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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안전보장 사무소 1(15화)
5. 초괴수 전설(3)
꼬로록.
배가 고프다.
“형님, 식사하러 가시죠.”
“그러자꾸나.”
“그나저나 그 노인네 말투는 어떻게 안 됩니까? 저희 할아버지랑 대화를 하는 것 같아요. 나이에 맞게 대화를 하셔야지 자꾸 그러니까 사람들이 형님 나이를 오해하는 것 아닙니까.”
일몽의 말이 맞았다.
만약 두현의 말투가 또래와 같았다면 그렇게 높게 나이를 높여 짐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업을 하러 온 선생들까지도 두현에게는 말을 놓지 못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모두 두현의 말투가 한몫을 했다.
그리고 식사량.
두현만 오면 식사를 나눠주시는 아줌마가 기겁을 한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기겁을 했고 두 번째는 너무 먹는 양이 많아서 기겁을 했다.
덩치가 크니 많이 먹는 것은 이해를 한다.
하지만 너무하지 않는가.
여기는 학교다. 무료 급식소가 아니다.
양심이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저게 밥이냐.
산이지.
정말 많이 먹는다. 그런데도 살은 찌지 않았다. 두현의 몸은 조금씩 근육질로 바뀌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두현과 잠깐이라도 부딪친 학생은 뒤로 넘어진 적도 있었다.
점점 탈(脫)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친 일몽은 턱을 괴고 두현이 식사를 마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님은 돈 많이 벌어야겠어요.”
“왜?”
“남들보다 다섯 배는 먹으니 식비가 엄청날 것 아니에요.”
“로또 맞으면 된다.”
웬 로또.
“보통 형님이 강조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말인데요. 자신의 노력으로 꿈을 쟁취하자라고 하잖아요. 로또는 완전 운을 바라는 거잖아요.”
“없는 것보단 낫잖아.”
맞는 말이네.
세상의 누가 로또를 마다할 것인가.
웅성웅성.
뒤편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목소리의 톤이 바뀌었다. 원래 식당 안이 시끄럽기는 하지만 분위기가 달라졌다.
뭔지 모를 불안감을 느낀 일몽은 뒤를 돌아봤다.
아니나 다를까.
재범과 세 명의 일진회 학생들이 그들을 향해서 뛰어오고 있었다.
재범은 식판을 들더니 일몽의 얼굴을 향해 휘둘렀다. 놀란 일몽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의 바로 머리 위로 식판이 스치고 지나쳤다.
그리고 재범이 휘두른 식판은 일몽의 앞에 있던 사내 이마를 정면으로 가격했다.
깡!
밥풀이 사방으로 튀었다.
“개새끼. 피했단 말이지.”
재범은 다시 식판을 들고 일몽을 가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목소리가 거슬렸다.
“저, 저런. 미친놈. 대영고 괴수를 건드렸어.”
“제아무리 재범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아니지. 죽으려고 환장했군.”
‘대영고 괴수?’
그가 오지 않는 동안 다른 일진이라도 생겨났나? 그럴 리가 없었다.
일진이 생기고 싶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3학년과 인맥이 닿아 있고 그들의 허락이 떨어져야만 일진회를 결성할 수가 있었다.
재범은 일몽과 눈이 마주쳤다.
예전이라면 두려운 눈으로 자신을 쳐다봐야 했다.
그러나 일몽은 웃고 있었다.
그것도 비웃음을.
“밥숟가락을 놓고 싶은 놈이 또 하나 있군.”
서늘한 목소리가 재범의 귀를 파고들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낯설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리고 목소리의 주인공이 떠올랐다.
재범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봤다.
두현이었다.
두현은 얼굴에 묻은 밥풀을 떼어내고 있었다. 얼굴이 점점 험악해지는 것으로 보아 심기가 상당히 불편한 것 같았다.
재범의 안색이 시커멓게 죽었다.
“다, 당신이 왜 여기에?”
왜 이 괴물이 여기에 있는 거지?
두현이 그의 학교로 온 것을 모르는 재범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분명 두현을 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일몽을 치고 무릎을 꿇게 한 다음 두현의 연락처를 받아내 급습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아니다.
마음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두현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위는 다시 한 번 침묵에 휩싸였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재범과 일진회 학생들은 몸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모두 그때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재범은 몰라도 다른 일진회 학생들은 다시 만나기 싫은 인물 1위가 두현이었다.
그날 있었던 사건은 악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꿀꺽.
누군가 마른침을 삼켰다.
