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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안전보장 사무소 1(5화)
1. 청소년 갱생 선도 위원회(4)
그는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는 말로 알아들었다. 설마 요즘 세상에 정말로 핸드폰을 쓰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연락을 드리죠?”
핸드폰이 없으니 그게 문제였다.
사실 두현으로서는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핸드폰에 매달려 있는 현대인을 보며 안타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없어도 충분히 산다.
불편함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일단 쓰게 되면 그 편리함을 잊지 못한다. 그렇기에 초조하고 자꾸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것이다.
“내가 연락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일몽과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이 당하고 나서 연락을 받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지만 반문하기에는 두현이 너무 두려웠다. 영원히 보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은 두현의 기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큰 덩치도 한몫했지만 묵직한 저음과 분위기를 내리찍는 그만의 기운은 이제껏 아이들이 겪어보지 못한 구름 위의 것이었다.
보스.
아이들은 두현에게서 보스의 기운을 느꼈다. 물론 자신들은 알지 못하지만.
“저희들은요?”
남자들의 말이 거의 끝이 나자 나탸샤와 최은희과 물었다.
“너희는 집에 가서 공부나 열심히 하도록 하거라. 그리고 화장 좀 하지 마. 어색해 보인다. 나중에 대학 가서 하던지. 그게 무엇이냐?”
두 소녀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들도 소위 노는 일진이었다. 아이들이 떠받들어 주고 어디에서나 리더 노릇을 했다. 그러나 그 조그마한 자존심은 두현에 의해 완전히 뭉개졌다.
애 취급을 당한 것이다.
“클럽 가면 25살까지도 보거든요.”
“그거야 남자들이 어린 너를 어떻게 해보려고 그런 거지. 스무 살 청년부터 백 살 할아버지까지 모두에게 물어보거라. 예쁘고 어린 여자를 싫어하는 사람 있나. 그러니까 지금은 놀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나 하도록 해. 몇 년만 참으면 얼마든지 놀 수가 있단다. 지겨워서 집 밖에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가.”
“공부는 재미없어요.”
두현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뭐든 해보거라. 연기를 해서 연극영화과를 가던지, 음악을 해서 실용음악과를 가던지, 운동을 해서 체육학과를 가던지. 그거야 네가 마음먹기에 달린 거지.”
“배우기에는 늦지 않았을까요?”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거란다. 세상은 그리 짧지가 않아. 늦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대단한 거야.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잘못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인생을 살아가.”
“네. 말씀대로 할게요.”
나타샤는 조금 감동했다.
그런 잔소리야 이제껏 수백 번도 더 들었다. 부모님한테, 선생님한테, 교회 목사님한테, 사촌 오빠와 언니들한테.
하지만 그 무엇도 마음에 와 닿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가 가식적으로 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러나 두현은 아니었다.
그가 하는 말은 생생하게 귀를 파고들어 마음을 움직였다. 듣고 있자니 당장에라도 무엇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갑자기 의욕이 마구 솟는다.
두현이 이 세상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나저나 오빠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나?”
“네.”
“두현, 차두현이라고 부르거라.”
차두현이라.
다섯 아이들은 그의 이름을 가슴속에 품었다. 제대로 당하기는 했지만 밉다는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그들을 지배했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반면 차두현은 입술이 양쪽 끝에 닿았다.
흠, 오빠라니.
겨우 17∼9세밖에 되지 않는 어린 소녀가 두현에게 오빠라고 하자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며칠 전까지로 치면 손녀뻘이다.
아들이 결혼해서 자식을 낳았다면 이 소녀 정도의 나이가 되었을까.
연락이 끊겼으니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듣는 오빠 소리는 두현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조금은 낯이 간지러웠지만.
이들 때문에 잠이 확 날아갔다는 것에 대한 짜증도 가라앉았다.
“오빠는 대학생이세요? 아님 아직 고딩?”
조직 폭력배죠? 라고 물으려고 했지만 차마 말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두현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아이들은 깜짝 놀랐다. 사람을 죽일 때 미소를 짓는다면 바로 저것이라고 생각했다.
“둘 다 아니다.”
그는 아직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 첫발을 내딛지도 않은 상태였다.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도 정하지 않았다.
돈? 좋다.
권력? 좋다.
학벌? 당연히 좋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원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두현은 그런 것에 얽매이기 싫었다.
좀 자유롭게 살고 싶다. 돈에 대한 굴레에서 벗어나 세상을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이제 첫발이다.
“그럼 몇 살이신데요?”
“나는 일흔두 살이란다.”
“에엑?”
다섯 아이들이 모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표정이 너무 귀여웠다.
아직 입에서 술 냄새가 풍기지만 잘만 다루면 아이들을 괴롭히고 싸움질이나 하며 조직 폭력배가 되는 직행 버스를 태우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싫다고 해도 상관이 없었다.
이 아이들이 그와의 약속을 잘 이행한다면 그도 충분한 보상을 해줄 생각이다.
“거짓말이죠?”
그런 아이들을 향해 두현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들을 건너편 아파트 옥상에서 쌍안경을 들고 지켜보던 사내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저 동무래. 두목 기질을 타고났서야. 아무래도 영력이 높은 신이 깃들었갔어.”
제아무리 소년들이라고 하지만 불량배들이다. 그들은 겁이 없었다.
저렇게 고분고분 만들기란 쉽지가 않았다. 더해서 두현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저 얼굴로.
