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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의 질주 1권(15화)
5장 끌려가는 것? 아니면 이끌어 가는 것?(2)
왕성으로 향하는 군사들의 주니의 막사 근처.
“으윽!”
“조금만 참으세요. 괜찮아질 것입니다.”
“으, 따가워. 악!”
지금 주니는 자신들의 막사에서 사내 한 명을 치료하고 있었다.
주니가 이렇게 사내를 치료하게 된 데에는 긴 사연이 있다.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멍청한 코리니, 코모 형제 때문이지만 말이다.
사실 왕성까지는 엘르 백작령에서 10일 거리, 거기다 왕성에서 피에르 영지까지는 20일을 더 가야 한다.
이 이야기를 얼핏 듣게 된 주니는 목을 잡고 쓰러질 뻔했다.
‘썅! 멀기도 하다. 아∼ 진짜 개고생의 시작이구만. 그나저나 가면서 무진장 심심하겠는데.’
주니가 이렇게 생각할 때쯤 주변 마을에서 끌려온 농노병들은 주니 일행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산적을 무찔러서 귀족들이나 쓰는 천막까지 얻어서 쓰고 있는 주니 일행을 보자니, 밤이슬을 맞으며 잠을 청하는 자신들의 처지가 너무나 비교가 되어 정말 부러운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아직 주니 일행에 대해 소문을 듣지 못한 농노병들은 일부러 시비를 걸려 했다. 하나, 다른 농노병들이 그들을 말렸다.
“자네들 미쳤나? 저들한테 왜 자꾸 시비를 걸어? 진짜 소문을 못 들은 거여?”
“소문? 무신 소문? 저들이 머 괴물이라도 되나?”
“괴물, 맞아! 괴물! 저들 괴물이여. 그 산적들을 저들이 다 때려잡아 죽였잖어.”
“아녀, 난 불태워 죽였다고 들었는데.”
“모르는 소리 말어. 난 봤어. 다 목을 베어서 왔더구만. 목을 베어서 죽였어.”
“헉! 그 산적들을 잡아 죽였다는 괴물들이 저 사람들이야?”
“진짜 몰랐었나보네.”
“근데 저들 사이에 엘빈 마을의 바보 사제가 있다고 허더만, 맞어?”
“응, 봤어. 나도 예전에 한 번 봤는데 아까 있더구만.”
“그자가 그렇게 기똥차게 병들을 치료한다며?”
“어. 정말 기똥차게 고친다는구만.”
그러나 수컷들끼리 모여 있으면 어느 집단이든 서열 싸움이 일어나듯, 점점 많은 이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주니 일행에게 시비를 거는 녀석들이 있었다.
“어이, 뚱땡이들! 어이, 뚱땡이들!”
“킥킥! 키득!”
코리니와 코모가 주니가 시킨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가 누군가 자신들의 주변에서 혼자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형님, 저 사람 미쳤나 봐요, 혼잣말을 하고.”
“귀신에 홀렸는지도 모르지.”
“주니 형님께 데리고 갈까요? 고쳐 주실지도 모르잖아요.”
코리니와 코모에게 시비를 걸려는 일행들은 자신들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하던 일만 계속하는 그 형제들을 보자 점점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야, 이 뚱땡이 새끼들아! 우리말이 안 들려? 귀에 머 처박았냐?”
이제야 자신들을 부른다고 생각한 코리니와 코모는 그 일행들에게 다가갔다.
2대5. 남들이 보면 저 형제들이 분명히 질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시비를 걸던 다섯 명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데.
퍽!
“컥! 갑자… 억! 컥!”
퍽! 퍼퍽!
“사… 컥! 사람… 컥! 살… 컥!”
코리니와 코모 형제는 갑자기 시비를 걸던 일행 중의 한 명을 무자비하게 패기 시작했다.
정말로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딱 한 놈만 패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시비를 건 일행들은 말리는 것은 둘째치고 오히려 기겁을 하고 있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비릿한 미소를 띠고는 자신의 동료를 무지막지하게 패는 모습에 순간 질렸기 때문이다.
이들이 자신들의 구타 행위에 기겁을 하고 있을 때, 코리니가 동생인 코모에게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던졌다.
“야, 니가 때리라고 해서 때리는데 왜 때리는 거냐?”
“주니 형님한테 저번에 들었는데, 미친놈에게는 매가 약이라고 했거든요.”
“아, 그럼 우리가 주니 형님처럼 병자를 치료하는 거구나?”
“네.”
이렇게 대답하는 동생인 코모는 너무나 자랑스럽고 뿌듯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근데 얼마나 때려야 하냐?”
