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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월비화 1권 (9화)
제3장 등천관 (2)
이번 수라등천관이 시작된 것은 칠 년 전이었다.
수라등천관이 시작되면 처음의 삼 년간은 교관과 관리자들의 보호 아래 안전한 지역에서 내공의 기초를 다진다.
그리고 다시 삼 년간 생존하는 방법과 실전 무공을 가르친다.
이 시점까지는 어느 정도 보호를 받지만 그러한 중에도 죽는 아이가 반 이상이다.
이렇게 육 년이 지난 이후에는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무공 외에는 아무런 보호나 지원도 해 주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하니 칠 년차라면 기본적으로 수라등천관에 완전히 적응을 한 아이들만이 살아남는 시기인 것이다.
극한의 상황을 견뎌 내며 최고의 무공을 칠 년간 체계적으로 익힌 아이들이다.
조운비가 아무리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애초에 상황과 조건이 다른 것이다.
이지문이 지금까지 봐 온 조운비의 자질과 성품이면 굳이 수라등천관에 들지 않아도 오래지 않아 그곳의 아이들을 넘어설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하나 지금 조운비를 수라등천관에 들여보낸다는 것은 갓 태어난 새끼 호랑이를 늑대 소굴에 던져 넣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지문은 당혹감에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따질 정신도 없었다.
천마신단을 복용하고 고해심결이 만들어진 이래 세 번째로 고해심결을 익혀 낸 데다 자질도 빼어나 십여 년 정도만 키우면 한몫을 단단히 할 녀석을 투자한 것도 못 건지고 공으로 날려 먹을 상황인 것이다.
좌세량은 조금은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등천관에 가면 운비가 죽는다? 그럴 리가 없지. 결코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아. 운비는 거기 있는 녀석들을 다 죽이고서라도 살아남을 거야.”
“아니, 그 꼬맹이의 뭘 믿고 그리 장담을 하시는 겁니까?”
좌세량이 기분 나쁘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 느낌은 절대로 틀리지 않아!”
별다른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지문은 망연자실하여 할 말을 잃었다.
“근데 너 자꾸 꼬맹이, 꼬맹이 하는데 대주님이 동생 삼으셨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불러도 되는 거냐? 조 공자님이라고 해 봐. 버릇을 들여야지, 푸하하핫!”
두 사람만의 대화에 끼어들 틈이 없어 심심했는지 마무강이 이지문에게 한마디 건넸다.
이지문은 멍한 시선을 돌려 마무강을 바라보았다.
화도 나지 않았다.
문뜩, 잠깐이었지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마무강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어느덧 서늘한 바람이 느껴지는 초가을이었다.
조운비가 좌세량에게 구원을 받은 지도 벌써 이십 일 정도가 지나고 있었다.
조운비는 그동안 잠시 짬을 내어 백화루의 장 선생님에게 혹시라도 옥화가 찾아오면 전해 줄 것을 부탁하며 서찰을 하나 전하고는 두문불출하며 태허심공에 빠져 있었다.
태허심공을 수련하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사흘이 되었으니 별다른 성과를 기대한다는 것이 어이없는 일이겠으나 그러한 일반적인 사실과는 달리 조운비가 얻은 것은 적지 않았다.
우선 오 년간 수련을 해 왔던 육합심법의 진기를 남김없이 태허심공으로 수습했고 천마신단의 약력도 적지 않게 흡수할 수가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 대해 조운비도 꽤 놀라고 있었다.
그다지 아는 것이 많지 않아도 현재 자신이 얻은 성과가 상식을 벗어난 정도라는 것을 알 만큼은 되었던 것이다.
자신이 살문에 속해 있을 때 사부가 내공에 대해 설명을 해 주며 그러한 언급을 한 적이 있었다.
내공심법을 바꾸게 되면 거의 대부분 그동안 쌓은 공력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비슷한 계열의 상위 심법인 경우만 이전 공력의 수습이 가능했다.
하나 수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여 지금 조운비의 상황처럼 며칠 만에 되는 것은 아니었다.
좌세량이 천마신단의 약력을 흡수하면 일 년 이내에 삼사십 년의 공력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일 년 정도 연공을 해야 약력을 모두 흡수할 수 있다는 말인 것이다.
공력의 수습도 그와 비슷한 절차를 필요로 했다.
일단 다른 심법으로 전환을 하게 되면 이전에 가지고 있던 공력은 흩어진다.
비슷하다 해도 같지는 않기에 바로 융합될 수는 없는 것이다.
흩어진 공력은 천마신단의 약력처럼 몸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다가 새로운 심법을 수련할 때 그 기운에 조금씩 섞이며 흡수되는 것이다.
