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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월비화 1권 (8화)
제2장 심결과 심공 (4)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장단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아 조운비에게 미루었던 것인데 듣고 보니 조운비의 말도 옳았다.
조운비가 아는 것이 무엇이 있다고 더 나은 것을 고르라고 하겠는가. 그냥 아무것이나 고르라고 할까 하는 생각을 하던 좌세량의 머릿속에 문뜩 천마신공을 전수하려면 먼저 허락을 받아야 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태허심공으로 하자.”
좌세량이 품속에서 서책을 하나 꺼내더니 조운비에게 건네주었다.
상당히 오래된 듯 보이는 서책에는 태허심공이라는 제목이 쓰여 있었다.
“나는 천마신공을 익혀서 태허심공에 대해서는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제한적이다. 내공심법에 대한 원론적인 부분은 설명해 줄 수 있지만 실제로 익혀 본 바가 없으니 네가 그 심법을 익히면서 나타날 수 있는 징후나 현상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심심파적 삼아 주석을 달아 놓았으니 보기 어렵지는 않을 게다. 혹시 막히는 부분이 있거든 지체 없이 물어보도록 하여라.”
좌세량은 스스로 말을 하면서도 점점 미간이 일그러졌다.
말을 꺼내고 보니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우연히 얻은 것이니 익힌 이에게 배워 본 적도 없었고 스스로 익혀 보지도 않았다.
조운비가 제 길을 가는지 그른 길을 가는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정공을 익혀서는 사공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천마신교의 무공들이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 아닌가?’
복잡한 머릿속에서 기어코 고민거리 한 가지를 더 찾아낸 좌세량이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면서 도망치듯 방을 벗어났다.
“일단 수련을 시작해라.”
‘대책을 찾아야 해, 대책을…….’
좌세량이 대범하고 쾌활한 성격이다 보니 작은 일에는 무심한 편이긴 했으나 사실 이러한 일에 실수를 할 정도는 아니었다.
허락 없이 천마신공을 가르치려 한 일이나 직접 배운 적도 없는 태허심공을 가르치기로 결정한 일들은 매우 중대한 문제들로, 평소의 좌세량이라면 결코 실수를 할 리가 없었다.
그러함에도 좌세량이 연달아 실수를 하게 된 것은 상당히 들떠 있는 기분과 조운비에게 무엇이든 자꾸 해 주고 싶은 욕심이 섞여 만들어 낸 결과였다.
좌세량의 기억 속에서는 이미 지워진 일이었으나 예전에도 지금처럼 실수를 연발했던 시기가 한 번 있었다.
애검 혈영을 얻었을 때였다.
조운비는 급한 걸음으로 방을 나서는 좌세량의 등을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는 곧 자리에 앉아 태허심공의 첫 장을 펼쳤다.
‘본도 왕중양은…….’으로 시작하는 전진파의 역사와 태허심공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이 적지 않은 분량을 이어 가고 있었다.
열 장 가까이 책장을 넘기고서야 심공의 기초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복잡한 구결들의 나열이었으나 다행히 좌세량이 써 놓은 것으로 보이는 주석들이 꽤 세부적이라 크게 막히는 곳 없이 심공에 몰입하는 것이 가능했다.
조운비가 책에서 눈을 뗐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다.
그리 많은 분량은 아니었지만 반복해서 읽고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고심하다 보니 시간의 흐름을 모르고 빠져 들었던 것이다.
‘육합심법과는 비할 수 없이 복잡하나 기본적인 부분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형님의 고심이 적지 않아 주석과 함께 보니 크게 걸리는 부분도 없었다. 몇 번이라도 더 읽어 보고 뜻이 명확하게 느껴지면 운공을 해야 하는 것인가?’
잠시 턱을 괴고 갸웃거리며 생각을 하던 조운비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책을 본다고 해도 크게 다를 것은 없다는 결론을 얻었던 것이다.
조운비는 좌정을 하고 자세를 바로 하며 운공을 준비했다.
처음의 시작은 육합심법과 그다지 다르지 않아 진기를 느끼는 것은 별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하며 조운비는 태허심공의 구결에 따라 운공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해에서 조금씩 진기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조금은 차고 청량한 느낌을 주는 진기가 서서히 자리를 잡더니 곧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상쾌한 느낌이 차근차근 온몸 구석구석을 어루만지는 듯하더니 곧 제 길을 찾아 부드럽게 이동하며 심공이 정한 길을 한 바퀴 돌았다.
태허심공의 구결에 따라 소주천을 이룬 것이다.
한 번 길이 트이자 진기의 움직임에 점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때 진기의 양이 갑작스럽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양이 늘어나자 진기의 움직임이 과격해지기 시작했고, 조운비는 당혹감을 느끼며 진기를 통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크윽! 이게 무슨?’
한참의 노력 끝에 조운비는 간신히 진기를 통제하여 운공을 멈추었으나 크게 놀란 가슴은 고장 난 마차처럼 덜컹거리고 있었다.
