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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안전보장 사무소 1(12화)
4. 전 고등학생입니다(2)
저벅저벅.
총만 들고 있다면 바로 그 장면이다.
부리부리한 눈동자와 사람의 심연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은 기도훈의 털이란 털을 모두 곤두세웠다.
그는 친구들의 영향으로 몇몇의 조폭들도 알고 있었다. 저자는 그런 얼치기 조폭들과는 차원이 다른 자다.
사람도 죽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담배를 여유롭게 물고 죽인 사람 다리에 묵직한 돌을 달아 인천 앞바다에 버렸을지도 몰랐다.
“누, 누구세요?”
그래도 자신은 지도 선생이 아니던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쉽사리 무너질 수는 없었다.
두현은 우뚝 서서 선생으로 보이는 자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가 곱씹어 보았다.
그리고 실소가 흘러나왔다.
얼빠진 소리라니.
같은 학교 학생에게 누구세요라는 무슨 말인가.
두현은 기도훈 지도 선생에게 다가갔다. 선생은 흠칫 놀라며 주먹을 쥐고는 뒤로 물러났다.
장난이라면 심하다.
“전학생입니다.”
“전학생?”
“네.”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기도훈은 경험이 많은 베테랑 선생이다.
이자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속을 줄 아는가.
“정말입니까?”
기도훈은 두현에게 쉽사리 말을 놓지 못했다.
“연락이 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기도훈은 학생부에 전화를 걸어 전학생이 있는지 사실을 확인했다.
아니기를 바랐지만 그의 작은 소망이 무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요즘 조폭들은 저자와 같은 자를 학교에 침투시켜 싹수가 있는 아이들부터 스카웃을 해간다고 확신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아무리 교권이 무너졌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조폭들 따위에게 넘겨줄 수는 없었다.
이 학생의 가면을 쓴 악의 덩어리를 반드시 학교에서 쫓아내야 한다.
기도훈은 두현을 보며 자신에게 다짐했다.
“따라오시죠.”
도훈의 생각을 두현이 알았다면 정말로 뇌를 돌에 묶어 한강에 떠밀었을지도 몰랐다.
‘무슨 사자 우리에 들어가 있는 것 같군.’
두현의 담임을 맡은 김평남 선생은 걷기가 무척이나 불편했다.
걷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오늘 처음으로 알았다. 바로 등 뒤에서 두현이 따라오고 있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그의 무거운 기운은 김평남 선생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등을 돌리면 당장에라도 사자가 달려들어 자신을 먹어치울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그리고 좀처럼 겪을 수 없는 일도 벌어졌다.
이 시간이면 아이들이 떠들기에 복도는 항상 시끌벅적해야 했다.
그를 향해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밝게 인사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
복도가 냉동 창고처럼 얼어붙었다. 어렸을 적에 했던 얼음땡이란 놀이가 있다.
그 놀이와 아주 흡사했다.
모두가 얼음.
김평남 선생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다가왔던 학생들은 깜짝 놀라 울먹이는 표정을 지었다.
김평남과 두현이 지나간 자리에는 ‘땡’을 당한 많은 학생들이 크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2―10
교실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후다닥’ 움직이며 자리에 앉는 것이 느껴졌다.
문득 이 아이들의 반응도 궁금해졌다.
드르륵.
그는 앞문을 열고 들어갔다.
김평남이 들어가자 반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담임 선생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거구의 사내를 보았다.
그와 눈을 마주쳤다.
순간 반장은 자신의 혼을 빼놓는 악마의 속삭임을 느꼈다.
반장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이빨을 마구 부딪쳤다.
역시 어른이나 아이나 반응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 김평남이었다.
“모두 조용. 주목.”
어차피 조용해졌다.
그가 따로 소리칠 필요도 없었다.
여기도 얼음땡 놀이다.
학생들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김평남을 바라봤다. 두현을 잠깐 바라봤지만 두 번째는 도저히 바라볼 것 같지가 않았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이곳은 4층이다.
갑자기 달려와 눈이 마주쳤다고 창문 밖으로 던지기라도 하면 자신만 억울한 것이 아닌가.
“오늘부터 너희들과 함께 공부를 하게 될 전학생이다. 이름은 차두현이라고 한다. 사이좋게 지내도록 해. 음, 어디에 앉지.”
김평남이 주위를 돌아보았다.
학생들에게 두현이 어디 앉느냐의 따라 일 년의 고달픔이 좌우된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자다가 갑자기 닥쳐 온 지구의 멸망과 같은 충격을 받고 있었다.
“차두현.”
“네. 선생님.”
두현의 낮은 목소리에 김평남은 움찔거렸다. 어둠 속에서 손톱을 감추고 모습을 숨기고 있는 암살자같이 느껴졌다.
“저기 뒷자리에 가서 앉도록 해. 앞이 안 보이면 말을 해. 앞자리로 바꿔줄 테니.”
“아닙니다. 시력은 좋습니다.”
두현은 담임인 김평남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가장 뒷자리로 걸어갔다.
걸을 때마다 ‘쿵쿵’ 소리가 나며 바닥이 들썩거리는 착각이 들었다.
대괴수인 고지라가 아이들을 인질로 잡는 환영이 잠시 보였다.
그는 ‘내가 미쳤나.’ 생각을 하며 두 눈을 비볐다.
두현은 자리에 앉아 사 가지고 온 노트를 펴고 필통을 꺼냈다.
색연필도 있었다. 12가지 색으로 된 색연필이었다. 지우개와 샤프 그리고 커터칼도 모두 샀다.
새 마음가짐이다.
