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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안전보장 사무소 1(10화)
3. 기이한 일 기이한 밤(3)
“경찰에 신고해라.”
“아.”
일몽은 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이런 젠장!”
전원이 켜지지가 않았다. 아까의 충격 때문인지 액정도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다.
“고장 났어요.”
최악이다.
“어쩔 수 없지. 지금 폭발로 이곳에 남아 있는 거주자들이 봤을 것이다. 그들이 신고해 주길 바랄 수밖에.”
운에 목숨을 걸어야 하다니.
거주자들이 오토바이가 폭발한 것을 신고한다면 괜찮지만 그대로 넘어간다면 어쩔 것인가. 그들도 폭주족들이 이곳에서 난리를 친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모른 체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경찰에 신고해 봤자 귀찮은 일을 떠맡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요요요요요.”
다카모또가 두현과 일몽을 향해 마구잡이로 일본도를 휘둘렀다.
스치기만 해도 큰 부상을 입는다.
둘은 이를 악물고 바닥을 굴렀다. 얇은 머리카락도 숭덩숭덩 잘려 나간다.
두현은 화단에 있던 흙은 한 움큼 집어 다카모또에게 던졌다.
눈에 들어갔는지 손등으로 흙을 털어냈다. 그럼에도 한 손으로 일본도를 휘두르는 것은 잊지 않았다.
“뛰어!”
두현이 일몽을 끌고 뛰기 시작했다.
“빠가야로. 거기 서!”
다카모또도 그들을 쫓았다.
두현은 그가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 사내보다 자신과 일몽의 발이 훨씬 빠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그는 육상 선수처럼 그들을 쫓아오는 것이 아닌가. 일본도를 들고서 저런 속도라니.
이대로 간다면 따라잡힌다.
“요요요요. 어디 가. 어디 가. 어서 죽어줘.”
저게 제정신인가.
완전 미친놈이다.
“앗!”
몸이 성하지 않던 일몽이 다리가 꼬이며 넘어지고 말았다.
다카모또가 점점 다가왔다.
두현이 주위를 찾아봤지만 이렇다 할 무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몽을 버리고 도망갈 수는 없었다.
“우체통?”
이제는 거의 쓰지 않는 우체통이 눈에 띄었다.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두현은 우체통을 팔로 안고 있는 힘껏 뽑아냈다.
하지만 볼트로 단단하게 고정시켜 놓은 우체통이 뽑힐 리가 만무했다.
“으으으윽!”
더욱 힘을 준다.
역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혀, 형님!”
일몽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뒤를 바라보았다. 바로 코앞까지 다카모또가 다가와 있었다. 그가 일본도를 들고 일몽에게 휘둘렀다.
곧 일몽의 몸은 반으로 쪼개지고 말 것이다.
일몽과 두현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일몽의 눈빛은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다.
안 돼.
일몽을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으아아아악!”
허리가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우체통을 뽑아야 한다. 두현의 팔 근육이 심하게 부풀어 올랐다. 심줄이 터질 것처럼 숨을 쉰다.
우드득.
간절한 바람이 하늘에게 닿았을까.
우체통을 고정시켰던 지지대가 부러지고 볼트는 뽑혀 나갔다.
오랫동안 방치가 되어 지지대가 낡았던 것이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머리 위로 우체통을 들어 올린 두현은 그것을 다카모또에게 던졌다.
쾅!
엄청난 소리가 났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와 비슷할 정도로 굉음이었다. 우체통에 깔린 다카모또는 움직이지 않았다.
“주, 죽었나?”
일몽은 천천히 다카모또에게 다가갔다.
정말 악몽이란 말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오늘 밤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때 다카모또의 팔이 움찔거렸다.
그리고 다가오던 일몽을 향해 주저 없이 일본도를 휘둘렀다.
“헉!”
이 거리에서?
조금 떨어져서 확인을 하려했던 일몽의 착오였다. 다카모또의 거리가 예상보다 훨씬 길었다.
이대로면 다리가 잘려 나간다.
