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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의 질주 1권(6화)
3장 산적 토벌(1)
“휴∼”
준희, 아니, 이제 주니라고 불러야 하는 박 간호사.
주니는 지금 어제와 오늘 일을 생각하니 갑자기 한숨과 웃음이 나왔다.
‘어떻게 신음 소리를 AV 배우처럼 내냐? 나도 난감했네. 느껴서 내는 소리 같잖아. 암튼 어제 하루는 저 에고르라는 성질 더러운 놈에게 부인의 가슴을 매만지게 해서 뭉쳐 있는 울혈을 풀게 했고, 오늘은 가슴을 빨게 해서 유석을 빼내었다. 이제 한 3∼4일 정도만 젖 충분히 물리고 햇빛만 잘 보이게 하면 아이의 황달은 나아질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잠시 바람이나 쐴 겸 밖으로 나가니 마을 사람 모두가 촌장 집 앞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이거 무언가 또 꼬여만 가는 느낌인데… 불길해.’
1년 뒤 엘빈 마을의 공터.
한 남자가 마을 공터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무언가를 보여 주고 있었다.
“하하하하하!”
“호호호호호!”
“와, 신기하다. 한 번 더 보여 주세요, 네?”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며 무언가를 보여 주는 인물은 다름 아닌 준희, 아니, 이제는 ‘주니’로 이름을 개명하게 되어 버렸다.
지금 주니가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은 마술로, 그가 이곳에 정착하기 전 지구에서 여자 좀 꼬셔 보겠다고 배워 두었던 마술 중 한 가지를 마을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하∼안∼번?”
주니가 이렇게 외치며 손가락을 1개 세우자 마을 사람들도 똑같이 손가락을 1개 세우며 더 보여달라고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주니가 공노들의 마을인 엘빈 마을에 정착한 지도 벌써 1년이 되어 간다.
처음에 그가 마을에 나타났을 때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주니에 대해 두려움, 무서움, 경외심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마음을 지니고 있었지만, 마을 촌장네 집안의 무서운 저주 걸린 병을 단, 7일만에 고치는 기적을 시발점으로 해서 마을 사람들의 많은 잡병을 고쳐 주자. 마을 사람들은 점점 그에게 신뢰를 느끼며 따르기 시작했다.
거기다 주니가 마을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마을 사람들에게 유용한 물품도 하나둘씩 만들어 내거나,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어서 마을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본인들도 모르게 그를 현자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다. 어느덧 주니는 이 마을의 중심 인물이 되어 있었다.
주니의 집.
“자, 현자님. 따라해 보세요.”
“광산. 광산. 광산.”
“과∼앙∼산, 과∼앙∼산, 과∼앙∼산.”
“아뇨, 광산. 광산.”
“과∼앙∼산. 과∼앙∼산.”
지금 주니는 촌장네 손녀딸인 소피아에게 말을 배우고 있다.
‘아∼ 답답해! 현자님은 똑똑하시면서 말은 왜 이리 늦게 깨우치시는 거야?’
“자, 현자님. 다시 한 번 광∼”
똑똑똑.
“누구세요?”
“아∼ 나여! 현자님 뵈러 왔어, 병 고치러.”
“네, 금방 나갈게요.”
말을 아직 제대로 깨우치지 못해 아둔하게 말하는 주니를 위해 말을 가르치는 소피아는 이렇게 종종 비서 역할까지 한다.
“현자님, 염치 불구하고 또 왔네요!”
주니 옆집에 사는 할머니는 주니에게 가장 치료를 많이 받는 분 중의 한 분이시다. 그런데 오늘은 엘빈 마을에서는 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할머니? 이 사람∼드∼을 누∼구?”
“아∼ 제 시집갔던 딸래미 가족.”
“할머니, 여기 아∼자, 아니, 앉∼아.”
주니는 아직도 이곳의 언어를 제대로 능숙하게 쓰지 못하고 있다.
하나 이제는 점점 어느 정도 말길을 알아듣는 정도는 된다.
단, 말을 제대로 못해서 문제지만 말이다.
할머니가 앉자,
“할머니, 어디 아퍼? 어디 어디 아퍼?”
이런 주니의 말을 듣자 할머니는 웃으며 대답한다.
“아, 내가 아니라 요 옆에 내 손녀가 아퍼요! 고쳐 주세요, 현자님.”
“할머니 아니고? 이 여자?”
주니가 이렇게 어리숙한 말투로 할머니와 대화하자 시집갔다던 할머니의 딸네 가족은, 특히 사위는 표정 점점 굳어져 버리기 시작했다.
