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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안전보장 사무소 1(19화)
7. 야수들의 밤(2)


“그 아새끼래. 장난 아니구나야. 총만 들었다면 전쟁통이라고 오해했갔네.”
차에서 내려 두현의 흔적을 쫓던 이강철이 뭐가 신이 나는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신이 들었다고는 하지만 그 능력에 대해서는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간으로 치면 갓 태어난 신생아와 같았다. 그런데 그런 신생아가 그를 죽이려는 어른들을 상대로 버텨 나가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대견하다고 해야 할까.
두현의 전투 감각에 찬사를 보내고 있는 이강철이었다.
만약 두현에게 잠든 신이 깨어나 각성하면 도대체 어떤 괴물이 될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또한 수호령도 찾지 못한다.
두현에게 수호령까지 붙으면 죽이기는 배로 힘들어질 것이다.
다만 두현에게 어떤 신이 잠들었는지가 문제였다. 만약 단순한 집지킴이 신이라면 답이 없었다. 수호령도 구렁이나 그가 아끼던 물건이 될 테니 전투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12지신이나 사방신, 하다못해 조상신이나 산신이라도 들었다면 그는 상대방에게 꽤나 두려운 존재가 될 것이다.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아군에게는 천군만마나 다름없었다.
그전에 자신과 한 번 붙어봐야 하겠지만.
오랜만에 이강철은 투지가 불타올랐다.
적이 아니라 아군이 될 두현에게서 투지를 느끼게 됐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죽일 수가 없으니까.
“이상한 생각하지 말아요. 형.”
“고 아새끼. 참으로 까탈스럽네.”
“형의 투기 때문에 정신이 집중되지 않는다고요.”
“알갔어. 어서 처리하라고. 늦으면 우리의 그님께서 불꽃처럼 사라질지도 모르는기야.”
하현의 앳된 얼굴이 찡그려졌다.
이강철과 자신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한 번 더 생각하고 움직이는 스타일이었으나 이강철은 그렇지 않았다.
본능형이다.
자신의 감을 믿고 행동하기에 하현의 생각이 수포로 돌아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현은 속주머니에서 부적 한 장을 꺼내 불을 붙였다.
“아까운 10만 원짜리 부적.”
하현의 입장에서 10만 원 이상 가는 부적은 꽤나 공을 들인 것이다.
공격 부적이 5천 원 정도 되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시간과 공이 들어간다.
그렇기에 이런 부적 하나를 만들 때면 미스터 킴에게 가격을 후려쳐서 몇 배나 되는 금액을 받아냈다.
어린 나이에 악덕 상술을 배운 하현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에게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사무소 직원 중에 술법사는 그 한 명뿐이었다. 주술에 대한 개념도 잡혀 있지 않았고 어떻게 주술이 이뤄지는지 이해도 하지 못했다.
즉, 그는 독과점이었다.
불이 붙은 부적은 하얗게 퍼지더니 사건 현장으로 퍼져 나갔다.
그들은 이 시간 이후로 두현에 대해서는 잊을 것이다. 아니 잊기보다는 그로 인해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에 대한 기억 왜곡이 일어날 것이다.
“어디로 갔네?”
“직진.”
“아새끼래. 요즘 반말이 늘았어.”
“아니거든요.”
“그럼 아이덴다. 형한테 좀 더 깍듯하게 못하네. 페르민에게서 찰싹 붙어서 온갖 아양을 비벼대지 않네.”
“그런 적 없다니까요.”
북한에서도 최정예로 평가받던 전직 특수부대 요원과 무복을 입은 한 소년의 말다툼은 기이한 풍경이었다.
“조기 있구마.”
강철이 격렬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는 한 곳을 가리켰다. 두현이 타고난 신력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너무도 위태위태했다.
그들이 도착도 하기 전에 목이 날아갈 것 같았다.
“저 곰 동무래. 한계다. 어서 각성을 하던지 전투 기술을 배우던지 하지 않으면 오래 살기 힘들갔서.”
챙.
강철이 등허리에 차고 있던 군용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그에게는 다른 무기보다 군용 나이프가 몸에 잘 맞았다. 손에 감기는 맛도 좋다.
