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현월비화 1권 (6화)
제2장 심결과 심공 (2)
좌세량의 뒤에 시립하듯 서 있던 이지문은 조운비의 대답에 혀를 내둘렀다.
‘냉철하고 독하고를 떠나 정말 강한 정신을 가진 녀석이 아닌가? 제대로 키운다면 천마신단의 값어치는 충분히 하고도 남겠군.’
좌세량도 잠시 말을 잃었다.
그리고 곧 조운비를 바라보던 좌세량의 눈빛이 번뜩였다.
짙은 탐욕을 담고 있는 눈빛이었지만 조운비가 알 턱은 없었다.
“네 말이 맞다. 무공이 전부는 아니지. 허나 일신의 무공이 뒷받침이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의 차이는 무척이나 크다. 네가 하고자 하는 일 또한 무림 중의 일이니까. 인정하느냐?”
“알고 있습니다.”
좌세량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네가 느끼는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따를 것이다.”
조운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해심결이라는 요상에 효과가 큰 심결이 있다. 어긋난 근골과 혈맥은 물론이고 내부의 상처들을 고쳐 줄 수 있고 덤으로 신체를 무공을 익히기 가장 좋은 상태로 만들어 주는 효과도 있는 심결이지. 그다지 알려지지도 않았고 배운 자도 없는 심결이기는 하나 효과는 믿어도 될 것이다. 우선 고해심결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해 주도록 하마. 말한 바와 같이 무척이나 훌륭한 효과를 가진 심결이다. 그럼에도 배우는 자가 드문 이유는 이 심결을 사용하기 위한 첫 과정이 온몸의 뼈를 부수는 것이기 때문이다. 뼈를 부숴서 심결을 통해 재구성하여 환골탈태와 비슷한 효과를 얻어 보겠다는 것이 고해심결의 주된 목적이다. 효과는 좋으나 그 과정이 보통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지. 사실 제정신으로 하기 힘든 일이 아니냐. 그래서 이름을 고해라 붙인 듯싶다. 다행히 너는 뼈를 부수는 단계는 이미 한 셈이니 심결을 통해 재구성만 하면 된다. 허나 그 이후의 과정은 뼈를 부수는 것은 장난이라 치부할 정도의 고통이 따른다고 들었다. 게다가 심결을 운기하는 중에 정신을 잃으면 죽거나 폐인이 될 수도 있다. 뼈를 부순 사람은 몇 있었지만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해 보겠느냐?”
조운비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좌세량은 잠시 머뭇거리다 곧 조운비에게 세 번에 걸쳐 구결을 불러 주고 구결의 내용을 풀어서 설명해 주었다.
“구결에 따라 운기를 하되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 일단 운기를 시작하고 나서는 한 번의 운기를 마무리할 때까지 멈추어서도 안 된다. 중도에 정신을 잃어서 진기가 흐트러지면 폐인이 되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 어떻게든 정신을 붙들고 있어야 할 것이다. 준비가 되었느냐?”
조운비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도록 해라.”
좌세량의 말에 조운비는 눈을 내리감고 고해심결을 되뇌며 진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조운비의 얼굴은 용광로처럼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온몸이 미친 듯이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자 조운비의 몸 여기저기에서 무엇인가 터지는 듯한 투둑거리는 소리와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쉬지 않고 터져 나왔다.
좌세량은 우려가 가득 담긴 심난한 표정이 되어 그러한 조운비의 상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단한 녀석이기는 해도 고해심결은 모험 아닙니까? 요상결만으로도 회복은 가능하지 않습니까?”
이지문이 꽤나 걱정스러운 안색이 되어 좌세량을 향해 입을 열었다.
좌세량이 조운비의 상세를 과장하여 말한 것은 평소의 행태를 보아 그런가 보다 했던 이지문이었다.
아마 조운비라는 꼬맹이의 나이답지 않은 차분함에 놀려 보고 싶은 장난기가 생겼을 것이다.
하나 고해심결을 가르친 것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세량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도 괜한 짓을 한 것 같기는 해. 그런데 벌써 시작했잖아. 좀 일찍 말하지 그랬어.”
좌세량의 말에 이지문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할 말을 잃었다.
“뭐, 잘될 거야. 나도 고해심결이 문뜩 떠올랐는데 그것도 인연 아니겠어? 성공만 하면 환골탈태한 거나 비슷한데 치료만 된 것보다 훨씬 낫지. 안 그래?”
좌세량이 동의를 구하는 눈빛을 비췄으나 이지문은 전혀 동조할 기색이 없어 보였다.
“다 제 놈 복 아닙니까? 살 놈이면 살겠죠, 푸하하!”
마무강의 무신경한 말에 이지문은 고개를 저으며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조운비는 그들의 대화를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좌세량의 말을 가볍게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고해심결을 운기하기 시작하자 전신을 휩싸는 고통은 그 무엇으로도 표현이 불가능했다.
지옥의 불구덩이에 던져진들 이러할까. 온몸을 찢어발기고 뼈를 으깨는 고통은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조운비를 괴롭혔다.