“장모님 딱 보기에도 바보인데, 무슨 병을 고친다고 그러십니까?”
“엄마, 그래요! 제가 보기에도 바보인데, 바보가 무슨 병을 고쳐요. 엄마 아프다 하길래 잠시 들른건데, 저희도 빨리 마을로 출발해야 해요.”
이런 사위와 딸의 말을 듣자 할머니는 주니의 표정이 굳어진 걸 발견했다.
주니가 말길을 알아들어서 기분 상했다는 것을 알아챈 할머니는 한마디 꺼냈다.
“사위, 잘 듣게. 지금 우리 마을에서 이분한테 치료 안 받은 사람이 없다네. 저기 서 있는 아가씨 집도 집안의 대대로 내려오는 아이만 죽던 역병도 이 현자님이 7일만에 낫게 하셨다네. 그러니 이 장모의 뜻을 따라 주게.”
할머니가 이렇게 나오자 사위와 딸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분위기가 약간 뻘쭘해지자 소피아가 말을 꺼냈다.
“믿어 보세요. 현자님이 저렇게 어눌해 보이셔도 못 고치는 병이 없으세요. 그렇죠, 할머니.”
“암∼ 이분은 우리 마을의 축복인걸.”
이들의 대화를 어느 정도 알아들은 주니도 머리를 긁적이며 그냥 웃기만 했다.
“아! 할머니 손녀 어디 어디 아퍼?”
“아, 내 정신 좀……. 제 손녀가 발이 아퍼요.”
“발?”
발을 가리키며 주니가 발음을 하자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의 신호를 보자 주니는 대뜸 가만히 앉아 있는 아가씨의 신발을 벗기고는 발을 살폈다.
“잉∼”
“현자님 무슨 병인지 알겠어요?”
옆에서 지켜보던 소피아가 묻자,
“웅!”
너무나 간단한 대답. 그러나 이런 어린애 같은 주니의 대답을 듣게 된 할머니의 얼굴에는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현자님, 제 손녀딸 이 병 좀 제발 고쳐 주세요. 이것 때문에 시집 다 간 것 같다고, 몇날 며칠을 울어요. 그러니 꼭 고쳐 주세요!”
“할머니 봐서 고칠 수 있다. 5일만, 5일만…….”
주니가 이렇게 외치자 할머니는 미소를 띠고 딸과 사위는 5일 뒤에 다시 들르라고 하고는 보냈다.
딸과 사위가 가는 것을 보고 주니는 치료를 시작했다.
‘아, 살기 위해 이렇게 치료해 주고 물건 만들어 준다지만, 이제 이 마을도 답답하군. 그나저나 그때 만들어 놓았던 약품이 어디 있더라.’
주니가 어떤 병과 물이 담긴 대야를 들고 와서 병에 담긴 약을 대야에 풀고는 아가씨의 발을 씻겼다.
‘어이구, 이 아가씨야 발 좀 씻고 댕겨라. 무좀이 머냐? 이렇게 심한 무좀은 난생 처음 보네. 이거 아가씨 발 맞긴 맞는 거야?’
이렇게 자신의 지저분함을 욕하는 줄도 모르고 할머니의 손녀딸은 갑작스럽게 사내가 자꾸 발을 만지자 얼굴을 붉혔다.
5일 뒤 할머니의 딸내외가 와서 자신들의 딸의 발을 보고는 너무나도 놀라고 있었다.
“어머머! 감쪽같이 발에 있던 병이 나았네?”
할머니의 딸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주니를 보고 있었다.
“딸 다 나∼았∼다. 내가 고∼쳤∼다.”
주니에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옆집 할머니네 딸 가족은 자신들의 집으로 출발했다.
“주리야? 저 사람이 널 어떻게 치료했니?”
너무나 궁금한 할머니의 딸이 자신의 딸에게 물어보았다.
사위도 궁금한지 자신의 딸의 대답을 기다렸다.
“엄마, 별 거 없었어요. 하루에 5번 직접 내 발을 씻겨 주고, 수건으로 닦아 주고 그게 다예요.”
딱∼
자신이 치료를 받은 행위를 있는 그대로 설명한 딸은 갑작스럽게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는 엄마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 왜요?”
“넌 지금 엄마 보고 그 말을 믿으라는 거니?”
“진짜예요. 한 것이 그것뿐이 없어요.”
할머니 딸 부부는 서로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자신들의 딸을 계속 쳐다보았다.
공노들의 마을 엘빈.
