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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안전보장 사무소 1(11화)
3. 기이한 일 기이한 밤(4)
퍼석.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일몽은 눈을 떴다.
이제는 자신 차례다.
눈을 감고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최소한의 발버둥이라도 쳐야 했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잘린 두현의 목이 아니었다.
다카모또의 머리가 잘려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머리가 없어진 목에서는 엄청난 양의 피를 하늘로 내뿜었다.
피가 분수처럼 회오리치며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나름 험한 세상을 살아왔다고 자부한 일몽에게도 그것은 상식 밖이고 이질적인 일이었다.
목이 잘리지 않았음을 눈치챈 두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서 있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에 눈동자는 맑은 가을하늘처럼 파랗다.
키는 170cm가량에 요즘 유행하는 하늘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딱 달라붙는 트레이닝복이 그녀의 늘씬한 몸매를 드러냈다.
그녀는 무엇인가 들고 있었다.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검이었다.
다카모또가 들고 있는 모양과는 조금 달랐다.
칼의 손잡이 끝부분에 둥근 고리가 있고 손잡이 부분은 표면 전체에 서로 엉킨 두 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었다.
말로만 듣던 환두대도였다.
그녀의 검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검을 허공에 털자 피가 깨끗하게 털려 나갔다.
얼룩 하나 묻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환두대도로 다까모또의 목을 잘라낸 것이다.
그녀는 두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 아침이슬과 같은 상큼한 웃음이었다.
그녀의 존재가 지금 상황과는 너무 동떨어졌다.
“다행히도 늦지는 않았나 봐요.”
그녀가 한 말을 두현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4. 전 고등학생입니다(1)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일까.
두현은 교복을 입고 등교하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것인지 정장을 입은 것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엄청난 거구에 머리까지 짧으니 조폭이라고 오인을 받아도 할 말이 없었다.
학교를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을 때도 그의 옆에는 썰렁했다.
출근 시간과 겹쳐 사람을 가득했지만 누구 하나 그의 옆으로 오려고 하지 않았다.
힐끗힐끗 쳐다만 볼 뿐이었다.
그가 입고 있는 것이 교복이라는 것을 눈치챈 사람도 별로 없어 보였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두현은 며칠 전 있었던 일을 상기해 보았다.
“다행히도 늦지는 않았나 봐요.”
“당신은 누구시오?”
참으로 현실적이지 않는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난다. 이것도 면역이 되나 보다.
아름다운 외국 여성이 나타나 검을 휘둘러 일본인의 목을 자른 것을 보고도 ‘와우, 정말 미치게 놀라운 일이야.’ 나 ‘당신은 히어로에요. 우리의 목숨을 구해줘서 너무 감사해요.’라고 말하지 않는 것을 보면.
“저는 페르민이에요.”
그녀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한국말은 발음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유창했다. 하지만 두현은 이름을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이 상황은 무엇인가 당신은 누구이기에 갑자기 나타났느냐라는 전반적인 것을 내포한 질문이었다.
페르민은 다카모또의 시신을 살핀 후 잘린 목을 발등으로 툭툭 건드렸다.
“끼이익, 끼이익. 저년 나쁜 년. 나쁜 년이야.”
잘린 목 부위에서 거미와 같은 곤충의 다리가 나오더니 머리만 벌떡 일어나 페르민을 향해 욕설은 내뱉었다.
기절할 지경이다.
이런 엽기적인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언제까지 봐주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닥쳐 주세요.”
페르민은 검을 들어 도망가려는 다카모또의 정수리를 찍어 눌렀다.
푸식.
그렇지 않아도 반쯤 깨져 있던 그의 머리가 완전히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그녀는 품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내 죽은 다카모또의 시신의 뿌렸다.
치이익.
노란색 연기가 피어오르며 그의 시신은 거짓말처럼 증발하고 있었다.
“우에에엑!”
너무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일몽은 난간으로 뛰어가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냈다.
