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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의 질주 1권(7화)
3장 산적 토벌(2)
‘휴, 오늘도 꽤나 밀려들었네. 다섯 가구나 밀려들다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거야?’
사실 주니 본인은 잘 모르나 엘르 백작 영향권 아래 있는 마을들 사이에서는 이미 주니에 대한 소문이 꽤나 퍼져 있는 상태이다.
어차피 농노나 가난한 평민들은 많은 돈을 주어야 하는 사제한테 치료를 받지 못하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이렇게 엘빈 마을의 주니를 찾아오는 것이다.
엘빈 마을의 기도원.
오늘 엘빈 마을에서는 회의 장소로도 종종 쓰이는 마을 기도원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마을의 중요 안건을 다루는 마을 회의를 열고 있었다.
웅성웅성.
“자, 다들 조용히들 하세요”
“지금부터 회의를 하도록 합시다.”
촌장의 말에 다들 조용해졌다.
“자, 다들 아시겠지만 내일은 공납하는 날입니다. 공납해야 하는 물품들은 다 준비된 줄 압니다.”
“그리고 현자님의 건의하에 내일 찾아오는 세무관님께 목책을 세워도 되는지를 한 번 여쭈어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세무관이 어찌 생각할지는 지금 알 방도가 없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회의를 하는 것은 내일이 세 달에 한 번 찾아오는 공납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사실 엘르 백작령의 주 수입원 중에 하나가 이 엘빈 마을의 공납품이다. 각종 농기기와 무기류는 꽤나 쏠쏠하면서도 안정적인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엘빈 마을에서 생산되는 가죽 제품들 또한 상당히 고가에 속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엘르 백작은 엘빈 마을에는 다른 농노 마을보다 많은 혜택을 주고 있었다. 그 혜택이라는 것이 소금을 좀 더 많이 공급해 주는 정도였기에 주니는대단한 혜택이라 생각하지를 못했지만, 원래 이 세계에 살던 공노나 농노든 천한 출신들에게는 대단한 혜택인 것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엘빈 마을이 혜택을 받고, 좀 외진 곳이라 하더라도 무슨 이유인지 근처 산적으로부터는 마을을 지킬 수 있는 병력을 파견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산적 토벌을 제때에 해 주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내일 세무관이 도착하면 자체 보호 차원에서 목책을 세워도 되는지 물어보려고 하는 것이다.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한 마을 청년이 말을 꺼냈다.
“목책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공납품 만드는 데도 시간이 부족한데 꼭 만들어야 하나요?”
“것도 그렇네.”
웅성웅성.
청년의 말에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가 돌자 촌장이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주니를 쳐다보았다.
촌장의 시선을 받은 주니가 입을 열었다.
“제가 말씀드려도 될까요?”
주니가 말을 꺼내자 다들 주니를 쳐다보았다.
“다들 아시겠지만, 저희 마을이 전보다는 꽤나 윤택해졌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전에는 산적들이 요구하던 물품의 수량과 종류가 저희 마을에서 감당할 정도의 물품이었지만, 이제는 점점 수량도 많고 물품도 가지각색으로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흠∼”
주니의 말이 이어지자 다들 주니의 말에 동의하듯 신음 소리가 이어졌다.
사실 주니가 이 마을에 나타나서 의술 행위만 한 것이 아니었다.
지구에서 익힌 잡다한 기술들을 조금씩 알려 주어 물품을 좀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해 준 것이다.
공방에서는 소를 이용해 쇠를 두드리는 기구를 만들게 해 주어 공방의 물건 제작 속도를 올려 주었고, 어느 날은 베틀 기구를 하나 만들어서 삼베라는 옷감을 만들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밖에도 이런저런 기발한 방법으로 주니가 마을 사람들의 생활에 필요한 편리한 것들을 하나씩 제공함으로써, 시간적 여유가 생긴 마을 사람들도 점점 여유 물건들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것들을 한 달에 한 번 영주성에서 열리는 장에다 내다 팔아 필요한 물건들을 사 오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들이 주니가 나타나기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사실이다.
“그래서 저는 아마도 산적이 저희 마을을 공격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공격에 대한 방비책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흠∼”
주니가 말을 마치자 모두 말을 잇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니는 마을 사람 누구나 인정하는 마을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이기 때문에 인정보다는 그냥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누군가 말을 꺼냈다.
