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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의 질주 1권(10화)
3장 산적 토벌(5)


엘빈 마을과 산적 소굴 사이의 외진 길목 사이.
퍽! 휘잉∼ 퍽!
“악!”
“윽!”
“살려 줘…….”
“다 죽여! 이 새끼가 어디로 도망가, 안 서!”
휘잉∼ 퍽!
“악!”
함정에 걸려들어 길가 언덕으로 오르기 시작한 산적들은 미리 숨어 자신들을 기다리던 엘빈 마을 용사들의 습격에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특히 엘빈 마을 용사들이 2인 1조로 움직이며 자신들을 하나씩 처리하자 산적들은 수적 우위를 보이는데도 몰리고 있는 것이다.
“다들 한곳에 모여! 이쪽으로들 모여! 방패 들고 있는 녀석들이 일단 막고 있어!”
수세에 몰려 있던 산적들 사이에서 산적 두목이 외치자 한곳으로 모이더니 방진과 비슷하게 진형을 짜기 시작했다.
“아∼ 살려줘!”
휙∼ 퍽!
“조용히 해!”
휘잉∼ 퍽!
그전까지 순박했던 엘빈 마을 용사들도 사람의 피를 보고 급박히 전개되는 전투에서 느껴지는 흥분된 기분 때문인지 몰라도 사방에 쓰러져 있는 산적들을 하나하나 처치하며, 방진을 짜고 있는 산적들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이렇게 전투가 진행되어 지던 중 자신들이 완전히 포위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산적 두목은 이 엿 같은 상황을 어찌 돌파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아직도 저들보다 더 많아 보이는데도 이리 몰리고 있다니. 씨부럴! 내가 너무나 흥분해서 이리된 것이다. 이를 어찌 돌파해야 하나? 이런 제길!’
두목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엘빈 마을 용사들 사이에서 주니가 나와서 외치기 시작했다.
“두 번의 기회는 안 드립니다. 무기를 내리고 항복하세요! 항복하면 곱게 살려드리지만, 그렇지 않으면 처참하게 당할 것입니다.”
주니의 외침을 듣게 된 산적들은 끝까지 저항의 눈빛을 보이는 자도 있었지만, 항복하자는 듯한 눈빛을 두목에게 보내는 이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산적이다. 너희 같은 공노에게 항복 같은 것은 안 한다.”
산적 두목은 결국 항복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잠시 후 벌어진 상황에 무기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거부하는군요. 어디 끝까지 해 봅시다. 에고르, 밀짚 묶음들을 산적 쪽으로 던지라고 하세요.”
주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른 밀짚 묶음을 산적들 주위로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술이 담겨 있는 토기를 산적들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산적들은 처음에는 돌인 줄 알고 움찔거리다가 토기란 걸 알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 갑자기 술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무언가 생각나는지 앞줄부터 무기와 방패를 내려놓기 시작해 결국 모두 무기를 내려놓았다.
“하하하! 그래도 정말 바보는 아니군요. 제가 여러분을 불살라 죽일려고 하는 것을 간파하는 것을 보니까요. 하하하! 자, 산적분들 모두 머리에 손을 얹고 바닥에 엎드리세요.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저항으로 알고 바로 불 질러 버릴 겁니다.”
주니가 이렇게 말하자 산적들은 하나둘씩 머리에 손을 얹고 땅바닥에 엎드리기 시작했다.
이런 산적들의 모습을 본 엘빈 마을 용사들은 승리의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이겼다! 우리가 정말 이겼다! 와∼ 하하하하하!”
“자, 자, 여러분 먼저 저 산적들 손과 발을 묶으세요. 제 말을 따라 주세요.”
주니의 명을 들은 마을 용사들은 산적들을 묶기 시작했다.
산적들을 다 묶은 주민들은 하나둘씩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 주니를 존경스런 눈빛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주니 자신도 작전에 대한 회상을 하며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주니는 난타전을 대비해서 전경대의 작전을 고스란히 이용했다. 전경대의 진압 방법은 보통 앞줄은 방패조, 뒤에는 봉조로 이루어 진압한다.
주니는 이 방식을 방패조는 쇠 도리깨, 봉조에는 철퇴를 배치시켜서 2인 1조 방식으로 난타전에 임하게 했던 것이다. 쇠 도리깨는 상당히 기다란 농기구이다.
얼핏 보이게는 쌍절곤을 길게 늘어뜨린 모습처럼 보인다. 아무리 분탕질을 많이 하고, 싸움을 많이 했던 산적들이라도 무기가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자신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하면 알아서들 무너질 것이라 생각해서 주니는 쇠 도리깨를 과감하게 주무기로 채용했다.
그러나 무기가 아무리 좋더라도 훈련과 사기가 없으면 전투에서 질 게 뻔하기에 주니는 쇠 도리깨를 능숙하게 사용하게끔 훈련시키고, 두 사람이 한 몸처럼 움직이게 하는 훈련을 시켰다.
사실 쇠 도리깨를 무기로 사용한다고 했을 때 마을 주민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밀밭을 정리할 때나 쓰는 농기구를 무기로 쓰다니. 하나 주니가 쇠 도리깨를 휘둘러서 장작을 박살내는 모습을 보고는 경악과 함께 그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
“자, 산적들을 묶었으면 20명은 에르고 형님의 지시를 받으며 산적들을 끌고 엘빈 마을로 가세요. 나머지는 저를 따라 산적들 산채로 가죠.”
주니의 말을 마치자 엘빈 마을 사람들은 두 그룹으로 나누고는 한쪽은 붙잡은 산적들을 이끌고 마을로, 나머지 한쪽은 산적들 산채로 향하기 시작했다.

