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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안전보장 사무소 1(16화)
6. 저녁 한 끼의 참극(2)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저들은 깨어난 한국의 신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신을 간직한 자들이 자각하게 되면 같이 알아볼 수 있지만 잠재의식에서 깨어나지 못한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수호령과의 교감으로 인해 의식을 강제적으로 깨울 수 있었다.
하지만 수호령이 누구인지, 무엇인지 모른다.
서로가 알아보지 못하니 한국의 신들은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일본의 원령들의 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아무도 모르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국을 영적으로 방어하는 신들이 무너지고 나면 친일파가 득세하게 되고 땅과 바다, 하늘은 모두 그들의 소유가 되고 만다.
1945년에는 세계 열강들의 틈에 끼어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그때와 같은 운을 바랄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35년의 암흑시대는 한국의 신들에게 치명적인 손실을 안겼다.
많이 회복하기는 했지만 아직 어림도 없었다.
무슨 수를 쓰던지 막아야 했다.
“두현은?”
미스터 킴은 이강철에게 물었다. 잠시 불러들이기는 했지만 그에 대해서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신을 받아들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게 누구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곧 그들의 본격적인 공세가 시작될 것이다. 겨우 네 명으로 두현을 보호하며 수호령까지 찾는 일을 하기에는 너무 인원이 부족했다.
그래도 두현이 수호령과 만나기 전까지 보호를 해야 한다. 변명이 아니라 민족의 생존을 위해서 해야만 하는 것이다.
“별다른 이상은 없었습네다. 그리고 꾸준히 향수를 뿌리는 것도 확인했습네다.”
“그의 집에 결계도 치세요. 하현아. 네가 수고 좀 해줘야겠다.”
미스터 킴은 하현이라고 부른 꼬마에게 시선을 돌렸다. 꼬마라고는 하지만 벌써 중학교 1학년이다. 또래에 비해 키가 작은 것뿐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신이 내려 부모에게 버림을 받은 하현은 지리산에 있는 한 암자에서 생활을 했고 우연한 기회에 미스터 킴과 연이 닿아 지금은 함께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대신 부적을 만들 돈 좀 빵빵하게 주셔야 되요.”
“저번에도 백만 원이나 받아 가지 않았니?”
하현은 바로 일주일 전에 백만 원이란 거금을 받아갔다. 중학생치고는 씀씀이가 너무 컸다.
“겨우 백만 원. 부적 몇 장 만들면 끝이라고요. 특히 결계 부적이 얼마나 비싼데요.”
“흠. 알았다. 얼마나 필요하니.”
“한 2백만 땡겨 주세요.”
땡겨 달라니.
미스터 킴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현의 성격은 밝아 모든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냈다. 그러나 돈을 너무 밝혔다.
도대체 그 많은 돈을 받아서 어디다 쓰는지 궁금했다. 궁금해도 알 수는 없었다.
하현이 자기와 관련된 모든 물건에는 주술을 걸어놔 잘못하면 저주를 받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알았다. 조금 있다 받아가렴.”
“아싸.”
하현은 한쪽 주먹으로 승리의 포즈를 취했다. 사실 결계 부적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십만 원이면 족하다. 다른 몇 개의 주술을 포함하다고 하더라도 백만 원이 넘지 않았다. 그는 백만 원이라는 차익을 얻은 것이다.
그가 노리는 것은 요즘 새로 나왔다는 갈럭시 테블릿 S.
꼭 가지고 싶었다.
부적을 만드는 비용은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것이 설사 미스터 킴이라고 할지라도.
하현만의 철저한 영업 규칙이었다.
* * *
두현은 샤워를 끝내고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거실로 나왔다.
이 시간대가 가장 편하다.
여기서 맥주 한 캔을 따고 소파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TV를 볼 때면 전신이 물 먹은 솜처럼 나른해졌다.
겨우 한 시간 정도의 여유지만 방해받지도, 누구와도 바꾸고 싶지도 않았다.
두현은 냉장고를 열었다.
맥주가 다 떨어졌다.
“밥이라도 먹을까?”
