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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안전보장 사무소 1(14화)
5. 초괴수 전설(2)


점심시간이라 학생 식당은 상당히 붐볐다. 여학생들은 친한 친구끼리 모여 앉아 새들이 지저귀는 것처럼 재잘재잘 이야기했고 남학생들은 빛의 속도로 밥을 먹고 있었다. 그들은 밥을 먹는 것보다 친구들과 운동장에 나가 농구나 축구를 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어 보였다.
그렇지 않은 여학생들은 밥을 먹는 시간에도 수험서를 들고 있었다.
일몽은 그런 학생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물론 저들의 절박한 심정을 안다.
반드시 좋은 대학을 가서 좋은 직장을 잡고 좋은 집안으로 시집을 가야겠지.
하지만 꿈도 없이 오직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저렇게 목을 매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
형님께서 꿈은 이뤄가는 것이지 맞춰가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저들은 부모에게 세뇌를 당해 무조건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녀들의 책상에 이렇게 적혀 있는 것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10분의 잠은 미래의 신랑을 바꾼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자신이 미래의 신랑을 고를 수는 없는 걸까. 그렇게 좋은 포장으로 상품이 되어 나를 골라주세요라고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정답은 없었다.
저들이 그것에 만족을 찾는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는 삶일 테니까.
반면에 자신을 조금이라도 깨우쳐 준 형님에 대해서는 새삼스럽게 더 고마워졌다.
형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도 일진회에서 나쁜 짓이나 하고 꿈도 없이 매일매일을 허무하게 지내고 있을 테니 말이다.
“저기 있다.”
철수가 일몽의 어깨를 툭 치고 한 곳을 가리켰다.
과연 철수가 겁을 집어먹을 정도의 포스였다. 그가 가리킨 전학생은 뒷모습은 상당히 덩치가 컸다.
더군다나 주위에는 단 한 명도 같이 앉은 학생이 없었다. 큰 탁자를 혼자서 차지하고 여유롭게 식사를 하는 중인 것이다.
정말로 이기적인 놈이다.
“흠, 재수 없는 새끼네.”
일몽은 철로 된 식판을 들었다.
시작이다.
고등학생 싸움에서는 선빵불패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초반에 타격이 싸움의 승패를 좌우했다.
그는 자리에 앉아 있는 전학생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그 순간 아이들은 금방 눈치를 챘다.
일몽이다.
일몽이와 전학생이 붙는다.
그들은 일몽과 전학생의 주위에서 물러났다. 조금이라도 싸움에 휘말리면 크게 상처를 입고 만다.
둘의 사이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아직 전학생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이대로 있으면 전학생은 당하고 말 것이다.
빠아악!
일몽은 있는 힘껏 식판을 휘둘러 전학생의 뒤통수를 쳤다.
엄청난 소리가 학생 식당 안에 울렸다.
강한 충격을 받은 전학생은 자신이 먹던 된장국에 그대로 코를 박고 말았다.
“헤헤, 개새끼. 하여간 너 같은 새끼 때문에 우리 학교가 발전이 안 돼요. 발전이.”
일몽은 전학생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의 머리채를 뒤로 당겨 다시 식판에 박으려고 했다.
“어?”
그러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직 목의 힘만으로 일몽의 힘을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일몽이 더욱 힘을 줬지만 오히려 뒤로 밀려났다.
이런 괴력이!
천천히 전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몸을 돌리자 일몽의 눈과 마주쳤다.
어디서 많이 봤던 얼굴이었다.
그의 얼굴은 악마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얼굴에 밥풀이 묻고 된장국이 줄줄 흘러내렸다.
“두, 두현 형님과 많이 닮았네.”
두현과 닮았다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얼굴만 닮은 것이 아니었다. 황소와 같은 몸집도 비슷했다.
“설마, 설마.”
전학생의 입이 열렸다.
“너, 일몽이. 무슨 짓이지?”
그는 학교의 급식이 정말로 맛있다고 생각하며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두현이 학교를 다닐 때는 난로에 철도시락을 올려 데우고 점심시간이 되면 김치 하나로 밥을 먹었었다.
가끔 소시지를 싸 가지고 온 친구가 있으면 모두가 잔칫날이다.