“정∼ 방책을 만드는 게 버겁다면 우리가 먼저 산적을 때려잡아야겠지요?”
“네에?”
주니의 마지막 발언에 마을 사람들은 너무나 놀라고 있었다.
‘우리가 먼저 산적을 때려잡는다고?’
마을 사람들의 머리속에는 주니의 마지막 발언이 계속 맴돌았다.
엘빈 마을이 공납을 하는 날.
어김없이 세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세무관이 병사와 운반하는 사람, 그리고 영주성으로 파견 나가 있던 주민과 함께 마을에 들어서고 있었다.
“모두들 모이시오∼ 모이시오, 광장으로 모이시오!”
“세무관님이 오셨나 보다.”
웅성웅성.
세무관이 마을에 왔다는 외침에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씩 마을 광장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다들 모였는가?”
세무관이 촌장에게 물었다.
“네, 나리 빠짐없이 다 모였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이제 식을 거행하도록 하지.”
세무관이 와서 이렇게 공납을 받아 갈 때는 형식적으로 석 달간 만든 공납 물품들 중 가장 뛰어난 물품 몇 가지를 추려서 마을 광장에서 전달하는 전달식을 거행한다.
“하늘의 지혜를 받으신 카리우스 국왕님의 대리인 엘르 백작님을 대신해 그대들이 성심껏 만든 이 물품들을 귀히 받겠다.”
세무관의 말이 끝나자 촌장이 물품들을 엎드려 세무관의 발밑에 조심스레 놓았다. 그리고는 끝났다.
‘에계! 뭐야, 저게 끝이야?’
이 전달식을 지켜보는 주니는 실망에 가득 찼다.
사실 주니는 마을에서 제약을 받지 않고 모든 곳을 다니지만, 세 달에 한 번 찾아오는 공납하는 날은 숨어 있어야 했다.
주니의 특이한 외모와 행동 때문에 그전에는 마을 주민들이 주니를 숨겼기 때문이다. 하나 이제는 주니가 말도 익숙해졌고, 행동도 익숙해졌기에 오늘을 통해 마을 주민으로 공식적 등록을 시키기 위해서이다.
“저 사람인가, 촌장?”
주니를 보고는 세무관이 촌장에게 물었다.
“네, 나리.”
“그대는 이리 나와 내 앞에 서거라.”
주니는 어제 촌장이 가르쳐 준 방식으로 세무관 앞에 나서서 무릎을 꿇었다.
“촌장, 이자의 이름이…….”
“저희들은 주니라고 부릅니다. 세무관님.”
세무관이 촌장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의 지혜를 받으신 카리우스 국왕님의 대리인 엘르 백작님을 대신해. 주니를 엘빈 마을의 공노로 인정하노라.”
이게 끝이었다.
‘정말 심하게 빨리 끝나네. 하긴 일장 연설이 긴 것보다는 낫지.’
“와!”
갑작스런 마을 주민들의 환호에 세무관은 흠칫 놀라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이 반응은 무엇이지?’
너무나 열렬한 마을 사람들의 반응에 세무관은 한 번 더 주니를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진짜 외모가 특이하긴 하군. 뭐, 나름 마을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했나 보군.’
세무관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병사가 와서 운반 준비를 끝냈다고 하자 세무관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 엘빈 마을은 너무 외진 곳에 있어서 영주성에서 3일 거리 정도에 위치해 있다.
대부분의 마을이 영주성에서 하루나 하루 반 거리에 있는데, 엘빈 마을만 3일 걸리는 거리니 외지긴 외진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세무관은 항상 물건만 챙기고 바로 출발했다.
세무관이 마을을 빠져나간 것을 확인하고는
주니는 다시금 마을 남정네들을 기도원으로 모이게 했다.
“자, 어제 다수결로 결정한 뜻대로 우리는 산적을 토벌해야 합니다.”
“흠∼”
마을 사람은 두렵다는 눈빛이 역력했다.
마을 사람들끼리도 잘 싸우지 않는 판국에 산적을 자신들 힘으로 토벌해야 한다는, 주니의 말에 모두들 머리 속으로 이리저리 혼란스러워 했다.
이때 한 청년이 주니에게 묻기 시작했다.
