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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의 질주 1권(11화)
3장 산적 토벌(6)


산적 산채.
주니는 산채로 온 30명 중 10명을 추려내 잡혀 있던 사람들을 이끌고 엘빈 마을로 먼저 출발하라고 이르고, 남은 20명과 함께 산채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산채의 창고들을 확인했다.
“개새끼들, 정말로 많이도 모아 두었네요.”
“우와! 이 정도 곡식이면 저희 마을이 아무것도 안 해도 먹고살겠습니다.”
“여기도 보십시요. 저희가 준 물품들도 무진장 쌓여 있습니다.”
엄청나게 쌓여 있는 물품들을 보고는 주니는 엘빈 마을에서 만든 것들만 모아서 주변에 있는 수레에 싣게 했다.
“아니, 왜 다 싣고 가시지 않고요?”
“저것들은 그냥 두어서 백작이 수령해 가게 해야 합니다. 그냥 저희 마을에서 만든 것들만 싣고 가야 합니다.”
주니의 대답을 들은 주민들은 아직도 많은 물품이 아깝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현자님, 모두 싫었습니다.”
“그럼 빨리 마을로 출발하죠.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엘빈 마을.
먼저 도착한 마을 사내들은 주니가 지시한 사항대로 준비를 하고는 주니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악! 살려 줘. 약속하고 틀리잖아!”
“난 죽기 싫어.”
슝∼ 철퍼덕. 슈아∼ 철퍼덕.
주니가 지시한 사항은 다름 아닌 산적들에게 백작령 병사 투구를 씌운 채 목을 베라고 한 것이다. 에고르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는 산적들의 목을 보며 토하고 있었다.
‘현자님의 지시지만, 정말로 이해가 안 간다.’
“우욱!”
마을 청년들은 안타깝게 쳐다보면서 사방에서 구토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목이 잘리지 않은 산적들은 살려달라며 애원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100여 명의 여성과 10명의 마을 사람이 마을에 도착하고 있었다.
“형님,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왜, 멀쩡한 놈들의 목을 자릅니까?”
“나도 모르겠다. 현자님의 지시 사항이다. 현자님이 오시면 그때 물어보자.”
미리 와 있던 동료들이 산적들을 처단하는 모습을 보자 뒤에 온 용사들과 여성들은 놀라거나 그 잔혹한 모습에 여기저기서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이때 한 외침이 들린다.
“저기, 현자님과 나머지 마을 사람들이 옵니다.”
철그렁. 철그렁. 비익∼
몇 개의 수레에 물품을 잔뜩 싣고 주니와 마을 용사들이 들어서자 모두들 반갑게 맞이했다.
“에고르 형님, 제가 지시한 사항대로 준비를 하셨겠지요?”
“네, 현자님 준비하신 대로 했습니다.”
“잡혀 온 자가 몇 명입니까?”
“170명 정도입니다.”
“그러면 한 30명 정도가 도망갔다는 이야기군요.”
“저희 마을 청년들의 피해는 어느 정도입니까?”
“하하하! 말도 마십시요. 멍들고 발목이 삐던지, 팔목이 삔 정도가 다입니다.”
“그래요? 하하하! 아무도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다 현자님 덕분 아닙니까.”
“맞아. 와! 현자님 만세! 와!”
이런 마을 청년들의 외침을 듣고는 주니도 미소를 띠었다.
“아, 제발 그 현자라고 좀 하지 마십시요. 낯 뜨겁습니다. 그냥 주니라고 하십시오.”
“하하하.”
모두들 주니가 이렇게 말하자 웃기 시작했고, 웃음소리가 끝날 때쯤 주니는 다시금 지시 사항을 내린다.
“그러면 에고르 형님은 30분을 추려내서 저 시체들을 마저 치우고, 저희가 가져온 물품들을 마을 창고에 쌓아 두세요. 그리고 영주성으로 간 마을 주민들과 저희가 올 때까지 마을을 지키면서 포로로 잡혀 있었던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면서 돌봐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에고르는 주니의 지시 사항을 듣고 바로 실행에 옮겼고, 얼마 후 주니는 마을 용사 20명과 함께 산적들의 목을 싫은 수레를 이끌고 영주성으로 출발했다.

엘르 백작 영주성.