엘빈 마을은 카리우스 왕국의 변방에 위치한 엘르 백작의 영향 아래 있는 공노들의 마을이다.
공노들이란 말 그대로 공공 물품, 농기구, 무기류, 잡화류 등을 만들어 바치는 일을 한다.
3년 뒤 엘빈 마을 공방.
꽝꽝꽝, 쉬익∼ 쿵쿵쿵.
“어이, 이리로 옮겨, 아니, 이리로 옮기라고.”
“날도 더운데 이것들이 왜 이리 굼뜬 겨.”
오늘도 엘빈 마을의 공방에서는 각종 물품을 만들어 내는 소리로 가득하다.
이렇게 다들 땀을 흘리며 일을 하는데 한적하게 그것을 구경하고 있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주니였다.
‘참! 이 세계도 알아 가면 알수록 흥미롭군. 정말로 마을 전체가 이런 것들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곳이었다니, 그런데 생각보다는 기술력이 정말로 많이 뒤떨어져 있단 말이야!’
사실 주니는 지구에 있을 때 간호사는 먹고 살기 위해 직업으로 했었지만, 워낙 잡다한 것을 만들기 좋아해서 전국 방방 곳곳을 다니며 많은 잡다한 기술들을 배우러 다녔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문적으로 배운 것은 아니고 이론적인 것들을 눈으로 확인한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배운 기술이라 할지라도 이곳의 기술에 비교하자면 엄청난 기술들이었다.
꽝꽝꽝, 쉬익∼ 쿵쿵쿵.
‘아∼ 무기를 다룰 때 쓰는 쇠 기술은 그럭저럭 봐 줄 만한데, 농기구는 정말로 날림으로 만드는군. 저 농기구들 가지고 농사나 제대로 짓겠나? 뭐,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말이야.’
공노들이 납품할 물건들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의 지식과 비교를 하여 평가를 하는 것이 사실 주니가 이곳에 정착한 뒤부터 쭉 해 오던 낙이라면 낙이었다. 이러한 낙을 오늘도 어김없이 즐기고 있을 때, 한 사내 녀석이 주니를 찾기 시작했다.
“현자님, 촌장님이 찾으세요.”
“오∼ 샹구야, 현자님 하지 말고 그냥 형이라 부르라 했지?”
“헉! 저 보고 죽으라는 말씀입니까? 현자님을 형이라 불렀다가는 저 죽습니다. 잘 아시면서 그러세요? 다들 현자님께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고 저희들을 얼마나 달달 볶는데요.”
“하하! 그래? 그러면 뭐 어쩔 수 없구나. 너 편한 호칭으로 불러라.”
이제 주니도 어느덧 이곳의 언어를 꽤나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한 1년간은 단어만 따로따로 조합해서 3∼5살 아이들 수준으로 말했지만, 어느 날부터 말문이 제대로 트여서 이제는 제법 문장을 구성해서 말할 정도가 되었다.
아무튼 주니는 샹구라는 녀석과 대화를 나눈 후 촌장님 댁으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똑똑똑.
“촌장님, 저 주니입니다.”
삐익.
“현자님, 오셨습니까? 얼른 들어오세요.”
조심스럽게 촌장 댁으로 들어선 주니를 촌장은 극진히 대접했다.
“오늘도 이웃 마을들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나요?”
“네. 곤란하다고 말해도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어 치료를 부탁합니다.”
“아픈 분들 치료라도 해드려야지 제가 얻어먹는 밥값이라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일단 다들 제 집으로 안내해 주세요.”
인사를 마치고 촌장집 밖으로 나선 주니는 자신의 집으로 향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점점 치료를 받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늘어만 가는군. 그나저나 내가 의사도 아니고 간호사였는데 나의 치료가 이 정도로 제대로 먹힐 줄이야.’
사실 주니가 지구에 있을 때는 간호사 역할만 하면 되었지만 이곳이 정말로 낙후되어 있기에 간호사로 일할 때 익힌 의료 기술들이라도 이곳에서는 엄청나게 앞선 것이다. 주니의 치료가 정말로 잘 통해서 완치율이 이곳 기준으로는 상당히 높았다.
아무튼 이래저래 생각을 가지던 주니는 자신의 집에 들어가 또다시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어때요? 많이 괜찮아졌죠?”
“어머나! 정말로 나았네. 신기하네, 정말 용하다.”
“하하! 그런가요. 아무튼 주의 점을 알려드릴 테니 꼭 지키셔야 또 같은 병으로 고생 안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