10년 이상 이 녀석과 함께했으니 잘 통하는 것이 당연했다.
“내레 먼저 가갔서.”
강철은 하현의 말도 듣지 않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흥, 그러던지 말든지.”
강철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그의 모습은 어느새 저만치 사라져 갔다.

“크흡!”
허벅지에서 살점이 뭉텅이로 떨어져 나갔다. 살점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서 출혈이 상당하다.
피가 줄줄 샌다는 것이 맞는 말이었다. 손을 써서 지혈을 해야 하지만 상대는 그런 여유를 주지 않았다. 계속해서 낫과 일본도를 휘두르며 두현을 압박했다.
여기까지 살아남은 것도 운이 좋았다.
하지만 그 운도 바닥이 나고 있었다.
벌써 세 곳에 자상이 났다.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정신이 흐릿해질 정도였다.
팔과 다리를 다쳐 움직임도 느려졌다. 저들의 공격을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그것은 저들의 변덕 때문이었다.
두현의 움직임이 줄고 지쳐 가자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것이다.
죽일 상대방에게 존중이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최악의 상대들인 셈이다.
“젠장!”
두현은 오른손 주먹을 계속해서 휘둘렀다. 왼팔을 휘두를 수가 없으니 그의 무기는 남은 오른손 주먹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다리까지 못 쓰는 두현의 주먹에 맞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평범한 사람은 물론 초등학생도 피하기 쉬울 정도였다.
두현은 절룩거리며 육교 위로 올라갔다. 계단으로 올라가 높은 곳을 점하자 조금은 숨통이 트였다. 좁은 계단으로는 저들도 함부로 올라오기 힘들었다.
아무리 힘이 떨어진 두현이라지만 한 대 맞으면 전투 불능을 각오해야 했으니 말이다.
“제기랄! 정말 질긴 놈들이야.”
네 명의 사내가 도로를 건너 건너편 계단으로 올라온다. 이제는 도망을 칠 구석도 없었다.
완전히 포위가 된 형국이었다.
두현은 맹렬하게 머리를 굴렸다. 이제껏 이렇게 급하게 머리를 써본 적은 태어나서 처음인 것 같았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아, 지겹다. 힘들다. 그만하자.”
육교 양쪽에서 조여온다. 가장 선두에 섰던 사내가 목을 양쪽으로 뒤틀며 말했다.
“나도 그만하고 싶다. 그러니까 이젠 좀 물러나지 그래.”
“킥킥킥. 그거야말로 안 되는 말이야. 네가 깔끔하게 목을 내주면 끝나잖아. 너도 힘들지. 아프지. 그러니까 목을 내놔. 안 아프게 목을 자르도록 내가 약속할게.”
“미친 새끼.”
안 아프게 목을 자른다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두현은 자신에게 말을 걸던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다리가 절룩거려 속도가 나지 않았다.
“크흑!”
역시나 옆구리에 검이 꽂히고 말았다. 살 속을 파고드는 차가운 금속의 느낌은 미치도록 소름이 끼쳤다.
두현은 자신을 찌른 사내를 부둥켜안고는 육교에서 뛰어내렸다. 둘의 허리가 난간에 부딪친 후 한 바퀴를 회전한다. 머리부터 떨어졌다.
“으아아아악!”
좀비와 같던 사내의 비명이 귀청을 울렸다. 이러다가는 둘 다 죽는다.
두현은 있는 힘껏 사내의 몸을 뒤틀었다. 그가 두현의 배 밑에 깔렸다.
사내의 동공이 커져 갔다. 그도 두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챘다.
“아, 안 돼!”
“미안하다. 어쩔 수 없어.”
“아, 안 돼! 난, 난 아기가 있어.”
죽기 전에 잠시나마 원령의 잠식에서 벗어난 사내였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퍼석!
둔탁한 소리가 육교 밑에서 울려 퍼졌다. 두현의 육중한 몸을 사내가 쿠션 역할을 대신한 셈이었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사내의 칠공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폭발한 것처럼 터져 나왔다.
내부 장기가 입으로 튀어나왔고 항문으로는 장기와 변이 물을 뿌린 것처럼 흩어졌다.
