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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블레이드 1권(7화)
Chapter2 계속되는 다이어트(5)
“휴우우우…….”
베스렐은 대련을 끝내자마자 고개를 들어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미간에 자리한 불꽃 모양의 주름.
그것이 짙은 음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카스트리온! 언젠가는 네놈을 반드시…….’
녀석은 속으로 나직한 다짐의 말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해내고 말겠다는 그런. 절대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그런.
그리고 녀석의 그 같은 모습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내가 1명 있었다.
메드레스 마도사와 블레스 기사단장 그 두 사람과 함께하고 있는 아웬 백작.
“흐음, 카스트리온……. 녀석이 그 블랙 드래곤의 이름을 내뱉다니. 가슴속 원한이 극에 이르도록 쌓인 모양이군. 휴우우. 하긴 매일같이 힘든 다이어트를 해야 하니…….”
그의 아들인 베스렐이 하는 다이어트는 진정 눈물겨운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하루 600칼로리 이하의 초저열량의 식이요법에 매일 사투와도 같은 기사수련. 거기다 늦은 밤까지 계속되는 마법공부.
힘들 것이다. 산다는 것이 그다지 재미있지가 않을 것이다.
‘가문에 이어져 오던 연구가 이제 거의 다 끝나 가고 있으니 조금만 참으려무나. 오래지 않아 더 이상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으니…….’
아웬 백작은 아들 녀석의 왠지 모를 고독한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이 하고 있는 연구를 좀 더 빠르게 진행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은 늦었지만 아들만큼은 사람답게 살게 하고 싶은 그였다.
그것이 아버지가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지 않겠는가. 자식만큼은 잘됐으면 하는 마음 말이다.
Chapter3 희망, 그리고 죽음(1)
4층으로 이루어진 대저택이 있다.
이곳은 갈루안스가의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다.
날은 저녁시간을 지나 서서히 한밤중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의 시기는 3월 중순경.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오는 시기이다. 계절이 바뀌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시기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백작가의 뒤쪽으로 연결되어 있는 숲은 아직까지 푸릇한 잎사귀들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이곳은 짙은 녹색 빛의 세계로 가득 찰 것이다.
그때였다.
무슨 소리인 걸까? 갑자기 백작가의 2층에 있는 한 거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이이잉.
마법등으로 인해 환한 빛이 창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는 그곳.
곰같이 커다란 체구를 지닌 사내였다.
베스렐은 지금 운동 중이었다. 아니, 운동을 한다기보다는 마법을 공부하고 있는 중이라 해야 더 옳았다.
지이이잉.
이상한 모양의 물품이었다.
쇠기둥 4개가 책상다리처럼 세워져 있는 그것의 바닥은 검은 고무가죽 같은 게 길이 2미르(m)에 폭이 1.5미르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것은 지금 스스로 돌고 있었다.
이것은 마법 물품이었다. 걷기나 뛰기와 같은 운동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마법 물품.
저벅저벅.
베스렐은 지금 그 고무가죽에 몸을 실은 채 걷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의 앞에는 기다란 탁자 같은 게 있었고 그 위에는 두꺼운 책이 한 권 놓여 있었다.
사락사락.
책장이 한 장 한 장 넘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베스렐은 걷기 운동을 하면서 동시에 마법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운동을 하면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것도 보통의 공부가 아닌 마법공부이지 않은가. 하지만 베스렐은 이같이 걷기 운동을 하면서 마법을 공부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지 조금의 흐트러짐도 내보이지 않고 있었다.
몸 따로 마음 따로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그는 하체의 움직임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그 두꺼운 마법서적에만 온 정신을 쏟아 붓고 있었다.
꼬르륵.
그때 녀석의 배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배고픔을 알리는 신체의 알람 소리였다.
이제는 그만 식사를 하자는 신호.
하지만 베스렐은 배 속의 신호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마법공부에 열중했다. 배는 고프지만 이 정도는 오랜 시간 동안의 숱한 경험으로 충분히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흐음, 6써클에 있는 활성화 마법. 이 ‘액터배이션’이란 마법이 생각보다는 조금 복잡하구나. 이걸 완전히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어야 나중에 마법 물품을 만들 수 있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내일은 메드레스 마도사에게 가서 이것에 대해 물어봐야겠어.”