넓은 학생 식당에서 마른침이 넘어가는 소리만 들렸다.
재범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움직이려고 하지만 이상하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뱀 앞에 선 개구리와도 같았다.
‘나이프를, 나이프를 꺼내야 돼.’
이성은 그렇게 명령하지만 감정이 말을 듣지 않는다. 감정은 절대로 나이프를 꺼내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었다.
점점 두현의 손바닥이 또렷하게 보였다.
짝! 짝! 짝! 짝!
딱 네 번의 따귀 때리는 소리가 울렸다.
마치 에밀레종이 ‘에밀레, 에밀레’ 하고 울리는 듯했다.
그것으로 상황은 정리가 되고 말았다.
2학년을 꽉 쥐고 있던 네 명의 일진회 학생들은 두현의 따귀에 수 미터를 날아 쓰러지고 말았다.
재범은 나이프를 꺼내 보지도 못했다.
호기 있게 학교를 왔다가 엄청난 창피만 당한 셈이었다.
그는 다른 일진회 학생들과 같이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갔다.
그들에게 시달림을 받아온 학생들은 두현을 향해 박수도 쳐주었다.
두현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두현의 별명은 괴수에서 초괴수로 바뀌었다. 본인은 인정하지 않지만 명실상부 대영고 2학년을 장악한 캡틴이 된 것이다.
두현이 재범을 잡았다는 소문은 근처 학교로 퍼져 나갔다. 그렇지 않아도 괴수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던 다른 학교의 일진회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재범이 누구인가.
근방에서 사천왕이라 불리던 미친개가 아니던가. 그런 그가 초괴수란 자에게 무참하게 깨지고 말았다.
소문은 소문을 불렀다.
―그거 알아?
―뭐? 재범이가 일진회 100명을 끌고 학교로 쳐들어갔데. 괴수라는 자를 잡으려고.
―정말? 완전 난리가 났겠네. 아무리 괴수가 싸움을 잘해도 백 명은 못 당하지.
―물론 상식적으로는 그렇지. 하지만 말이야. 괴수는 재범이와 일진회 100명 모두를 때려 눕혔다고 하더라고.
―말도 안 돼.
―진짜야. 그 학교에 내 친구가 있거든. 걔가 그랬어. 난리도 아니었데. 괴수는 칼에 몇 번이나 찔리고도 끄덕 없이 일진회를 때려눕혔데. 몸에서 피를 뚝뚝 흘리는데 그 모습만 봐도 오줌을 쌀 뻔했다던데. 완전 야차가 따로 없었데. 더군다나 재범은 막판에 몰리자 총을 꺼내서 괴수에게 쐈다고 하더라고.
―뭐? 총을?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총을 구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진짜야. 그것 때문에 학교가 폐쇄될 뻔했다던데. 근데 재범이 쏜 총알이 괴수의 심장을 관통했데.
―죽었어?
―아니, 믿을 수 없게도 괴수는 되살아났데. 그리고 재범의 가슴을 발로 밟더니 ‘나에게 덤비는 자는 어떤 자도 용서하지 않겠다.’라고 했데. 재범은 눈물을 흘리면서 괴수에게 용서를 빌고. 정말 무서운 놈이야. 그런 놈이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닌 게 다행이지 뭐야.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정말이라니까. 괴수가 총에 맞아도 죽지 않는 이유가 사이보그라서 그렇데. 괴수는 미국에서 기관총을 갈기고 수십 명을 죽인 후 한국으로 도피했다는 소문이 있었잖아. 그게 사실은 미국방부의 실험이래. 600만 불의 사나이 알지? 죽을 뻔한 괴수를 살려낸 것이 미국방부고 지금 한국에서 실험 중이라는 거야.
―허. 그 학교 학생들은 어떻게 학교를 다닌다냐. 나 같으면 무서워서 학교 못 다닐 것 같은데. 괴수가 아니라 초괴수네. 초괴수.
―내 말이 말이다.
믿지도 그렇다고 전혀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소문뿐이었다.
각 학교마다 몇 개씩 내려오는 학교 전설에 두현이 포함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다른 학교 일진회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근방에 모든 일진회는 대영고의 초괴수를 주시했다. 만약 그가 다른 학교 일진회에게 시비를 건다면 전쟁이 될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재범은 차츰 잊혀졌다.
그는 다신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자퇴를 했다는 소문만 무성해졌다. 2학년의 모든 불량 학생들의 중심이던 재범이 학교를 나오지 않자 일진회는 자연스럽게 붕괴되었다.
