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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안전보장 사무소 1(22화)
9. 한가한 하루(2)


“형님, 무슨 일 있어요?”
일몽이 두현의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그가 보기에 두현은 점점 죽어가는 곰 같았다.
겨울잠을 자지 못해 피곤한 것처럼도 보였다.
두현의 눈에서는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왔다.
눈꺼풀이 반쯤 감기자 상대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살벌한 얼굴에서 살기가 술술 풍기는 것을 느끼는 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평상시보다 더욱 조용히 생활을 했다. 두현의 입장에서는 잠을 자기에 참으로 좋은 학교 생활이었다. 가끔은 코도 곤다.
덩치가 큰 만큼 코골이 소리도 엄청나게 컸다. 옆 반에서 들릴 정도면 말 다했다.
하지만 선생들은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선생이 그럴 정도인데 학생들이 두현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코 고는 소리를 듣는 것인지, 선생님 수업을 듣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두현은 부스스하게 일어나 일몽을 바라봤다.
“피곤하다.”
“음, 다른 일진회에서 시비를 거나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말이었다. 재범 사건 이후로 두현은 초괴수라는 별명으로 이름이 퍼졌다. 그를 노리는 일진회가 없을 리 없었다.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그나저나 형님 이번 주말에는 뭐하세요?”
“주말에? 왜?”
일몽이 새끼손가락을 들고 흔들었다.
“새끼 치러 가시죠.”
“그게 무슨 소리야. 새끼를 치러가다니.”
“미팅하자고요. 미팅. 형님 정도면 많이 해보셨을 것 아닙니까.”
미팅?
눈과 귀가 번쩍 뜨인다.
“다, 당연히 많이 해봤지. 데리고 산 적도 있었다.”
결혼한 적이 있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하지만 미팅은 과거 우산 공장 다닐 때 딱 한 번 한 적이 있었다.
여자의 얼굴을 보지 않지만 당시 너무 충격을 먹었었다. 여자의 코털이 남자보다 더 길게 나온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더군다나 허리 사이즈가 40인치란다.
그냥 다방에서 차만 마시다가 나왔다. 그 이후로 그녀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여자 말로는 두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었단다. 못생겼다나 뭐라나.
차인 것이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와! 진짜요? 역시 대단하시네.”
일몽의 눈에서 존경심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여학생들과 그렇고 그런 일이 있는 것은 일진회 학생들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여학생들 거느리고 산다는 것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문제였다.
조직적으로 움직이기는 하지만 아직 그들은 학생이었다.
“별걸…….”
두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거짓말이 아니니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었다.
“그럼 미팅은 안 가실 거예요?”
“내가 가도 되나?”
이 나이에 손자뻘도 안 되는 아이들과 어울린다는 것이 어딘지 쑥스러웠다.
그래도 남자의 본능은 무시할 수 없었다.
“당연하죠. 형님이 가시면 대박이죠. 요즘 근처에서 초괴수를 모르면 간첩 소리를 들어요.”
“초괴수?”
아차.
일몽은 깜짝 놀라 입을 막았다. 자신도 모르게 감춰야 할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언젠가 그 별명을 들을 테지만 다른 이의 입을 통해서 듣게 하고 싶었다.
자신에게 괜한 불똥이 튀기는 싫으니까.
“무슨 소리더냐?”
두현이 물었다.
“그, 그게…….”
“말 똑바로 하거라. 나 피곤하니까 말 돌리지 말고.”
“그러니까 형님이 재범이하고 저희 학년 일진회를 박살을 내고 나서는 그런 별명이 붙었어요. 워낙 강하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에요. 괴수 같아서 누가 덤벼도 이기지 못한다고 해서요.”
최대한 미화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두현이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뒷세계 회장님의 숨겨둔 자식이고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전국의 일진회를 손에 넣으려고 한다는 말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래?”
일몽의 말만 듣자면 자신에게 해가 될 것이 없는 별명이었다.
“네. 형님에 대한 칭찬이 자자해요. 한때 학교 폭력으로 몸살을 앓았던 저희 대영고가 살기 좋아졌다고요. 덕분에 공부하기에 편한 환경이 돼서 애들의 성적도 올랐다네요.”