맥주가 없어서 아쉽기는 했지만 저녁으로 대체하면 된다. 하지만 밥통에는 밥이 없었다. 하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럼 라면은?”
역시 다 떨어졌다.
집에 식량이 모조리 떨어진 것이다.
“일주일 전에 분명 마트에서 많이 사가지고 왔는데.”
누군가 훔쳐간 것이 아닐까.
자신이 모르는 누군가가 이 방에서 몰래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보는 두현이었다.
분명 그는 일주일 전에 꽤나 많은 음식을 사가지고 왔다.
그러나 그중 반은 사 가지고 온 날 없어졌다.
두현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식사를 하는지 자각이 없었다.
꼬로로록.
배에서 밥 달라는 신호를 마구 보내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위와 장이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귀찮지만 편의점이라도 가서 먹을 것을 사 가지고 와야 할 것 같았다.
두현은 상의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저번에 산 트레이닝복은 너무 많은 피가 묻어 입을 수가 없었다.
그냥 쓰레기 봉지에 넣어 버렸다. 누가 봤다면 이곳에서 살인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며 깜짝 놀랐을 정도의 피가 묻은 옷이지만 아직 그를 찾아오는 경찰은 없었다.
발견하지 못했나 보다.
두현은 현관문을 닫고 계단을 내려가 편의점으로 향했다.
* * *
미현과 두수는 며칠 전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미치도록 아픈 것이 아니라 가끔씩 찡 하고 두통이 올 때가 있었다.
그리고 나면 그들은 기억을 잃는다.
정신을 차려 보면 자신들의 옷차림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어느 날에는 온몸에 피로 범벅이었다. 너무 놀라 벽에 등을 대고는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무섭다.
솔직히 두려웠다.
이러다가 가족에게 해라도 끼칠까 봐 무서웠다.
두수는 일시적인 일이라며 미현을 다독였다.
하지만 미현만 그런 증상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두수도 같이 그런 일을 겪는다.
둘이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맞다.
광화문에서 카페 회원들끼리 코스프레를 한 이후 같다. 상당히 재미는 있었다. 모두 일본 만화 캐릭터 의상을 직접 입고 왔다.
모두가 일본색이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았다.
왜 과거의 일을 자신들에게 강요를 하는지 모르겠다. 일본에게 당한 것은 조상들이 약해서이다.
얼마나 멋진가.
탈아시아를 외치며 전 세계와 맞서 싸웠던 일본이. 일본을 싫어하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반발심은 더욱 커져 갔다.
오직 일본이 좋고.
일본의 모든 것을 쫓아하고 싶었다.
둘의 꿈은 일본에서 사는 것이다.
미현과 두수는 그런 일본을 광적으로 좋아했다.
그중 압권은 카페의 장이었다. 수염을 기른 중년의 사내였지만 코스프레를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상당히 박식하고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다.
그는 일본인으로서 미현과 두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왜 다케시마가 일본의 땅인지.
한국 사람들은 일본에게 감사를 해야 하는지.
한국인들처럼 무조건 일본이 싫다가 아니라 그는 조리 있게 설명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말이 맞았다.
미현과 두수는 그런 그를 친 형, 오빠처럼 따랐다. 그도 그들에게 잘 대해 주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의식이 비몽사몽으로 사라지게 된 것은.
징.
다시 두통이 온다.
미현을 두수를 바라봤다. 이제는 그것에 대해서 익숙하다. 무섭지만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이게 모든 더러운 한국 땅의 공기를 마셔서다.
어서 일본으로 가고 싶었다.
둘의 의식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 * *
재범 사건 이후로 폭주족들의 숫자가 확실히 줄었다. 그들이 단지 내를 돌기는 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무엇을 찾는 것처럼 그냥 돌았다.
그리 오래 있지 않기에 두현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숙면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좋았다.
“으차.”
두현은 자신의 팔뚝을 만져 보았다.
처음보다 훨씬 근육이 자라 있었다. 말 그대로 쑥쑥 자란다. 물을 주면 자라는 식물 같았다.