차라리 죽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정신만 놓으면 달콤한 안식을 얻을 수 있다는 유혹이 점점 조운비의 머릿속을 잠식해 나가고 있었다.
‘너무 힘들어. 이대로 고통에 몸을 맡기면 곧 편안해질 수 있겠지. 어차피 죽으려 했었잖아. 그냥 포기하면 돼. 옥화를 구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거야. 사부님이 복수는 생각하지 말라고 했잖아.’
조운비는 머릿속을 채워 가는 죽음의 유혹 속에서 문뜩 스쳐 지나가던 한 단어를 잡아챘다.
‘옥화. 옥화는? 내가 없으면 옥화는? 옥화가 나를 기다리고 있어. 무서울 거야. 내가 곧 올 거라는 생각을 하며 불안에 떨고 있겠지. 살아야 해. 견뎌 내야 해. 옥화에게 가야 해!’
조운비는 이옥화를 떠올리며 가까스로 죽음의 유혹을 이겨 낼 수 있었지만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자신을 보호할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 * *
그리고 열흘의 시간이 흘렀다.
조운비는 끔찍했던 고통의 시간을 끝내고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퀭하니 들어간 눈과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진 입술, 지쳐 보이는 모습은 그동안 조운비가 겪어야 했던 고통을 말해 주는 듯했다.
하나 고통과 고난은 인간을 강하게 만들어 준다고 했던가? 기어코 고통을 견뎌 낸 조운비의 눈빛만은 맑고 심유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고통은 컸지만 고해심결의 효과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아직까지 과격한 움직임은 무리가 있었으나 가벼운 활동은 가능할 정도의 상상을 초월한 회복 속도였다.
고해심결은 아직도 매일 두 시진씩 운기하고 있었다.
여전히 고통은 변함이 없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운비는 육체의 고통에 휩쓸리지 않고 관조를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고해심결의 운기를 막 끝내고 눈을 뜨자, 침상 앞에 앉아 있는 좌세량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따라 언제나 뒤따르던 이지문과 마무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은공을 뵙습니다.”
조운비는 자세를 바로 하며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좌세량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몸 상태는 좀 어떠냐?”
“완전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다치기 전보다 가뿐한 느낌입니다.”
“그래, 잘되었구나. 그럼 오늘은 나와 얘기를 좀 하자.”
조운비는 시선을 들어 좌세량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평소와 다르게 좌세량의 표정은 진중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우선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내가 너를 처음 보았을 때 너는 아무 상관없는 중년 여인을 한 명 살해했고, 여자 아이 하나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그러한 행동에 대해서 죄책감이 들지는 않느냐?”
조운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좌세량의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하나 곧 생각을 접었다.
자신을 살려 준 사람이었다.
굳이 속내를 감추거나 꾸미고 싶지 않았다.
“죄책감이 없지는 않으나 스스로를 괴롭힐 정도는 아닙니다. 그른 행동을 하였다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째서냐? 그들은 아무 죄도 없는 이들이었고 또한 너와 무관한 자들인데 일방적으로 너의 필요에 의해 죽음에 이르게 되지 않았느냐?”
“그러합니다. 허나 그리하지 않았으면 제 여동생이 죽었을 겁니다. 저는 군자나 협사가 아니어서 대의도 알지 못하고 세상의 옳고 그름조차 구분할 줄 모릅니다. 다만 무관한 수십 수백의 목숨보다는 제 동생의 한 목숨이 더 귀할 뿐입니다.”
“그럼 당문이 네가 속해 있던 살문을 멸한 것은 어찌 생각하느냐? 정파가 살수들을 죽인 것이 잘못이라고 보느냐?”
조운비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잘못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럼 복수를 할 이유도 없지 않느냐?”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군자도, 협사도 아니고 그저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살수가 되려던 자입니다. 제가 가족처럼 여기던 분들이 죽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복수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하하하! 네 녀석은 또 한 번 죽었다 살아나도 군자인 척하는 정파의 무리에는 낄 수가 없겠구나. 헌데 복수는 무엇으로 할 테냐? 지금 네 무공으로는 당문의 무인 하나도 이겨 내기 힘들 것이고 가진 것도 없지 않느냐?”
조운비는 시선을 들고 눈을 빛내며 가볍게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많다고 할 수는 없는 나이입니다. 지금과 나중의 제가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좌세량은 입가에 흠뻑 웃음을 머금었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녀석이었다.
“나를 어찌 생각하느냐?”
“죽었어야 할 저를 살려 주신 분입니다. 평생을 갚아 나가도 모자랄 은혜를 입었습니다.”
“나는 네가 복수할 만한 힘을 줄 능력이 있다. 나를 따르겠느냐?”
좌세량의 나직한 말에 조운비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었다.
그저 따르라 해도 마다하기 힘들 것인데 복수할 힘까지 준다고 한다.
그러함에도 조운비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왜 죽음의 길을 마다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생명이나 복수보다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겐 보살펴야 할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좌세량이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조운비가 조건을 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어린 계집아이 하나 정도 챙기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는가. 예상했던 일이었고 그리하려고 했었다.
