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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의 질주 1권(14화)
4장 공주 때문에(3)


“공주님 제가 무엇을 내놓아야 합니까? 너무나 지나친 요구는 힘들지만 웬만하면 제가 힘을 보태지요.”
백작의 이 발언이 끝나자 공주는 생각에 잠긴 듯 가만히 있다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병사 200명, 농노병 1,000명을 요구합니다. 이들의 무장은 당연히 백작님께서 준비시켜 주셔야 하고요. 참, 더욱 중요한 것은 아까 보았던 엘빈 마을 청년 중 6명만 저한테 빌려 주세요. 주니라는 공노는 무조건 있어야 합니다.”
백작은 공주의 발언을 듣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 1,000명! 저 썅 날 도둑 같은 년. 그나마 병사 1,000명을 요구하지 않은 걸 감사히 여겨야 하나? 아, 뭐 농노야 어떻게 해서든 구하면 되고, 병사 200명이야 대충 채우면 되는 것이겠지.’
백작은 생각을 마치고 공주의 요구에 답해 주었다.
“공주님, 내어드리지요. 뭐, 생각보다 과하지는 않군요. 하하하! 공주님, 생각보다는 너그러우십니다.”
공주는 백작이 자신이 원하는 요구 사항을 화통한 웃음과 함께 내어 준다고 답하자 그동안 쌓였던 걱정 한 가지를 덜었다는 생각에 미소를 띠며 여러 가지 일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엘가 공주가 이렇게 귀족들을 찾아다니며 병력과 병참금을 지원받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다 멍청한 개혁파 귀족들 때문이었다.
원래 세자가 아닌 왕자는 땅을 하사받고 독립해야 한다. 근데 하필이면 이 문제는 자신의 동생이 아직 성년이 안 되었는데 스텔라 왕녀 쪽에서 거론하였다.
그리고는 내민 영지가 얼마 전 자식없이 죽은 귀족의 땅인 피에르 영지였다.
피에르 영지는 생산품도 없고, 소출량도 적고, 거기다 피에르 왕국과 국경을 마주해서 툭하면 전쟁을 해야 하는 영지이다. 정말로 전쟁을 많이 치러야 한다.
왜냐하면 피에르 영지 자체가 피에르 왕가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한데 빙신 같은 개혁파 귀족들이 받아들여 자신의 동생인 쎄르 왕자가 그 영지를 받은지 어언 2년.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한 달 전 피에르 왕국의 셋째 왕자가 영지전을 하자고 제안해 왔다.
처음에는 안 된다고 거절했지만 거절하면 무조건 전면전을 펼칠 것이라며 협박을 해왔고, 거기다 영지전을 하면 승리의 조건으로 엘가 공주와의 결혼을 내세웠기에 국왕도 어쩔 수 없이 승낙을 하게 되었다.
하나, 어찌 되었든 간에 명분은 영지전이기에 국왕도 따로 병력을 차출해 줄 수 없었다.
그래서 자체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피에르 영지 자체가 워낙 전쟁을 많이 치른 영지라 영지민이나 농노의 수가 적어서 모두 동원해 봐야 병력은 200명, 농노병은 500명이 될까 말까 한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공주 자신이 동생을 대신해 이렇게 병력과 병참금을 구걸하러 다니는 것이다.
특히나 엘르 백작은 개혁파도 귀족파도 아닌 중도파 귀족으로서 상당히 부유하였고 백작령 자체도 전쟁을 치르지 않았기에 많은 수의 병력과 병참금을 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백작을 꼬득였는데 이런 백작령의 황당한 사건으로 인해 큰 수확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병신 같은 개혁파들! 그것들 때문에 내가 이 뭔 고생이야! 그러면서 병력들은 내놓지도 않고, 오히려 이도저도 아닌 귀족들이 나를 도와주다니 내가 힘만 좀 생겨 봐라! 개혁파 니들부터 박살내 주마!’
공주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엘르 백작은 포고문을 작성하고는 기사와 행정관을 불러 공주에게 붙여 줄 병사를 차출하기 시작했다.