영주성 영주관 안에는 백작이 노기가 서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앞에는 기스노와 경비 대장 그리고 엘빈 마을 촌장이 엎드려서 백작의 무서운 기세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촌장, 다시 한 번 묻겠다. 아까 성 밖에서 한 말이 사실이렷다?”
“사실입니다. 옆에 계신 나리께서 분명히 약조를 하셨습니다.”
뿌드득!
“그래 산적이 몇 명 정도 습격했는가?”
“그것이 몇 명인지는 정확히 모르겠고, 마을 젊은이들이 싸우러 나갈 때, 한 200명 이상이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백작님, 제발 저희 마을을 구해 주십시오. 흑흑흑.”
백작이 이렇게 촌장에게 묻고 있을 때, 두 명의 기사와 한 명의 여성이 들어섰다.
“아니, 공주님 어쩐 일로……?”
“다름 아니라 현명하신 백작님이 백작령을 어떻게 다스리시고, 이런 머리 아프신 일을 어찌 처리하시는지 보고 가르침을 얻기 위함입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옆에서 지켜봐도 될까요?”
끄응.
“그렇게 하시죠. 이쪽에 앉으시지요.”
“고맙습니다.”
이번 백작이 영주성으로 돌아올 때 같이 따라온 공주가 나타나 자신의 일처리를 보겠다고 하자 백작은 공주를 한쪽 의자로 안내하고는 다시금 추궁을 시작했다.
“기스노 말해 보라! 엘빈 마을은 이 백작령에서 얼마나 중요한 마을인지 모르는가? 그런 엘빈 마을이 습격을 받을 거 같다고 촌장이 보고를 했는데도 그런 사실을 무시하고 병력을 보내지 않았단 말인가? 말해 보라!”
“백작님, 사실이 아닙니다! 정말 사실이 아닙니다! 저 촌장이 거짓을 고하고 있습니다! 네 이놈 어서 진실을 고하지 않을까?!”
지금 기스노는 백작의 추궁에 촌장의 말이 진실이 아니라고만 둘러대고 있었다.
“네 이놈, 지금 나와 말장난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성 밖에 몰려와 있는 엘빈 마을 주민들은 놀러온 건가?”
“백작님, 정말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쾅!
“다 필요없다. 내 친히 병사를 이끌고 엘빈 마을로 갈 것이다. 그러니 경비 대장은 여기 말스 기사의 지휘 아래 300명의 병사를 준비해라. 말스 기사도 경비 대장을 도와 신속하게 병력을 모으고 백작령의 기사를 모두 모아라.”
“네!”
그런데 기사가 이렇게 대답하는데 경비 대장은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아니, 뭣하는가? 백작님의 지시를 못 들었나?”
“백작님 다름이 아니라 지금 영주성의 병사가 300명인데 300명 모두를 끌고 나가시면 영주성은 누가 지키시라는 것인지요?”
슈웅∼ 쨍그랑!
“무어라! 영주성 병력이 300명? 기스노, 내 분명 500명 이상의 병력을 상주시키라 했을 텐데 경비 대장의 말은 또 뭔 소리냐? 기스노, 네 이놈 말을 해 봐라! 똑바로!”
기스노는 백작의 노기 서린 추궁에 바닥에 바짝 엎드려 아무런 답변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촌장은 이 광경을 보면서 식은땀만 흘리고 있었다.
그리나 이 모든 관경을 지켜보던 공주는 백작을 쳐다본 채 아주 재미있다는 듯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백작령 영주성 근처 길.
주니와 엘빈 마을 20명의 청년은 수레 2개를 이끌고 수면은 최대한 적게 하고, 휴식 시간도 최대한 줄이면서 영주성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자, 여러분 조금만 힘내세요. 조금만 있으면 영주성입니다. 힘냅시다!”
“그래요, 현자님의 말씀대로 좀 더 힘냅시다.”
퍽!
“아∼ 왜 때리십니까?”
“내 그렇게 주의를 주었구만, 앞으로 그냥 주니 형이라 부르라 했지?”
“아, 습관이 된 걸 어쩌라구요? 그리고 마을 어른들이 아시면 경을 칩니다.”
“그래도 이 자식이… 몇 대 더 맞을래?”
“네, 알았습니다. 형님… 하하하!”
“하하하!”
주니는 이동하면서 동료들에게 자신의 호칭을 이제 현자라 부르지 말고 그냥 주니라 부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자신을 현자라고 칭하는 마을 젊은이들의 뒤통수를 때리면서 호칭 연습을 시키고 있었다.
