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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의 질주 1권(13화)
4장 공주 때문에(2)
공주의 등장에 안 그래도 어리둥절한 촌장과 주니가 포함된 20명의 청년들은 바닥에 납작 업드려 공주에게 예를 갖췄다.
“이 천한 것들이 공주님을 뵙습니다!”
“공주님을 뵙습니다!”
모두가 이리 외칠 때 주니는 속으로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건 또 뭐 어찌 돌아가는 것이지? 공주가 이 산골 영주령에 뭐하러 왔지? 시찰을 다니고 있나? 시찰이면 공주가 아니라 왕자여야 하는 거 아닌가? 암튼 알다가도 모를 일이군. 저 늙어 빠진 백작과 공주가 결혼이라도 하나? 뭐, 그럴 수도 있겠군. 그렇다면 백작이 꽤나 영향력 있는 귀족이란 이야기도 될 수 있겠군.’
주니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공주는 바닥에 엎드려 있는 사람들을 일일이 잡아서 자리에 앉히기 시작했다.
“오늘은 여러분들이 주인공이신데, 이러시면 제가 민망합니다. 꼭 제가 흥을 깨는 것 같지 않습니까.”
공주가 이렇게 말하면서 손까지 잡아 주자 주니를 제외한 모두가 황송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 제법인데. 이 공주, 사람을 다룰 줄 알아. 근데 뭐지, 영주의 저 똥 씹은 표정은?’
주니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공주는 어느새 주니에게로 다가와 손을 잡아 일으킨 후 한마디를 건넸다.
“혹시 이름이 주니가 아닌지요? 엘빈 마을의 ‘바보 사제’, ‘바보 현자’ 맞죠?”
공주가 건넨 한마디에 주니의 표정은 똥 씹은 표정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 여자가 나에 대해 어찌 아는 것인가? 된장! 조용히 살고 싶었는데 무언가 꼬여 간다는 느낌이 든다 말이야.’
생각을 마친 주니는 바로 공주에게 대답하였다.
“저는 엘빈 마을의 평범한 공노 주니라고 합니다, 공주님. 사제라뇨? 거기다 현자라니요? 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공주의 표정은 ‘이미 너에 대해 다 알고 있어∼ 쨔샤.’라는 표정이었다.
얼마 전 영주성 접견실.
“아, 저는 엘가 공주라고 합니다. 제가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 불렀습니다.”
기사를 따라온 영주성 시녀는 바닥에 바짝 엎드린 채 겁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아, 떨지 마세요. 제가 묻는 말에만 대답해 주시면 됩니다.”
“네, 공주님. 말씀만 하세요. 무엇이든지 답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너무 겁먹지 마세요. 저는 그대를 죽이려는 게 아니라 질문만 하려는 것입니다.”
시녀가 눈을 말똥말똥 뜬 채 공주를 쳐다보자 공주는 미소를 띠면서 질문했다.
“엘빈 마을 장정들이 산적을 어떻게 물리쳤는지 소문 들은 대로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대는 아까 엘빈 마을 주민들에게 음식들을 나누어 주면서 소문들 들었다고 들었는데…….”
“네?! 네, 말씀드리겠습니다.”
공주의 질문을 들은 시녀는 공주의 온화한 표정에 안심이 되었는지 자신이 들은 바를 공주에게 고하기 시작했다.
“소문으로는 엘빈 마을 젊은이들 60명 정도가 200명의 산적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시녀의 말을 들은 공주와 기사들은 그만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말인가요?”
“네, 공주님. 엘빈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마을 젊은이들도 많이 다치거나 죽었겠군요? 죽기 살기로 싸웠을 테니까요?”
“아뇨,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답니다. 그냥 약간의 멍만 들었답니다.”
시녀가 황당하다는 말투로 공주의 생각이 틀렸다고 고하자 기사가 갑자기 나서기 시작했다.
“네 이년! 어디서 망발을 하느냐? 말이 되느냐, 공노 60명이 200명이나 되는 영주병들과 싸워서 어찌 이긴단 말이냐?”
“정말입니다! 저는 그렇게 들었습니다!”
“가만히 계세요. 그럼 한 가지만 더 묻죠. 누가 앞장서서 싸운 거죠?”
공주는 시녀가 자신이 질문한 질문의 의도를 파악 못한 듯하자 재차 질문을 하였다.
“아, 누가 대장이 되어서 마을 젊은이들을 이끌었는지…….”
