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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안전보장 사무소 1(21화)
8. 비밀을 지켜드립니다(2)


이강철이 미소를 지었다.
뭔지 모르지만 사악해 보였다. 말은 좋게 포장하지만 그들이 위험한 일은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평범한 회사를 가장한 테러리스트일지도.
“동무, 여기 인턴 월급이 2백만 원이네. 어디서 그 돈 받으며 인턴 할 수 있갔네?”
2, 2백만 원?
평생 2백만 원을 벌어본 적이 없었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골병이 들 정도로 일을 나가야만 180만 원 정도를 손에 넣었다.
그에게 2백만 원이란 꿈에서나 그릴 수 있는 월급이었다.
“그리고 말이네. 정식 사원이 되면 300만 원 이상을 받을 수 있지. 우리 같은 팀장이면 연봉 6천 이상이네.”
유, 육천 이상.
꿈의 숫자다.
그럼 3∼4년만 열심히 모으면 작은 집일지 몰라도 자신의 보름자리를 마련할 수도 있었다.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려던 두현의 움직임이 딱 거기서 멈췄다.
“동무, 아쉽네. 능력도 있고 잘만 배우면 꽤나 쓸 만한 직원이 될지 알았는데.”
두현은 천천히 등을 돌리며 돌아섰다. 지금까지 무덤덤했던 그의 표정이 아니었다.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서비스 정신이 투철한 표정이었다.
“제, 제가 언제 계약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까?”
“방금 말하지 않았네?”
“아닙니다. 생각해 본다는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굳이 나중에 계약을 할 필요가 없겠더군요.”
두현은 다시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페르민이 가지고 가려던 계약서를 손끝으로 찍어 자신 쪽으로 끌어왔다.
“여기가 사인하면 되죠?”
“물론입니다. 인턴 사원 차두현 씨.”
페르민이 두현을 향해 싱긋 웃었다.
“언제부터 일하면 되는 거죠?”
“내일부터 나오시면 됩니다.”
“낮에는 학교를 가야 하는데요.”
“저희 업무는 주로 밤에 이뤄집니다. 학교 끝나고 오시면 됩니다. 배울 것이 많으니까요.”
“확실히 월급은 2백만 원이 맞는 거죠?”
“네. 확실합니다. 매달 말일에 통장으로 따박따박 입금될 것입니다.”
두현은 가슴이 벌렁벌렁 떨렸다. 1년만 고생을 하게 되면 정식 직원이 된다.
그리고 팀장이 되면 연봉 6천 이상도 꿈이 아니었다.
그는 40평 이상의 주상복합아파트에서 와인을 들고 세상을 내려다보는 환상에 빠져들었다.
열심히 공부해야지에서 열심히 일해야지라고 조금씩 그의 꿈이 바뀌고 있는 중이었다.
모두가 그런 두현을 반겨줬다.
생각보다 따뜻하며 가족과 같은 회사인 것 같았다.
하지만 두현은 진정 알지 못했다.
그는 계약을 했다.
옵션이 전혀 붙어 있지 않은.
다른 직원들은 인턴 시절부터 두현보다 두 배나 되는 월급을 수령했다는 것을 알 수가 없었다.
두현이 집으로 돌아가고 미스터 킴은 세 명의 팀장에게 회식을 쐈다. 평상시처럼 삼겹살에 소주가 아닌 룸에서 양주를 쏜다.
구두쇠 소장이 이게 웬일이더냐.
그는 자네들 덕분에 큰 건 하나 했다면서 매우 기분이 좋아 보였다.
두현이 알았더라면 땅을 치고 계약 무효라며 난리를 쳤을 것이다.

