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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안전보장 사무소 1(8화)
2. 노인 공경(4)
퍽!
두 명의 학생이 배를 잡고 뒹굴었다. 생전 처음 당해보는 고통에 그들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부모님께 맞았던 회초리도, 선생님께 맞았던 사랑의 매도, 일진회에서 맞았던 선배들의 구타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혼백이 나갔다 들어올 정도였다.
“우에에엑!”
두 소년은 너 나 할 것 없이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버렸다.
“너, 너, 뭐야?”
다른 소년이 급히 지퍼를 올렸다.
그러나 그도 운이 좋지 않았다. 두현의 손바닥이 그의 뺨을 강타했다.
소년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귀에서 ‘퍽’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귀에 벌레가 들어간 것처럼 윙윙거렸다.
고막이 터졌다.
두현은 그의 배를 발로 차 버렸다.
소년은 5m 이상을 굴러간 후 차가운 바닥에 쓰러졌다. 머리부터 일어나려고 하지만 충격이 큰지 쉽지 않았다.
“이 새끼 뭐야!”
다른 소년이 각목을 들고 두현을 향해 내려쳤다. 그는 한쪽 팔을 들어 각목을 막아냈다.
잘못하다가는 뼈가 부러질 것이다. 그럼에도 두현은 주저함 없이 팔을 들었다.
빡!
소년은 각목을 들고 멈춰 버렸다.
각목이 두 동강이 났다.
반면 두현의 팔은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의 다른 팔이 빠르게 올라갔다.
손바닥이 보였다.
“씨, 씨발!”
짜아악!
소년은 턱이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고통에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작은 핀으로 턱을 수백 번씩 쪼는 고통과 비슷했다.
“으, 으아아악!”
남은 소년들이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등을 돌렸다. 두현은 재빠르게 오토바이로 다가가 발로 차 버렸다.
오토바이들은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넘어졌다. 이제는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을 칠 수도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두현이 괴물처럼 보였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인간을 잡아 사지를 찢어 죽이는 그런 괴물.
아이들은 오토바이도 내버려 둔 채 그곳에서 도망을 쳤다.
“야! 이 씨발 놈들아! 거기 안 서! 너 이 개새끼들! 학교에서 봐! 내가 가만히 내버려 두나 보자고!”
재범이 그들을 불렀지만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재범에 대한 두려움보다 두현에 대한 공포가 훨씬 컸다.
두현은 쓰러져 있던 일몽을 일으켜 세웠다. 이마가 상당히 많이 찢어졌지만 뼈에는 이상이 없어 보였다.
나중에 뇌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피가 난 것이 다행이다. 피가 나지 않으면 뇌출혈도 의심해 봐야 했다.
“괜찮나?”
“으음. 형님?”
정신이 희미하게 돌아온다.
눈동자의 초점이 서서히 돌아오자 거대한 사람이 보였다. 누군지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래. 나다.”
“아, 쪽팔린 꼴을 보였네요. 그나저나 할아버지 같은 말투는 여전하네요.”
“살 만한가 보군. 농이 나오는 걸 보니.”
“큭큭큭. 농이라니요. 조선시대에서 왔나 봐요.”
일몽은 두현의 품에서 벗어나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찢어지는 것 같지만 버틸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이 씨발, 너 뭐야? 너 뭐냐고, 이 개자식아!”
재범이 허리에 차고 있던 체인을 꺼내 두현을 향해 휘둘렀다.
불량배들이 체인을 차고 다니기는 하지만 실제로 쓰는 일은 적었다.
체인에 맞게 되면 살이 찢어진다. 살이 찢어지면서 피가 심하게 튀고 보기에도 좋지 않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체인에 찢긴 살은 꿰맬 수도 없었다.
즉, 보기 흉한 흉터가 남는 것이다.
그렇기에 불량배들은 체인을 멋으로 가지고 다닐지는 몰라도 쉽사리 쓰지 않았다.
그들도 막 나가지 않는 이상 그로 인해 전과가 생기기를 바라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재범은 아무런 가책 없이 위험한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이 자식은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는다.
체인이 두현의 팔을 휘감았다. 다행히도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어 살이 뜯기는 상처는 입지 않았다.
두현은 체인을 맞잡고 잡아당겼다. 재범이 끌려오지 않기 위해 힘을 줬지만 두현의 힘을 당할 수는 없었다.
두 발의 힘을 줘도 끌려온다. 체인을 놔야 하지만 놓는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두현은 처음으로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아이 머리통 만한 주먹을 재범의 얼굴에 꽂아 넣었다.
퍼억!
수박이 깨지는 소리가 밤하늘에 울렸다.
재범의 앞니가 모조리 부러지며 피가 사방에 튀었다. 얼굴이 이상한 모양으로 변했다.
두현의 주먹은 아직 재범의 입안에 있었다. 그가 주먹을 편다면 머리가 펑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그제야 재범의 눈동자에서 두려움이 떠올랐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두현은 재범의 입에서 주먹을 빼고는 머리를 쥐었다. 고등학생치고는 상당히 덩치가 큰 편이지만 두현 앞에 서니 어른과 아이 정도로 차이가 났다.
억센 두현의 손아귀에서 재범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재범은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몰랐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그는 항상 우두머리였다.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컸고 누구든지 설설 기었다.
간혹 배짱 좋은 놈들이 덤비기는 했지만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그는 기고만장해졌다.
