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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블레이드 1권(8화)
Chapter3 희망, 그리고 죽음(2)


끼이익, 툭.
이제 실내에는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아웬 갈루안스와 베스렐 갈루안스.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만이 남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실내에는 잠시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마법등이 환하게 비추고 있는 실내에서 두 사람은 잠깐 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서로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흐흠…….”
아웬 백작이 먼저 그 침묵의 기운을 쫓아내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너도 알고 있는 것이지만 지난 100여 년은 우리 가문에 있어서 암흑기라 할 수 있었다. 고룡의 저주를 받아서 후손들 모두가 무한비만증에 걸려 제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요절하게 되었지.”
“…….”
베스렐은 아버지가 하는 이야기를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경청했다.
중요한 이야기리라.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리라.
“하지만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이냐? 포기를 모르는 집안이 우리 갈루안스 집안이 아니겠느냐?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살을 뺄 수 있는 방법을 선조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 계속해서 연구해 왔다. 그리고 며칠 전에야 그 연구의 결실이 어느 정도 맺어지게 되었다.”
쿠쿵!
베스렐의 가슴이 순간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저주를, 그것도 고룡이 건 저주를 깰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내셨다니 가슴이 뛸 일이었다.
녀석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무, 무엇입니까, 아버지? 그, 그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도마뱀 새끼의 저주를 깰 수 있는 방법이?”
“어허, 이 녀석! 마법사라는 녀석이 말하는 투 하고는…….”
아웬 백작은 아들 녀석이 하는 말투가 못마땅한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곧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는지 고개를 살래살래 내저었다.
어미 없이 혼자 자란 녀석이었다. 비록 옆에서 챙겨 주는 사람이 여럿 있기는 했다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녀석의 마음을 다독여 줄 수 있는 건 아니었으리라.
매일같이 반복되는 고통의 다이어트는 녀석의 말투를 충분히 거칠게 만들 수 있었으리라.
아웬 백작은 다음의 말을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어쨌든 그 연구의 결실은 이곳 저택의 지하에 있는 네 녀석 전용 마법수련실에 남겨 놓았으니 구체적인 것은 그곳에 내려가서 알아보면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내 그것에 대해 간단한 것만 설명해 주도록 하겠다.”
“예, 빨리 설명해 주십시오. 너무나, 너무나 궁금합니다, 아버지.”
베스렐은 아버지가 하는 말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인지라 빨리 설명해 달라고 재촉했다.
‘저주를 풀 수 있을지도 모르는 방법. 그리고 그 방법은 지금 결실을 맺었다고 하셨어. 우리 집안은 주변에서 다들 천재마법사 가문이라 하니 그동안 해 온 연구가 결코 허술한 것은 아닐 것이야.’
베스렐은 믿었다.
아버지가 완성한 연구라면 자신은 머지않아 그 고통의 다이어트에서 해방될 수 있으리라고. 반드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좋다. 그럼 잘 듣도록 해라.”
아웬 백작은 곧 자신이 완성한 고룡의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 나갔다.
“너도 마법사이니 이 단어는 들어 보았을 것이다. 바로 ‘차크라’라고 하는 단어를 말이다. 이 ‘차크라’라고 것은 알트라스의 서대륙에 있는 마법사들이 연구해 온 것이다. 육체가 아닌 영적인 에너지 바디(Energy Body)에 존재하고 있다는 7개의 차크라. 서대륙 마법사들은 이 7개의 차크라를 모두 열면 신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왔다. 물론 그것은 말 그대로 생각으로 끝을 맺었다. 수백 년을 연구해도 그 자리 그대로였으니 생각은 단지 생각으로 끝을 맺을 수밖에. 하지만 우리 갈루안스가 사람들은 그 차크라라고 하는 것에서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그의 설명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대략적인 이야기를 짧게 간추려 필요한 것만을 들려주었다.
“으음…….”
베스렐은 아버지가 하는 이야기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집중하여 들었다.
녀석의 두 눈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커져 갔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베스렐 그의 두 눈에 희망이란 빛의 길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아버지가 설명해 주시는 것은 내가 전부터 생각해 오고 있던 것과 같아. 차크라! 이것에 대한 것은 예전에 어떤 한 마법서적에서 잠시 읽어 본 기억이 나. 으음……. 역시 선조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어. 드래곤이 내린 저주를 풀려면 역시나 정신적인 또는 영적인 그 무언가를 깨달아 육체의 한계를 부수어야만 해. 그래야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야. 좋아, 할 수 있어. 반드시 깨부수자.’