눈물과 콧물이 질질 흐르고 위액이 역류할 만큼 쏟아냈지만 계속해서 속이 울렁거렸다.
두현도 마찬가지였다.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신물을 억지로 참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페르민이라는 여자가 그들에게 적의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저 여자까지 일본인처럼 검을 휘둘렀다면 앞이 깜깜했을 것이다.
뭐지?
두현은 다카모또의 사라지고 있는 시신에서 희미하고 투명한 연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일본 무사인 사무라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젠 하다하다 유령까지 보이는 것인가.
두현은 손등을 들어 눈을 비볐다.
“역시 보이나 보군요?”
“무슨 말이신지요?”
두현이 되물었다.
“방금 성불한 놈은 원령이에요. 보아하니 임진왜란 당시 죽은 사무라이 같군요.”
역시 나왔다.
유령.
정말 믿기 싫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본 것이 허상이라고도 하기 힘들었다.
“좋습니다. 그것이 유령이라고 치고 왜 저희를 습격한 것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페르민은 일몽을 보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속을 게워내고 있어 그들의 말이 들리지는 않았다.
“1년 전에 일본 극우단체의 지시를 받은 친일파들이 한국에 잠들어 있던 신사의 봉인을 풀었어요.”
두현의 두 눈썹이 꿈틀거렸다.
“한국에 신사가 있다니요?”
“1945년 일본 패망과 함께 일본군은 한국에서 철수했어요. 하지만 그들은 한국에 씨를 뿌려두었죠. 아베 노부유키의 명을 받은 친일파는 다시 돌아올 그들을 위해 서울 중심부에 신사를 만들었죠. 이제 아베 노부유키가 돌아오겠다고 말한 백 년이 다가와요. 동시에 일본의 제국주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어요. 극우 인사인 도쿄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와 국민신당 대표 가메이 시즈카가 노골적으로 독도 쟁점화를 부각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에요. 또한 그들은 한국에 심어놓은 친일파들을 이용해 신사의 봉인을 풀었어요. 한국인들을 내부에서 갈라놓을 셈이죠.”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해해요. 그러나 믿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풀린 봉인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습니다. 아마 친일파가 숨긴 것이겠죠. 그래서 얼마나 대단한 놈들이 풀려났는지 짐작할 수 없어요. 지금처럼 원령만이 풀렸다면 처리하기가 훨씬 쉬울 텐데요.”
두현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 이 여자는 자신의 몸이 젊어진 것을 알고 온 것일까. 그럴 확률이 높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시간에 딱 맞춰 자신을 찾아올 리가 없지 않은가.
두현의 의문은 곧 풀어졌다.
“자, 이것부터 받으세요.”
페르민은 두현에게 학생증과 주민등록증 그리고 향수 하나와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당신은 평범하지 않아요. 그래서 저희가 먼저 손을 썼어요. 조사를 하면서 참 많이 놀랐어요. 신체가 과거로 역행을 할 수 있다니.”
“알고 있었군요.”
“네. 관심만 가지고 조사해 보면 금방 나와요. 그 집에 사는 사람은 일흔이 넘는 노인 한 명뿐이었어요. 손자는 없고요. 하지만 하루아침에 노인이 사라졌어요. 남은 사람은 당신 혼자구요. 얼핏 보면 당신이 노인을 해치고 그 집에 눌러앉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죠. 그러나 당신의 행동은 너무 자연스러웠어요. 그래서 저희는 가설을 하나 세웠죠.”
“무슨 가설?”
“강력한 영혼의 힘이 당신의 몸을 전성기 때로 돌려보냈다고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한국의 신이죠.”
“자, 잠깐만. 영혼이라니?”
두현은 머리가 어질어질거렸다. 더 이상 듣고 있다가는 뇌의 한구석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페르민은 팔목을 들어 시간을 보았다. 그녀의 안색이 미묘하게 변했다.