엘르 백작령 영주성.
영주의 갑작스런 귀환 준비에 바쁜 기스노에게 갑작스레 병사가 다가왔다.
“행정관님, 엘빈 마을의 주민들이 갑작스레 영주성으로 피난을 왔습니다.”
“뭐라? 다시 말해 봐라. 엘빈 마을이 어쨌다고?”
그 순간 기스노는 산적 두목과의 합의를 기억했다.
“그래, 어느 정도로 피난을 왔다고 하는가?”
“마을 주민 전체가 피난을 온 듯합니다.”
병사의 말에 기스노는 갑자기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놈의 산적 새끼들이 약속을 깨고 마을을 초토화시킨 것인가? 하필이면 백작님이 오실 이 시점에? 이를 어찌해야 하나?’
“일단 나가 보지.”
그리고 기스노는 성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엘르 백작령 영주성 성문 앞.
“나리, 저희 마을 좀 살려 주세요!”
“저희 마을을 구해 주세요!”
“자, 자, 일단 진정들하고 성문 밖에서 기다려라. 대리인께서 곧 나오실 것이다. 진정들 하라고!”
지금 영주성 경비 대장은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갑자기 엘빈 마을 공노들이 영주성에 나타나더니, 마을이 산적들에게 습격을 당해 피난을 왔다며 마을을 구해달라고 아우성치는 것이다.
‘이런, 이 대리인 새끼는 왜 이리 안 나오는 것이야? 뭐가 어찌 돌아가는 것인지.’
사실 어제 엘빈 마을 쪽에서 시커먼 연기가 났을 때 경비 대장은 대리인에게 엘빈 마을 쪽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 아닌지 병사를 일부 보내 보자고 했다.
그런데 대리인은 별일 아닐 것이라며 엘빈 마을 쪽에 문제가 있으면 사람을 보낼 것이고, 그때 보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백작님이 오시기 때문에 준비하느라 바쁘다고 이런 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했다.
한데 하루만에 엘빈 마을 주민 전체가 영주성으로 피난을 와 난리를 치니 저절로 대리인에 대해 속으로 욕을 하는 것이다.
경비대장이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영주성 대리인인 기스노가 나왔다.
“이 무슨 짓들인가? 마을에서 누가 너희들 멋대로 벗어나라 했냐? 마을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하지 못할까? 공노인 너희들이 허락 없이 마을을 벗어나면 어찌 되는지 몰라서 이러느냐? 이것들이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마을을 구해달라고 엎드려 빌고 있는 엘빈 마을 사람들에게 기스노는 무조건 마을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이다. 이때 촌장이 나서서 말했다.
“나리, 저번에 저와의 약조를 잊으셨습니까? 분명 영주성으로 피난을 오면 병사를 보내 주시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갑작스런 촌장의 발언에 경비 대장은 대리인 기스노를 쳐다보았다.
기스노는 처음 듣는 말이라는 표정으로 촌장에게 호통을 쳤다.
“네 이놈, 어디서 거짓을 고하느냐? 내가 언제 너를 보았다고 그러냐? 그리고 무슨 약조를 했다고 하느냐? 맞아야 정신을 차릴 듯싶구나.”
그리고는 경비병이 들고 있던 창을 들고는 촌장에게 다가갔다. 다가오는 기스노를 보고는 촌장은 다시금 외쳤다.
“나리! 분명히 저와 약조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분명이 산적들이 쳐들어올 것 같다고 말씀드렸을 때는 무조건 영주성으로 피난을 오라고, 그러면 병사를 보내 주실 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런! 그 입을 다물지 못할까?”
기스노가 미치겠다는 듯이 팔짝 뛰면서 고래고래 소래를 지를 때, 갑자기 한 무리의 병력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을 열어라! 엘르 백작님 행차시다! 길을 열어라!”
백작님의 행차라는 소리에 기스노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아∼ 하필이면 이때…….’

