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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안전보장 사무소 1(6화)
2. 노인 공경(2)
“운동 기구 좀 살까 해서 왔습니다.”
점잖은 말투.
“정말이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네? 그럼 스포츠 매장에 운동 기구를 보러 오지 다른 일로 오겠습니까?”
하긴 그의 말도 맞았다.
자신이 너무 앞서 나간 것은 아닐까.
사장은 두현을 자세히 뜯어봤다. 너무 겁을 먹어서 느끼지 못했지만 보기보다 어려 보였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방심은 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돌변해서 자신의 목을 조르거나 칼침을 놓을지 몰랐다.
그렇기에 한 발자국 떨어져서 물었다.
“네. 무슨 운동을 하시죠?”
태어나서 운동이라고는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두현이었다.
그러나 사장은 자신의 몸만 보고 운동을 하고 있다고 단정한 모양이었다.
사장도 운동을 꽤나 했는지 아직 쌀쌀한 날씨임에도 빨간색 반팔티를 입고 있었다.
반팔티 밖으로 튀어나온 이두박근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장도 두현에 비해서는 왜소해 보였다.
두현의 기본적인 하드웨어가 너무 뛰어났기 때문이다. 머리색만 노랗다면 서양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근력 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어떤?”
정말로 운동만 할 셈인가.
하긴 요즘 조폭들에게 운동은 필수다. 돼지처럼 몸만 찌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사장은 두현의 체형을 살폈다.
정확히 무엇을 찾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마른 체형의 사람이 왔다면 운동 기구를 설명하고 추천을 해줬을 테지만 두현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아직 근육 트레이닝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추천을 해주시면 그것으로 하겠습니다.”
“운동을 해본 적이 없어요? 정말입니까?”
사장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마음이 놓였다. 사내의 말투도 시원시원한 것이 아무래도 자신이 착각했던 모양이다.
두현이 손님이라는 생각이 들자 사장의 말투는 급격히 상냥해졌다.
“네.”
“허, 신이 내린 몸이군요. 누가 보더라도 바위처럼 보이는데요.”
“벗으면 볼품없습니다.”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통뼈를 가진 사람들은 옷을 대충 입어도 팔의 두께와 어깨의 벌어짐으로 인해 운동을 한 것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본래 힘이 세고 맷집이 좋았다.
운동을 해보지 않았다고 하나 두현의 몸집으로 보아 꽤나 근력이 강할 것 같았다.
“그럼 가장 기본적인 세트 기구를 구입하시면 됩니다. 이거 한번 해보세요.”
사장은 운동 기구 중 하나인 벤치프레스에 누워 시범을 보였다.
“이 운동은 대흉근을 비롯해서 삼각근, 전거근, 오구완근 등을 단련시키는 데 좋습니다. 한 번에 12개. 3세트를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근육의 움직임을 느껴야 합니다. 30kg 100세트를 해도 근육의 움직임을 느끼지 못하면 그냥 힘만 든 중노동일 뿐이니까요.”
두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벤치프레스에 누웠다. 키가 워낙 커서인지 등받이가 짧게 느껴졌다.
사장은 두현의 덩치를 생각해 50kg으로 맞췄다. 봉까지 합친다면 60kg이었다.
처음 운동을 하는 사람들 특징이 처음부터 무리하게 몸을 혹사해 금방 싫증을 느낀다는 것이다. 다음 날이면 골병이 드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워 나가다 보면 근육이 늘어나는 것이 보이고 재미도 느끼게 된다.
또한 자신의 힘을 과시하여 본래의 무게보다 더욱 무겁게 드는 경우도 있었다.
뼈 나간다.
정말 조심해야 할 운동 습관 중 하나였다.
사장은 두현의 머리맡으로 가 서포트를 했다. 가장 중요한 트레이닝 중에 하나였다.
사람들은 벤치프레스를 쉽게 생각하는 잘못된 경우가 있었다.
일 년에도 몇 번씩이나 벤치프레스에 깔려 죽는 사람이 발생한다.
서포트가 없으면 그만큼 위험한 운동이 벤치프레스였다.
“들어 보세요.”
사장의 말에 두현은 팔을 뻗었다. 생각보다 쉽게 팔이 올라갔다.
그는 사장이 가르쳐 준 대로 들숨과 날숨을 번갈아가며 역기를 왕복시켰다.
“이거 너무 가벼운데요.”
“그래요?”
보통 처음은 그렇게 생각한다.
아마 2세트를 더하게 되면 그런 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사장은 10kg을 올렸다.
두현은 그것도 쉽게 해냈다.
“이것도 너무 가볍습니다.”
이상하다.
팔이 떨릴 텐데.
사장은 아예 20kg을 올렸다. 이번이 3세트째다. 근육이 피로를 느껴 힘이 들 것이다.
그러나 두현은 그다지 힘을 들이지 않고 해냈다.
“허, 정말 처음으로 들어 보는 것이 맞나요?”
“네. 괜찮게 하는 편입니까?”
괜찮은 정도가 아니다.
이건 괴력이었다.
처음 벤츠프레스를 드는 사람이 90kg을 드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두현은 120kg을 들고 나서야 벤치프레스를 멈췄다.
놀란 사장은 입만 벌리고 있었다.
만약 이 사내가 운동에만 집중한다면 역도 선수가 되어도 손색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두현은 운동 기구 세트를 집으로 배달하기로 하고 매장을 나왔다.
“잠깐만이요.”
사장이 두현을 불러 세웠다.
두현은 자리에서 멈춰 사장을 바라봤다.
사장은 그런 두현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살폈다. 상당한 위압감이었다.
덩치만 커서 그런 것이 아니다.