한동안 고심하던 조운비는 그러한 상황이 된 이유를 짐작해 낼 수 있었다.
온몸에 퍼져 있던 천마신단의 기운이 심공을 운기하자 합류하기 시작했으리라 생각되었다.
‘당분간은 운공을 할 때 극도의 주의가 필요하겠구나. 정공이 안정적이라 위험이 적다고 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가 보구나.’
사실과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는 조운비의 결론이었다.
물론 조운비가 추리한 것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생각에는 가장 큰 이유가 빠져 있었다.
그러한 상황이 빚어진 주된 이유는 고해심결이었던 것이다.
사실 환골탈태에 비할 수는 없었다.
환골탈태라는 것은 전설에나 몇 번 등장하는 경우로, 무공의 경지가 지극해지면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반로환동보다 오히려 비현실적인 경지인 것이다.
반로환동이라 해도 비유에 가까운 말이지 실제로 노인이 청년이 되거나 아이가 된다는 말은 아니었고, 무공이 절정에 이르면 다시 검은 머리가 나고 이가 새로 나기도 하기에 그러한 이들을 가리켜 반로환동의 고수라 칭했다.
그러한 고인들은 종종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어 반로환동을 전설이라 하지는 않았다.
하나 환골탈태란 말 그대로 뼈가 새로 바뀌고 살이 새로 생겨나 껍질을 벗는다는 것이다.
옛말이 전하는 대로라면 온몸의 불순물이 사라지고 신체를 완벽에 가까운 자연체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니 가히 신선이 된다는 우화등선과 비할 만한 일인 것이다.
환골탈태의 실상이 그러하니 고해심결을 감히 그와 같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나 그 효과는 알려진 것 이상이었다.
일전에 좌세량도 명확하지는 않으나 짐작되는 바가 있어 고해심결을 익힌 이유를 보태 조운비에게 태허심공을 배우라 했었으나 현실은 좌세량의 예상을 한참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저 익히라 한 좌세량은 알 턱이 없었고 스스로 배우고 있는 조운비도 몰랐으나 고해심결로 변화된 조운비의 몸은 기를 받아들이는 것이 빨라 그 양이 많았고, 기의 통로가 넓혀지다 보니 운공의 속도가 빨라 정제된 진기를 얻는 시간이 단축됨으로 정공인 태허심공으로 사공인 천마신공을 익혔을 때나 얻을 수 있을 정도의 내공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놀란 가슴이 가라앉자, 조운비는 다시 운공 삼매경에 빠져 들어갔다.
어느 틈엔가 날이 밝았는지 문틈을 헤집고 들어온 햇살이 방구석을 노니는 먼지 덩어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제3장 등천관 (1)


고아한 풍취가 느껴지는 방 안에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세 사람이 마주 앉아 있었다.
탁자 위에는 앉아 있는 사람의 수에 맞게 세 개의 찻잔이 놓여 있었으나 차에 관심을 두는 이는 없어 보였다.
차분한 분위기에 눈매가 매서운 문사풍의 중년인은 무엇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는지 한껏 미간을 찌푸리며 맞은편의 잘생긴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뭐가 어쨌다고?”
이지문의 힐난하는 말투에 좌세량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딴청을 피웠다.
마무강은 두 사람의 대화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지 술이 아닌 것이 원망스럽다는 듯 떨떠름한 표정으로 찻잔만 노려보고 있었다.
“대주님, 정녕 몰라서 하시는 말씀은 아니시겠지요. 그냥 대충 넘어갈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태허심공을 가르쳤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제 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분명 태허심공이라고 하셨습니다. 도대체 어찌하려고 그러십니까? 그게 대주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이 알려지는 날에는 교주님조차도 그냥 넘어가려 하시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이 일이 대공자님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그 화가 어디까지 미칠지 모릅니다.”
이지문은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신이 주인이라 생각하는 좌세량이 저지르고 다니는 대책 없는 행동들은 도무지 그 한계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태허심공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태허심공은 정파의 내공심법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심법으로 가히 보물이라 할 만한 비급이며 천마신교의 최고 심법인 천마신공에 못지않은 심법이었다.
천마신교라 해도 얻을 수만 있다면 수천의 피 흘림이나 수만금이라 해도 아끼지 않을 만한 가치가 있는 비급인 것이다.
우연이든 어떤 사연이었든 그 정도의 비급을 얻었다면 교주에게 알리지 않고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죄가 작다고 할 수 없었다.
이지문은 정말 좌세량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스스로 익히지도 않을 심법이었고 연구를 위해서라면 보고한 이후에 필사본을 받아서라도 충분히 가능하건만 좌세량은 자신이 태허심공을 얻은 것을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 대해 이지문은 상당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으나 그나마 좌세량이 보관을 하고 있어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었다.
한데 그것이 타인에게 전해진 데다 그 대상이 스스로 보호할 능력도 없는 열세 살의 꼬맹이인 것이다.