그의 몸이 갑자기 붕 떠올랐다.
일본도가 일몽의 발밑을 살짝 스치고 지나쳤다. 운동화 밑바닥이 깨끗하게 잘려 나갔다.
과거 총이 없던 시절에 검과 도가 인간들에게 가장 강한 무기라 했다더니 거짓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것을 사용하자 무엇이든 잘라 버릴 것만 같았다.
“사, 살았다.”
두현이 일몽의 뒷덜미를 잡고 당긴 것이다. 일몽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벌써 몇 번이나 두현이 그를 구해줬다.
고마운 마음과 자신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무력감이 양면의 동전처럼 동시에 생겨났다.
“저것 봐.”
두현은 몸을 일으키고 있는 다카모또를 가리켰다.
그는 두현이 던진 우체통에 머리가 깨진 상태였다. 눈알이 반쯤 튀어나왔고 뺨은 뼈가 보일 정도로 움푹 파였다. 엄청난 피가 흘러 바닥을 축축하게 적셨다.
“이히히히. 재밌다. 재밌어. 계속해 봐. 나는 재밌게 썰뚝설뚝 잘라줄게.”
“저러고도 살아 있을 수가 있나요?”
놀란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몰라. 하여간 제대로 걸린 것만은 확실하다. 어서 저놈에게서 벗어나야 해.”
다카모또가 그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저런 몰골임에도 아직 웃고 있었다.
달빛에 비친 그의 웃는 모습은 괴기 영화를 보는 것보다 공포스러웠다.
“가자.”
그들은 단지 내의 아파트로 뛰어들어 갔다. 아파트라고는 하지만 20년이 넘은 5층짜리 낡은 건물이었다. 복도를 뛰어 올라갈 때마다 발자국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댔다.
“같이 가. 같이 가. 이히히히히.”
다카모또의 목소리가 그들의 바로 뒤에서 들리는 듯했다.
옥상의 철문은 다행히도 열려 있었다. 평상시라면 자물쇠로 잠그지만 사람들이 이사 가면서 열어놓은 모양이었다.
옥상으로 올라온 두현과 일몽은 문을 닫았다. 안에서 잠그는 형태라 밖에서 밀고 들어올 수도 있었다.
“어떡하죠?”
“잠시만.”
두현을 옥상을 살펴봤다.
사람들이 버리고 간 물건들이 꽤나 많았다. 오래된 가구들도 보인다.
하긴 이곳에 버리고 가면 되는 것을 동사무소에서 폐기물 스티커를 사서 붙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얄밉지만 나무랄 수는 없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부자가 없었다. 모두가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기에도 바빴다.
단 천 원이라도 이곳에 살던 사람들에게 아껴야 할 돈이었다.
“저것들을 옮기자.”
“다 왔다. 어디 숨었니. 꼭꼭 숨어라.”
다카모또의 목소리가 점점 다가온다.
둘은 큼직한 가구를 들고 철문을 막았다. 하나로는 되지 않는다.
되는 대로 가져다 가구 위에 쌓아서 무게를 높였다.
철컥철컥.
다카모또가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문이 열리지 않자 두드렸다.
당장에 열릴 것 같지 않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무기를 들어.”
“네? 아, 네.”
두현과 일몽은 옥상에 있던 쇠파이프를 찾아 들었다.
그리고 철문 양쪽에 가서 섰다. 다카모또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쇠파이프를 내려치기 위함이었다.
이것에 맞으면 죽을지도 모르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대로 일본도에 맞아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정신을 잃으면 가장 좋다.
그럼 그를 묶고 경찰에 넘기며 된다.
무엇이든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길이 없었다.
쿵쿵쿵쿵.
문을 두드리던 소리가 멈췄다.
약간의 공백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어?”
두현은 본능으로 무엇인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문밖에서 엄청난 살기가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꽈직!
문이 열십자로 갈리며 잘려 나갔다. 문을 막아두었던 가구들도 힘없이 잘리며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철문을 일본도로 잘랐다.
“이, 이럴 수가!”