“주니 형님이 그랬어요. 딱 죽기 일보 직전까지 때려야 정신이 든다고.”
코리니와 코모 형제가 한 명을 무자비하게 구타하는 동안, 농노병들과 병사들은 안 그래도 심심하던 차에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생각해서 점점 그들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와! 정말 힘 세다.”
“저 맞는 사람 누구야?”
“헉! 우리 마을 놈팽이들인데.”
“쯧쯧쯧. 잘못 걸려들었구만. 하필이면 엘빈 마을에서 산적들 제일 많이 죽였다는 저 형제들한테 걸렸냐?”
시비를 걸던 사내들은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듣고는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이들 형제는 자신들한테 맞아 걸래 조각처럼 널브러져 있는 사내를 들쳐 업고는 주니가 있는 막사로 향하기 시작했다.
“뭐냐, 그 사내는? 왜 이리 만신창이가 된 거야?”
주니가 묻자 두 형제는 뿌듯하다는 듯이 순수한 목소리도 대답했다.
“형님이 말하지 않으셨잖습니까? 미친놈은 매가 약이라고. 그래서 저희도 치료를 했습니다.”
“네. 코모한테 그러셨다면서요. 형님, 어때요? 딱 죽기 일보 직전까지 팼는데. 그럼 이 미친놈 정신이 온전히 들겠죠?”
“아이고, 날도 더운데 아주 날 괴롭혀라.”
주니의 이 말에 두 형제는 물을 뜨러 나가기 시작했다.
‘아우, 저 꼴통들!’
병사들의 행렬.
왕성까지 도착하려면 아직도 7일이라는 긴 여정이 남아 있는 이 긴 군사 행렬의 방식에 대해 생각하던 주니는 사실 자신의 개념으로는 이 행군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행군하는 것보다는 쉬면서 밥하고 빨래하고 막사 설치하고 치우는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정말 비효율적이군.’
지구에서 군 생활을 해 본 주니로써는 지금의 상황이 더 짜증난다.
“차라리 빨리 도착하는 게 낫지.”
혼자 이렇게 궁시렁대던 주니는 순간 무엇이 생각났는지 제노리를 불렀다.
“그나저나 코리니와 코모는 그 사내를 왜 때린 거냐? 네가 아는 대로 설명해 봐.”
“그게 말입니다…….”
제노리의 설명을 들은 주니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웃으십니까?”
“아니다. 코리니와 코모를 불러라.”
“네.”
제노리는 행렬에서 다른 마을 농노병들에게 자신들이 산적을 물리친 이야기를 입에 거품을 물며 자랑하고 있는 코리니와 코모 형제를 찾아내어 주니에게로 데려오고 있었다.
‘그래, 사내들끼리 있으면 서열 싸움은 생기는 법이지. 근데 저 바보들 뭐? 미친놈 치료?’
“하하하!”
갑작스럽게 미친놈처럼 웃기 시작한 주니 때문에 주변에 있던 농노병들은 하나둘씩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 죄송합니다.”
순간 주니는 뻘쭘했는지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형님, 데리고 왔는데요.”
“형님, 저희는 왜 오라고 하신 거예요?”
“아, 아까 그 미친놈 아직 덜 정신 차린 것 같아서. 좀 있다 행렬이 다시 한 번 쉴 때 너희가 다시 치료를 해야겠다. 내가 때리는 치료는 너희보다 힘이 약해서 좀 오래 걸릴 듯하니, 너희 둘이 확실히 치료해 주어야 할 듯하다.”
주니가 이렇게 말해 주자 코리니와 코모 형제는 주먹을 불끈 지으며 치료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다.
“형님, 확실하게 치료하겠습니다.”
‘그래 확실히 농노병들 사이에서만이라도 우리의 입장을 다져야겠지.’
주니의 이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형제는 아주 입이 찢어지고 있었다.
“형님, 제 말이 맞죠? 하하하!”
이런 두 형제의 어벙한 행동에 제노리, 샹구, 미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자, 모두들 잠시 쉬었다 간다.”
다시 쉰다는 말에 모두들 다시 막사를 치기 시작했다.
“빨리빨리 움직여라! 공주님 머무실 막사도 빨리 쳐라!”
주니와 그 일행도 본인들의 막사를 치기 시작했다.
하나 코리니와 코모 형제는 막사를 뒤로한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까 코리니와 코모 형제에게 연신 두들겨 맞은 쟈크는 지금도 쑤시는 삭신을 어루만지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개자식들! 꼭 그 두 뚱땡이를 내 앞에 쓰러뜨리리라. 뿌드득∼”
그리고는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자신의 똘마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큼… 형님, 괜찮으십니까?”