두현이라는 인물에 대해 흥미가 생겨났다.
소장에게 물어보니 닥치고 살피라고 해서 짜증이 났지만 그 생각은 점점 옅어졌다.
쥐꼬리만 한 박봉이지만 할 맛이 난다.
언젠가 저자가 죽지 않는다면 한 번 붙어보고 싶었다.
죽지만 않는다면.
2. 노인 공경(1)
새로운 삶의 또 다른 아침이었다.
커튼을 열자 따가운 햇살이 눈을 부셨다. 이곳이 해변이라면 선글라스를 끼고 비치 의자에 누워 책을 보면 좋겠다. 주위에 비키니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으면 더 좋다. 선그라스 속에 눈동자가 마구 돌아갈 생각을 하니 흥겨웠다.
여름이 오면 꼭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것 외에 무엇을 하지라는 생각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굳이 지금 하지 않더라도 하고 싶은 일은 분명 생각이 날 것이다.
두현은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아직도 낯설다. 익숙해져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었다.
몸은 커졌지만 몸매가 영 꽝이다. 우람하기는 하다. 단지 그뿐이었다.
통나무를 다듬지 않고 아무렇게나 방치한 것 같았다. 이 멋진 몸을 가지고 이대로 내버려 둔다는 것은 몸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최소한 깎고 다듬어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겨났다.
두현은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은 후 서점에 들러 트레이닝에 대한 책을 여러 권 골랐다.
책을 들고 계산을 하는데 서점 직원이 힐끗힐끗 쳐다본다. 화장을 했지만 어린 티가 났다.
아마 대학생인 모양이었다.
어린 여자가 관심이 있는 것처럼 쳐다보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나에게 관심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번호를 물어보면 가르쳐 줄까?
주책이다.
이 나이에 손녀뻘도 되지 않는 어린 여자에게 수작을 건다는 것이 망령이 난 것처럼 느껴졌다.
반면 여직원은 그것 때문에 두현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비상벨을 누르기 위함이었다.
저 조직 폭력배가 칼을 꺼내 자신을 찌르기 전에 비상벨을 눌러야 한다.
비상벨을 누른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쩌면 수십 번이나 찔릴지도 모른다. 얼마나 아플까. 피투성이가 되어 죽겠지.
갑자기 엄마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단축 번호 1번을 눌렀다.
―여보세요.
다행히도 엄마가 바로 받았다.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 갑자기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지금껏 엄마의 속만 썩이고 효도를 하지 않은 것이 너무 후회가 되었다.
여기서 살아난다면 반드시 엄마에게 효도를 하리라.
“엄마. 엉엉엉엉.”
여직원은 목 놓아 울었다. 너무 서럽게 울어 두현이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보세요?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야. 엄마. 엄마, 많이 사랑해.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그럼. 알지. 우리 딸. 왜 그래? 알바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어?
“아니야. 엄마. 내 통장에 500만 원 있으니까 엄마가 알아서 써. 비밀번호는 1818이야.”
―알았어. 고맙게 쓸게. 그런데 정말 무슨 일이야?
“엄마. 정말 고마워.”
그녀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앞에 두현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비명을 질러야 할까. 아니면 평상시대로 나긋하게 대답을 할까.
“얼맙니까?”
두현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 여직원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것이 살인마의 목소리구나. 목소리에서 어둠의 손길이 나와 온몸을 죄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바코드를 찍었다.
“이, 이만육천 원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두현은 현금으로 계산을 하고 서점 밖으로 나왔다.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지 알았지만 아니었나 보다. 집에 큰 흉조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갑자기 너무 서럽게 울어 서점 안에 계속 있기도 불편했다.
두현이 밖으로 나가자 서점의 여직원은 주저앉아 오줌을 찔끔거렸다는 것은 그는 절대로 알 리가 없었다.
길을 걷자 주위의 사람들이 주위에 다가오지 않았다. 비키며 걷는다는 말이 옳았다.
길가에서 스쳐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한 번쯤은 쳐다보고 지나치는 것이다.
‘하긴 보통 사람보다 내가 크긴 허구먼.’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 보통 성인에 비해 머리 하나는 크다.
더군다나 키만 큰 것이 아니었다. 어깨도 넓고 각이 져서 훨씬 우람하게 보였다.
프로 레슬링이라도 하는 사람인가라고 의심받기에 좋았다.
하지만 얼굴은 그런대로 봐줄 만하다. TV에 나오는 장돈건이나 우지섭 정도는 안 되지만 이 정도면 여자들이 좋아할 남자의 향기를 뿜어낸다고 생각했다.
착각은 자유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 겁을 먹은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두현이었다.
책을 사고 난 후 스포츠 전문 매장에 들러 운동 기구를 골랐다.
스포츠 전문 매장에서 느긋하게 TV를 보던 사장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십시오.”라고 말을 하다 갑자기 덤벨을 들었다. 주위에 무기가 될 것은 많았다.
그리고 뒤로 물러나며 핸드폰을 꺼냈다.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경찰한테 신고할 생각이다.
어느 조직이지?
조직에 있는 친구들이 있어 잠깐 그쪽 세계에 있기는 했지만 모두 옛일이었다.
지금 그를 찾아올 조폭은 없었다.
사장은 맹렬하게 머리를 굴렸다. 과거 누군가에게 큰 피해를 입힌 적이 있던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사내에게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