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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안전보장 사무소 1(17화)
6. 저녁 한 끼의 참극(3)
차창.
그가 들고 있던 물건들이 허공에서 반으로 갈라졌다.
푸식.
바닥에 떨어진 잘린 캔 맥주에서 거품이 일어나며 바닥을 적셨다.
“이런 제기랄!”
물러난 두현의 등이 카운터에 부딪쳤다. 뒤에는 이자와 한패로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도 위험 인물이 확실했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미현이 손톱을 세우고 두현을 향해 휘두르고 있었다.
손톱이 고양이의 발톱처럼 날카로웠다.
이것도 위험하다.
두현은 허리를 뒤로 꺾으며 피했다. 그동안의 단련이 꽤나 도움이 된다. 처음 젊어졌을 때 만났다면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어린놈들이 감히. 점원이 이래도 돼! 편의점 본사에 신고할 것이다. 그만 멈추지 못하겠느냐!”
미현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녀는 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깔깔’거리며 웃었다.
“웃기는 놈이네. 왜 늙은이 말투야. 그리고 우리는 점원이 아니야. 그러니까 신고할 필요 없어.”
그녀는 카운터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원래 점원으로 보이는 청년이 목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연놈들이구나.”
그제야 향수를 뿌리지 않고 나온 것을 후회했다. 잠깐의 귀찮음이 큰 위기를 부르고 만 것이다.
두수가 흐느적거리며 다가왔다. 그는 양손으로 일본도를 쥐고는 두현의 몸을 향해 일직선으로 내리그었다.
“우왓!”
두현은 반사적으로 몸을 굴렸다. 일본도는 두현이 있던 카운터를 반으로 쪼개고 말았다.
돈을 수납하는 금고도 동시에 반으로 갈리며 동전이 사방으로 튀었다.
엄청난 위력이다.
날카로운 검 앞에 선다는 것은 정말로 두렵다. 눈앞에서 번뜩이는 검이 자신을 노리고 있고 살짝만 베여도 큰 상처를 입는다는 공포는 검 앞에 서보지 않은 본 사람은 모른다.
어지간한 용기를 가지지 않는 한 정말로 어려웠다.
두현은 자신이 왜 이런 꼴을 당하는지 알았으면 속이라도 시원하겠다고 생각했다.
또 온다.
꽈지지직!
두수의 일본도가 횡으로 그어졌다.
두현은 급히 허리를 숙였다. 뒤통수로 일본도가 스치고 지나쳤다.
차가운 냉기를 가진 그 무엇이 뒷덜미를 만지는 듯했다.
음료수를 넣어두는 냉장고가 잘리며 수십 개의 음료수들이 쪼개져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음료수와 물이 바닥을 적셔 미끈거린다.
앞에는 손톱이 튀어나온 미친 여자. 뒤에는 일본도를 휘두르는 미친 남자가 포위하듯 감싸온다.
편의점에서 사람을 죽이고 검을 휘두르는 저것들이 미친 것이지 다른 사람을 미친 것이라고 하지 않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잠깐 말로 하자꾸나. 도대체 당신들은 누구냐? 나한테 왜 그러는지 이유라도 말을 해달란 말이다!”
두현이 미현과 두수를 향해 소리쳤다.
그들은 또다시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서로가 눈을 마주치더니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그것으로 서로가 교감을 하는 듯했다.
“몰라? 정말 몰라?”
“모른다. 정말로 모른다. 그러니까 자꾸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가르쳐 주거라.”
미현은 머리가 좌우로 흔들렸다. 눈동자까지 마구 돌아가 두현의 정신을 사납게 했다.
“너는 적이야. 적이니까 당연히 죽어야 하잖아.”
“그러니까 무슨 적!”
“바보다. 바보야. 아하하하! 무슨 적인지도 몰라. 바보다. 바보야.”
미현과 두수가 동시에 손톱과 일본도를 휘둘렀다.
양 방향에서 공격을 해오자 두현을 피할 길이 없었다. 옆으로 피하려고 해도 공간이 없었다.
두현은 몸으로 편의점 물건을 쌓아 놓은 거치대를 밀었다.
안 밀린다.
“이런 젠장!”
거치대 바닥에 볼트로 고정이 되어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바로 머리 위까지 손톱과 일본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두현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바닥을 흥건히 적신 음료수가 그의 엉덩이를 적셨다. 속옷까지 젖는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그다지 기분이 좋지가 않지만 그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챙!
하늘이 도왔다.
손톱과 일본도가 두현의 머리 위에서 엉키고 만 것이다. 하늘이 돕지 않고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두현은 바닥에 떨어진 캔 맥주 하나를 집고는 미현을 향해서 던졌다.
빡!
캔 맥주지만 가진 무게는 상당하다. 일반적인 성인이 제대로 맞는다면 머리가 깨질 수도 있었다.
캔 맥주를 맞은 미현이 뒤로 벌렁 넘어졌다.
잠깐의 틈이 생겼다.
두현은 재빨리 일어나며 주먹으로 두수의 턱을 가격했다.
빠악!
