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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안전보장 사무소 1(7화)
2. 노인 공경(3)
요 며칠간 그들은 다른 곳에서 폭주를 뛰며 즐겼다. 아직 날씨가 쌀쌀하지만 한강 둔치에 가서 술도 마시며 여자아이들도 헌팅했다.
한일몽은 안심했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친구들이 재개발 구역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친구들 중에서 리더인 재범이 오토바이를 이곳으로 몬 것이다.
일몽이는 가슴이 덜컥거렸다.
두현이 떠올랐다.
그리 나쁜 사람 같지는 않지만 수가 틀리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그리고 그에게 맞은 최초의 한 대.
그것은 짧은 그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만큼 두현의 따귀 한 대는 엄청났다.
일몽은 두현의 말대로 이 생활을 접기로 했다. 이제까지의 생활이 아무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그 나이에 있어서는 친구들과의 의리가 가장 중요했다.
친구들과의 의리라.
정말 의리일까.
의리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의리란 반 아이들을 괴롭히고 돈을 뺏으며 희희낙락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형님은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 시작해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였다.
이제 열여덟 살이다.
무엇을 하던지 형님의 말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조만간 기회를 봐서 친구들에게 정식으로 그룹을 탈퇴하겠노라고 말할 작정이다.
하지만 친구들이 이곳까지 온 이상 말을 꺼내야 했다. 아이들이 반대를 심하게 한다면 몇 대 맞아줄 생각도 있었다.
“씨발놈아, 뭔 소리야? 여기는 우리의 낙원이라고. 가긴 어딜 가? 헛소리 집어치우고 아무 곳이나 골라잡아 들어가서 한잔 빨자.”
“신고 들어갈 거야.”
“씨발. 쫌생이처럼 왜 그래? 언제 우리가 짭새들 무서워하는 것 봤냐. 오토바이 숨겨놓고 아차하면 튀는 거지. 그나저나 너 왜 그래? 오늘 좀 이상하다.”
“그렇게 보여?”
“어. 혹시 벌써 본드 불었냐?”
“지랄한다. 안 해 그딴 거.”
“염병. 니가 제임스 본드라면서. 세상의 모든 본드 맛을 본다고 한 게 언젠데.”
그런 말을 했던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당연하게 하던 일인데 왜 지금은 진저리가 쳐질까.
“어쨌든 미안하게 됐어. 오늘부로 대영 일진회에서 빠질게.”
“뭐?”
그의 말이 의외였던지 재범은 물론 다른 아이들까지 모두 멈춰 일몽을 바라봤다.
일진에서 빠진다는 소리는 왕따 생활을 한다는 것과 같았다.
아무리 싸움을 잘한다고 하더라도 학교 전체 학생이 말을 시키지 않으면 왕따가 된다. 또한 여럿이서 괴롭히는 것은 일상이었다.
한 손이 두 손을 막지 못한다.
왕따는 싫어도 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일진과 같이 어울리는 것이 싫은 학생도 분명히 있었다. 부모님의 눈치고 보이고 친구였던 같은 반 아이를 괴롭히는 것도 싫다.
그러나 왕따를 시키지 않으면 자신이 괴롭힘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나서서 친구를 괴롭히는 것이다.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미친 거야?”
“아니. 며칠 전부터 깊게 생각했어. 난 너희랑 어울리지 않아.”
“미친 새끼. 지금까지 네가 가장 날뛰었거든. 못 들은 걸로 할 테니까 담배나 두 갑 사와.”
“다시 말할게. 나는 일진회에서 탈퇴할 거야. 그리고 모두 이곳에서 나가 줬으면 좋겠어.”
모두가 조용해졌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했다.
일몽은 싸움 실력으로 치면 대영 고등학교 2학년 일진회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하지만 원터치로 붙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그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작은 몸으로 인해 깡과 오기로 싸움을 이겨왔다.
그와 붙은 아이들은 지레 겁을 먹고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재범에게 그것이 통하지는 않았다.
재범은 목을 좌우로 돌리며 일몽 앞으로 다가왔다. 일몽은 어금니를 물었다.
이대로 보내준다면 좋지만 한두 대 맞아도 상관없었다.
단, 다른 아이들까지 합세해서 다구리를 놓는다면 참지 않을 것이다.
재범이 일몽의 한쪽 귀를 잡고는 좌우로 흔들었다.
“씨발 놈아, 지금 뭐라고 했어?”