“아, 엘빈 마을의 바보 사제라 불리는 ‘주니’라는 인물이랍니다. 다른 호칭으로는 바보 현자라고도 불립니다. 그 사람이 여러 가지 함정을 생각해 내어 마을 젊은이들을 이끌어 산적들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그래요? 그 주니라는 사람에 대해 상세하게 아는 대로 알려 주시겠어요?”
시녀는 공주님이 옆의 기사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너그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자 신이 났는지 마구 말을 쏟아내었다.
“그 주니라는 인물은 한 3년쯤 전에 갑자기 엘빈 마을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맨 처음에 나타났을 때는 신의 언어를 너무나 능숙하게 구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신의 언어?”
“신의 언어라니?”
공주와 기사는 놀라고 있었다.
“네, 신의 언어요. 그리고는 그 엘빈 마을 촌장댁의 저주스러운 병을 7일만에 고쳤다고 합니다.”
“저주스런 병이라니요?”
“아, 엘빈 마을의 촌장님 댁에는 아들 내외가 같이 지내는데 글쎄, 딸을 제외하고 밑에 낳은 자식 3명이 매번 같은 병으로 죽었는데, 그 주니라고 불리는 바보 사제가 고쳤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의 불치병들도 하나씩 고쳐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맨 처음에는 다들 사제라고 불렀는데, 그다음부터는 이상한 물건들을 만들어서 마을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어서 현자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 그래요? 그 사람이 어느 정도로 치료하고 어떤 것들을 만들어 냈는지요?”
“원래 저도 인근 농노 마을에 살았었습니다. 사실 저희 같은 가난한 농노는 돈이 없기에 사제분들이 치료를 안 해 주세요. 한데 어느 날부터 엘빈 마을에 병을 용하게 치료하는 분이 나타났다고 해서 저도 저희 부모님과 함께 저희 할머니를 모시고 엘빈 마을에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어디가 아프셨나 봐요?”
“네, 사지를 떠는 병에 걸리셨어요. 그 병은 용한 사제분들도 못 고치신다고 들었어요. 한데 저희 아버지가 엘빈 마을 소문을 듣고 와서는 몰래 저희와 할머니를 모시고 믿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엘빈 마을에 갔었지요.”
“그래서요?”
공주는 시녀의 말에 점점 흥미를 느껴 재차 물었다.
“맨 처음 보았을 때는 말을 어린애처럼 어눌하게 해서 바보라고 생각했는데, 그 마을 사람들은 현자님, 현자님 하면서 아주 떠받들고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할머니를 치료하시는데, 아주 자그마한 침들을 손에 놓는 치료를 계속했었습니다. 그리고 약 3달 뒤에 저희 할머니는 거의 다 나으셨습니다. 지금도 약간은 떠시지만 옛날에 비하면 다 나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엘빈 마을뿐만 아니라 인근 많은 영주성 근처의 농노 마을의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치료를 받고 하도 많이 나아서 영주성 근처에서는 그를 바보 사제라고들 많이 불렀습니다.”
공주가 시녀의 말을 듣고는 놀랐다.
‘아마 사지를 떠는 병이면 풍을 말하는 거 같은데, 아주 신력이 강한 사제도 풍은 잘 고치지 못한다. 한데, 어찌…….
공주가 시녀의 말을 듣고 난 후 무언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시녀는 다시 말을 꺼내었다.
“참, 그 주니라는 사람에 의해서 사베라는 직물도 만들게 되었답니다.”
“사베라는 직물을 그자가 만들었다고요?”
“네, 공주님.”
“그래요? 고마워요. 궁금한 것들을 해결해 주어서요.”
시녀가 나가자 기사가 공주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 주니라는 사람이 꽤나 영특한 재주가 있나 봅니다, 공주님.”
“그런가 봅니다. 아마 이번에 백작한테 그 엘빈 마을 공노들을 빌려달라고 해야 할 듯합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여쭈어도 될까요?”
“저 시녀의 말을 저는 다 믿지 않습니다. 풍을 치료했다는 말은 더욱 믿지 않습니다. 좀 과장이 섞인 거 같아요. 거기다 신의 언어라니 신의 언어를 쓰면 신력을 사용해서 병을 고쳐야 하는데 말을 들어보니 신력을 사용하는 것 같지는 않고, 제가 보기에는 사기꾼이 좀 지혜를 발휘한 거 같군요.”
“그런데 어찌 엘빈 마을 공노들을…….”