산적 산채.
30명의 엘빈 마을 용사들이 산채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산채는 텅 빈 상태였다. 아니, 다른 농노 마을에서 잡혀 온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남아 있는 산적들은 모두 도망가고 없었다.
“현자님, 모두 도망간 것 같습니다. 마을에는 다른 마을에서 잡혀 온 사람들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남아 있는 사람들을 모아 주세요.”
주니는 잡혀 온 사람들을 모으라고 지시하고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다.
‘모두 잡았어야 하는데… 이런! 몇 명이나 튄 거야?’
잡혀 온 사람들을 모두 모은 곳으로 가 보니 100여 명의 여성이 모여 있었다. 이중에는 배가 불러온 여성도 상당수 있었고, 많이 능욕을 당했는지 옷이 성하지 못한 여성도 많았다.
‘처참하군.’
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주니가 다가가자 모두가 떨고 있었다.
“떨지 마십시요, 저희는 엘빈 마을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에게 절대로 나쁜 짓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엘빈 마을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을 구하러 온 것입니다.”
주니가 아무리 자신들을 구하러 온 것이라 말해도 모여 있는 사람들은 쉽게 믿지 못하겠다는 듯 떨고 만 있었다.

엘르 백작령 영주성 성문 앞.
갑작스런 백작의 도착에 기스노는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문 앞에 백작의 행렬이 도착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왜 이리 소란스러운 겐가?”
기사가 경비병들과 기스노가 있는 곳에 나서서 호통을 치자. 기스노가 앞서서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갑작스런 엘빈 마을 사람들의 외침에 기스노는 말할 수가 없었다.
“나리, 저희 마을을 구해 주십시오. 산적으로부터 저희 마을을 구해 주십시오.”
“저희 마을을 구해 주십시오.”
“자, 조용, 조용! 어디 마을 사람들인가?”
기사의 물음에 촌장이 나서서 말했다.
“저희는 엘빈 마을 사람들입니다. 나리, 제발 저희 마을을 구해 주십시오. 산적들이 저희 마을을 습격해 왔습니다.”
촌장의 대답에 기사는 놀랐다.
그리고 기사가 말 위에 앉아 있는 백작을 쳐다보았을 때는 이미 백작의 얼굴에는 노기가 서려 있었다.
그리고는 말을 몰고는 촌장 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이 땅의 주인인 엘르 백작이다. 그대는 내게 소상히 고하라. 지금 말한 것이 한 치의 거짓도 없으렷다?”
백작의 질문에 촌장은 주니의 당부를 생각했다.

“촌장님, 저희 남자들이 마을을 벗어나면, 공터에 연기가 잘 나는 장작을 모아서 불태우고, 무조건 남은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영주성으로 피난을 가십시오. 영주성으로 가면 백작이 도착했거나, 거의 도착할 때쯤일 것입니다. 그리고 무조건 기스노 대리인이 피난을 오면, 병사를 보내 주기로 했다고 우기십시요. 그래야만 병사들이 저희 마을로 출발할 것입니다. 백작 앞에서도 무조건 제가 일러 준 대로 우기셔야 합니다.”

주니의 당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는 백작에게 촌장이 말했다.
“고귀하신 백작님, 사실입니다. 전에 저희가 저기 계신 기스노 나리께서 산적들이 마을을 습격할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만약 산적들이 습격하면 무조건 영주성으로 피난을 오라고, 그러면 병사를 보내 주겠다고 했습니다.”
완전히 얼굴이 일그러진 백작이 기스노에게 다가가서 외쳤다.
“지금 이게 무슨 말인가? 엘빈 마을이 산적 새끼들에게 습격을 당해? 병사는 보냈는가? 말을 해 보게!”
기스노는 백작의 질문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냥 엎드려 있기만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