물론 소시지를 싸 가지고 온 친구는 뺏기지 않으려고 자신의 반찬에 침을 뱉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냥 먹는다.
아이들은 한입이라도 먹어보려고 난리를 친다.
더 치사한 놈도 있었다.
도시락 바닥에 계란 프라이를 깔아놓고 오는 놈들이었다. 치사해서 그런 놈들의 반찬은 안 뺏어 먹었다.
하지만 요즘은 기본이 고기 반찬이었다.
참으로 세상 좋아졌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두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누군가 사탕을 주는 척을 하다가 다시 뺏어가는 기분이었다.
“정말로 형님?”
일몽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후회가 급하게 밀려왔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거대한 그림자가 일몽의 얼굴을 가렸다.
세상이 온통 까맣게 변했다.
짝!
솥뚜껑 같은 두현의 손바닥이 일몽의 얼굴에 작렬했다.
학생들은 신기한 경험을 했다.
따귀 한 대가 저렇게 묘기를 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거짓말 같지만 일몽은 족히 수 미터는 튕겨져 올랐다. 그의 몸이 빙글빙글 돌더니 5m도 넘게 날아간 후 식탁 위에 떨어졌다.
순식간에 정적이 찾아왔다.
모두가 일몽이 어떻게 당하는지 똑똑히 확인했다. 그것은 세기의 미스터리인 7대 불가사의보다 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
두현.
그는 인간의 탈을 쓴 괴수가 틀림없었다.
그날 이후로 소문은 더욱 빠르게 퍼져 나갔다.
대영고의 괴수.
―정말이야? 대영고에 그런 사람이 다닌다는 말이야? 아니, 경찰은 뭐해. 애들이 학교에 무서워서 어떻게 다니라고.
―그게 말이야. 경찰 특공대가 학교로 진입을 했는데 그 괴수가 특공대를 모조리 때려눕히고 경찰차를 불태워 버렸데.
―에이, 말도 안 돼. 우리나라를 법치국가라고. 그런 짓을 저질렀다가는 바로 뉴스에 나온다고. 아님, 동영상이라도 떴겠지.
―그게 말이야. 그 괴수의 배경이 엄청나데. 그런 일이 벌어졌지만 선생들이 나서서 입단속을 시키더래. 사실 괴수는 우리나라 밤의 세계 대통령이라는 말도 있어. 청와대와도 친분이 있고.
―아니, 그런 자가 왜 고등학교를 다닌데.
―그러니까 미스터리지.
두현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소문은 주변 학교로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 * *

두현과 일몽은 운동장 구석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기도 하고 나무도 가려져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는 않았다.
“괜찮나?”
두현이 일몽에게 미안한 듯이 물었다.
일몽의 얼굴 반쪽은 심하게 부어 있었다. 양쪽 얼굴이 너무 달라 아수라 백작이 연상 될 정도였다.
설마 저렇게까지 부었을지는 몰랐다.
두현은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일몽이 먼저 식판으로 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 아닌가.
얼음 팩으로 부운 얼굴을 대고 있던 일몽이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요. 자업자득이죠. 형님을 못 알아봤으니…….”
두현은 손을 들어 일몽의 머리를 헝클었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마웠다.
확실히 처음보다 훨씬 성격이 부드러워졌다. 독기도 빠졌다.
“그나저나 형님은 학교에 웬일이세요. 가만, 전학생이라고 하셨죠?”
“편입생이다. 전학생으로 알려졌는데 일일이 대꾸하기 귀찮아서 아무 말 않는 거다.”
“네. 편입생? 혹시 꿀으셨어요?”
두현의 얼굴이 찡그러졌다. 그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반면 일몽은 아차 싶었다.
설마 동갑인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러나 상황 증거는 두현을 동갑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동갑을 이제까지 형님으로 모신 것이다. 아니, 말이야 바른 말이지 세상의 어느 누가 두현을 보고 고등학생으로 볼 것인가.
물론 자세히 보면 피부도 깨끗하고 어린 티가 날 것 같기도 한다.