사실 주니는 이미 대부분의 백작령 마을에서는 유명 인사로 ‘엘빈 마을의 바보 현자’, ‘엘빈 마을의 바보 사제’로 불렸다.
그 이유는 너무나도 많은 이들을 치료했기 때문이다.

백작령 영주성 접견실.
백작령 접견실에서 한 명의 여성과 두 명의 기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엘르 백작은 어찌하고 있습니까?”
“그 대리인을 지금 옥에 가두고, 친히 자신의 기사를 시켜 병력을 다시 소집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백작령에서 그 엘빈 마을이란 곳이 상당히 중요한 곳인가 봅니다.”
“네, 공주님. 엘르 백작령의 수입의 1/3을 그 마을에서 얻어낸다고 합니다. 특히 근래에는 사베라는 직물을 새롭게 만들어 내서 엘르 백작이 더욱 부유해졌다 합니다. 그런 마을을 산적들이 습격했으니 지금 엘르 백작이 저리 노발대발하는 것입니다.”
“오∼ 그래요? 그저 그런 마을인 줄만 알았더니만 백작령의 보물이었군요.”
“네.”

지금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공주는 ‘엘가’ 공주이다. 풀네임은 엘가 카리우스.
카리우스 왕국은 카리우스 대륙에서 유일무이하게 천 년을 넘게 이어 온 왕국이다. 현재 왕인 매션 카리우스도 80번째 왕이다.
사실 카리우스 왕국은 대륙을 처음으로 통일하고 500년이나 제국을 유지했던 왕국이다.
그래서 대륙의 이름도 카리우스 대륙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찬란했던 제국도 오랜 안정으로 부패를 낳았고 그 부패로 인하여 수많은 민란이 일어나 많은 왕국이 독립을 선언, 내전을 치르다 오늘날 변방의 자그마한 왕국으로 전락한 지가 300년 정도 되었다.
하나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했듯이 카리우스 왕국이 변방의 작은 왕국으로 몰락했어도 한때는 500년간 대륙 유일의 제국으로 군림해서인지 왕국의 맥은 끊기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공주님,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아무래도 병력을 요청하기는 힘들 듯싶은데요. 차라리 병기나 많이 요구하심이 더 나을 듯싶습니다. 자체 병력도 이렇게 달리는데 병사를 내어 주겠습니까?”
“제 생각도 같습니다. 엘르 백작의 백작령 상태가 생각보다 상당히 좋지가 않네요.”
공주는 기사와 이렇게 대화를 마치고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엘르 백작령 영주성 영주관.
아직도 노기가 사라지지 않은 엘르 백작은 영주관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공주 앞에서 무슨 개망신이란 말인가?’
엘르 백작은 1년에 한 번 축제 때만 자신의 영지에 방문할 정도로 거의 왕성에서만 기거하고 있다. 사실 자신의 가문에 속해 있는 10명의 기사도 모두 왕성에 있다. 이는 왕국에서 자신의 지위를 올리기 위함이었다. 엘르 백작은 귀족이긴 하지만, 집안의 사정으로 다른 귀족으로부터 귀족 취급을 받지 못했다. 이는 집안의 독특한 내력 때문이었다.
원래 엘르 백작가의 출발점은 왕국 내에서 멸시를 받는 장사꾼 집안이었다. 그래서 엘르 백작가는 전통적으로 무시와 멸시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 왕성에 머물며 무수히 많은 노력을 해 왔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는 엘가 공주의 피치 못할 사정을 도와 자신의 집안을 한 단계 발전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한데 한 단계 발전은 고사하고 망신만 떨게 생겼으니 엘르 백작은 지금 미치기 일보 직전인 것이다.
“백작님, 출정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그런가.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백작의 기사 말스가 출정 준비가 다 되었다고 고하자 백작은 친히 병력을 이끌고 출발하려 하고 있었다.
이때 공주가 다시 들어왔다.
“백작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전투를 참관해도 될까요?”
“위험하실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저의 호위는 제 기사들이 해 줄 것입니다.”
“흠… 그럼 참관하도록 하십시오.”
공주가 찾아와 전투 참관을 요구하자 엘르 백작은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하였다.
잠시 후 백작 본인과 장남 그리고 기사 10명, 급조된 300명의 병사가 영주성에서 출발하려고 성문 밖으로 나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