문구점에서 이것을 살 때의 기분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다녀보지 못한 두현은 다시 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창밖을 바라보자 1교시가 체육인 학생들이 나와 공을 차는 모습이 보였다.
운동장도 많이 좋아졌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생소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요즘 학교 폭력으로 각 학교가 몸살을 앓고 있다고 했지만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2―10반 아이들은 모두 착한 모양이었다. 이런 모범생들과 같이 공부할 생각을 하니 의욕도 샘솟았다.
그러나 두현이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다.
2―10반은 학교에서도 알아주는 꼴통 반이었다. 조금 논다는 학생들은 모두 이곳에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장 빈번하게 학교 폭력이 일어나는 곳도 바로 2―10반이었다.
하지만 일흔 살이 넘은 두현에게 반 아이들과 같이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고 기운이 넘쳐 나는 일이었다. 아이들의 젊은 기운이 자신에게 미치는 것 같았다.
“좋아. 오늘부터 기운차게 해봐야겠군.”
두현의 앞에 있던 학생은 오늘부터 기똥차게 괴롭혀 보자. 로 들었다.
그 학생은 자신의 미래가 어둠에 잠기는 것이 떠올랐다. 마치 신이 내린 것처럼 파노라마로 영상이 쭉 연결된다.
심부름은 물론이거니와 매일같이 샌드백이 된다. 게임 케릭터의 레벨은 일주일 동안 만렙을 채우라고 할지도 몰랐다. 일주일간 밤을 새도 불가능한 일이다.
엄마가 매일같이 공부 타령을 하는데 이젠 끝이었다.
공부는커녕 여기서 살아남는 방법부터 연구해야 했다.
봄바람은 아직 차지만 창문을 닫으니 햇볕이 따스했다.
두현은 두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았다. 두현이 밖으로 나가지 않으니 학생들은 교실에서 마음껏 떠들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재범이는 안 와?”
“나야 모르지. 걔가 언제 제대로 등교하는 것을 봤어야지.”
“그럼 일몽이는.”
“걔는 오겠지. 요즘 들어 꽤나 착실하게 등교하는데. 오늘은 좀 늦네.”
“아무래도 큰일이 나겠지?”
“당연하지. 2학년 일진회의 짱인 재범이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일몽이는 잘 모르겠다. 애들도 괴롭히지 않고 일진회와 잘 어울리지도 않는 것 같던데.”
“싸웠나?”
“모르지. 얼굴에 꽤나 많은 흉터가 있던데. 하여튼 무슨 일이 벌어지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교실에서 살인 사건이라도 나는 것은 사양이야.”
“내 말이.”
곧 2학년의 제왕인 재범이나 아웃사이더에서 최고로 잘 싸운다는 일몽이 도착할 것이다.
그래도 일몽은 싸움에 진 상대를 봐주기라도 하지만 재범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미친놈이다.
한번 돌아 버리면 선생들도 말리기 쉽지가 않았다. 그런 놈을 퇴학시켜야 하는데 선생들은 무슨 생각인지 정학만 몇 차례 먹이고 그대로 내버려 뒀다.
그가 돌아오면 더욱 무서운 보복이 기다렸다.
재범이가 무서워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 버린 친구도 몇 명이나 있었다.
폭풍전야.
두현과 재범이 부딪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오그라드는 반 아이들이었다.
깜짝.
두현은 졸다 깼다.
조는 것은 나이와 상관이 없었다. 아무리 이를 악물고 참으려고 해도 어느새 눈꺼풀은 눈동자를 집어삼켰다.
수업은 생각보다 지루했다.
야심차게 책을 펴고 선생님 말씀에 집중했지만 10분도 되지 않아 수마가 찾아왔다.
도저히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노트에 필기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다. 수업이 익숙하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다른 학생들이 필기한 노트를 봐야 할 것 같았다.
두현은 앞자리에 앉은 학생의 등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노트를 빌리기 위해서였다.
“으아아악!”
그 학생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앞으로 우당탕 넘어지고 말았다.
“야, 왜 그래?”
다른 학생이 그를 부축하며 물었다.
“드, 등에 칼이 꽂혔어.”
“뭐?”
그는 넘어진 학생의 등을 보았다. 당연히 아무렇지도 않았다.
“정신 차려. 칼은 무슨 칼?”
“아무것도 없어? 피는 안 나?”
“전혀. 네버.”
다행이다.
아직 죽을 목숨은 아닌가 보다.
그는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이런 호들갑을 떨었으니 두현에게 찍혔을 것이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조심했는데 큰일이었다.
“미안해.”
그는 두현에게 사과했다.
두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등을 살짝 찔렀다고 엎어지더니 갑자기 사과를 한다.
“무엇을 말이냐?”
“네가 놀랐을까 봐.”
그래.
어처구니가 없어서 놀랐다.
“허허. 이것 참. 이름이 무엇이냐?”
두현이 물었다.
“이, 이름?”
“그래. 내 이름은 아까 들었지? 차두현이라고 한다. 즐겁게 지내자꾸나.”
아, 이제 시작이구나.
본격적으로 두현의 마수가 뻗어온다. 이 올가미에 걸리면 최소 1년 동안은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두현에게서 벗어날 용기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소, 소영심이야.”
“그래. 영심이. 우리 잘해보자.”
잘해보자.
잘 숙여라.
말을 잘 들어라.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죽을 줄 알아라.
모두 같은 말이다.
영심은 절망감에 휩싸였다.
두현은 기분이 좋아졌다.
수업을 따라잡기는 힘들었지만 친구가 한 명 생겼다. 그는 기분 좋게 웃었다.
아이들은 두현이 자신들에게 어떤 물건을 강매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설마 마약을 팔지는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