학교에만 가면 그가 왕이었다. 물론 선배들이 껄끄럽기는 했지만 터치를 하는 일은 적었다.
그들에게 약간의 상납금을 받치면 나머지는 모두 자신의 것이었다.
주변 학교에 이름이 퍼지고 유명해졌다. 다른 학교 일진회에서 동맹을 맺자고 제의를 해오기도 했다.
그를 따르는 일진들도 많아졌고 거칠 것이 없었다. 같은 학년에서는 그가 왕이었고 모든 법을 만들었다. 그가 만든 법에서 어긋나는 놈들은 처단하면 된다.
잔인하고 철저하게.
그럴수록 아이들은 그를 두려워했고 그것이 즐거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다.
지금 그는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압도적인 힘 앞에 절망하고 있었다.
두현은 재범의 뺨을 쳤다.
‘철썩’ 소리가 나며 그의 고개가 확 돌아간다. 터진 입술에서 피가 튀었다.
“으으으으, 그만, 그만.”
끝내 재범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무 고통스러워 이곳을 어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프나?”
“…….”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
철썩.
두현은 다시 재범의 뺨을 후려쳤다.
재범의 뺨이 퉁퉁 붓기 시작했다. 한쪽 뺨이 너무 부어올라 본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아프냐고 물었다.”
“씨발, 너, 뭐야!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날 여기서 죽여! 그렇지 않으면 지구 끝까지 가서라도 널 죽여 버리고 말 테다!”
이 지경이 되고도 저딴 소리를 지껄일 수 있는가.
보통 독종이 아니었다. 두려움이 깔려 있던 눈동자에서 점점 살의가 짙어졌다.
살아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입히는 인간이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여기서 죽여도 될 것 같았다.
이런 종류의 인간을 살아오면서 많이 봤다. 자신의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피해를 입게 되면 상대방을 탓한다. 잘되면 자신의 공이고 못되면 남의 탓으로 돌린다. 고마움이란 감정을 모르고 세상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
이기적인 인간이란 이런 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철썩, 철썩.
두현은 부은 뺨을 연달아서 때렸다. 겨우 고삐리의 협박에 겁을 먹을 그가 아니었다.
철썩, 철썩.
너무 부어서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재범은 뭐라고 웅얼거리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객기를 부리거나 잘못했다고 빌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형님, 그만하세요.”
일몽이 다가와 두현을 말렸다.
자신도 심하게 당했지만 재범이 당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똑같이 린치를 가하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왜?”
“똑같은 놈이 되기 싫어서요.”
“보통 독종이 아니다. 이런 놈은 아예 기를 꺾지 않으면 반드시 뒤탈이 생길 것이야.”
“그때는 그때죠. 그때는 제가 이 새끼 ‘아작’을 내겠어요.”
“그냥 내가 하자는 대로 하자. 꽤 넓은 단지이지만 살고 있는 사람을 얼마 되지 않는다. 차라리 이곳 어디다 묻어 버리는 것이 나중에 위해서라도 나을 거야.”
묻어 버리자고?
농담이 참 살벌하다.
“살인범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안 걸리면 된단다.”
설마 진심인가.
하긴 두현의 존재 자체가 현실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 곧 재개발이 들어가는 단지에서 살고 있는 거구의 사내. 나이도 명확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노인네들과 비슷한 말투.
그에 반해 너무 젊은 얼굴.
대영고에서 내놓으라 하는 불량배 열 명을 한순간에 뭉개 버리는 싸움 실력까지.
뭔가 명확하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사람이 두현이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끌리는 것일지도.
“이제 그만하면 됐어요. 똑같은 놈은 되기 싫어요.”
두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보였다. 일몽을 처음 봤을 때 이 소년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훨씬 이성적이지 않은가.
어쩌면 이 소년도 일몽이처럼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소년에 대한 처벌을 불필요했다.
두현은 작은 희망을 재범에게 걸었다.
“알았다.”
두현은 재범이를 놓아주었다.
바닥에 주저앉은 재범을 일몽이 부축해 주었다.
“놔! 씨발 놈아!”
재범은 일몽의 부축을 뿌리쳤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천천히 단지 밖으로 나갔다.
두현과 일몽은 그런 재범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이것이 잘한 일일까를 생각하면서.
3. 기이한 일 기이한 밤(1)
지리산 천왕봉.
세 명의 사내와 한 명의 여인이 허무한 듯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반쯤 불타 버린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깔끔한 한복을 입고 있던 시체는 거친 산바람에 날려 모래처럼 흩어져 버렸다.
“또 산신을 잃었어요.”
검을 들고 있던 여인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의 기를 보유하고 있는 모든 신들을 잃을 것만 같았다.
“저희가 너무 늦었군요. 후.”
선글라스는 낀 사내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반짝이는 별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국의 영기가 흩날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천기를 볼 수 있는 한국의 모든 영능력자들은 저것을 보며 마음을 졸이고 있을 것이다.
일본의 압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백 년 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선글라스를 쓴 사내가 여인에게 말했다.
“두현에게 가세요. 그도 위험합니다.”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의 어떤 신도 인간의 육신을 젊어지게 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두현은 젊어졌다.
엄청난 신이 그의 몸에 잠들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가 각성을 하게 되면 일본의 침략자들에게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아직 두현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가 각성을 하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보호해야 했다. 그것이 동북아안전보장사무소가 할 일이었다.
“먼저 가겠습니다.”
여인이 빠른 속도로 산을 내려갔다. 점점 빨라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