* * *

두현은 자리에 누워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일단 계약은 했지만 말을 들어보니 일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는 신이 깃들었다고 했다. 어떤 신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영능력으로 인해 몸이 젊어졌다고 한다. 그 외에는 젊어진 이유를 밝힐 수는 없었다.
하나 더.
항상 씻고 나면 향수를 뿌리라고 하였다. 언제 어디서든 원령들이 습격해 올 줄 모른다. 향수를 뿌리지 않으면 그가 노출될 가능성이 너무 높았다.
하지만 향수만 뿌린다면 그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인구 천만 명 이상이 사는 대도시 서울에서 두현을 찾기란 해변에서 떨어진 바늘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일본의 재침략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했던가?’
가장 심각한 일은 미스터 킴이 말한 내용이었다.
일본의 재침략이라니.
하긴 벌써 몇 번이나 한국을 침략하였는데 또다시 침략하지 않은 거란 생각은 웃겼다.
대부분이 설마 또 그러겠어? 생각한다가 너무 위험천만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일본이 언제 어디서 전격적으로 한국을 침략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미국만 믿고 있다가는 큰 코 다친다. 한국의 위정자들이 미국만 믿으면 된다라고 외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신이 나간 자들이다.
네 개의 강대국을 옆에 두고 자주국방도 못하는 나라였다.
하물며 자주국방을 이룰 생각은 하지 않고 다른 곳에 돈을 퍼붓는 것이 제정신인가.
미국을 믿으라니.
미국을 그렇게 믿어서 6.25가 터졌다는 말인가. 그 믿었던 미국이 한국을 극동방위선에서 제외시키면서 일은 급속도로 진전되었다.
또다시 그런 일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운 한국을 일본은 뒤흔들려고 한다.
웃기는 것은 한국인들이 앞장을 서서 그런 일을 벌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의 신사를 세웠고 재침략의 기반을 만들기 위해 봉인을 풀었다.
지금도 친일파들이 어둠에 숨어 날뛴다고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은 침략을 막기 위한 신들을 찾아내어 소멸시키고 있다고 하였다. 정기를 받은 산에 말뚝을 박은 일도 그 일환의 하나였다.
참으로 용서할 수 없는 놈들이다.
각 나라에는 인간을 보호하는 수호령이 있고 나라를 보호하는 신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없어지면 반드시라고 해도 될 만큼 멸망의 길을 걷는다.
로마 제국이 그랬고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그리하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만 봐도 그렇다.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와 백제, 고려와 조선 등 모두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던 왕국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힘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국의 내분과 외국의 침략은 찬란한 제국을 하루아침에 뭉갰다.
그 당시 모두 나라의 기운이 쇠했다. 그 말은 나라를 지키는 신들이 약해졌다는 말과도 같았다.
지금 일본은 그때의 일을 재현하려는 셈이다.
절대로 그렇게 만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두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일부터 일을 배운다고 했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최소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한다. 다른 사람은 도와주지 못할 것이다.
몸을 만들자.
이번에 원령들이 무더기로 습격했을 때 몸을 단련시켰던 것이 큰 효과를 봤다.
만약 처음 그대로의 몸이었다면 더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당연히 죽을 확률도 높았다.
두현은 트레이닝복 상의를 걸쳤다.
벌써 두 벌째 트레이닝복이 망가졌다. 아무래도 직업 특성상 대여섯 벌의 트레이닝복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두현은 현관문을 열고 나가 옥상으로 올라갔다.
봄의 막바지다.
그런데도 밤이 되면 꽤나 쌀쌀했다.
비록 서늘하지만 나쁘지 않는 기분이다. 누구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찬란했다.
아픈 사람도 있을 것이고, 즐거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사기를 당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사회의 약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스님이 있고 신부님도 있고 목사님도 있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을 야욕으로 불태우려는 그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아!”
두현은 세상을 향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멀리까지 퍼져 자신의 마음이 닿기를 소망한다.
술에 취한 한 아저씨는 신문지 몇 장만 덮고서 벤치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어차피 열심히 살아도 안 될 놈은 안 된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술로 나날을 지내고 있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니 마음은 편했다.
조금 추운 것을 빼고는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누가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꼭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었다.
그때 누군가 귀청이 떨어지는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바로 귀에다 대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달콤한 한때를 정신 나간 새끼가 방해를 했다.
“어떤 개 쌍노무 새끼가. 야이 미친 새끼야! 이 새벽에 누가 소리를 질러! 남에게 피해 입히지 말고 답답하면 좆 잡고 화장실 가서 질러!”
그는 허공에 대고 버럭 화를 냈다.
그리고 짜증이 난다는 듯 다시 신문지를 머리까지 덮고 누웠다.
“음.”
모든 이에게 마음은 닿지 않나 보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개화를 시켜야겠다.
두현은 입을 다물고 몸을 풀었다.



9. 한가한 하루(1)


“크흠. 삭신이 쑤시는구먼.”
두현은 책상에 엎어졌다. 온몸의 근육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동북아안전보장사무소라고 거창하게 이름 지어진 그곳에서 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달팠다. 다른 직원들은 아주 편안하게 있지만 두현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오후 7시에 교복을 입고 출근을 한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소장과 팀장들에게 커피를 타다 주는 것이었다.
페르민은 ‘미스 차’라고 놀리기도 했다.
중학생인 이하현의 차 심부름까지 하려니 심사가 뒤틀렸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다고 한다. 야간 수당과 출장비까지 합쳐 1억 가까이 된다나.
놀랄 노 자다.
두현이 바라던 인생을 겨우 중학생인 이하현이 누리고 있는 셈이다.
비위를 맞춰주다 보면 돈을 많이 법을 전수해 줄지도 모른다.
차를 마시고 나면 간단하게 브리핑을 한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두현에게 상식을 가르쳤다.
알려진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세삼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11시 퇴근하기 전까지 대련을 한다.
페르민은 서양 마법과 검술을 익혔다고 했다. 서양 마법은 상당히 공격적이어서 몇 번이나 통구이가 될 뻔했다.
페르민의 말로는 서양 마법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마나를 익혀야 한다고 했다.
마나를 익히는 방법은 자주 접하여 피부로 느끼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불을 뿜는 검을 막아내는 것은 사양이었다. 원령들이 휘두르는 일본도와는 차원이 달랐다.
2백만 원을 벌려다 병원비가 더 많이 나오게 생겼다.
다음은 이강철과의 대련이었다.
그의 군용 나이프 다루는 솜씨는 예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 나이프가 날아오는지 아직까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오른 손에 있던 나이프는 어느새 왼손으로 옮겨 가 있기도 했다.
그의 움직임도 잡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가장 두려운 자가 이강철이었다. 다른 팀장들은 눈에 보이기라도 하지 이강철은 소리 소문도 없이 다가와 그의 목에 나이프를 가져다 대었다.
몇 번이나 오줌을 지릴 뻔했다.
이하현은 신을 모시는 무당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무당은 안 모시고 돈 벌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그의 부적은 정말로 신기했다. 하현이 부적 한 장을 입으로 훅 불자 2m나 되는 무사가 나타나 두현을 죽이려고 했다.
처음에는 환영인 줄 알았다. 무사의 검에 베이고 나서야 실제 상황인지 깨달았다.
왜 그들이 고액 연봉을 받는지 새삼스럽게 느꼈다.
겨우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몸이 배겨나지 못하겠다.
너무 고달프고 힘이 들었다.
그래도 돈만 생각하면 눈이 번쩍 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