“현자님, 사실 현자님도 사제시라 전투 같은 건 해 본 적이 없으신 거 같고, 저희 마을에도 연장자이신 키노 어르신 빼놓고는 누구도 전투에 참가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자꾸 토벌을 주장하십니까? 그냥 산적에게 물건을 주면 되지 않을까요?”
“오메,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우리들 중에 누가 전투에 참가해 보았나?”
“마을 밖에도 영주성 말고는 가 본 적도 없고…….”
마을 사람들의 이런 반응에 주니의 인상이 살짝 일그러져 버렸다.
“여러분들의 걱정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하나 우리가 치지 않으면 먼저 들이닥칠 것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누군가 또 묻자 주니가 다시 대답했다.
“그것은 요즘 들어 너무나 자주 물건을 요구하고 그 양도 점점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에게서 꼬투리를 잡기 위한 수작입니다. 우리가 너무 버거워서 산적들에게 한 번이라도 물건을 전달하지 않으면, 이를 빌미로 우리 마을을 칠 것입니다.”
“것도 틀린 말은 아니네.”
웅성웅성.
마을 사람들의 의견이 서로 갈리어 웅성거리기 시작할 때, 주니가 다시 한 번 말을 꺼냈다.
“그리고 제가 이 왕국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제 다들 아실 겁니다. 제가 살던 나라에서는 그 누구라도 몇 년간 전투에 참가해야 합니다. 설령 그게 사제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저 또한 제가 살았던 나라에서는 군인이었고, 전투에도 참가했었습니다. 그러니 제 말을 믿고 따르신다면 분명히 저희는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사제가 아닙니다.”
주니의 마지막 말에 다들 주니를 다시금 말똥말똥 쳐다만 보았다.
이들에게는 너무나 생소하고 특이한 사내, 못 고치는 병이 없고 거기다 종종 희한한 물건들을 만들어 마을을 윤택하게 해 주고, 거기다 전투까지 할 줄 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사제가 아니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의 눈빛에는 의아함, 의구심, 희망 등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사실 주니는 지구에서는 남자라면 모두가 군대를 가야 하는 대한민국의 청년으로서 그도 2년 이상 군복무를 했었다.
거기다 그는 전투경찰 기동대 출신으로 무수히 많은 시위 진압에 투입되어 봐서, 전투에 참가했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니 저를 믿고 한 번 산적 녀석들에게 우리의 힘을 보여 줍시다. 우리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저 산적들도 저희를 깔보지 않습니다.”
주니의 말이 끝나자 다들 다시금 침묵이 이어졌다.
그때 촌장의 아들 에고르가 나서서 한마디 거들었다.
“까짓것 한 번 해 보죠? 현자님 말 듣고 손해 본 적 있었습니까? 싸우더라도 현자님이 우리편인데 뭘 더 걱정들 하십니까?”
“맞습니다요! 현자님이 우리편인데 저 산적들에게 우리의 힘들 보여 주어야 합니다.”
“맞습니다. 까짓것 해 봅시다.”
에고르의 말에 젊은 층들은 동조하기 시작했고, 이로써 마을 주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얻어냄으로써 회의를 끝마쳤다.
“에고르 형님. 제가 부탁한 녀석들 데리고 제 집으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죠.”
엘빈 마을 주니의 집.
에고르와 5명의 청년이 주니의 집에 모였다.
“다들 모였군요! 그럼 일단 제가 부탁한 것들을 준비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주니는 촌장에게 목책을 세우는 것을 건의할 때부터 산적 토벌을 염두에 두고 에고르를 통해 비밀리에 토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단 제노리 너부터 말해 봐라.”
“네. 일단 저희 마을에서 싸울 수 있는 장정은 원래 총 60명인데, 요번에 영주성으로 파견 나간 두 명을 제외하면 58명입니다. 그리고 영주성으로 물건을 교환하러 갈 때마다 알아보니, 다른 마을들을 습격할 때 산적들이 100명에서 150명 단위로 움직인다고들 합니다.”
“허∼”
근 3배의 차이가 난다고 제노리가 말하자 모인 장정들은 다들 당황한 기색이 영력했다.
“샹구, 그 다음은 너가 말해 봐라. 지도는 그려 놓았겠지?”
다른 이들과 달리 당황한 기색이 없는 주니는 샹구에게 다른 사항에 대해 물었다.
주니의 질문을 들은 샹구는 나무토막에 목탄으로 그린 지도를 꺼내며 말을 이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