간단히 생각하자면 이전에 가지고 있던 공력 또한 영약의 약력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천마신단의 약력을 흡수하여 삼사십 년의 공력을 얻는 데 일 년의 시간이 걸린다면 조운비가 오 년을 수련하여 얻은 공력을 흡수하려면 최소 이 개월에서 삼 개월은 수련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운비는 불과 사흘 만에 이전의 공력을 모두 수습했으니 자질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이해가 될 만한 일이 아니었다.
태허심공의 운기를 마친 조운비는 자세를 풀지 않은 상태로 생각에 잠겼다.
‘고해심결인가? 태허심공이 아무리 대단한 심법이라 해도 이렇듯 비상식적인 효과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형님께서 정공을 익히는 것이 고해심결의 효과를 더 크게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 바가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을 짐작하고 계셨던 것인가? 아닐 것이다. 짐작하고 계셨다면 천마신단의 약력을 흡수하는 데 일 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 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나는 이미 천마신단의 약력을 삼분지 일 정도는 흡수했고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열흘이 지나기 전에 천마신단의 약력을 모두 흡수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현재 조운비의 공력은 거의 삼십 년에 육박했다.
최상급의 정공을 익힌다면 이십 년을 수련해야 하고 최상급의 사공을 익힌다고 해도 십 년 가까이 수련을 해야 얻을 수 있는 공력이니 조운비의 나이에서 이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몇 년의 내공이니 몇 갑자의 내공이라는 말을 한다.
내공의 수준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인데 그 기준은 평범한 무인이 삼재심법이나 육합심법 같은 기본적인 심법으로 꾸준한 수련을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내공이었다.
평범한 무인이 삼재심법을 육십 년을 수련해서 얻을 수 있는 공력을 일 갑자라 한다.
달리 말하면 기본적인 심법이 아닌 최상급의 심법이라면, 혹은 자질이 평범하지 않고 뛰어나다면 같은 시간을 수련한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공력은 차이가 나는 것이다.
하다못해 달리기를 하여도 빠르고 느린 자가 있으니 그러한 차이는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무림의 문파들이 제자를 구할 때는 자질을 가장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조운비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른 내공의 발전이 기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발전이 비상식적이다 보니 불안감이 없을 수는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조운비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어쨌든 득이 되니 좋은 현상이 아닌가. 고해심결에 들은 바와 다른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내공만이 아니라 몸도 예전과는 다르다.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무공을 익히는 데도 적지 않은 보탬이 있을 것은 확실하다.’
조운비는 지금도 하루에 한 번씩 고해심결을 운기하고 있었다.
며칠 전에 좌세량이 조운비의 몸 상태를 보더니 그만 해도 되겠다고 했지만 조운비는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고통은 여전했으나 운기를 하고 나면 온몸이 정화된 듯 개운한 기분이 들었고, 감각이 점점 예민해졌다.
게다가 빠른 공력 증진의 이유가 고해심결에 있다는 생각이 드니 고통이 크다 하여 그만둘 수가 없는 것이다.
공력만 높다고 해서 고수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인들이 목을 매며 고급의 심법과 영약을 찾으며 바라 마지않는 일이니만큼 공력의 높음은 크게 득이 되는 일임은 확실했다.
덜컹!
갑작스럽게 문이 활짝 열리며 좌세량이 예의 유쾌한 미소를 지으며 방으로 들어섰다.
“아직도 운공 중인 게냐? 하루 종일 운공만 하는구나.”
조운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좌세량을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차분함이 느껴지는 조운비의 모습을 잠시 싱글거리며 바라보던 좌세량이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고리타분한 녀석, 하는 것이 꼭 노인네나 서생 같구나. 일단 나가자.”
조운비는 의아한 눈빛을 하면서도 별다른 말없이 좌세량의 손길에 따라 밖으로 나섰다.
좌세량이 향한 곳은 별채의 뒤편에 있는 조그마한 연무장이었다.
좌세량이 조운비의 팔을 놓으며 구석에 있는 정원석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너도 앉아라.”
좌세량이 턱 끝으로 앞에 있는 정원석을 가리켰다.
조운비가 정원석에 걸터앉자, 좌세량이 턱을 괴며 짐짓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내가 왜 이리로 너를 데려왔는지 아느냐?”
조운비가 좌세량과 잠시 시선을 맞추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을 가르쳐 주시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좌세량이 놀랐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걸 어찌 알아 버린 것이냐?”
조금은 과장된 좌세량의 모습에 조운비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앞쪽에 마당도 있고 정원도 있는데, 굳이 연무장으로 데려오셨지 않습니까.”