“미안이요. 자세한 것은 나중에 이야기하죠. 일단 평범하게 생활하세요. 나중에 따로 연락을 드릴게요. 그리고 향수는 하루에 한 번씩 뿌리도록 하세요. 저들은 당신의 체취를 맡을 수가 있어요. 아마 1km 반경 안에 같이 있으면 저들은 눈치챌 거예요. 하지만 향수를 뿌리게 되면 그들은 당신의 냄새를 맡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루에 한 번씩 반드시 뿌리도록 하세요. 자, 그럼 저는 아직 할 일이 많아서.”
그녀는 말을 마치고 검을 악기 가방에 넣고는 등을 돌렸다.
일몽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난간에 매달려 있었다.
두현은 머리가 어지러워 그런 일몽을 내버려 두고 집으로 향했다.
알아서 잘 가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그때의 일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학생증은 대영고등학교로 되어 있었다. 하필이면 일몽이와 같은 학교다.
더군다나 같은 2학년.
그와 마주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파왔다.
변명을 해야 하나.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일몽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마도 반쯤 얼이 빠질 것이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도대체 페르민이라는 여자는 무슨 생각으로 자신을 고등학교에 편입시켰을까.
어딜 봐서 이 얼굴이 고등학생으로 보이냐는 말이다. 다시 공부를 하라는 의도일까. 설마 고등학교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을 가라는 말은 아니겠지.
어쩌면 처음부터 시작하라는 의미일지도 몰랐다.
두현은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리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그녀의 말대로 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녀의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없었다.
페르민.
그녀에게서 들을 말이 많았다.
자신이 젊어진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알고 싶었다.
친일파라면 치가 떨리는 그였다.
두현의 할아버지는 지방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지이자 상인이었다.
번 돈을 축적하지 않고 일제의 강압에 힘든 백성들을 많이 도와 인망도 두터웠다.
두현이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언제 어디서나 당당함을 잃지 않는 그런 사내였다.
하지만 그런 할아버지도 목을 매 자살했다.
일제의 화폐 정리 사업 때문이었다. 그들은 화폐 정리 사업을 공포하고 3일간의 여유밖에 두지 않아 한국인들은 충분히 교체를 하지 못했다.
또한 백동화와 엽전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갑, 을, 병종으로 구분하여 을은 1전 병종은 폐기 처분하여 할아버지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거기까지는 할아버지도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러나 후에 실시된 토지 조사 사업으로 완전히 망해 버리고 말았다.
재기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끝내 주저앉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땅을 치며 하늘을 욕했다.
‘뒈먹을 놈들이여. 뒈먹을 놈들. 저 일본 놈들도 나쁘지만 같은 한나라 한민족의 등을 처먹는 저놈들이 더 나쁜 놈들이여.’
어렸지만 할아버지의 분노를 똑똑히 기억한다. 할아버지는 끝내 광복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그런 할아버지를 껴안고 한없이 울었다. 언제나 당당했던 거인의 몰락은 너무도 초라하고 한스러웠다.
그런 친일파가 다시 득세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나라를 팔아먹는 종자들은 이참에 끝장을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그는 교문에 도착했다.
지도부가 학생들의 복장을 단속하고 있었다.
일흔 살이 넘는 정신을 가진 두현이 고등학생 행세를 하려니 심히 부담스러웠다.
자연스럽게 걸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뻣뻣해졌다.
삼학년으로 보이는 두 학생이 두현을 보고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다른 학생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조직 폭력배가 아침부터 학교를 향해 오고 있었다.
학부모인가?
저런 학부모가 학교에서 행패를 부린다면 아침부터 발깍 뒤집히고 말 것이다.
그들은 지도 선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신들의 힘으로 되지 않으니 도와달라는 눈빛이었다.
기도훈 체육 선생도 깜짝 놀랐다.
체대를 나와 어지간한 덩치를 보고도 겁먹지 않는 그였다.
하지만 지금 걸어오고 있는 자는 흡사 터미네이터가 걸어오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