두현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의 모습은 흡사 야차를 연상시켰다.
그제야 원령에 잠식된 사내들도 움찔거렸다. 두현을 잡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벌써 반수에 가까운 인원을 잃었다.
그만큼 동료를 잃었지만 아직 상대는 살아 있었다.
상처를 입으면 입을수록 날뛰는 사나운 맹수와 같았다. 두 눈빛의 투기는 점점 강해졌고 사람을 상처 입힌다는 죄책감도 옅어졌다.
“모두 내려와! 모두 덤비라고!”
두현이 그들을 향해 사납게 소리쳤다. 목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사내들의 몸은 잠시나마 굳어졌다.
만약 내공이라는 것을 익혔다면 사자후라는 기술과 비견되었을 것이다.
두현의 옆으로 검은 그림자가 스치듯 지나쳤다.
“수고했슴메. 대단한 동무야. 이제는 좀 쉬도록 해.”
그림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뒷모습도 보였다.
긴 가죽 코트에 전투화를 신고 있었다. 들고 있는 무기도 군용 나이프였다.
그는 사내들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갔다. 사내들은 갑자기 나타난 그를 보며 당황했다. 자신들의 예상이 빗나가자 우왕좌왕하는 것이다.
그 틈을 놓칠 이강철이 아니었다. 그의 군용 나이프가 사내들의 동맥을 확실하게 끊는다.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에 모든 사람들의 목이 반쯤 잘렸다.
잘린 목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구쳤다. 그들은 가지고 있던 일본도와 낫을 내려놓고 목을 부여잡았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커커컥!”
그들의 눈동자가 원기로 가득해졌다.
“왜! 왜! 조센징 따위가! 감히 조센징 따위가 대일본제국의 병사들을 농락하다니.”
원령들이 사내들의 뇌를 완전히 잠식하며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한다.
피부가 울긋불긋하게 변하며 심줄이 퍼렇게 변했다.
머리카락이 조금씩 길어지며 전체적인 모습이 괴이하게 변해갔다.
“하여간 쪽바리들이란. 지들의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는 버릇은 여전히 못 버리갔네. 먼저 우리의 영토를 침범한 것은 지들이라고. 알간.”
이강철은 변하는 그들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페르민이 말한 구원군이 저자인가?
두현은 미간을 좁혔다. 사건 사고가 터지고 나서 도착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들의 모습이 괴물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두현도 조금은 기에 대해서 느끼게 되었다. 저들의 기가 폭발적으로 상승하며 주위를 기운을 먹어치우고 있는 것을.
아무래도 일은 끝나지 않은 듯했다.
저들의 몸에서 피어나는 요기를 피부로 받자 몸이 덜덜 떨려왔다.
“이봐. 두현 동무래. 그리 긴장하지 말라우. 곧 끝날 테이까.”
“뭐요?”
강철의 말이 시작이었다.
사내들의 몸에서 푸른색 둥근 띠가 생겨났다. 그것은 사내들을 몸통을 조였다.
“크, 크아아아악! 이, 이게 뭐냐?”
사내들의 몸이 점점 쪼그라든다. 이대로 가면 저 원에 의해 그들의 몸은 반 토막이 날 것만 같았다.
“아이고, 힘들어. 뭐긴 뭐야? 너희 원령들의 치명적인 약점. 인간에서 육신을 가진 악령으로 변할 때를 노린 거지. 일명 다중 원령 잡기 부적이야. 무려 육만 원짜리 부적이지.”
무복을 입은 한 소년이 무릎에 손을 대고 헐떡거렸다. 이런 전쟁터와 같은 곳에서 어울리지 않는 소년이었다.
소년과 두현의 눈이 마주쳤다. 속세에 때를 타지 않은 것처럼 맑고 투명한 눈동자였다.
소년은 두현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으아아아악!”
펑!
그 순간 사내들의 몸이 산산조각이 나며 흩어지고 말았다. 그들의 비명과 함께 정적이 찾아왔다. 종종 다니는 차량의 소음만이 들릴 뿐이다.
이제까지 악착같이 살기 위해 애쓰던 모습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너희들은 누구지?”
두현은 굳은 얼굴로 소년을 향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