본래 가지고 있던 기질이 거칠었다.
조폭으로 오인을 할 만했다.
사장은 오랜 시간 운동을 했기에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나이는 왜 묻습니까?”
두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나이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본래대로 일흔이 넘었다고 한다면 미친놈 소리 듣기에 딱 알맞았다.
그렇다고 학생이라고 하기에도 뭔가 거슬렸다. 본인이지만 본인의 나이를 정확하게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다.
“혹시 운동을 할 생각이 있으면 한 번 연락하라고요. 그 좋은 하드웨어를 썩히기는 아까운 것 같아서요.”
사장은 명함 한 장을 건넸다. 거기에는 ‘KEG 코리아 이사 조명국’이라고 쓰여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곳이다.
“여기가 뭐하는 곳이죠?”
“한국 종합 격투기를 가르치는 곳이에요.”
“종합 격투기요?”
“네. K―1이나 UFC 본 적은 있죠?”
“없습니다.”
먹고 살기 힘든 판에 그런 것까지 볼 여유는 없었다.
두현의 말에 조명국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운동을 한다기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아니었나 보다.
“음. 한 번 찾아보고 생각 있으면 연락해요. 강해지고 싶다면 얼마든지 소개해 줄게요.”
사실 한국종합격투기는 내리막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K―1은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관심을 가진 사람들도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어떤 식으로든 스타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한국종합격투기는 명맥을 감추고 말 것이다.
찬란했던 영광을 가진 권투처럼 말이다.
물론 두현이 스타가 될 재목이란 것은 아니다. 그저 운동도 해보지 않았음에도 엄청난 힘과 아직 어려 보이기에 한 가닥 희망을 건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 명국을 실망하게 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관심이 없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명함은 가지고 가세요. 나중에라도 생각이 바뀌면 연락을 주세요.”
두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한우집이 보였다.
두현은 걸음을 멈추고 그곳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언젠가 아내와 함께 먹었던 소고기가 기억이 난다.
결혼을 하고 나서 처음으로 해본 외식이었을 것이다. 없는 살림이지만 아내는 알뜰하게 돈을 모았다.
그리고 아내는 미소를 지으며 두현을 손을 잡고 외식을 하자고 했다.
그는 ‘돈도 없는데 무슨 외식이야.’라고 외쳤다. 너무 살림이 궁핍하다 보니 만사가 짜증이 나던 시기였다. 아내를 때린 적은 없지만 욕설은 다반사고 없는 살림도 때려 부쉈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하면 너무 후회스럽다.
아내의 눈이 너무 슬퍼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금방 미소를 되찾고 두현의 손을 잡고는 소고기 집으로 향했다.
일류가 아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고기 집이었다. 가격도 삼겹살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한우가 아닌 수입이기에 가격이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둘의 입장에서는 그것도 꽤나 큰 지출이었다.
그래도 아내는 너무 맛있게 먹었었다.
두현은 한우 집으로 들어갔다. 웨이터가 그를 보고 흠칫한다.
몇 번 겪다 보니 이제는 별 감흥이 없었다.
웨이터는 금방 표정을 바꾸고는 친절하게 ‘어서 오세요.’라고 말한 후 자리를 안내해 줬다.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최고급 한우로 5인분 주십쇼.”
나이에 맞지 않게 중년 이상의 말투였다. 그것이 신기했지만 웨이터는 빙그레 미소를 짓고는 주문을 받았다.
얼마 안 있어 한상이 거하게 차려졌다.
여종업원이 고기를 가지고 와 구웠다. 오랜만에 맡는 고기 냄새였다.
하긴 근 1년간은 고기 구경도 못해 본 것 같았다.
두현은 젓가락을 집어 고기를 한 점 맛보았다.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까. 혀와 함께 녹아 버리는 것 같았다.
이 부드러움이란.
두현은 허겁지겁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아직 익지도 않았지만 불판에 올려놓기 무섭게 고기를 먹었다.
이렇게 맛있는데.
아내에게 제대로 된 고기 맛도 보여주지 못하고 보낸 것이 못내 미안해 가슴을 움켜쥐었다.
주르륵.
갑자기 눈물이 났다.
“크헉! 크허허헉!”
울음을 참으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계속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기를 먹다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는 두현을 보며 종업원과 손님들은 안절부절못했다.
“음식이 맛이 없나 봐. 어떡해요?”
“5인분을 서비스로 가져다준다고 그래. 여기서 소란을 피우면 손님 다 떨어진다.”
“사장님이 가세요. 무섭단 말이에요.”
“나도 무서워. 돈받은 값은 해야지.”
“차라리 그만둘래요.”
두현 덕분에 사장은 졸지에 종업원을 잃었다. 꽤나 시끄러웠지만 두현은 그들을 의식하지 못했다.
젓가락으로 계속해서 고기를 입안에 넣는다.
이렇게 맛있는데.
이렇게 맛있는데를 반복하면서.
* * *
부릉부릉.
쇼바를 자기의 키만큼이나 높여 과연 탈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10여 대의 오토바이가 사람이 뜸한 재개발 단지 내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운전하는 자들은 통을 줄인 바지를 입고 염색한 머리가 대부분이었다.
귀를 뚫은 것은 기본이고 입술과 코에 피어싱을 한 학생들도 보였다.
오토바이를 세운 남학생들이 내리자 뒤에 타고 있던 여학생들도 따라 내렸다.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헬멧을 쓰고 있는 학생은 없었다.
“뭐하는 거야?”
학생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덩치 큰 아이가 담배를 물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대영고 2학년 우두머리인 조재범이었다.
“여기서 나가자.”
일몽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