엘르 백작령 영주성 내.
“아∼ 머리야. 간만에 퍼마셨더니만 골이 아프네. 커억!”
“어, 일어나셨어요?”
“어, 일어나셨습니까?”
다들 어제 영주가 내려준 음식과 술을 잔뜩 퍼마시고는 이제야 슬슬 일어나고들 있었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삐익∼
“아, 일어들 나셨네요.”
“아, 네. 와, 시녀님 참 참하시네요. 하하하!”
“하하하하하!”
녀석들의 농담에 시녀도 키득거리며 좋아하고 있었다.
“근데 어쩐 일로?”
“참, 내 정신 좀 봐.”
“다들 식사들 하시라고요. 그리고 주니라는 분은 저를 따라오세요. 공주님이 뵙자고 하시네요.”
“아, 네.”
주니는 공주가 자신을 찾는다는 소리에 의아해하면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는 시녀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공주년이 갑자기 나는 왜 보자고 하는 것이지?’

엘르 백작령 영주성 접견실.
똑똑.
“공주님, 주니라는 청년을 데리고 왔습니다.”
시녀가 말을 마치자 공주는 손짓으로 들이라고 했다.
“천한 공노 주니가 공주님을 뵈옵니다.”
접견실에 들어선 주니는 공주를 보자 바닥에 엎드려 공주께 인사를 올렸다.
“하루 만에 다시 뵙네요. 제가 그대를 찾은 이유가 궁금하겠죠?”
주니는 공주가 너무나 직접적으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이야기하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었다.
“저같이 천한 것이 어찌 공주님의 고귀한 뜻을 알겠습니까?”
“그래요?”
‘요것 봐라? 니가 감히 나와 농을 하자는 것이냐?’
“저희는 곧 제 동생의 영지인 피에르 영지로 많은 병사들과 떠날 것입니다.”
주니는 공주의 말을 듣고는 그녀를 살짝 올려다보았다.
‘뭐 어쩌라고? 니가 가는데 뭐? 빨랑 가라. 나도 답답하다. 잠깐, 설마?’
주니가 머릿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때 공주가 말했다.
“그대와 그대 마을 청년 5명도 같이 갈 것입니다. 그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부른 것입니다.”
공주의 말을 다 듣고 난 주니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썅! 너 뭐냐? 날 왜 데리고 가?’
“그대들의 용맹함을 피에르 영지에서도 발휘해 주세요. 무기나 물품은 백작님이 준다고 하셨으니 바로 저희와 출발하면 됩니다. 출발은 3일 뒤입니다. 지금 영주성 전체가 출정 준비로 바쁠 것입니다.”
“공주님, 그러면 저희 마을의 나머지 5명은 제가 골라서 데리고 가도 될까요?”
주니는 이미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동행할 5명의 청년은 본인이 직접 고른다고 한 것이다.

3일 뒤 영주성.
“백작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지원을 아낌없이 해 주셔서 말입니다.”
“하하하! 별 말씀을요!”
‘내가 네년한테 해 주고 싶어서 하냐? 왕성에서 제발 떠벌리지 말아라.’
“그럼 이만 출발하겠습니다. 볼브 기사님, 출발하도록 하죠.”
엘르 백작은 공주가 출발하려고 하자 서찰을 건네며 부탁했다.
“참, 공주님 이 서찰을 저희 막내아들에게 전해 주십시오. 저희 병사들을 이끌 장수는 저희 막내아들로 하겠습니다.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뿌웅∼
출발을 알리는 고동 소리가 들리자 200명의 병사와 1,000여 명의 농노병은 출발했다.
꽤나 큰 규모의 출정이기에 많은 영지민이 나와서 마중을 하고 있었다.
“와! 정말 대단한 규모다.”
“와! 와!”
이런 영지민의 환호와 마중을 뒤로하고 주니와 그 일행도 따라나서기 시작했다.
“형님, 출발하는 거 같은데요.”
“그래. 출발하네. 아, 참나, 돌것네. 우리를 왜 데리고 가는 거야?”
“주니 형님, 그래도 마을을 벗어나니 저희는 좋은데요. 형님은 싫으세요?”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다.”