매일 샤워를 하고 거울에 근육을 비춰 보는 것이 삶의 즐거움 중에 하나였다.
가슴도 조금씩 모양이 변하고 있었다. 어깨도 넓어졌고 삼각근도 생겨났다.
아직 유명 연예인들처럼 식스팩은 나오지 않았지만 몇 달만 더 지나면 그들처럼 멋진 식스팩이 만들어질 것 같았다.
후두둑.
머리에 무엇인가 떨어졌다. 두현은 하늘을 바라봤다. 몇 방울씩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나면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아차.
순간 두현의 뇌리에 무엇인가 스쳐 지나갔다. 샤워를 한 후 향수를 뿌리지 않고 나온 것이다.
페르민이라는 여자는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면 저들이 찾아낼 수 있다고 하였다.
저들이라 함은 저번에 봤던 원령을 말하는 것이겠지.
그러나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혼령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페르민이라는 여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시간은 꿈결처럼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때의 일은 두현의 기억 속에서 점점 옅어졌다. 당연히 위기감도 사라지고 있었다.
“별일이야 없겠지.”
두현은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려니 귀찮았다. 더군다나 비도 오려고 한다.
어차피 멀리 나온 것도 아니었다.
편의점에서 먹을 음식만 사 가지고 갈 것이니 큰일이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는 잠시 머뭇거린 후 가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스무 살이 조금 넘어 보이는 아가씨가 두현을 향해 깍듯이 인사를 했다.
두현은 고개만 까닥거리고는 먹을 음식을 골랐다. 슬쩍 여종업원을 바라봤다.
보통 편의점에는 유니폼을 입지만 저 여종업원은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일본의 기모노 같았다.
기모노를 입은 사람은 처음으로 봤다. 조금은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여종업원은 무엇이 재미있는지 두현을 보며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설마 자신을 보는 것인가.
두현은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편의점에는 한 명의 남자 손님만 있을 뿐이었다. 밖에도 사람들이 적었다.
비가 내리기 때문인지 우산을 가지고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서둘러 귀가를 한다.
그런데 남자 손님도 특이했다.
그는 삿갓을 쓰고 기모노를 입은 채 나막신을 신고 있었다.
두현은 영화 촬영을 하는 장소에 왔는지 주위를 확인했을 정도였다.
정말 희한한 사람도 다 있었다.
두현은 햇반을 열 개 샀다. 많아 보이지만 세 끼 식사량밖에 되지 않는다. 더해서 컵라면 세 개도 샀다. 국물이 없으니 대용이다.
조금 모자란 듯하다.
햄버거 세 개와 캔 맥주 여섯 개를 추가했다. 이 정도는 돼야 내일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너무 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일까.
두현은 코스프레 복장을 한 사내와 부딪쳤다. 충격으로 캔 맥주 하나를 떨어트렸다.
“아, 죄송합니다.”
두현은 상대에게 사과를 하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손 안에 짐이 가득 있어 떨어트린 캔 맥주를 줍기가 힘들었다.
그러자 사내가 캔 맥주를 주워 두현의 손에 얹어주었다.
“감사합니다.”
보기보다 괜찮은 사내인가 보다.
두현은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눈빛이 이상했다.
흰자에 검은 눈동자이어야 하지만 흰자에 회색 눈동자다.
“이, 이자에게서 냄새가 난다. 미현.”
사내가 입을 열자 입술이 파들파들 떨린다. 너무 심하게 떨려 병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됐다.
“그래. 아주 냄새가 진동을 해. 두수야. 죽이자. 어서 죽이자.”
편의점 여직원이 두수라고 부른 사내에게 말했다.
무슨 소리지?
전혀 이해할 수는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말을 듣는 순간 불길함을 느꼈다. 다카모또란 일본인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두수가 옆에 차고 있던 검을 손으로 잡았다.
‘설마 진짜 검은 아니겠지?’
두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두수가 팔을 뻗자 번쩍이는 섬광이 일어났다. 형광등에 비친 검의 날이 빛나고 있는 것이다.
놀란 두현이 뒤로 급하게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