하지만 주위를 한꺼번에 집어삼키는 포스와 분위기는 어른들이라 해도 쉽사리 흉내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담하건데 두현을 처음 보고 고등학생이라는 것을 맞출 사람이 있다면 일몽은 손에 장을 지질 것이다.
“형님, 정말로 오해해서 듣지 마시고요. 혹시 주민등록증 있으세요?”
두현은 움찔했다.
사실 페르민이 건네준 주민등록증은 일몽과 같은 나이었다.
당연히 절대로 보여주기 싫었다.
“잃어버렸다.”
맞구나.
동갑.
일몽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선택 사안은 두 가지가 있었다.
모든 것을 잊고 지금처럼 형님으로 모시느냐.
미친 척하고 말을 놓고 ‘우리는 친구다. 반갑다. 친구야.’라고 외치느냐.
미치지 않는 이상 두 번째 사안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하나뿐이었다.
2학년 전원이 두현을 형님으로 모시는 것이었다. 혼자서만 두현을 형님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형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언제까지나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그의 모습에 두현은 불길함을 느꼈다.
며칠 후.
2학년 10반 남학생 전원이 두현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했다.
조폭 영화가 따로 없었다.
아니다.
한국의 조폭보다 일본의 야쿠자에 가까웠다.
그들의 행동을 보고는 두현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 * *

“빌어먹을, 빌어먹을.”
재범은 청계천에서 사온 군용 나이프를 더욱 날카롭게 갈고 있었다.
방 안은 어둡고 군용 나이프만 번쩍였다. 나이프는 그의 마음을 대변했다.
재개발 단지에서 있었던 그날의 기억은 계속해서 악몽으로 되살아나 재범을 괴롭혔다.
그 괴물 같은 놈.
그 괴물 같은 놈을 죽이고 싶었다.
그리고 배신을 때린 한일몽.
그 자식도 용서할 수 없었다. 사실 모든 일의 시초는 그 녀석의 배신으로 시작되었다.
그가 일진회를 탈퇴하지만 않았어도 그 꼴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일몽이는 그자를 알고 있는 듯했다. 그를 믿고 그렇게 기고만장하게 나온 것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그렇게 배신을 때리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 녀석의 배에 구멍을 뚫어주면 그자도 복수를 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겠지.
감옥에 간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이 치욕을 되갚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일몽이를 만나기 위해서는 학교에 가야 한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던 학교로.
재범은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반대편에서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
“나다. 애들 모아. 학교로 간다.”

일몽이 덕분에 두현은 학교를 가는 것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일몽은 생각보다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보통 일진회에 속한 학생들은 우월감에 젖어 있다. 자신들에게 반항을 하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단체로 상대를 폭력을 행사한다.
폭력도 다양했다.
부모를 향한 욕부터 죽이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또한 폐쇄된 곳에 가두어두고 여러 명이서 집단으로 폭행한다.
당한 아이는 심한 공포감을 가지게 되고 일진회의 장난감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 일진회였던 일몽이지만 아이들과는 잘 어울렸다. 그에 대한 큰 거부감이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재범의 이름만 나와도 아이들은 움찔거렸다.
꽤나 시달림을 받은 것 같았다.
일몽의 덕분으로 두현의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다. 싸움은 잘할지 몰라도 미국에서 수십 명을 죽이고 한국으로 도망 나왔다는 얼토당토한 소리는 모두 거짓말이라고 일몽이 해명해 주었다.
물론 그 외에도 엄청난 소문이 두현의 꼬리처럼 따라 다녔다.
일일이 해명을 하지 못할 정도였지만 그런 소문이 들릴 때마다 일몽은 자기 일처럼 나서서 해결해 주었다.
나쁘지 않은 아이다.
두현이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반은 차츰 활기를 되찾았다.
화장실도 마음껏 가고 작기는 하지만 친구들끼리 대화도 한다.
따라라라. 따라라라.
점심시간 종이 울렸다.
학생들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보통의 일몽이라면 2교시가 끝나고 매점에 들러 간식으로 배를 채웠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형님으로 모시는 두현이 꼼짝도 하지 않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는 학생의 신분으로 지키라고 한다.
아니, 간식을 먹는 것이랑 학생 신분을 지키는 것이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이가 없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