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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안전보장 사무소 1(9화)
3. 기이한 일 기이한 밤(2)


다카모또는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한국 여자와 결혼한 평범한 일본인이었다.
나이는 47세.
일본계 기업에서 한국과의 무역을 담당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는 둘이고 모두 일본 이름으로 지었다. 아내는 한국 이름으로도 짓기를 바랐지만 다카모또는 매몰차게 거절했다.
감히 황국 시민의 씨를 받은 것만으로도 기뻐할 것이지 열등한 민족의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 말이 되지 않았다.
그가 한국인과 결혼을 한 이유는 단순하다. 일본 여자들보다 예쁘고 말을 잘 듣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 일본은 많은 한국인들의 동경에 대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전자 제품을 사랑하고 불법적으로 음악을 들었다.
많은 한국 여자들이 일본으로 건너와 농촌 총각들 혹은 노인네들과 결혼을 했다.
스무 살 파릇파릇한 것들을 칠십 먹은 노인네들이 매일같이 물고 빨고 하는 것이다.
조금은 부러웠다.
그것은 90년대까지 이어졌다.
그런 반면 일본에 대한 반발심도 만만치 않았다. 대일본제국이 개화를 시켜줬으면 감사한 줄을 알아야 하지만 이 하등한 민족들은 전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위대한 아베 노부유키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패배했지만 한국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데, 한국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한국민에게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 교육을 심어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으며 찬영했지만, 현재 한국은 결국 식민 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국민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본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
이중적인 놈들이다.
또한 2천년대에 들어 일어난 한류는 그의 심경을 심히 건드렸다.
한국의 팝스타에게 열광하는 일본의 여자들을 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창녀들이다.
창녀가 아닌 이상 한국 따위에 열광을 할 이유가 없었다.
심기가 불편한 그는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한국인은 때려야 말을 잘 듣는다.
옳지. 옳지.
아내는 엉금엉금 기며 잘못했다고 빌었다.
조금은 기분이 좋아졌다.
다카모또가 바지를 내리자 아내가 무릎을 꿇고 다가와 그의 그곳을 정성껏 입으로 빨아주었다.
역시 한국인은 맞아야 제대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1년 전이던가.
그의 귓속에서 누군가가 속삭이기 시작한 것은.
소리는 계속해서 속삭였다.
―한국인을 노예로. 한국을 일본의 재식민지로. 모든 것을 가져라. 한국의 모든 것은 너의 것이다.
등을 긁어주는 시원한 말이었다.
점점 아내에 대한 폭력도 심해졌다. 두 자식이 말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천한 한국인의 피가 섞여 그런 것이다. 저놈들도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
어느 순간 다카모또의 의식은 그 무엇에 잠식되기 시작했다.
지금도 눈으로 보고는 있지만 의지와는 다르게 움직였다.
다카모또는 단지 내 아파트 옥상에서 두현을 지켜보고 있었다.
깔끔한 명품 정장 차림에 머리도 올백으로 넘겨 명망 있는 사업가처럼 보였다.
그러나 키가 작고 몸집이 왜소했다. 약간은 이국적으로도 보였다.
킁킁.
다카모또는 코를 벌름거렸다.
“아,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 맛있는 냄새가. 내가 가장 먼저 찾았어. 조센징. 너무도 맛있어 보이는 조센징.”
다카모또의 눈알이 좌우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눈알이 눈동자 안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이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금방에라도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말을 하는 이빨은 육식동물처럼 날카롭게 갈려 있었다. 저 이빨에 물리면 살점이 찢겨져 나갈 것이다.
아무래도 제정신으로 보이지가 않는다.
다카모또는 가지고 온 첼로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소중하게 포장된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포장을 풀자 일본도가 나왔다. 그가 도를 빼내자 달빛에 비쳐 반짝였다.
주르륵.
다카모또의 혀가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꿈틀거리며 나왔다.
그의 혀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너무 길었다. 턱밑까지 내려온다.