베스렐은 현재 4써클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심장에 자리하고 있는 마법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마력.
그것이 4개의 써클을 완벽히 이루며 심장의 주위를 돌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이제는 보다 높은 경지로 나아가야 한다. 보다 높은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마력을 모을 수 있게 해 주는 마나 명상법을 꾸준히 하고 또한 그 위의 단계에 있는 마법서적들을 탐독해 연구하면 되는 일이었다. 5써클에 있는 마법수식들을 외우고 이해하며 또한 복잡한 마법의 이론들을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스렐의 경우는 지금 6써클의 마법서적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녀석은 지금 5써클의 마법사란 말인가?
아니다. 그건 아니었다.
녀석은 지금 심장에 자리한 써클대로 아직 4써클의 마법사였다. 다만 얼마 전에 5써클에 관한 마법서적들을 모두 읽은 뒤라 지금은 6써클의 마법서적들을 뒤적이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스윽, 척.
베스렐은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그리곤 계속해서 걷기 운동을 하며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다이어트라…….’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마법에 대한 생각들이 사라지고 이제는 자기 자신의 문제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마법으로 살을 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까지 그 해답은 보이지 않는단 말이야. 다만 기사들이 하는 오러 수련이 살이 많이 찌는 걸 억제해 주고는 있어.’
그의 삶의 가장 큰 부분인 살과의 전쟁.
살을 뺀다는 것은 정말 지독한 고통의 연속이라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라면 정신적인 피곤함은 더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베스렐은 매일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어찌하면 드래곤이 가문에 내린 저주를 풀 수 있는지, 또한 어찌하면 보다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지를 말이다.
“으드득!”
녀석의 입에서 갑자기 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도마뱀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그렇게 이를 갈게 되는 것이었다.
“휴우우우…….”
녀석은 다시 들끓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계속해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육체수련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오천 살 가까이 처먹은 그 드래곤 새끼의 저주를 풀려면 다른 것이 필요해. 마법이 인간으로서는 오르기 불가능하다는 8써클의 경지에 들어선다든가, 아니면…… 아니면 정신적인 어떤 높은 깨달음을 얻어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야 해.’
저벅저벅.
베스렐은 걷기 운동을 계속하며 육체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 보았다.
‘음차원의 힘인 저주를 푼다라, 그것도 보통의 녀석들의 저주가 아닌 고룡이 내린 저주를 깨부순다라……. 역시나 그걸 깨부수려면 저주를 내린 당사자를 죽이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인 거야. 하지만 그게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니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인간이 지닌 한계를 초월하는 수밖에 없는 거지. 그리고 그 방법으로는 정신수련을 아주 깊이 있게 해야만 해. 마나 명상법이나 마나 소드와 같은 정신과 연관되는 걸로 길을 찾아야 해.’
“응?”
그때였다. 무슨 일인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베스렐의 시선이 실내의 입구로 향했다.
똑똑똑.
곧 거실의 입구 문에서 노크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저 리렌시아예요.”
베스렐의 고개가 끄덕였다.
“들어와!”
끼이익.
곧 금빛 머리의 한 소녀가 거실 문을 열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략 열다섯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그녀.
리렌시아란 이름을 지닌 소녀는 척 보기에도 무척이나 아름다움을 알 수 있었다.
청순한 미모라고나 할까?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백색의 피부에 붉은 입술. 거기다 소녀의 두 눈은 깊은 혜지가 담겨 있는 것처럼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그냥 단순히 사람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아름다운 그녀.
사실 그녀는 순수한 인간이 아니었다.
유사 인류의 하나인 수인족.
리렌시아는 그 수인족 중에서도 폭스족이었고 또한 그 폭스족 중에서도 극히 희귀하다는 골드 폭스족이었다. 마법에 상당히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는 그 골드 폭스족 말이다.
“무슨 일이야?”
리렌시아는 곧 부드러운 음성으로 소영주를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예, 다른 게 아니라 지금 영주님께서 주인님을 찾고 계셔서요. 그리고 영주님께서는 저도 같이 주인님을 따라 처소로 들라 하시네요.”
나긋나긋한 목소리.
진정 그 미모만큼이나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그래? 무슨 일이시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베스렐의 부친인 아웬 백작은 며칠 전부터 코펜 마을의 마탑에서 이곳 그의 저택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루 세 번의 식사를 아들과 같이 들며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늦은 시간에 베스렐을 찾는 것은 처음이었다.