이지문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좌세량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천마신공을 가르친 것보다는 낫잖아.”
이지문은 허탈한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뜨렸다.
도대체 이 대책 없는 대주는 자신의 의견을 들어 먹을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래, 맞아. 천마신공을 가르친 것보다는 낫잖아.”
이지문의 모습이 안돼 보였는지 마무강이 달래는 말투로 한마디 거들었다.
이지문은 순간적으로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 들었으나 마무강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고 참아 내었다.
말을 해 무엇 하겠는가? 자신만 갑갑할 것을.
한동안의 침묵으로 마음을 가라앉힌 이지문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이미 저지르신 일이고 돌이키실 의향도 없으신 듯하니 몇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그 녀석이 태허심공을 익힌 걸 어찌 숨기시겠습니까? 게다가 설혹 태허심공을 익힌 것이 알려지지 않는다 해도 정공을 익혔다는 것만으로도 그 녀석은 본교에 발붙일 자리가 없을 것인데 그것은 또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뿐입니까, 거기까지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나 본교의 무공은 사공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정공으로는 제 위력의 칠팔 할이나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문제들은 다 어찌하시렵니까?”
이지문의 연이은 물음에 좌세량은 골치 아프다는 듯이 미간을 있는 대로 일그러뜨리며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지금이야 어차피 공력이 천박하니 그리 표가 나지는 않을 것이고, 심법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이후라면 스스로 감출 수 있을 것이니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인데, 그 중간이 문제로구나. 어찌한다…….”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리던 좌세량이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며 탁자를 내려쳤다.
“맞아! 그러면 되겠군. 하하하핫!”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린 좌세량은 번뜩이는 눈빛으로 이지문을 한번 바라보더니 의자에 느긋하게 등을 기대며 턱을 치켜세웠다.
자신만만하다는 표정이었다.
“원래부터 그럴 생각이었는데 그게 또 해결책이 되는군. 그런 것을 바로 선견지명이라고 하지 않던가? 등천관에 집어넣으면 될 일이 아닌가. 원래는 내가 교로 데리고 가서 신경을 써 주면 사형이 싹을 자르려고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려고 했던 것인데.”
의기양양한 좌세량의 말에 이지문의 인상은 펴지기는커녕 더욱 일그러졌다.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이번 등천관이 열린 것이 벌써 칠 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그곳에 있는 녀석들은 칠 년차라는 말입니다, 칠 년차! 불과 며칠 전에야 제대로 된 내공심법 하나 배운 녀석을 그 지옥에 집어넣는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아시지 않습니까? 자질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면 죽습니다.”
이지문은 하도 기가 막혀서 화도 나지 않았다.
등천관.
달리 수라등천관이라 한다.
천마신교가 수백 년간 사파의 최강자로 군림해 올 수 있었던 강함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수라등천관이었다.
이십 년마다 한 번씩 열려 십오 년간 지속되는 수라등천관은 천마신교의 주축이 될 고수들을 키우는 과정, 혹은 장소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수라등천관은 천마신교의 본산이 위치한 운남성에서도 가장 깊숙한 밀림 속 오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지문은 등천관에 대해서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가 없었다.
이지문 또한 마무강과 함께 등천관의 과정을 거쳤던 것이다.
수련 과정이 아니더라도 잠시만 긴장을 놓으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게 죽어 나가는 지상의 지옥 같은 곳이었다.
자연이 만들어 낸 온갖 독들이 사방을 뒤덮고 있고 상상도 하기 힘든 치명적인 독충들이 허다하며 괴물이나 다름없는 맹수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었다.
자연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적이 되는 장소인 것이다.
그러한 장소에서 수라등천관의 과정이 시작된다.
오 년을 준비하여 십오 년간 진행되고 그것이 반복되기에 수라등천관은 이십 년이 주기가 된다.
보통 천마신교의 어린 후인들과 전 중원을 뒤져 구한 여섯 살에서 아홉 살 사이의 아이 천여 명이 수라등천관에 들고, 십오 년의 과정이 끝날 때쯤이면 백 명 정도만 살아남는다.
그것도 남는 것이 그 정도라서가 아니라 백 명만이 출관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 과정의 험난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기본적인 학문과 무공을 익히는 것 외에는 규칙조차 없다.
굳이 규칙이라면 살아남는 것이 전부이다.
무공을 가르치는 교관들과 적지 않은 관리자들이 있었지만 가르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관여하지 않았다.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무공이 강하다고 해서 살아남는 것은 아니었다.
어떠한 상황도 이겨 낼 수 있는 강한 정신력과 음모와 귀계에 어느 정도는 운도 따라 주어야 했다.
결국에 남는 자들은 그러한 과정에서 살아남은 자들이니, 수라나 다름이 없고 수라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지도 못한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등천이라는 명칭에 맞게 천마신교의 주축이 되는 길을 가게 된다.
그래서 수라등천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