이제야 안부를 묻는 자신의 똘마니들을 보니 쟈크는 더 열이 받쳤다.
“이 새끼들이! 니들 눈에는 내가 멀쩡해 보이냐?”
퍽!
“컥! 악! 살려… 컥!”
또다시 시작된 구타.
쟈크는 이 상황 자체가 이해, 아니,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리고 순간 자신을 때리는 인간이 누구인지를 쳐다보고는 절망했다.
“컥! 살… 다… 윽!”
퍽!퍽! 퍼벅!
코리니와 코모 형제가 다시금 와서 쟈크를 두들겨 패는 모습을 보자 사람들이 다시 주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와∼ 또 패?”
“아, 저 맞고 있는 놈 정말로 제대로 걸렸네.”
사람들이 몰려들어 자신들의 대장이 두들겨 맞는 모습을 구경하기 시작하자. 이 왈패들은 다시금 어디론가 사라졌다.
“형님,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요.”
“그래 일단 아픈 자는 고쳐야 하니. 상처도 치료해 줄 겸 형님께 데리고 가자.”
이렇게 말하고는 아직도 신음을 내뱉고 있는 쟈크를 들쳐 업고는 두 형제는 싱글벙글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그들의 막사로 향하기 시작했다.
“형님, 데리고 왔는데요.”
두 형제가 의기양양하게 막사 안으로 들어서자 주니는 미로에게 쟈크의 치료를 맡겼다.
미로는 주니가 인정하는 희대의 천재.
주니가 미로의 천재성을 인정한 것은 엘빈 마을에 있을 때였다. 항상 자신을 졸졸 따라 다니던 미로는 어느 날 주니가 적고 있던 글들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한글’ 그렇다 한글을 본 것이다.
사실 주니는 마을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았다.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고,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도 글을 가르치지 않았다.
한데 이 미로는 보름 만에 자신의 쓰던 한글의 원리를 알아 버리고는 한글로 글을 쓰는 것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는 치료 행위를 유심히 지켜보더니만 어느덧 치료도 제법 하는 것이었다. 원리는 아직도 모르는 듯하지만, 자신이 치료했던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는 그대로 기억해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하는 것이다. 정말 무서운 천재인 것이다.
“주니 형님, 치료 다 했는데요.”
“그래? 소속된 마을 부대로 보내.”
“네, 형님.”
‘저 불쌍한 놈. 무진장 아프겠네. 쩝, 어찌 걸려도 저 두 괴물한테 걸리냐. 하하하!’
코리니와 코모는 주니가 미소를 지으며 자신들을 쳐다보자. 너무나도 황송하다는 표정을 지으고 있었다.
“형님, 그럼 저 미친놈 미친 병이 다 고쳐진 겁니까?”
“아니, 저 미친 병은 그리 쉽게 고쳐지지 않아. 저녁에 잘 때쯤 한 번 더 패 줘. 그럼 나을 것이야.”
주니의 말이 이어지자 이 두 형제는 다시금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미리 막사 걷자, 출발할 때가 된 것 같으니.”
주니가 이렇게 말하는데 병사들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자, 출발한다. 준비들 해.”
“공주님 막사 치우고. 자, 다들 준비해라.”
이렇게 다시 시작된 행군, 하나 금새 날이 어둑해지자 행군을 멈추고 막사를 다시 치기 시작했다.
‘진짜 너무한다. 쉬는 시간이 더 기네.’
주니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코리니와 코모 형제는 다시 사라졌다.
쟈크는 지금 죽을 맛이다.
그 무서운 괴물 같은 놈들에게 하루에 두 번이나 주먹 찜질을 당했기 때문이다.
“끙∼ 아, 만지지마. 아파. 아프단 말… 컥!”
퍽! 퍼퍽! 퍽!
“살려! 윽, 컥!”
누가 때리는 건지 쳐다보니 또 그 두 괴물들 거기다 이제는 어둡기까지 하니, 정말로 괴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다시금 몰려들기 시작했다.
“정말 독하다, 독해.”
“그러게 하긴 저렇게 독하니 그 무서운 산적들도 때려 잡은게지”
“때려잡은 게 아니라 목 베어 잡았다니까.”
이런 수근거림을 듣던 4명의 왈패들은 정말로 자신들이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잠시 후 두 형제는 또다시 쟈크를 들쳐 업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자신들의 막사로 쟈크를 업고 나타났다.
“형님, 저희 왔습니다.”
“왔냐?”
주니가 미소를 띠며 둘을 반갑게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