역시 이렇게 나온다.
“치매야? 왜 몇 번이나 말해도 못 알아들어.”
“이 좆 같은 새끼가!”
재범은 일몽의 뒷목을 잡고 바닥에 박아 버렸다.
뒷목을 잡히면 어지간히 힘이 세지 않고는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지금처럼 일몽보다 10cm 이상이 큰 재범이 뒷덜미를 잡고 흔들면 탈출이란 거의 불가능했다. 길거리 싸움에서 뒷덜미를 잡히거나 마운틴 자세를 허용하게 되면 게임은 끝이 났다.
이마가 바닥에 박힌 일몽이 일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뒷목이 잡힌 상태에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재범은 발등으로 일몽의 얼굴을 차올렸다.
빡!
빡!
허리를 반쯤 숙인 상태라 강하게 차올릴 수는 없었지만 일몽이 충격을 받기에는 충분했다.
대여섯 번을 차자 이마가 깨지며 피가 튀었다.
“다시 한 번 말해봐. 이 새끼가 겁 대가리를 상실했나. 어디서 엉겨, 엉기긴.”
피가 하얀 운동화를 적시지만 재범은 일몽을 놓지 않았다.
견디지 못한 일몽은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더 이상 충격을 먹었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다시 말해보라고. 씹새끼야. 앙! 아까 뭐라고 했어? 나 보고 치매라고? 뒈져 버려, 개자식아!”
재범은 허리를 펴고 발바닥으로 일몽의 뒤통수를 내리찍었다.
바닥과 두개골이 부딪치는 ‘꽈직’ 소리가 소름 끼치게 울려 퍼졌다.
다른 아이들은 그런 재범을 말리지 못했다. 일진회 아이들은 그를 ‘미친개’라고 불렀다.
한 번 흥분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종종 말리는 친구에게도 폭력을 휘두른다.
그가 멈추지 전까지는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다.
일몽이 움직이지 않았다.
바닥에는 그의 피가 흥건히 흘러내렸다.
“죽은 것 아닐까?”
또 다른 일진회의 멤버인 현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껏 재범의 미친 짓거리를 많이 봤지만 오늘은 너무 심했다.
현식은 겁이 덜컥 났다.
일몽이 죽기라도 했다면 여기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공범으로 몰릴 것이다.
범법자가 되기는 싫었다.
가슴이 마구 뛰고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딱.
재범은 현식의 뒤통수를 갈렸다.
“죽긴 새끼야. 사람은 그렇게 쉽게 안 죽어. 너희들은 이 새끼한테 오줌을 싸라. 아주 본때를 보여줘야지. 다시는 탈퇴한다는 말이 안 나오지. 너희들도 잘 알아둬. 우리 대영 일진회에 가입은 쉽게 할 수 있어도 탈퇴란 있을 수가 없어. 모두 하나야. 알았어?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죽는다. 알았냐고! 흩어지는 새끼는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재범의 독기 서린 시퍼런 말에 아이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는 현식의 옷깃을 잡아 앞으로 밀었다.
“왜?”
“어서 이 새끼한테 오줌 누라고.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여자애들은 빠져도 돼. 난 여자를 존중하거든. 빨리 해!”
아이들이 주춤주춤 쓰러진 일몽에게 걸어갔다. 그들은 일몽의 주위를 둘러싼 후 바지 지퍼를 내렸다.
여자아이들은 그들의 모습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재밌다는 표정이 가관이다.
역겹다는 표현이 옳았다.
그때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그들을 향해 덮쳐 왔다.
달빛이 좋아서 그런지 잠이 오지 않는 두현이었다. 처음에는 뒤치락거렸지만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굳이 잠을 잘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서점에서 사온 운동에 관한 책을 몇 장 넘기던 두현은 옥상으로 올라갔다.
어차피 몸을 단련시키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제대로 하기로 했다.
새로운 삶의 첫 번째 목표다.
이렇게 목표를 세우고 하나씩 해 나가면 빛이 보일 것이라 믿었다.
자신이 운이 좋아 젊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결과가 있다.
나쁜 일을 하여 이득을 얻게 되면 그 당시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나중에 반드시 대가가 돌아온다.
그래서 삶은 공평한 것이다.
적어도 두현은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왔다. 비록 과거에는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했지만 이제 그렇게 살면 된다.
하나씩 하나씩.
실천하자.
그럼 젊어진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두현은 근육 스트레칭을 한 후 팔굽혀펴기를 했다.