희망의 빛을 보게 되니 베스렐의 눈에 강렬한 신광이 어렸다.
“……하면 된다. 그러니 너는 앞으로 마법과 병행하여 차크라의 수련에 매진토록 하거라.”
아웬 백작의 설명은 잠시 후, 그렇게 모두 끝이 났다.
그는 목이 마른지 옆의 장식장 위에 놓여 있는 물 잔을 들어 입가에 가져다 댔다.
벌컥벌컥.
목이 많이 말랐었는지 그는 그 큰 잔의 물을 모두 다 마셨다.
“그럼 이번엔…….”
아웬 백작은 다 마신 물 잔을 내려놓고는 이번엔 다른 내용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건 다른 게 아닌 방금 전 베스렐과 리렌시아, 그 두 사람의 왼 손목과 하나가 된 흑석에 대한 이야기였다.
“로얄 마나석! 나는 그것을 로얄 마나석이라 이름 지었다.”
“이게 로얄 마나석이라고요, 아버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베스렐.
녀석은 자신의 왼 손목과 하나가 된 로얄 마나석이란 이름의 흑석을 바라보았다. 마나석이란 것은 그 자신이 마법사이니 잘 알고 있는 사항이었지만 로얄 마나석이란 단어는 처음 들어 보는 그였다.
“그렇다. 아마 너는 그 같은 이름을 처음 들어 보는 것일 게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직 대륙 마법계에 알려지지 않은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갈루안스 가문이 드래곤의 저주를 풀 방법을 모색하다가 몇 년 전에야 발견해 낸, 아니 새로 만들게 된 신물질이다. 따지자면 마나석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만 그보다는 훨씬 좋은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지.”
“새로운 용도라고요? 그럼 이게 그냥 마법 스태프처럼 사용하라고 주신 게 아니란 말씀입니까?”
아웬 백작은 피식 웃었다.
“후후, 당연히 아닌 게지. 물론 마법 스태프처럼 그게 마법을 사용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니 비슷하다고 할 수는 있지.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더 대단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로얄 마나석인 것이다. 바로 인간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 말이다.”
“한계를 극복한다고요?”
“그렇다. 그것은 차크라에 대해 연구를 하면서 또한 다른 방도는 없는지 찾아보다가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 가문인 갈루안스가는 대대로 7써클이라는 대마도사의 경지에 들어섰지만 그게 한계였다. 그리고 그건 인간의 한계라 말할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우리 가문은 그걸 용납할 수가 없었지. 8써클을 향한 끝없는 도전 끝에 그 로얄 마나석은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의 정식 명칭을 나는 ‘마력 하트’라 붙였단다. 8써클에 가까운 힘을 발휘하게 해 주는 마력 하트!”
마력 하트!
이것은 진정 대단한 마법 물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이것은 7써클의 대마도사라고 해도 쉽게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절대로 아니었다.
마법사의 심장에 자리한 써클.
마력 하트는 놀랍게도 이 써클을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한계라고 할 수 있는 7써클을 넘어 8써클에 이를 수 있도록 말이다.
이것은 마나 명상법을 행할 때에 자신의 심장에 자리한 마력을 키우는 것과 동시에 마력 하트란 이름의 물건에도 주변의 마나를 끌어 모아 마력으로 변화시킨 뒤에 저장하는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마력 하트에도 써클을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마력 하트가 7써클의 대마도사를 완전한 8써클의 현자 급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아웬 백작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걸 듣고 있는 베스렐은 계속해서 놀란 눈을 해야만 했다.
‘역시 우리 가문 사람들은 대단한 인재들이었어.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하셨는지 몰라?’
“보거라. 나도 너와 리렌시아처럼 마력 하트를 왼 손목과 하나가 되게 만들었다. 3년 전에 ‘유나이트 매직’과 ‘액터배이션’으로 활성화시켰지.”
스윽.
아웬 백작은 자신의 왼팔에 있는 옷깃을 뒤로 잡아당겨 녀석에게 같은 마력 하트를 보여 주었다. 그리곤 다시 마력 하트에 대해 설명에 들어갔다.
“어감이 이상하긴 하지만 나는 말하자면 7.5써클의 현자 급 대마도사라고 할 수 있단다. 마력 하트가 나를 그리 만들어 주었지. 7써클의 대마도사보다는 강하고 8써클의 현자보다는 약한 상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
“…….”