‘으음. 설마 벌써……?’
베스렐은 급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곤 ‘런닝 매직머신’이란 이름의 운동기계에서 내려와 리렌시아에게 고갯짓을 하며 앞서 가라고 말했다.
‘별다른 일은 아닐 거야…….’
녀석은 거실 밖을 나서며 처음 가진 자신의 생각이 기우이기를 바랐다.
하나뿐인 가족이다.
그분이 사라지면 이제는 혼자가 된다.
역대 갈루안스가 사람들은 모두 일찍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던가. 남자들은 몸무게가 600크롬을 넘기면 얼마 지나지 않아 초비만으로 모두들 죽음을 맞이했고, 여인들은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명력 소실로 짧은 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으음…….”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는 베스렐이었다.
***
전대의 영주들을 보는 듯했다.
아웬 백작.
그는 현재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게 살이 찐 상태로 바뀌어 있었다.
작은 하마라고 해도 충분히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커다란 오인용 침상에 앉아 있는 그는 전의 영주가 마나의 품으로 돌아가기 전보다 단 10크롬(kg)이 적은 602크롬의 체중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의 나이 올해 서른아홉.
이미 9년 전에 7써클의 대마도사가 되었고 4년 전에는 7써클의 마법을 완전히 마스터한 천재마법사가 그였다.
하지만 그런 그도 이제는 마나의 품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만 했다.
역대 갈루안스가의 대마도사들은 체중이 600크롬이 넘어서면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모두 마나의 품으로 돌아갔으니 그도 별다른 수가 없을 듯했다. 그저 조용히 생을 마감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윽.
아웬 백작은 들고 있던 물건을 베스렐과 녀석의 노예인 리렌시아에게 하나씩 건네주며 말했다.
“둘 다 그걸 받아서 왼쪽 손목 위에 올려놓거라.”
“예, 알겠습니다, 영주님.”
리렌시아는 순순히 그 물건을 받아서 자신의 왼쪽 손목 위에 올려놓았고, 베스렐은 아버지가 건네주는 검은 물체를 받아서는 잠시 살펴보았다.
호두 알 크기의 둥글고 납작한 흑석.
‘이건 뭐지? 쓸데없는 보석 같은 건 아닐 테고. 그냥 보기엔 마나석처럼 보이는데…….’
베스렐은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곧 아버지가 말한 대로 그것을 왼쪽 손목 위에 올려놓았다. 7써클의 대마도사인 아버지가 시키는 일이니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웬 백작은 베스렐과 리렌시아가 자신이 건네준 물건을 모두 왼쪽 손목 위에 올려놓자 곧바로 한 가지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순간 주위의 마나가 빠르게 아웬 백작의 근처로 몰려들었고 그것은 하나의 마법을 이루기 위해 조합에 들어갔다.
“유나이트 매직!”
화아아아악.
그의 입에서 곧 마법의 시동어가 터져 나왔고 마법은 환한 빛 속에 이루어졌다.
“으응?”
베스렐은 자신의 왼쪽 손목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나석처럼 보였던 그 검은 돌이 그의 왼쪽 손목에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일체가 되어 박혀 있었다.
고통은 없었다. 다만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지고 있을 뿐이었다.
“한 가지가 더 남았다. 둘 다 가만히 있어라.”
아웬 백작은 두 사람에게 가만히 있으라 하고는 또다시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다른 게 아닌 6써클의 활성화마법이었다.
“액터배이션!”
베스렐은 아버지가 마법의 시동어를 외치자마자 바로 자신의 왼 손목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건 리렌시아도 마찬가지였다.
“…….”
“…….”
이런 걸 무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스멀스멀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 두 사람의 왼쪽 손목에 박혀 있는 검은 빛깔의 돌에선 순수한 느낌의 마나가 힘차게 휘돌고 있었다.
“리렌시아는 그만 밖에 나가 보거라. 나중에 베스렐을 통해서 네 왼쪽 손목과 하나가 된 물건에 대해 설명해 줄 터이니 그리 알고.”
“예, 알겠습니다, 영주님. 그럼 두 분이서 말씀 즐겁게 나누세요.”
리렌시아는 아웬 백작의 말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실내의 문을 통해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