엘르 백작은 자신의 영주성에서 있었던 개망신 때문에 공주의 요구를 꽤나 충실히 이행해 주었다.
그리고 주니를 비롯한 엘빈 마을 다섯 용사에게도 좋은 물품들을 주었다. 심지어 귀족들만 지낼 수 있는 천막과 천막을 실을 수 있는 수레도 내주었다.
그리고 주니가 전쟁에 참가하고 마을을 떠난다고 하자 촌장을 비롯한 많은 마을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특히 소피아는 은근히 주니와 자주 붙어 다녔기에 더욱더 안타까웠다.
사실 주니도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아, 고것을 어떻게든 잡아먹었어야 했는데, 아, 왜 데리고 가는 거야. 날 왜 데리고 가냐고!’
주니의 이런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니를 따라 전쟁에 참가하는 녀석들은 희희낙락 아주 좋다고 생난리를 치고 있다. 이런 녀석들을 보자 주니는 복장이 터지기 시작했다.
‘어우! 저 자식들이 놀러가는 줄 아나? 전쟁하러 간다, 전쟁하러! 아우, 짜증나!’
사실 주니가 5명을 뽑아서 공주의 명에 따라 피에르 영지로 간다고 했을 때, 영주성으로 왔던 20명은 너도 나도 주니를 따라나서겠다고 했다.
하나 이미 주니는 데리고 갈 다섯 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들의 세세한 사항을 보자면, ‘코리니’와 ‘코모’ 이 둘은 꼭 삼국지의 장비를 연상하게 만드는 녀석들로 체격적으로는 엄청난 거구들인데다가 힘 또한 장사들이었다.
거기다 형제라 의견도 서로 잘 맞는다. 하나, 문제는 이들이 꼴통들이라 점이다. 즉, 하나를 가르치면 10을 까먹는 전형적인 멍청이들이었다.
그래도 아주 힘들이 장사이고 특히나 주니의 말이라면 죽으라면 진짜 죽을 녀석들이기에 주니가 데리고 나섰다.
‘제노리’는 아주 날렵한 녀석이다. 게다가 머리도 제법 돌아가기에 주니가 꽤나 아끼는 녀석 중 한 명이다. ‘샹구’는 고아인 녀석인데, 말을 그럴듯하게 잘해서 주니의 말 벗노릇을 톡톡히 하는 녀석이다.
그래서 그런지 주니도 심심하지 않으려고 데리고 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로’ 이 녀석은 주니가 인정하는 희대의 천재이다. 하나를 가리키면 100을 안다고 할까?
멍청한 코리니와 코모 형제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녀석이다. 그래서 주니가 데리고 나섰다.
사실 주니는 전쟁을 참가하는 것도 짜증나고 정들었던 마을을 떠나는 것도 아쉽고, 특히 소피아와 잠자리를 갖지 못한 것도 아쉬웠다. 하지만 이 녀석들을 보니 주니는 자신도 모르게 힘이 나기 시작했다.
하나 주니만 힘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엘가 공주도 힘이 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이유는 정말로 예상치도 못했던 성과들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특히 주니와 다섯 명의 공노들을 보자니, 무언가 알 수 없는 희열과 걱정이 섞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저 공노들이 제몫을 톡톡히 해 주어야 할 텐데.’
그러나 아직 공주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공주 자신이 지금 데리고 가는 주니와 엘빈 마을 다섯 청년이 훗날 카리우스 대륙 전체를 호령할 괴짜 현자와 꼴통 5인방이라는 것을 말이다.



5장 끌려가는 것? 아니면 이끌어 가는 것?(1)


왕성으로 향하는 군사들의 행렬 중 공주의 막사.
지금 엘가 공주는 엘르 백작에게서 얻은 병사와 함께 나름 급하다면 급하게 왕성으로 향하고 있다.
그 이유는 왕성에서 자신의 회유와 협박에 군사를 낸 각 영주들의 병사들이 지금 속속들이 왕성으로 모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공주는 행군 내내 속으로 자신의 뿌듯한 감정을 어찌 조절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것은 엘르 백작에게서 얻은 병사 200명 농노병 1,000명 그리고 왕성에 모여 있을 10개 가문의 병사 1,000명, 농노병 2,000명. 합이 4,200명의 병사를 자신의 힘으로 얻어내 앞으로 지휘하게 될 것이라는 상상 때문에 말이다.
“공주님 무엇을 그리 생각하고 계십니까?”
“아, 아닙니다. 제가 스스로 이 병력들을 얻었다는 게 믿기지를 않아서요.”
“하하하! 다 공주님의 복이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방심하시면 안 됩니다. 피에르 왕국의 병사는 다 정예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사의 말에 공주의 표정도 다시금 굳어졌다.
“그나저나 그 공노들은 잘해 주고 있나요?”
“하하! 말도 마십시오. 지금 아주 잘들 해 주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말 그대로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농노병들은 그들의 통제하에 들어갔습니다.”
공주는 기사가 하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