완전 괴물이 아닌가.
잘린 문 사이로 다카모또가 뛰어들었다.
“이히히히. 놀랐지? 놀랐지?”
그는 일본도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후 두현을 향해 내리찍었다.
깡!
불꽃이 튀었다.
간신히 막았다.
쇠파이프를 들지 않고 각목을 들고 있었더라면 바로 저승사자와 면담을 했을 것이다.
두현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끼끽.
문제가 생겼다.
일본도가 쇠파이프를 잘라내고 내려오고 있었다.
벌써 반쯤 잘려 나갔다.
도저히 몸을 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무슨 방도를 생각하지 않으면 끝장이 나고 만다.
모험을 해야만 했다.
두현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속으로 ‘하나 둘 셋.’ 을 센 후 쇠파이프를 놓으며 일본도를 양손으로 잡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두현이 태어나고 나서 가장 빠르게 움직인 행동이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쇠파이프와 함께 머리가 잘렸을 것이다.
짧은 사이에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래도 힘이라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힘으로 일본도를 밀어내고 몸을 빼면 된다.
하지만 두현에게 악재가 겹치고 말았다.
너무 많이 흘린 식은땀으로 인해 손바닥이 미끌미끌했던 것이다.
“빌어먹을!”
욕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점점 미끄러진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정말 끝인가.
빡!
일본도에서 힘이 풀리며 다카모또가 두현의 가슴으로 고꾸라졌다.
“헉헉헉헉!”
일몽이 쇠파이프를 잡고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쇠파이프를 들고 있는 손이 떨리는 것으로 보아 그도 꽤나 놀란 모양이었다.
두현은 다카모또를 옆으로 치우고 일어났다. 뒷머리가 심하게 깨져 두개골이 삐져나온 것이 보였다. 이 상태로는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급하게 119에 연락을 한다면 살 수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너도 있었군.”
“너, 너도 있었다니요. 그런 실례의 말을.”
“그래. 잘했다. 덕분에 살았다.”
두현은 일몽의 머리를 헝클어 주었다.
그는 짐이 아니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두현은 다카모또의 일본도에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구가 생겼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별 말씀을.”
일몽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도 철문이 잘려 나갔을 때는 너무 놀라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그리고 두현과 다카모또가 맞붙었다. 두현도 대단하지만 다카모또는 인간 같지가 않게 느껴졌다.
정신을 차린 일몽은 간발의 차이로 두현을 구해낼 수가 있었다.
어차피 그를 구해내지 못했다면 다음에 죽을 사람은 자신이었다.
“혹시 모르니까 저 일본인을 묶을 것을 찾아보자. 그 다음 경찰에 신고하자꾸나.”
“네.”
일몽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난리를 쳤으니 경찰서에 가서 꽤나 시달림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죽는 것보다는 그편이 훨씬 낫다. 죽은 자는 내일 뜨는 해를 보지 못할 테니까.
둘은 옥상을 뒤졌다. 노끈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좀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한참을 찾은 후에야 일몽이 끈 대신 쓸 만한 전깃줄을 찾아냈다.
“형님. 찾았어요.”
일몽이 전깃줄을 머리 위로 들고 두현을 불렀다.
“혀, 형님.”
그가 얼음처럼 얼어붙고 말았다.
눈동자에 다카모또가 정확하게 잡혔다. 일몽 눈동자에 비친 것을 두현도 보았다.
모두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두현의 등 뒤에서는 어느새 다카모또가 일어나 있었다. 머리가 반쯤 박살이 났음에도 움직였다.
한쪽 눈알의 근육은 아예 잘려 나갔고 부서진 머리에서는 뇌수가 흘러 어깨를 적셨다.
혀가 입 밖으로 나와 대롱대롱 매달렸다.
저 상태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이제 재미없어. 재미없어. 요요요요.”
다카모또의 일본도가 휘둘러졌다. 그의 도는 정확히 두현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일몽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두현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의 목숨을 지켜줬기 때문인지 두현이 친형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그런 형이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