폭력으로 얼룩졌던 2―10반에서 불량배들이 기를 펴는 일도 없었다.
모두가 두현의 눈치를 보기에 바빴다.
가장 편해진 것은 열심히 공부를 하던 학생들이었다. 두현이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는 것을 알아차렸고 일몽도 그와 함께 행동했다.
그들 입장에서 두현이나 재범이나 무서운 존재임에는 분명했지만 두현은 싫지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두현의 곁에 가기는 무섭다.
그렇다고 벌벌 떨며 바짝 엎드리지는 않았다.
2―10반의 아이들은 조금씩 활기를 되찾았다. 그것은 다른 반까지 퍼져 나갔다.
다른 반 불량 학생들이 두현의 눈치 보기가 급급해진 것이다.
잠시일지는 모르지만 2학년 학생들에게 봄이 찾아왔다.
6. 저녁 한 끼의 참극(1)
머리는 반듯하게 올백으로 넘기고 깔끔한 정장을 차려 입은 중년의 사내가 심각한 얼굴로 굳어 있었다. 얼굴에는 잡티 하나 보이지 않았고 입술이 두툼하여 꽤나 강단이 있어 보였다.
사내의 책상에는 동북아안전보장사무소 소장이라고만 쓰여 있었다.
이름은 무엇인지 모른다.
같은 직원들도 그의 이름을 몰라 미스터 킴이라고만 불렀다.
사실 이름뿐 아니라 나이가 몇 살인지 어디에서 왔는지도 확인된 바가 없었다.
그의 앞에는 길고 큰 탁자가 놓여 있었고 세 명의 남녀가 앉아 있었다.
한 명은 두현을 도와줬던 페르민이었고 다른 한 명은 두현을 감시했던 이강철이었다.
마지막으로 옥동저고리를 입은 맑은 눈을 한 소년이 앉아 있었다.
미스터 킴은 손가락 깍지를 끼고는 한동안 닫혀 있던 무거운 입을 열었다.
“그도 당했군요. 이제 남은 사람은 두현뿐이군요.”
“네. 죄송합니다.”
페르민은 고개를 숙였다.
“아니에요. 어쩔 수 없지요. 우리는 너무 인원이 모자라니까요.”
“그럼 이제 어쩝네까. 두현 동지만이라도 살리면 되는 것 아닙네까.”
북한 말투는 쓰는 사내가 말했다.
그는 조선족이 아니라 북한에서 탈북한 정찰대 출신의 군인이었다. 그는 이라크에 훈련 교관으로 파견이 된 전적이 있는 실력파였다.
그리고 과거 있었던 미스터 킴과의 인연으로 일행에 합류한 것이다.
정확히는 고용이 되었다.
월급쟁이란 소리다.
“일단은 그쪽에 집중을 해야지요. 친일파들의 움직임이 조금씩 파악되고 있으니까요. 그들은 봉인을 풀어 반만년 역사를 이어온 우리나라의 정기를 끊어 놓을 생각이에요. 대한민국을 완전히 일본에 갖다가 바칠 셈이죠.”
“저희 쪽은 몇 명이나 당했죠?”
“정확하게는 모르겠어요. 서로가 피해를 쉬쉬하고 있어요. 하지만 꽤나 많은 피해를 당한 것 같아요. 적어도 열 명 이상으로 추정합니다.”
“열 명 이상이라니…….”
“으음.”
모두가 신음을 흘렸다.
“저희는 저들에 비해 너무 제약이 많습니다. 저들은 인간들의 의식만 장악하면 되지만 우리 쪽 신들은 자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거기다가 수호령들까지 찾으라니요. 이러다가 정말 큰일이 날 겁니다. 일제강점기와 같은 한국의 암흑시대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고요.”
페르민이 분하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친일파들이 신사에서 푼 봉인의 영혼은 대략 2,000 이상이었다.
물론 대부분이 다카모또와 같은 하급 원령들이지만 그중에는 이등박문, 즉, 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최악의 원령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가 지금은 누구와 영혼이 바뀌었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한국인들 대부분은 수호령이 있기 때문에 영혼을 잠식당하기 쉽지가 않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도 상당수였다.
친일파, 친미파, 조상들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모두 그의 해당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지키려는 수호령을 거부하고 맹목적으로 다른 문화를 따른다.
자신의 것을 더욱 천시하고 다른 자들의 것을 떠받든다.
그런 자들은 원령에 잠식당하기가 쉬웠다.
물론 찾아내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