아무 말 없는 베스렐.
녀석은 아버지가 하는 말에서 한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아웬 백작.
그가 대륙의 마법사들 중 가장 강한 사내임을, 또한 역사상으로 보더라도 마법에 있어서 그가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렀음을 말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도 익히고 있는 7.5써클에 존재하는 마법수식들은 언제라도 8써클로 올라설 수 있는 수식들임을 미리 알려 주마. 이미 8써클에 존재하는 수식들은 선조들이 드래곤들이 발휘하는 마법을 보고 몇 가지를 만들어 놓은 상태란다. 그러니 너는 나중에 7써클의 대마도사가 되면 마저 그 위의 경지로 들어서기 위해 심혈을 쏟아야 한다. 물론 그 차크라 수련이 더 중요한 것이니 그것부터 해결을 하고 나서 말이다. 알아들었겠지, 베스렐?”
“예, 예에. 자, 잘 알아들었습니다, 아버지.”
베스렐은 더듬거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머릿속에 여러 복잡한 생각들이 들어차 있어 평소에 하지 않는 그런 더듬거리는 음성이 나온 것이었다.
무한비만증을 고치고 더구나 마법을 한계 이상으로 익힐 수 있다고 하니 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일이란 말인가.
“후후, 그래, 너라면 잘해 내겠지. 우리 가문의 숙원을 말이다.”
“예에. 걱정 마세요, 아버지. 내 반드시 살을 빼고 강해져서 언젠가는 그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검은 도마뱀 새끼를 죽여 버리고 말 테니까요.”
“으응? 그, 그게 무슨 소리냐?”
아웬 백작은 아들이 갑자기 언젠가는 드래곤을 죽여 버리겠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무슨 소리냐니요? 우리 가문의 숙원이 그 드래곤을 죽여 없애는 거잖아요. 걱정 마세요, 아버지. 내 기필코 그놈을 끝장내 버리고 말 테니.”
“아니다, 아니야, 이 녀석아! 네 녀석이 무슨 수로 드래곤을 없애? 그런 가당치도 않은 생각은 하지도 말거라!”
그는 아들이 하는 말에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인간이 드래곤을 죽여 없애겠다니.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겠다니.
그것도 오천 살이 다 되어 가는 고룡을 말이다.
아들 녀석이 제아무리 강해진다고 해도, 설령 검술이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고 마법이 8써클의 현자에 이른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룡이란 존재는 거의 준 신 급에 가까운 존재인 것이다.
“너는 하여간 그런 일은 꿈도 꾸지 말거라. 그냥 저주를 풀고 나중에 8써클에 오를 수 있는 것만 생각해.”
아웬 백작은 드래곤을 상대하겠다는 아들의 생각을 재차 뜯어말리고는 오늘 녀석에게 해 주려고 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하지만 베스렐은 아버지가 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속으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드래곤은 인간의 힘으로는 상대할 수 없다고? 흥! 아버지는 그리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야. 언젠가 반드시 놈을 찾아가 죽인다. 가문의 원수를, 나를 다이어트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그 녀석을 가만히 놔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거야. 나는 나를 건드린 놈은 절대로 살려 두고 싶지 않아. 꼭, 반드시 놈을 죽인다!’
녀석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스스스스슷.
그러자 녀석의 눈에서 무섭고도 살벌한 신광이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 고개를 숙인 이유는 자신의 결심 어린 눈빛을 아버지가 알아차릴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하 수련실에는 그것 말고도…….”
아웬 백작의 이야기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마치 오늘 중으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려는지 그는 끊임없이 이야기들을 쏟아 냈다.
시간은 흘러갔다.
2시간이 지난 후, 베스렐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어두운 밤.
실내에는 이제 아웬 백작 홀로 남게 되었다.
그는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흐음……. 내가 이제 며칠이나 살 수 있을런지. 체중이 600크롬을 넘겼으니 길어야 보름일 텐데. 전해 주어야 할 이야기는 모두 끝마쳤으니 더 이상 여한이 없기는 한데 왠지 억울하기는 하군. 아직 사십도 되지 못한 나이인데…….”
그는 자신의 생이 너무 짧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것은 참으로 많은데.
이제부터는 ‘마력 하트’의 도움이 아닌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8써클에 오를 방법을 연구하고 싶은데 시간이 허락지 않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휴우우우…….”
그의 입에서 나직한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밤은 점점 깊어 갔다. 그리고 새로운 날로 접어들기 시작했다.