두현의 말을 듣지 않는 학생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져 인천 앞바다에 버려졌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우리 학년 반평균이 높아졌어?”
“네. 그게 모두 형님 덕분이라는 칭송이 자자하다니까요.”
두현은 미소를 지었다.
다 같이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아이들과 캠퍼스 생활을 같이할 수 있다니 기분이 좋아졌다.
“어감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그걸로 인해 아이들의 생활이 편해졌다니 다행이군.”
“네. 다행이지요. 그럼 형님도 이번 주말에 미팅을 하는 겁니다.”
“알았다. 어디서 하는데?”
“종로요.”
“시간 맞춰서 가도록 하지.”
“네, 형님.”
두현의 시원한 대답에 일몽은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입고 나가도 되나.”
두현은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괜히 약속을 했다고 후회했다.
그가 가진 옷은 트레이닝복과 교복 그리고 일할 때 입으라고 사무소에서 사준 정장뿐이었다.
일상생활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이 없었다.
평일에는 사무소에서 트레이닝을 받느라 시간이 없어 옷을 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두현이 인터넷 쇼핑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할 줄도 모를뿐더러 집에는 인터넷 선이 깔려 있지 않았다.
한마디로 구석기 시대의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가 입을 수 있는 옷은 정장뿐이었다. 다행히도 사무실에서는 얕보이면 안 된다고 꽤나 고급스러운 정장을 맞춰주었다.
하지만 다른 고등학생이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정장은 정장일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군대의 군복과 똑같은 셈이다.
제아무리 전투화에 물광과 불광을 내고 A급 전투복을 빳빳하게 다려 입어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있긴 있다.
같이 휴가를 나온 군인들만 ‘오, 저 인간 줄 제대로 잡았는데.’ 할 뿐이었다.
나름 단정하게 입고 나왔지만 사람들은 두현을 조폭으로 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은 없군.”
두현이 자리에 앉았다.
지하철 안에 사람이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의 옆자리에 앉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
―아 놔. 조폭이 왜 지하철을 타.
―야야. 저리로 가지 마. 잘못하면 나들이 나와서 칼 맞는다.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는 당연히 듣지 못했다.
날씨가 화창한 날에 운이 좋다고만 여기는 두현이었다.
두현은 광화문에서 내려 한 정거장 걷기로 했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안에서만 있는 것은 답답한 모양이었다.
광화문에 내리자 이것저곳에서 한창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짧은 치마를 입은 아가씨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팸플릿을 나눠주고 있었다.
두현은 무심결에 팸플릿을 받았다.
일본 패스티발이라는 일본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행사였다.
한류가 한참 세를 날리고 있지만 문화는 양방향으로 교류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두현으로서는 나쁘지 않는 행사였다.
사람들도 꽤나 관심을 보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팸플릿을 펴본 두현의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국어로 된 일본 지도에 독도가 다케시마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동해는 일본해, 독도는 일본 영토로 규정되어 있었다.
어떤 자가 행사를 주관했는지 제정신이 아니다.
어쩌면 이 행사를 주관한 자도 원령에 잠식되어 있을 수도 있었다.
기분 좋게 산책을 하려던 두현은 기분이 잡쳤다. 그렇다고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
두현은 팸플릿을 찢어서 버린 후 약속 장소인 종로를 향해 걸었다.
약속 장소인 카페가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웨이터가 ‘어서 오세요.’라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두현을 보고는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두현은 자신의 덩치가 너무 커서 부딪칠까 봐 뒤로 물러났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니 걸을 때도 조심해야겠다.
두현을 일몽을 찾았다.
어학원 근처라 그런지 학생들이 꽤나 많았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조금 귀를 기울였지만 전혀 알아듣지를 못했다.
1층에는 보이지 않는다.
두현은 2층으로 올라갔다. 1층과 2층의 구조는 비슷했다. 다만 2층이 좀 더 한산하고 2인용 테이블이 많았다.
“형님, 여기요.”
일몽이 손을 들어 두현을 불렀다. 부르던 그도 두현을 보고 놀랐다.
경악했다는 표정이 맞을 것이다.
두현이 주위를 돌아보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어떤 학생은 너무 급하게 고개를 돌려 목에서 삐끗하는 소리가 나기도 했다.