“그때 그 여자 아이라면 어찌 된 일인지 사라졌다. 너를 구한 후 곧 무강을 보냈는데 죽은 중년 여인까지 없어졌다고 하더구나. 곧바로 백 명에 가까운 인원을 풀어 주변을 수색했지만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당문도 조사를 해 보았으나 당문에서는 그 아이가 너와 함께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조운비의 얼굴이 눈에 뜨일 정도의 당혹감으로 물들었고, 좌세량은 재미있다는 눈빛을 떠올렸다.
‘목석이라도 되는 줄 알았더니 그 계집아이에 대해서는 꽤나 감정적이지 않은가.’
잠시 멍한 기색이던 조운비가 시선을 들었다.
“들러 볼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좌세량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강과 함께 가도록 해라.”
좌세량은 나중에 보자며 몸을 일으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무강이 방으로 들어섰다.
“어이, 꼬맹이! 밖으로 나돌아 다니려고 하는 것 보니 이제 좀 살 만한가 보구나.”
우렁차게 들리는 마무강의 목소리에 조운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걸어 다닐 만은 합니다.”
“그럼 후딱 나갔다 오자. 힘들면 업어 줄 테니 말하고, 하하핫.”
마무강은 호탕한 웃음과 함께 몸을 돌려 방을 나섰고, 조운비도 뒤따라 걸음을 옮겼다.
방문을 벗어나자 밝은 햇살에 눈이 시렸다.
문뜩 이곳이 어디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앞서 걷던 마무강이 고개를 돌렸다.
“근데 가야 할 곳이 어디냐?”
“백화루에 먼저 들를 생각입니다.”
마무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가까운 곳이구나.”
마무강의 말에 조운비가 주위를 둘러봤다.
꽤나 큰 건물의 별채인 듯 생각되었다.
“이곳이 어딥니까?”
“어? 모르고 있었던 거냐? 천마신교 사천지부다.”
마무강의 대답은 조운비가 원하는 답은 아니었으나 조운비를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천마신교.
운남성에 자리 잡고 있는 단일 세력으로는 천하 최강이라 할 수 있는 집단이며, 정파 무림의 전부와 적대적인 상황에서도 수백 년간 굳건히 존재하고 있는 사파 최대의 문파였다.
가진 힘으로만 보면 세력이 몇 개의 성에 걸쳐도 모자랐으나 중원으로 세력 확장을 하기 위한 진입로라 할 수 있는 사천성에 청성, 아미, 당문 등 정파의 거대 문파 세 곳이 몰려 있는 데다 그 강함에 대한 우려로 천마신교에 대해서는 정도의 모든 문파들이 공동 대응을 하여 현재까지도 운남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긴 천마신교가 아니고서야 어찌 당문을 그리 가볍게 말할 수 있을까.’
생각에 잠겨 걸음을 옮긴 동안 조운비와 마무강은 건물을 벗어나고 있었고, 조운비는 마무강에게 재차 위치를 물을 필요가 사라졌다.
마무강의 말마따나 정말 백화루와 가까웠고 당문과도 고작 반나절 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천리표국이 천마신교의 지부였었나? 당문은 코앞에 비수를 놓아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 조운비와 마무강은 반 시진 정도가 지나자 백화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운비는 백화루의 정문에 서 있는 장한에게 다가섰다.
조운비가 입을 열기도 전에 장한이 반가운 듯 웃음을 지었다.
“이거 꽤 오랜만에 왔구나. 내 금방 장 선생님께 네가 왔다고 전하마.”
말을 하던 장한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헌데 옥화는 어디다 두고 오늘은 혼자 온 것이냐?”
장한의 이어지는 말에 조운비의 안색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장한이 하는 말의 내용으로 보아 이옥화는 백화루에 오지 않은 것이었다.
“오늘은 혼잡니다. 지금 장 선생님을 뵈었으면 하는데…….”
혹시 모르는 일이니 확인은 해 봐야 했다.
“그래, 잠시만 기다려라.”
장한이 잰걸음으로 문 안으로 들어갔고 반각이 채 흐르기 전에 후덕해 보이는 중년 여인이 뛰는 듯이 모습을 드러냈다.
“운비야, 왜 이리 오래간만에 온 것이냐.”
중년 여인이 조운비의 손을 잡으며 무척이나 서운한 듯 입을 열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옥화는 오지 않은 것이냐?”
의아함을 담은 중년 여인의 말에 조운비의 얼굴엔 눈에 뜨일 정도의 실망감이 떠올랐다.
“아주머니, 옥화가 이곳에 오지 않았나요? 옥화를 가장 최근에 보신 것이 언제죠?”
다급함이 느껴지는 조운비의 말에 중년 여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달쯤 전에 너와 같이 왔던 것이 마지막이 아니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냐?”
조운비의 말에서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낀 중년 여인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아니에요. 오늘은 이만 가 볼게요. 한동안은 못 들를 것 같아요.”
다급한 심정인 데다 중년 여인에게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던 조운비는 당혹스러워 하는 중년 여인을 뒤로하고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