굉장한 타격음이 편의점 내부에 울려 퍼졌다. 두수의 이빨이 모조리 부러지며 턱은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턱의 관절이 빠진 것처럼 보였다.
“안 아파. 안 아파.”
미현과 두수가 벌떡 일어났다. 미현의 한쪽 눈알은 터져서 진액이 줄줄 흘러 기모노를 적셨고 두수의 턱도 완전히 돌아가 얼굴의 반이 옆으로 꺾여 있었다.
오금이 저릴 정도로 소름 끼치는 모습들이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두현은 편의점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편의점 앞에 있던 간판을 들어 그를 쫓아오는 미현과 두수를 향해 던졌다.
두수가 일본도를 들어 간판을 반으로 갈랐다. 반으로 갈린 간판에서 전선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꽈직.
합선이 일어났다.
꽈지지지직.
이곳저곳에서 불꽃이 튄다. 편의점 안은 푸른색 전자파로 가득 찼다.
“으가가가가.”
그들은 괴이한 소리를 내뱉었다.
두 남녀는 심하게 몸을 떨며 새까맣게 타올랐다.
꽈지지지지직.
점점 불꽃이 심해졌다.
이윽고 폭탄이 터진 것처럼 편의점 내부가 거세게 폭발을 일으켰다.
콰콰콰콰쾅!
두현은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 엎드렸다. 불길이 바로 등 뒤에서 혀를 날름거렸다.
폭발음이 잦아들자 두현은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상처로 가득하다.
“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과거에도 싸움은 조금 했지만 누군가에게 큰 피해를 끼치고 살아온 기억은 없었다.
그런데 사람을 죽인 것도 모자라 편의점 폭발을 일으키다니.
자신이 했다고는 믿고 싶지가 않았다.
콰콰콰콰쾅!
편의점은 2차 폭발을 일으켰다. 불길은 더욱 거세게 2층 건물을 휘어 감았다.
불길 속에서 미현과 두수가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미현과 두현의 눈이 마주쳤다.
그를 향해서 엄청난 증오를 쏟아내고 있었다.
도대체 왜?
쿠르르릉.
미현과 두현은 서서히 바닥에 쓰러졌다. 그들 위로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제대로 된 시체도 찾기 어려울 것 같았다.
주위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진작 누군가가 봐서 경찰에 연락을 해주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왜 하필 이럴 때만 사람들이 지나치지 않는다는 말인가.
두현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자리를 떴다.
경찰한테 가서 설명을 해야 정상이지만 도저히 설명을 할 자신이 없었다.
일본도를 가진 자가 자신을 계속해서 습격을 한다. 이유는 모른다.
과연 경찰이 그 말을 믿어줄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였다.
그저 저녁을 먹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뿐인데 두현의 작은 소망은 무참하게 깨지고 말았다.
띠리리리.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페르민이 주고 간 전화기였다.
그 난리 속에서도 다행히 전화기는 부서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것들이 정말 장난하나.”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목숨이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아는 것 같은 이 여자는 지금까지 전화 한 통화 없었다.
두현은 급히 전화기를 받았다.
“여보세요.”
―저 페르민이에요.
“알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어떻게 된 일입니까. 지금 이곳은 난리가 난 상태입니다.”
―난리요?
“그래요. 웬 미친 여자와 남자가 일본도를 들고 저를 죽이려고 했단 말입니다. 설명을 해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향수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말문이 막혔다.
그것은 자신의 잘못이 분명했다.
―뿌리지 않았군요. 당신을 쫓는 자들은 어떻게 됐나요? 아직 쫓기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불에 타고 있어요.”
―음.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위기는 벗어났나 보군요. 하지만 향수를 뿌리지 않은 이상 끝난 것이 아니에요. 만약 같은 패거리가 있다면 당신은 더 큰 위험에 처할지도 몰라요.
“그럼 어떡하라는 소리죠?”
―일단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세요. 저희 쪽 직원들이 그리로 가고 있어요.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요?”
―그래요. 저희 직원이 당신을 뒤따를 겁니다. 저도 그쪽으로 가죠.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또 지들 할 말만 하고 끊는다.
울화가 치밀었지만 지금은 참아야 했다. 또 다른 미친놈들이 나타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두현은 집으로 가는 것을 포기했다. 그나마 안식처라고 할 수 있는 집이 저들에게 발각된다면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고 말 것 같았다.
그는 주위를 돌아봤다.
아파트 단지에서 조금 떨어진 공원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시간이면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을 것이다.
“히히. 저기 있네.”
“정말이다. 냄새가 난다. 저기 있네.”
두현이 가려던 방향에서 일본 만화 캐릭터 복장을 한 사내 둘이 나타났다.
“걔는 내 거야.”
건물 위에서도 나타난다.
그리고 두현의 뒤에서도 이상한 복장을 한 자들이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사슬낫과 일본도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갈수록 태산이다.
“젠장! 젠장! 도대체 나 보고 어쩌라는 것이냐!”
두현은 그들이 없는 도로를 향해 뛰어들었다. 동시에 코스프레 복장을 한 사람들도 두현을 쫓아 도로로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