일몽은 급히 다가와 일몽에게 작게 속삭였다.
“형님, 미팅 끝난 후에 다른 볼 일 있으세요?”
“다른 볼 일이라니.”
“종로 조폭들과 한 판 붙는다던지. 뭐 그런 거요.”
“정신 나갔나. 지금이 쌍팔년도 시대도 아니고 무슨 헛소리더냐.”
“그렇죠. 아하.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일몽은 두현을 다시 한 번 훑었다.
이렇게 입자 두현의 압박감은 실로 대단했다. 덩치만 큰 것이 아니라 주위를 압도하는 분위기가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그래도 평범하게 입었으면 좋았을 텐데.
일몽은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지금 나가서 ‘옷 갈아입고 오세요.’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는 두현을 끌고 아이들이 앉아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일몽의 자리에는 저번에 봤던 선국과 종민이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형님.”
선국과 종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현에게 90도로 인사를 했다.
과분한 인사다.
“그래. 오랜만이다. 그러지 말고 모두 앉지.”
“네.”
두현의 말에서 오랜 보스의 향기가 짙게 흘러나왔다.
선국과 종민이 차렷 자세를 취하며 자리에 앉았다. 두현도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두현이 앉자 자리가 조금 비좁았지만 그들이 앉은 의자가 가장 넓어 다른 곳으로 옮길 수는 없었다.
맞은편에는 나타샤와 최은희 그리고 처음 보는 두 명의 여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그녀들은 마시던 물을 뱉을 뻔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초괴수가 틀림없었다. 만약 초괴수가 미팅에 나올 것이란 말을 들었다면 절대로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어떤 인물인가.
여자 알기를 개똥으로 알며 지금까지 갈아치운 애인만 백 명이 넘는다고 하였다.
또한 말을 듣지 않으면 외국에 팔아넘긴다고도 했다. 겨우 백만 원을 받고 사람을 팔아 버린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떤 죄를 지어도 무마가 된다. 그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 있는 부하들이 백 명은 있다고 하였다. 초괴수의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들어간다. 그것을 초괴수에 대한 자발적인 충성심이라고 들었다.
대한민국이 건국 이후 낳은 최악의 악마가 바로 초괴수였다.
미희는 나타샤를 째려보았다.
이 미팅은 나타샤가 주선한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 하자면 서울대를 목표로 하는 남학생들과 즐거운 하루를 보낼 것이라고 하였다.
설마 했지만 조금은 신경이 쓰였다. 만약 그녀의 말대로 공부를 그렇게 잘한다면 같이 학원에 다니며 서로 도와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 미팅에 참석했다.
하지만 남학생들을 보는 순간 괜한 짓을 했다고 실망했다.
누가 봐도 양아치다.
옷 입은 것과 머리 스타일 어딜 봐서 이들이 서울대를 목표로 하는 모범생이란 말인가.
심드렁해 있던 그녀는 곧이어 두현을 보고 말았다.
불안한 심리에 화룡정점을 찍었다. 불량배들이야 잠깐 차만 마시고 집안 일 핑계로 빠져나가면 돼지만 초괴수는 그렇지 못했다.
그가 집이라도 알아낸다면 부모님께 어떤 해코지를 할지 몰랐다.
마구 심장이 뛰며 머릿속에 하얗게 변했다.
“어라? 순덕이 아니냐?”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두현이 나타샤에게 아는 척을 했다.
“나타샤에요.”
나타샤는 뾰로통한 얼굴로 두현의 말을 정정했다. 사실 이번 미팅을 전적으로 성사시킨 사람은 그녀였다.
처음에는 두현만 생각하면 무서워서 심장에 이상이 있는 사람처럼 마구 뛰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에 대해 궁금해졌다. 따지고 보니 그녀에게 해코지를 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다른 사내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 같았다.
오히려 잘되라고 훈계까지 하지 않았던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는 일몽에게 전화를 걸어 두현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가 물었다.
그러나 웬걸.
두현은 조폭도 대학생도 아닌 고등학생이었다. 그것도 그 유명한 초괴수.
그녀는 일몽에게 밥을 사기로 하고 두현을 만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순덕이 훨씬 입에 잘 붙는데. 그 이름이 좋다면 할 수 없지.”
그것을 끝으로 대화가 단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