“상징성을 나타내기 위해서요. 그들의 용맹함을 일부러 소문내서 농노병들에게 힘을 내게 함이지요. 어차피 이래저래 죽을 농노들이지만 그들이 죽기 살기로 싸워 줘야 병사들이 싸울 때 수월할 테니까요.”
“공주님의 지혜는 제가 감히 따르지를 못하겠네요.”
공주는 은근히 자신을 치켜세우는 기사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주니 일행의 거취 여부를 물었다.
“지금 그 엘빈 마을의 공노들은 어디에 있죠?”
“영주관에서 백작과 식사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백작을 약 올리러 가 볼까요?”
“네? 하하하! 알겠습니다, 공주님. 제가 직접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대화를 마친 기사와 공주는 영주관으로 향했다.
엘르 백작령 영주성 영주관.
‘소문과 다르게 독특한 외모를 지녔군. 호호호.’
엘가 공주는 자신의 머리로는 따라갈 수 없는 지혜를 지닌 주니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자신이 생각한 바대로 이들을 그저 상징성으로만 사용하려고만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엘르 백작령 영주성 백작 집무실.
엘르 백작은 어제와 오늘 자신의 영지에 공주가 방문한 상태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 때문에 머리를 쥐어 싸매고 있었다.
‘낭패다. 이런 낭패도 없다. 아니, 낭패가 아니라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영주성 병사들이 산적질도 모자라 공노들에게 토벌당해서 몰살당하다니.’
쉭∼ 쨍그랑!
엘르 백작은 마시던 술잔을 던지며 계속해서 공노들이 산적, 아니, 이제 백작령 병사들을 토벌한 점에 대해 생각하니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엘르 백작은 이 사단이 일어나 병사들을 동원해 기스노의 집무실과 집을 수색하기 전까지만 해도 설마하며 내심 이 상황이 허황된 사실이기만을 바랐었다. 아니, 약간 비리를 저지른 것이었으면 봐 줄려고도 했다. 하나 지금 백작의 손에 쥐어진 조사 보고서의 내용은 기스노의 비리가 상상을 초월했었다라고 증명해 주고 있다. 정말로 백작인 자신에게 반역을 저지르기 위해 준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몰래 산적들 산채에 숨겨 놓은 곡물이 영주성 전체 주민을 1년 정도 먹을 수 있는 곡물 양이었으며, 누락된 병사 200명도 알고 보니 산적들을 병사로 등록시킨 것이었다?”
‘끙∼ 아, 이 기스노 때문에 공주한테 무작정 퍼 주어야겠군.’
엘르 백작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집사가 백작에게 아뢰었다.
“백작님, 공주님이 뵙기를 청합니다.”
끄응!
‘하필, 이때에……’
“모셔라.”
“백작님, 하루 사이에 많이 야위셨습니다. 호호호.”
공주의 신경을 건드는 말에 백작은 표정 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백작님, 제가 설마 왕성에 가서 백작님의 명성에 누를 끼칠 거 같습니까? 뭐 200명의 영지병들이 산적질하는 것도 모자라 60명의 공노들에게 토벌당했다는 것을 믿어 줄 귀족들은 없겠지만요. 호호호.”
공주의 갑작스런 발언에 백작은 귀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이 여우 같으니라고, 아주 약을 올려라. 빨랑 말해라 말 돌리지 말고. 뭘 원하니?’
그리고 공주의 발언이 이어졌다.
“백작님, 서로 솔직해지죠. 백작님도 아시다시피 저도 명분이 필요해 이렇게 많은 귀족분들을 찾아다니며 병사 또는 병참금을 구걸하고 다닙니다.”
공주의 이런 직접적 발언에 백작은 무릅을 꿇으며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찌 그런 황송한 말씀을…….”
‘이 여우 년 계속 말 돌리네. 사람 애태우지 말고 빨랑 말해. 답답하다.’
“백작님, 저는 백작님께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알아서 백작님께서 내놓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뭐, 못 내놓으시겠다면 저야 왕성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 되겠지요? 호호호.”
백작은 계속해서 조잘대며 자신의 살살 약 올리는 공주가 얄미워 공주를 살짝 노려보았다.
끄응.
“백작님, 제가, 아니, 제 동생이 임해야 하는 전쟁에 힘을 보태 주셔서 승리를 하면 백작님의 명성도 더욱더 드높아지실 것 같은데, 저와 함께 손을 잡고 승리를 쟁취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하하하하하……”
‘미틴년. 넌 지금 너가 치러야 하는 전쟁을 이길 거라 보니?’
공주의 말을 듣고는 백작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웃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