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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의 질주 1권(8화)
3장 산적 토벌(3)
“산적 소굴에서 저희 마을로 오는 길은 2군데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주로 이용하는 길은 이쪽에 보이는 평평한 길입니다. 다른 쪽 길은 좀 돌아와야 하기에 거의 이용하지 않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의외로 쉽겠는데.”
의외로 쉽겠다는 주니의 말에 다들 의아해했다.
그러나 주니는 이런 다른 이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회의를 계속 진행했다.
“코리니, 너는 내가 준비하라고 한 것들 잘 만들고 있지?”
“네, 그려 주신 대로 토기를 만들기는 하는데, 용도를 잘 모르겠습니다.”
“용도는 일단 그때 가서 알려 주마.”
“에고르 형님, 제가 부탁한 무기들은 준비하고 계시죠?”
회의를 듣고 있던 에고르는 갑작스런 주니의 물음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네, 말씀하신 대로 만들고 있습니다. 한데 철퇴는 무기로서 이해가 가는데, 쇠 도리깨는 왜 만들라고 하시는지?”
“쇠 도리깨가 저희와 산적 사이의 승패를 지을 중요한 무기입니다. 참 독한 술도 준비하고 계시죠?”
“아∼ 네. 말씀 하신대로 한 번씩 더 끓여서 증기만을 모으고 있습니다.”
에고르의 말까지 모두 마치자 주니는 다시 한 번 그들을 둘러보고 말을 이어 갔다.
“모두들 부탁한 대로 준비하시느라 고생들 많으셨습니다. 하나 더욱더 철저히 준비들 하셔야 합니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할 것입니다. 이번 산적과의 싸움에서 지는 순간에는 우리 마을은 쑥대밭이 될 것입니다.”
“꿀꺽!”
다들 주니의 말이 끝나자 긴장했는지 침들을 삼키고 있었다.
엘르 백작 영주성.
엘르 백작성에 영주 대리인으로 영주령을 대리 통치하는 행정 사무관 ‘기스노’는 지금 산적 두목과 어느 고급 술집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무관님, 어떠신지요? 제법 쏠쏠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자네 아주 맘에 들어. 이 정도까지 내놓을 줄이야? 제법 수입이 쏠쏠한가 봐?”
“그게 그 엘빈 마을에서 들여오는 것들이 요즘 값들이 쏠쏠해서요.”
“오, 그런가?”
엘르 백작은 자신의 영지에는 1년 한 번 있는 영주성 축제 때 기간을 제외하고는 왕성에서 머무르고 있다. 그래서 기스노에게 영주령의 대리 통치를 맡기고 있었는데, 그는 제법 머리를 쓰는 자라 이리저리 영주령에서 나오는 수입을 빼돌려 자기 잇속을 차리기 바쁜 자였다.
그중 이 산적 두목과의 거래는 자신의 수입에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각 농노들 마을에서 산적 토벌을 부탁해도 방치하고 있었다.
또한 가구수가 1만 5천 호 정도 되는 엘르 백작령 정도의 수준이면 상주 병력이 500명에서 1,000명 사이는 유지해야 하는데, 기스노는 300명 정도만 유지시키고 나머지는 군적을 조작해 자기 잇속을 챙기고 있었다.
한데 오늘 산적 두목은 자신의 수입을 더욱더 쏠쏠하게 해 줄 재미있는 제안을 해 오는 것이다.
“사무관님. 오늘 제가 이렇게 뵙자고 부탁드린 것은 사무관님도 좋고, 저희한테도 이득이 되는 것을 제안하기 위함입니다.”
“오, 그런가? 그게 무엇인가, 말해 보게.”
“저희가 엘빈 마을을 털까 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엘빈 마을을 쳐서 일부 마을 주민을 저희 노예로 만들려고 합니다.”
산적 두목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스노는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지금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나? 엘빈 마을에서 생산되는 물품이 백작령 전체 수입의 1/3을 차지하네. 그런 마을을 친다고?”
“사무관님, 제 말을 잘 들어보십시요! 일부 기술자만 데리고 올 것입니다. 그리고 사무관님이 저희 산적들에게 노예를 보내 주시면, 노예들에게 기술을 가르쳐서 물건을 팔아서 이득의 1/3을 사무관님께 드리죠. 어차피 공노 몇 명 없어졌다고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 산적 두목의 말이 끝나자 사무관은 뭔지 알겠다는 듯이 아주 야릇한 미소를 띠기 시작했다.