이상하다.
분명 그는 120kg 벤치프레스를 성공시켰다. 아니, 성공시킨 것뿐만 아니라 시간이 날 때마다 근육을 단련시켰다.
하지만 팔굽혀펴기는 겨우 스무 개만 성공시킨 것이 아닌가.
어떻게 된 일인지 팔굽혀펴기가 훨씬 힘들었다. 열 개가 지나자 허리가 밑으로 내려가며 전체의 근육이 부들부들 떨렸다.
몇 번이나 해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팔굽혀펴기는 벤치프레스와 다른 근육을 늘려주는 모양이었다.
팔굽혀펴기는 빼놓지 않고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팔굽혀펴기를 끝내고 30kg짜리 바벨을 들었다. 책에서 봤던 바벨 컬이란 운동이었다.
두현은 팔꿈치를 몸에 붙여 고정시키고 최대한 높고 넓은 호를 그려 들어 올렸다.
들어 올릴 때마다 이두근이 모아졌다.
뻐근한 느낌이 괜찮았다.
하루에 하나의 근육만 단련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했던가.
두현은 팔운동을 집중적으로 했다.
바벨을 내려놓고 덤벨을 들어 삼각근을 단련하다. 근육이 꿈틀대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근육의 모양이 보고 싶어졌다. 거울이 있으면 보면서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씨발 놈아. 지금 뭐라고 했어?”
“치매야? 왜 몇 번이나 말해도 못 알아들어?”
“이 좆 같은 새끼가!”
빡! 빡! 빡!
싸우는 소리가 난다.
옥상이기에 싸우는 소리는 두현의 귀에 생생하게 들렸다. 그는 덤벨을 바닥에 놔두고 밑을 바라봤다.
두현이 사는 단지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싸움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꽤 많은 오토바이가 보였다.
언제나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럽게 굴던 그 패거리 같았다.
그런데 한 소년이 일방적으로 구타를 당하고 있었다.
어둡고 상당한 거리지만 그 소년이 누구인지 짐작을 할 수가 있었다.
조금 신기한 것은 시력이 너무 좋아졌다. 예전에는 벽에 붙은 달력의 숫자도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의 표정까지 보였다.
“젊었을 적에도 이렇게 눈이 좋았었나?”
두현은 과거를 끄집어냈지만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와 인연이 있는 소년이 구타를 당하고 있으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저런 것이라면 일말의 책임도 있었다.
두현은 트레이닝복 상의를 입고 지퍼를 채운 후 일진회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것들이 지금 제정신인가.
며칠 전 버릇을 고쳐 주었던 일몽과 친구들의 행동은 어린애 장난이었다.
저것들은 지금 정신을 잃은 일몽을 향해 오줌을 누려고 한다.
일몽이 저들에게 저런 짓을 당할 만큼 죄를 지었던가.
아이들이 죄를 지어봐야 얼마나 지었을까.
친구의 돈을 훔치거나,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말다툼을 했거나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저들이 하는 짓은 부모를 죽인 원수에게나 할 법한 일이었다.
물론 부모의 말을 잘 듣고 바르게 자란 아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미꾸라지 한 마리가 맑은 물을 흙탕물로 바꾼다. 작은 구멍이 점점 커져 후에는 댐을 무너트린다. 별것 없어 보이는 종기가 암이 되고 죽음을 부른다.
썩은 것들이 너무도 많아 보였다.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놈들도 저런 종류가 아니던가.
두현의 가슴이 뜨겁게 타올랐다.
분노였다.
두현은 오줌을 싸려던 한 남학생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그의 무지막지한 힘에 학생은 맥없이 끌려왔다.
그리고 손바닥을 들어 학생의 뺨을 사정없이 갈겼다.
짝!
따귀에서 메아리가 울린다는 것을 아이들은 처음 알았다.
서너 개의 이빨이 흩어지며 그는 쓰러졌다. 기절하지는 않았는지 일어나 손바닥으로 입을 감쌌다.
“아, 아파! 너무 아파!”
입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눈물이 줄줄 흘렀지만 그를 감싸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갑작스러운 일에 소년들이 모두 두현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놀랐는지 일몽에게 뱉으려면 소변이 움찔거리며 몇 방울만 바닥에 떨어졌다.
“아직 그게 영글지도 않은 것들이 나쁜 것만 배워서.”
두현은 가까이에 있던 학생들의 배를 주먹으로 올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