서 고개를 숙였다.
“당장 전라도 관찰사와 좌도 수군절도사 흥양현 현감을 파직하고 의금부로 압송하라!”
“무슨 죄목이온지……?”
“국왕을 속이고 기망한 죄이니라! 감히 자신들의 사람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려고 장계를 거짓으로 꾸미고 국왕을 속였다.”
인종은 매우 불쾌했다. 양반이라며 겉으로는 고귀한 척, 아는 척은 다하면서 뒤로는 밥 먹듯이 남을 속이고 군왕을 기망하는 것이다.
출세만 하면 다라는 그 썩어빠진 생각을 죄다 뜯어 고쳐야 한다. 말로만 떠드는 놈들은 양반될 자격이 없는 놈들이다.
며칠 만에 관찰사와 좌도 수군절도사, 흥양현 현감이 한양의 의금부에 끌려와 각기 따로 떨어져 취조를 받았다.
결론은 인종이 생각한 대로였다. 장계에 적힌 내용 대부분이 임의대로 작성하여 보고한 것이다. 즉 거짓으로 작성한 것이다.
그들은 모두 죄수가 되어 의금부 감옥에 갇히고 그 뒤를 이어 새로운 관찰사가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강녕전으로 다섯 명의 사람들이 불려와 있었다.
“소연에게 좌도 수군절도사를 안지에게 흥양현 현감을 제수하고 오세웅, 풍계정, 유충정은 좌도 수군절도사를 보좌하라 그리고 소연은 이시간부로 전함사 제조를 겸한다. 하여 수영에 내려가는 대로 난파되어 온 황당선 3척과 좌도에 소속된 맹선 중 일부를 임의대로 선정하여 그것을 해체하여 새로운 배를 건조하라, 과인이 전함사 장인들과 군기시공인들의 따로 추려 딸려 보낼 것이다.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여 새로운 배로 건조하는 임무를 수행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벼슬을 다시 준다니 그것만으로 감읍한 이들이었다.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정확히 몰랐다.
그들이 임지로 도착했을 때 그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은 서른 장이 넘는 배의 설계도와 선박을 건조하는 장인들이었다. 그리고 인종이 내린 명은 간단했다.
설계도대로 내년 2월말까지 배 3척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설계도에는 본 역사에 등장하는 판옥선보다 두 배는 큰 판옥선이 그려져 있었다. 본래의 판옥선은 125명의 병사를 수용하는 배였지만 설계도대로 만들게 되면 200명 이상을 수용하는 배로 기존의 대맹선의 3배 크기에 엄청난 거함이었다.
다행이라면 배를 만드는 장인들이 충분한 실력이 되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이름은 그대로 판옥선이었다. 본래 역사보다 10년 앞서 더욱 큰 규모로 만들어지는 판옥선이었다. 불가능이란 없다.
인종이 그려 준 설계도가 뛰어나서라기보다는 지난 중종연간의 변란으로 조선은 이미 새로운 선박이 필요함을 느끼고 연구 개발에 착수한 상태였다.
전함사의 장인들은 수년간 대맹선을 더욱 크고 안전하며 전투에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전함들을 연구 중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연구하던 것이 판옥선이다. 해서 10년 뒤 명종이 판옥선을 건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종은 다만 그런 연구에 마침표를 찍어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