“오, 아주 좋은 제안이군! 그리하게나. 단, 엘빈 마을을 초토화시키면 안 되네. 알겠지? 이곳 술값과 아가씨 값은 내가 지불할 테니 재미있게 즐기다 가게나. 하하하! 맘에 들어, 자네!”
사무관은 말이 마치고 먼저 일어나 영주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엘빈 마을과 산적 소굴 사이의 돌아가는 길.
“에고고, 덥다 더워.”
“자, 이쯤이 좋겠군요. 다들 여기서 장비들 풀고 잠시 쉬죠.”
주니의 말이 끝나게 무섭게 장비들을 짊어지고 온 장정 10명이 장비들을 풀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던 샹구가 주니에게 물었다.
“이것들로 무엇을 하실려구요?”
“뭘 하긴 땅 팔 거야. 그것도 아주 넓고 깊게.”
“그건 삽을 들고 오게 하니 대충 알겠는데요. 저 수레에 싣고 온 고운 흙들과 가죽은 어디다 쓰실려구요?”
다들 2개의 수레에 싣고 온 고운 흙들과 가죽들은 어디다 쓸려고 하는지 궁금한 눈치였다.
하나 주니는 웃음만 지을 뿐 말해 주지 않았다.
“야, 덥다. 일단 물 좀 줘 봐라. 땅 다 파면 그때 알려주마.”
주니의 표정은 여전히 다른 이들과 다르게 너무나도 여유로웠다.
엘르 백작령 영주성의 한 주점.
오늘도 영주성의 주점에는 술을 퍼마시며 자신의 용맹을 자랑하거나, 인생을 이야기하거나, 사랑을 논하거나, 술집 여자에게 껄떡거리는 등 여러 가지 인간 군상들이 모여 있었다.
“자네들 그 이야기 들었나? 엘빈 마을 젊은이들이 산적들과 싸우자고 한다는구만?”
“뭐라고? 에고,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 산적놈들이 얼마나 지독하게 무서운 놈들인데. 그 산적놈들한테 안 당한 농노 마을은 그나마 엘빈 마을 거기 하나여.”
“그러게 그나마 백작이 많이 관심을 가진다 하여 산적들도 되도록 안 건들인다는데, 엘빈 마을 놈들이 무슨 수로 산적과 싸워?”
“아, 그게 아니라 요즘 들어 산적들이 엘빈 마을에 이것저것 많이 요구하나 봐. 그래서 엘빈 마을 젊은이들이 불만이 많다고 하더구만.”
“하하하! 거 완전 외진 데 있으니 세상 물정 모르는가 보네.”
“그러게 말이여. 그 산적놈들이 얼마나 무서운데, 그나마 축복받은 마을에 살다 보니 무서운 것을 모르는가벼.”
이렇게 술꾼들이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한쪽에서 이들의 대화를 열심히 듣고는 자리를 뜨는 무리가 있었다.
산적 산채.
“두목님, 영주성 주점에서 들어 보니 엘빈 마을 젊은이들 사이에서 불만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하하! 그래? 내 계획대로 되어 가는구만. 이제 삼 일 뒤에 다시 한 번 물품을 요구할 애들 한 다섯명만 추려서 보내라. 요구 사항은 아주 과하게 요구하도록 하고 말이야. 하하하!”
“근데 두목님,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습니다.”
“뭔데?”
“그냥 덥치면 될 거 가지고 뭣하러 이렇게 뜸을 드립니까?”
부하가 이런 질문을 하자 두목은 답답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이런 바보 멍청아. 지금껏 우리는 그들이 물품을 주면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즉, 그들과 우리 사이에 암묵적인 룰이 생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갑자기 덥치면 저들은 우리를 약속을 지키지 않는 존재로 생각할 것이다. 처음에 우리가 마구 덥쳐서 이긴다 치자. 그러나 그 다음에 우리가 요구할 때는 정말로 죽기 살기로 우리한테 덤벼들던지, 아니면, 마을을 떠나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이곳에 있을 수가 없다. 엘빈 마을이 잘못되면 정말로 우리를 토벌하려고 들지 모르지. 이런 것을 가지고 귀족들은 명분이라고 한단다. 즉, 지금 우리는 명분을 만드는 것이다.”
엘빈 마을 주니의 집.
주니는 지금 마을 젊은 사내들과 함께 산적 토벌 준비를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이에 따른 주니의 작전은 다름 아닌 산적들을 산채에서 끌어내어 함정으로 이끌어 박살내는 것이다.