다카모또는 혀로 일본도의 날을 핥았다. 끈적끈적한 침이 도의 날을 타고 흘러내렸다.
“오래 기다렸지. 나의 친구. 곧 조센징들의 피로 기분 좋게 해줄게.”
다카모또가 두현을 향해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 * *

두현은 근처 편의점에서 따뜻한 커피 두 캔을 사와 일몽에게 건네주었다.
일몽은 터진 입안이 아픈지 커피를 마시며 인상을 찡그렸다.
“아침에 병원을 가보도록 하거라. 제대로 치료를 하지 않으면 흉터가 남는다.”
“네. 그래야지요. 나름 남는 것은 얼굴뿐인데 이것마저 고장 나면 큰일이죠.”
일몽은 밝게 대답했다.
그는 원래 성격이 밝았다.
단지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대학입시에 떠밀린 스트레스로 인해 잠시 방황을 한 듯했다.
어린 나이에 술과 담배를 꽤나 많이 해서 체력도 떨어졌고 공부도 놓아 학업도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일몽은 거짓이 없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정말 괜찮은 것이냐?”
“글쎄요. 저런 꼴을 당했으니 재범은 당분간 학교에 나오지 않을 거예요. 자퇴를 할지도 모르고요. 어쨌든 나중에 생각하면 돼요.”
저 꾸밈없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
하긴 두현이 어렸을 적에 불량배들이란 깡패가 아닌 협객을 동경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불량배들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 아이들이 다른 학교 불량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보호를 하기 위해 나서기도 했다.
나름 의리가 있었던 것이다.
조금은 향기가 풍기는 낭만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그런 것은 남아 있을까.
의리란 단어를 알기는 하지만 이해하는 학생들은 적을 것이다.
장영희 교수는 한 명의 진정한 스승과 열 명의 친구 그리고 백 권의 책을 기억할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라 하였다.
헨리 아담스는 진정한 친구란 한 명이면 족하고 두 명이면 많고 셋은 불가능하다 하였다.
유리피데스는 한 명의 진정한 친구가 만 명의 친구보다 낫다고 하였다.
그만큼 의리로 맺어진 친구는 만나기가 어려웠다. 대부분이 진정한 친구 한 명을 만들지 못한 채 인생을 살았다.
의리를 중시했던 그전에도 그랬는데 하물며 불알친구를 왕따시키는 현실에서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힘든 일 있으면 찾아와라.”
두현은 가진 것이 없었다.
알고 있는 것도 없었다.
그가 젊어지고 난 후 가진 것이라고는 너무 팔팔해진 몸뚱이와 70년을 넘게 살아온 늙은 지식뿐이었다.
하지만 두현은 일몽을 도와주고 싶었다. 이 일이 그가 젊어지고 나서 하고 싶은 두 번째 일인 것 같았다.
“정말이요? 형님이 도와주신다면야 완전 땡큐죠. 제가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은…… 음…… 혹시 외국어 잘하세요?”
“외국어? 영어를 말하는 건가? 할 줄 모른다.”
“제가 영어가 꽝이라서요. 가장 필요하거든요.”
영어라.
그렇지 않아도 두현은 왜 초중고 전 학년에서 영어를 배우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제아무리 글로벌 시대라고는 하지만 영어가 필요 없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농사를 지면서 영어를 쓸 것인가? 헤이, 미스터 김. 오늘 감자가 많이 자랐어. 라고 영어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직장도 그렇다.
영업을 하면서 영어로 주절거리지는 않는다. 술집에서, 식당에서, 당구장에서, pc방에서, 놀이공원에서, 친구와 대화에서 영어를 쓰지는 않는다.
두현은 그것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중고에서 영어를 배워도 말 한마디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냥 기본만 하면 된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시키면 얼마나 효율적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두현이었다.
뭐,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져 영어를 제대로 못하면 아무것도 못한다고 하지만.
“못해.”
“음. 형님의 싸움 실력으로 보아 공부는 그다지 잘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어요.”