좌세량이 대단한 것을 깨달았다는 듯이 탄성을 내며 자신의 머리를 툭툭 쳤다.
“아하! 그랬구나, 그랬어. 난 네가 내 머릿속이라도 들여다보는 줄 알았지 뭐냐, 하하하핫!”
조운비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잠시 흘끔거리며 조운비의 모습을 살피던 좌세량이 미간을 찌푸렸다.
“조금 웃으면 안 되는 것이냐? 사내 녀석이 호쾌하게 웃을 줄도 알아야지, 입술이나 삐죽거려서 되겠느냐?”
너무 차분하기만 한 조운비의 모습이 탐탁지 않아 웃는 모습을 보려고 짐짓 과장되게 행동을 했던 좌세량이었다.
투덜거리는 듯한 좌세량의 말에 조운비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우스워야지 웃지 않겠습니까?”
조운비의 조용한 말에 좌세량은 둔기로 머리를 맞기라도 한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좌세량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재미가 없었느냐?”
“재미있으라고 그러신 것이었습니까?”
조운비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좌세량은 짐짓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랬구나. 재미가 없었구나. 내가 재미도 없는 유치한 짓을 하였구나. 그랬었던 게야.”
멍한 표정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하는 듯 중얼거리는 좌세량의 모습에 조운비가 고개를 숙이며 웃음을 터트렸다.
“풋! 그만 하십시오, 형님.”
좌세량이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며 싱긋 웃음을 지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재미있었는데 참았던 것이 아니냐. 이 형님의 빼어난 재치를 인정하느냐?”
“하하하핫!”
조운비가 참지 못하겠다는 듯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좌세량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그리 웃으면 좋지 않으냐.”
조운비의 웃음이 잦아들자, 좌세량이 부드럽고 차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네가 짐작했던 것처럼 오늘부터 네게 몇 가지 무공을 가르치려 한다.”
조운비는 자세를 바로 하며 좌세량과 시선을 마주했다.
“우선 무공을 가르치기 전에 네게 몇 가지 당부할 것이 있다. 첫째로 네가 지금 익히고 있는 태허심공에 관한 것은 누구에게도 말을 해서는 아니 된다. 혹 묻는 이가 있고 네가 대답을 회피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청살마공을 익혔다고 말해라. 청살마공은 네가 익히고 있는 태허심공과 언뜻 보기에 비슷한 기운을 풍기는 사공이다. 청살마공에 대해서는 내가 나중에 따로 설명을 해 주도록 하마. 두 번째는 조금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나 네가 천마신교의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라는 것이다. 굳이 천마신교에 소속감을 느끼거나 충성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너는 그저 내 동생일 뿐이다. 알겠느냐?”
자신이 천마신교의 소속이 아니라는 말에 조운비는 잠시 의문을 느꼈으나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검에 인정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불필요하게 검을 뽑지 말되, 어떤 이유든 검을 뽑았다면 끝을 보거라. 어설픈 동정이나 어중간한 마음은 자신의 피로 돌아오는 것이다. 검이라는 것은 살상 도구이다. 검을 뽑은 상황이라는 것은 명백한 살의를 가지고 있다는 표현인 것이다. 네 앞에서 검을 뽑는 자는 결코 살려 두지 마라.”
좌세량의 표정은 전에 없이 진지하고 엄숙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조운비 또한 진중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성품이 냉철하니 그러한 점에 대해서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이제 네가 배울 무공에 대해 설명해 주도록 하마. 나는 너에게 우선 세 가지 무공을 가르칠 생각이다. 한 가지 검법과 보법, 신법이다. 실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절기라 보기는 힘든 무공들이니까. 절기보다는 오히려 기초에 가깝다. 허나 내가 너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이 세 가지 무공은 기초이면서도 모든 것이다. 이 뜻을 지금의 네가 알기는 어려울 것이나 익히다 보면 곧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좌세량이 엉덩이를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보다는 일단 한번 보거라.”
좌세량은 걸음을 옮겨 연무장의 중앙을 향하며 옆구리에 매달려 있던 검을 검집째 손에 들었다.
조운비도 몸을 일으켜 좌세량의 뒤를 따랐다.
좌세량이 몸을 돌리며 진중한 모습으로 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자리에서 다양한 형태로 사방으로 찌르고 베는 검의 움직임을 천천히 한 번 보여 준 좌세량이 검의 움직임을 조금씩 빨리했다.
좌세량의 몸이 움직임을 보였다.
한 걸음을 넘지 않을 공간 안에서 발의 모양을 조금씩 트는 듯한 절제되고 소극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러한 움직임 속에서도 검의 속도는 조금씩 빨라져서 지금에 이르러서는 검의 모습이 잔영으로만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