이런 준비의 마직막 점검을 지금 본인의 집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준비를 철저히 했으니 우리는 분명히 이길 것입니다. 이제 산적들이 다시금 요구 사항을 전달할 때까지만 기다리면 됩니다. 산적들이 요구 사항을 전달하러 올 때가 우리의 작전을 시행하는 때입니다.”
주니의 말을 듣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한데, 미로야. 소문으로는 아직 올 때가 되지 않은 백작이 갑자기 백작령으로 돌아온다고 했다고?”
“네, 영주성에 가 있는 마을 분들한테 들었어요. 영주성에서도 백작님이 오신다고 준비가 한창이랍니다.”
“그럼 백작님이 오시면 부탁하면 되지 않나요?”
미로의 답에 제노리가 다시 질문했으나 주니는 그들의 생각을 벗어난 다른 대답을 해 주었다.
“아니다. 이것은 우리 힘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마을이 더욱 번창한다. 나에게 다 생각이 있으니 나를 일단 믿고 따라 주어라.”
정작 본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주니 또한 한편으로 무언가 찜찜하긴 마찬가지였다.
‘영주성의 누군가 산적들을 봐 주지 않는 이상, 산적들이 저렇게 과하게 요구할 수는 없다. 즉, 영주성에 누군가가 산적들을 봐 준다고밖에 할 수 없다.’
주니는 이 생각에 골몰히 빠져 있었다.
엘르 백작령 영주성.
백작령 대리인 기스노는 갑작스런 백작의 영지 귀환 소식에 놀라고 있었다.
그래서 밑에 행정 사무관들을 닦달해서 서류를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 있으시길래 영지에 귀환하신다는 것이야?”
거기다 백작이 보내온 서신에는 귀한 분과 함께 내려가니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 적혀 있어서, 기스노는 더욱더 백작을 맞이할 준비를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산적 두목과의 암묵적 합의를 잊고 말았다. 아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엘빈 마을 공터.
엘빈 마을의 아침은 언제나 그렇듯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오늘은 다섯 명의 산적이 마을에 나타났기 때문인지 몰라도 전과는 다르게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어이, 안녕들 하셨습니까? 저희가 또 왔습니다. 하하하!”
“하하하하하!”
산적들이 마을 공터까지 들어서자 마을의 아녀자와 노인들 그리고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급히 들어가기 시작했고, 마을의 젊은 사내들만 마을 공터로 몰려들었다.
“아니, 또 어쩐 일인가?”
“어쩐 일이긴요. 볼일이 있어서 왔지요.”
이들의 말에 다들 인상이 굳어졌다.
이런 마을 남정네들의 표정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산적 한 명이 말을 이어 갔다.
“이번에는 모든 물품을 20점씩 더 요구합니다. 그리고 옷감은 30점 더 요구하고요, 그리고 젊은 아낙 5명도 요구합니다.”
산적은 말을 끝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엘빈 마을의 남자들은 모두 주먹을 쥐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산적은 한마디 더 말했다.
“하하하! 서로 좋자고 하는 것 아닙니까! 당연히 해 주셔야 합니다. 하하하!”
이런 산적의 마지막 말이 끝나자 산적들 앞에 주니가 떡하니 나섰다.
“전달 사항이란 게 이것이 다입니까?”
“넌 못 보던 녀석 같은데 누구야?”
산적이 주니가 누군지 궁금해서 질문을 던졌는데 주니는 엉뚱하게도 다른 대답을 해 왔다.
“저 새끼들 다 족쳐요! 죽이지만 말고요!”
“와∼”
주니의 외침에 엘빈 마을 남정네들 또한 같이 소리를 지르며 다섯 명의 산적에게 일방적으로 구타를 자행하기 시작했다.
퍽∼ 퍽∼ 퍽∼ 팍∼
“컥! 사람 살…….”
“저기∼ 억!”
일방적인 구타를 당하기 시작한 다섯 명의 산적은 이내 곧 모두 쓰러졌다.
드디어 엘빈 마을과 산적과의 사활을 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엘빈 마을 공터.
엘빈 마을 공터에는 구타를 견디지 못해 쓰러진 산적들을 보며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마을 남정네들이 씩씩거리고 있었다.
만약, 주니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산적들은 맞아 죽어도 한참 전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끄응!”
“아∼”
일방적 구타로 인한 고통을 이기지 못했는지, 다섯 명의 산적은 고통에 신음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이런 산적들에게 다가간 주니는 그동안 궁금했던 사항들을 질문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