틀린 말은 아니다.
두현은 어렸을 적에도 공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공부란 새롭게 태어나고 난 후 관심이 생겨난 분야였다.
“수학은요?”
“못해.”
“과학은요?”
“못해.”
이 자식이 지금 자신을 놀리나.
일몽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안타까운 강아지의 눈빛으로 두현을 바라봤다.
“형님, 갈게요.”
자, 잠깐.
그 눈빛은 뭐지.
두현은 뭔가 크게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심리적인 공격이 더 큰 충격을 유발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때였다.
그들을 향해 엄청난 살기가 하늘에서 내리꽂히고 있는 것이 아닌가.
벼락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놀란 두현은 일몽을 잡고 옆으로 굴렀다.
쿠웅―
바닥이 움푹 파이며 불꽃이 튀었다. 불꽃은 기름을 흘리던 쓰러진 오토바이에 옮겨 붙었다.
콰콰콰콰쾅!
엄청난 화염과 함께 오토바이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래요?”
놀란 일몽이 하늘을 향해 치솟는 불길을 보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잘 모르겠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본능으로 느낀다. 어렴풋이 봤지만 바닥을 때려 불꽃을 일으킨 것은 분명 검이었다.
그것도 조선시대에서나 나올 법한 거대한 검.
자신의 몸만큼이나 긴 검을 들고 있는 자는 왜소한 체격의 사내였다.
“낄낄낄낄. 너냐? 너구나. 그래 너야. 너를 죽여야 돼. 너를 죽이고 싶어.”
어눌한 한국말.
그러나 의미의 전달은 확실했다.
“보아하니 일본 순사 같구나. 그런데 너를 왜 죽여?”
두현이 일몽을 향해 물었다.
“저요? 농담이시죠. 형님을 죽이면 죽였지 저를 왜 죽입니까?”
서로가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두현은 새로운 몸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일몽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태어나서 외국인과 이제껏 단 한마디도 섞어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일본인에게 원한을 질 일이 없었다.
“당신은 누구요?”
두현이 일본인을 향해 물었다.
“나? 나 몰라? 나는 다카모또야.”
당연히 모른다.
다카모또가 입을 벌리면서 웃자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이빨 사이로 내민 혀도 징그러웠다. 혀에서 침이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졌다.
도마뱀처럼 날름거리는 것이 두현과 일몽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빨을 날카롭게 하기 위해 정으로 갈았다. 저것으로 사람이라도 죽일 생각인 것인가.
말투로 보나 행동으로 보나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너를 죽이래. 너를 죽이래.”
“당신 미친 것이오?”
두현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너를 죽이래. 너를 죽이래. 요요요요요.”
다카모또는 두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지 했던 말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그가 점점 다가와 일본도를 휘둘렀다. 놀란 두현은 일몽의 팔을 잡고 옆으로 굴렀다.
빠직.
그들의 뒤에 있던 두꺼운 널빤지가 일격에 반으로 잘렸다. 일본도의 위력이 이토록 강했던가.
마치 광선검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저 도에 베이면 팔다리가 잘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두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위를 살핀다.
한 대만 치면 일본인을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거리가 문제였다.
상대의 리치는 1m.
일본도의 길이는 1m 50cm가량 된다. 저 거리에 닿기 전에 일본인을 쓰러트리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검도에 대해서도 알아볼 것을 그랬다. 하지만 며칠 만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검도를 배웠다고 해서 단 며칠 만에 진검을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진검 앞에 선다는 것.
그것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두려웠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오장육부가 갈리고 내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진검을 상대로 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혀, 형님. 어떡하죠? 아무래도 살인마를 만난 것 같은데.”
일몽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그로서는 운이 나쁜 하루가 연속되고 있었다. 두현을 만난 것은 그렇다고 쳐도 재범에게 너무 큰 치욕을 당했다.
두현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굴욕에 못 이겨 목을 맸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일본도를 든 일본인.
지금 그는 자신과 두현을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